[불교로 읽는 서유기 ]
저팔계의 짐과 숲속 환상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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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5 년 9 월 [통권 제149호] / / 작성일25-09-04 15:00 / 조회16회 / 댓글0건본문
저팔계의 얘기를 좀 더 해야겠다. 『서유기』에 익숙한 중국인들은 손오공 다음으로 저팔계를 사랑한다. 그 사랑의 이유는 좀 다르다. 손오공은 눈앞의 고난을 식은 죽 먹기로 처리한다. 그래서 손오공은 첩첩으로 닥쳐오는 삶의 고난을 대신 해결해주는 영웅의 형상으로 수용된다. 이에 비해 저팔계는 나와 비슷한 약점 가득한 존재에 대한 공감대적 사랑의 대상이다. 그 욕심과 어리석음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은연중 공감하여 그를 친근히 여기는 것이다. 지난 회에 식욕의 측면에서 저팔계의 정체성을 살펴보았다면 여기에서는 성욕의 측면에서 저팔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숲속 대저택, 아름다운 과부와 세 딸 이야기
서천여행단이 숲속을 헤매다 화려한 대저택을 만난다. 그곳에서 한 아름다운 중년 부인이 나타나 일행을 맞이한다. 부인은 자신이 남편을 잃은 과부로서 혼자 세 딸을 키우고 있는데 마침 삼장 일행이 네 명이니까 단체 혼인을 하여 무궁한 향락을 누려보자고 제안한다. 삼장은 못 들은 척하고, 손오공과 사오정은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팔계가 여기에 혹하여 호응한다. 이에 부인이 팔계를 내당으로 데리고 가서는 눈을 가리고 배우자 고르기 숨바꼭질을 하게 한다. 그런데 분명히 소리도 들리고 향기도 느껴지는데 세 딸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에 부인이 다시 세 딸이 지은 진주 속옷을 입어보도록 한다. 몸에 맞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은 딸과 짝을 맺어주겠다는 것이었다.

팔계가 진주 속옷을 입는 순간 그것이 밧줄이 되어 팔계의 몸을 묶는다. 다음날 삼장 일행이 눈을 떠보니 자신들은 숲속에 누워 있고, 저팔계는 나무에 매달려 살려 달라고 ‘꽥꽥’ 소리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중년부인과 세 딸은 여산의 여신[驪山老母: 우리의 마고할미와 유사]과 관음, 문수, 보현보살의 화신이었다. 일행은 여산의 산신과 보살의 가르침에 감사해하며 팔계를 구해 다시 길을 떠난다.
짐이 무거운 팔계
서천여행에서 팔계는 짐꾼이다. 그런 서천여행의 길에서 팔계는 짐이 무겁고, 배가 고프고, 몸이 피곤하다고 하소연한다.
누런 등나무 네(4) 조각의 바구니를 여덟(8) 가닥의 줄로 묶고는, 다시 비와 습기를 막는다고 서너 겹(3〜4) 모직으로 감쌌지, 멜대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양쪽(2)에 쇠못까지 박았지, 거기에 구리와 무쇠로 만든 구환장(9)과 등나무로 짠 삿갓까지 들었다네.
팔계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무겁기는 하다. 그러나 이 불평은 부당하다. 각자 서천여행단에서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삼장을 보호하면서 밝은 눈으로 길 안내를 한다. 사오정은 삼장의 곁을 지키면서 말을 끄는 역할을 하고, 팔계는 짐을 지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럼에도 팔계의 임무는 좀 과중해 보이기는 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수행자의 가장 무거운 짐은 탐욕과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팔계의 짐은 욕망의 무게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소유하고 싶은 대로 소유하며, 쉬고 싶은 대로 쉬려는 욕망이 짐이 되어 그를 누르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수행은 힘든 일이 된다.

팔계의 짐은 사면이 등나무로 엮인 바구니다. 그것을 여덟 개의 밧줄로 묶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면이 등나무로 된 바구니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지·수·화·풍의 4대를 뜻한다. 지·수·화·풍이 등나무처럼 갈등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그 각각의 장애성을 4배수로 증폭시키고 있는 현장이 우리의 심신이라는 말이다. 여덟 개의 밧줄은 팔계가 과제로 받은 여덟 가지 계율이다. 몸과 마음의 장애를 여덟 계율로 통제하라는 것이 팔계가 받은 숙제였다. 육신을 이루는 사대의 요구만 해도 벅찬데, 그것을 통제하는 여덟 계율까지 지고 있으므로 짐의 무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계율이 짐이 되는 이유는 평등무사한 본래 마음이 아직 해방되지 못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본성으로서의 계의 본체[悟能]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 계율[八戒]을 실천하는 것이 벅찬 것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벗어버리고 싶다. 팔계가 처음 삼장에게 귀의하였을 때 여덟 계율을 풀어 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수·화·풍이라는 존재의 짐, 그것을 통제하는 계율의 짐을 바르게 지는 길은 무엇인가? 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멜대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것을 멜대 양쪽에 박힌 두 개의 못이 담당한다. 두 개의 못은 진제와 속제의 동시 실천을 가리킨다. 그 결과 짐의 하중이 정중앙에 모인다. 중도다. 대승의 계율은 지범개차持犯開遮의 탄력적 운용을 원칙으로 한다. 이 원칙은 중도의 정신에 투철하다. 전면적 불식육계를 지키는 삼장과 고기와 술의 취식이 제한적으로 허용된 제자들이 하나의 서천여행단으로 묶인 상황 역시 중도적이다. 양끝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그 무게를 가운데에서 받도록 설계된 팔계의 멜대가 이를 상징한다.
다음으로 구환장, 고리가 아홉 개 달린 지팡이의 짐이 있다. 지팡이에 고리를 달아 소리가 나도록 한 석장은 부처님이 제정한 법식이다. 걸식을 할 때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땅을 두드려 소리를 내도록 한 것이 주된 용도였다. 여기에 동물들을 쫓는 기능, 호신의 기능, 부축의 기능 등이 더해져 승려들의 필수품이 된다. 삼장법사의 구환장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관세음보살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원래 불교의 지팡이는 그 머리에 다는 고리의 숫자를 기준으로 육환장, 팔환장, 십이환장으로 구분된다. 또한 고리의 개수에 따라 상징하는 바가 다른데, 육환장은 6바라밀, 팔환장은 8정도, 십이환장은 12연기의 실천과 깨달음을 상징한다고 얘기된다. 또 불보살에 따라 지장보살은 육환장을 쓰고, 석가모니불은 십이환장을 썼다는 기록도 전한다. 삼장법사의 출가사찰로 알려진 법문사法門寺의 지궁地宮에서 십이환장이 출토된 적이 있고, 육환장, 팔환장의 유물도 다수 전하고 있어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구환장은 없다. 요컨대 구환장은 ‘반야바라밀다심경→다심경多心經’의 경우처럼 『서유기』의 순수 창작이다. 『서유기』의 작가는 어떤 주제의식을 전하기 위해 구환장을 창안한 것일까? 소설의 맥락으로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독충의 피해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구환장을 관세음보살에게 맡겼고, 관세음보살은 이것을 태종을 통해 삼장에게 전한다. 삼장은 도보일 때 가끔 이 석장을 이용하지만 주로 용마를 타기 때문에 지팡이는 자연히 팔계에게 맡겨진다.
『서유기』의 묘사에 의하면 구환장의 몸체는 아홉 마디(9) 등나무로 되어 있고, 위에 아홉 개(9)의 고리가 달려 있다. 9×9=81의 계산식이 성립한다. 그것은 서천여행을 완성하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난의 숫자다. 『서유기』의 고난은 총 81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실제로 전체 여정이 끝난 뒤 관세음보살이 그것을 81가지로 정산하는 장면도 보인다. 중국의 문화에서 9는 숫자의 극대이므로 그것의 배수인 9×9=81은 ‘무한한 고난’을 뜻한다. 팔계는 현재 그 하나하나가 무거운 짐이 되는 상황에 있다. 끝으로 팔계에게 짐이 되는 삿갓은 석장과 함께 행각승의 필수품이다. 저팔계가 서천행 자체를 무거운 짐으로 여기는 상황을 드러내는 장치에 속한다.
환상의 대저택
서천행의 여정을 힘들어하고 짐을 무겁게 여기는 팔계와 일행의 앞에 큰 저택이 나타난다. 바로 아름다운 과부와 세 딸이 사는 집이다. 이 저택을 『서유기』에서는 “화려하면서도 청정하고 편안한 대저택, 소와 양도 없고 닭과 개도 없는 한가한 집”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많은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두고 그려보는 경계의 형상화에 해당한다. 물론 그것은 욕계적 욕망의 투영일 뿐이지, 진정한 깨달음은 그처럼 세상에 없는 완전함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수행과 깨달음은 지금 있는 이대로 부처의 드러남임을 아는 일을 내용으로 한다. 요컨대 서천행은 ‘추함→아름다움’, ‘불완전함→완전함’의 여정이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도착한 대저택은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다. 공존하기 어려운 모순적 상황이 충돌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깊은 숲속에 대저택이 있을 수 없다. 화려하면서 청정할 수 없다. 소와 양, 닭과 개가 없는 대저택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숲속의 대저택은 『법화경』 ‘환상의 성 비유[化城喩]’의 『서유기』 버전이다.
대저택의 상황을 보자. 대청에 탁자가 하나 있고, 그 주위에 여섯 개의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이때 일행의 앞에 우아한 중년 부인이 나타나 자신은 과부로서 원래의 성은 가賈=假씨이고, 죽은 남편의 성은 막莫=無씨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남편이 죽으면서 많은 재산과 예쁜 세 딸을 남겨 두었는데 삼장 일행이 넷으로 짝이 딱 맞으니까 함께 결혼해서 무한 향락을 누려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여섯 개의 의자는 육근, 즉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다. 우리의 육근은 여섯 개의 의자에 앉아서 여섯 손님[六境]을 맞이한다. 물론 육근과 육경은 물론 육식까지 더한 18계가 모두 실체가 없는 공한 존재다. 그 공성空性을 표현한 것이 부인과 남편의 성이다. 부인은 원래 성이 가賈씨라고 했다. 그것은 거짓 가假와 발음이 같아서 가짜라는 뜻이 된다. 남편의 성은 막莫씨라고 했다. 그것은 없을 무無와 발음도 같고 뜻도 같다. 없다는 뜻이다. 과부가 얘기하는 많은 재산, 예쁜 딸들이 모두 실체가 없는 가짜의 공한 존재라는 것이다. 딸들의 이름이 진실[眞眞], 사랑[愛愛], 예쁨[憐憐]이니까 여기에 어머니의 성[賈=假]을 붙이면 가짜 진실, 가짜 사랑, 가짜 예쁨이 된다. 아버지의 성[莫=無]을 붙이면 실재하지 않는 진실, 실재하지 않는 사랑, 실재하지 않는 예쁨이 된다.

반야의 눈으로 보면 일체의 모양과 이름은 분별사유로 지은 가상의 개념으로서 실체가 없다. 진실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예쁨이 그렇다. 그것은 주관적으로 정의된 개념에 기초한 분별이다. 이러한 가상의 개념에 기초하여 혹은 예쁘다, 혹은 추하다는 이름을 붙여 놓고, 예쁜 것은 좋아하고 추한 것은 싫어하는 집착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수행 중에 나타나는 다양한 경계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은 모두 이름일 뿐이고 모양일 뿐이어서 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실상은 인연의 현장인 지금의 이것에 그 존재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어머니의 성姓인 가짜[賈=假]와 아버지의 씨氏인 없음[莫=無]을 함께 붙여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는 어머니의 성姓과 아버지의 씨氏를 함께 받는 복성제도가 있었다. 성씨姓氏라는 어휘가 생긴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성씨를 붙이면 ‘부정×부정=긍정’이 된다. 세 딸에게 이것을 적용하면 “가짜가 없는[假莫] 진실”, “가짜가 없는 사랑”, “가짜가 없는 예쁨”이 된다. 절대부정[雙遮]이 곧 절대긍정[雙照], 진공이 곧 묘유임을 웅변하는 작명술이다. 물론 팔계는 아직 여기에서 멀어 별도의 진실, 사랑, 예쁨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팔계의 천운에 맡기는 혼인[天婚]
함께 혼인하여 무궁한 향락을 누리자는 과부 여인의 제안에 삼장과 손오공, 사오정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상경계의 허망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팔계는 과부를 향해 “어머니!”라고 부르며 달려든다. 부인의 자태와 저택의 풍요, 그리고 예쁜 딸들의 미모에 움직인 것이다. 이것은 팔계의 특기이기도 하다.
그는 달나라 선녀인 항아라는 대상, 묘이저라는 대상, 취란이라는 대상에 집착하여 본래의 나를 소외시키는 데릴사위의 삶을 살아왔다. 서천여행단에 참여한 뒤에도 대상만 바뀔 뿐, 대상에 대한 집착은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된다. 수행의 과정에 만나게 되는 특별한 경계에 집착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것은 예쁜 여인을 찾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그 실재하지 않는 미녀들을 아내로 맞고자 하는 팔계의 혼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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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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