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페이지 정보
원택스님 / 2025 년 9 월 [통권 제149호] / / 작성일25-09-04 16:06 / 조회72회 / 댓글0건본문
오래전 이런저런 일로 서울을 오르내릴 때, 조계사 길 건너 인사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 이층집 벽면에 벽을 가득히 타고 올라간 꽃줄기에 주황색 꽃잎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울렁거리게 할 정도였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꽃이 능소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冠帽에 꽂아주는 어사화御賜花로도 쓰여서 일반 평민들은 함부로 심지 못했던 꽃이라 합니다.
그렇게 이 꽃에 관심을 가지고 지내다가 백련암 샘가 거북바위 가까이에 능소화를 심은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세월과 함께 가지가 자라고 자라서 덩치 큰 거북바위를 감싸듯 줄기가 퍼지더니 작년에 비로소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앞 가지 꽃이 떨어지면 뒤 가지 꽃이 이어서 피어나 두어 달을 그렇게 피고 지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감동 있게 바라보던 능소화를 백련암 마당에서 마음껏 즐기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10여 년 전에 능소화 몇 줄기를 영자당影子堂 오르는 담 밑에 심었는데, 그 줄기가 7미터 높이의 담을 따라 뻗어 오르더니 거북바위를 덮은 꽃과 함께 영자당 계단을 오르는 동안 넋을 놓을 정도로 피어나 고맙고 반갑기만 합니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기다림’ 등이라고 합니다.
백련암은 해인사 암자 중 동쪽으로 제일 높은 곳에 있어서 참배객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어쩌다 백련암까지 올라온 귀하고 귀한 분들이 뜻밖에 능소화를 만나고 주먹만 한 백단심 무궁화꽃을 보고서는 모두들 반가워하고 신기해하며 참배하시니, 소납으로서는 이 꽃들이 효자처럼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혜심국사의 『선문염송집』과 성철 큰스님의 상당법어
지난호 《고경》에서 말씀드렸듯이, 올 초 백련불교문화재단과 BTN불교TV는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이라는 타이틀로 3월 12일(둘째 수요일) 오후 2시 첫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3번(재방 2회)을 방영하기로 하고 8월 말쯤 마치는 것으로 약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본지풍광本地風光 설화說話,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를 방영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호 글을 쓰기 전에 BTN에 확인해 보니, 담당 PD로부터 10월 첫째 주쯤에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를 방영할 예정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철 종정예하께서는 『본지풍광』을 강설하실 때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의 내용을 중심에 두고 설법을 하셨습니다. 『선문염송집』은 조계산 수선사의 제1세이신 보조지눌普照知訥(1158~1210) 조사의 제자이자 제2세인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 조사가 선종의 화두를 모아 편집한 공안집인데, 최씨 무신정권의 집권자인 최충헌의 손자이자 최우의 아들인 만종萬宗(?~?) 스님이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던 단속사로 출가하여 주지로 있을 때였습니다.
『선문염송집』의 출간은 한국불교의 정신사적 위업인 간화선 수행체계를 확립한 걸작입니다. 내용적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선종의 역대 조사들의 1,125칙 공안과 그에 대한 후대의 염拈·송頌과 착어着語 등을 모아 선종의 전등傳燈 순서에 따라 배열하여 1226년(고려 광종 13)에 30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할 때 『선문염송집』의 목판본이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혜심의 후배이자 조계사 수선사 제3세인 청진국사淸眞國師 몽여夢如(?~1252) 조사가 347칙의 공안과 착어를 추가하여 새롭게 편집하였고, 단속사 주지 만종스님의 후원으로 1243년(고종 30)에 남해의 분사대장도감에서 재간행되었습니다. 고려대장경의 보유판으로 『선문염송집』이 수록되어 이를 견본으로 조선시대에는 여러 곳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아래의 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시집이라 할 수 있는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에 들어 있는 혜심조사의 시입니다. 그의 선기를 엿볼 수 있는 시라 소개를 해봅니다.
靈光無畏爍虛空 불성의 신령스러운 빛은 온 누리에 빛나고
德過恒沙蘊箇中 무량한 공덕은 바로 이 몸 안에 있네
凡聖本來同一地 성인과 속인이 본래 하나인데
更於何處覓圓通 다시 어디에서 깨달음을 찾는단 말인가
성철 큰스님 상당법어 녹음을 풀어 『본지풍광』 책으로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철 종정예하께서는 안거 기간 중에 상당법어를 하실 때는 『선문염송집』에 있는 역대 조사스님들의 활구 참선법어를 자주 차용하셨습니다. 이를 보고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김영욱 박사나 연세대 신규탁 교수는 성철 큰스님은 불교계에서 『선문염송』을 법어에 제일 많이 이용하신 분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납이 큰스님의 상당법어를 정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소납은 백련암으로 출가한 지 3∼4년이 지나 상기병이 심해져서 좌복 위에 제대로 앉지도 못 하고 서서 움직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큰스님께서 1967년 7월에 해인총림 초대방장에 추대되시고, 그해 동안거 100여 일 동안 “선과 교가 중도사상으로 일관한다.”는 취지로 설법하셨는데, 그 녹음을 릴테이프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옮겨놓은 것이 있어서 4∼5년 걸려서 100여 개 넘게 녹취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녹음 테이프를 듣던 어느 날, 결국 큰스님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하라는 참선은 안 하고 지금 뒷방에서 뭣하고 있노 이놈아!” 하시며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상기병이 들어 참선하기가 힘들어 백일법문을 다 듣고 지금은 큰스님께서 결제 때마다 하신 상당법문 녹음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몇 년 동안 녹취한 것을 다 가져와 불살라 버리라고 하실까 봐 온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었습니다.
“니까짓게 그걸 듣는다고 아나? 참선을 해서 깨쳐야 알지! 이 바보같은 놈아! 그럼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제1칙인 「덕산탁발화」를 번역해 가져와 봐라.”
“휴, 살았다.” 하는 마음으로 물러 나와 듣고 또 듣고 하여 원고를 완성해서 큰스님께 올렸습니다. 한참 동안 원고를 읽어 살펴보시더니 “누가 이렇게 번역했느냐?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 하시며 원고를 내던지시면서 노발대발하셨습니다. “고쳐오라.”고 하시는데, 녹취 중에 어디 한 군데도 빠뜨린 곳이 없는데 원고를 올리면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라고 노발대발하시며 세 번이나 퇴짜를 맞고 쫓겨났습니다.
“니도 참 어지간한 놈이다. 세 번이나 고쳐 오라고 했으면 한 글자라도 고쳐 오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 어떻게 한 자도 고쳐 오지 못하는 멍청이냐. 내가 직접 해야겠다.”라고 하시며 새벽 예불 마치고 한 시간 정도씩 3개월에 걸쳐 구술을 마치셨습니다. 번역을 하신다고는 하나 한자를 한글음으로 읊으시는 정도의 서당식 번역이다 보니 제가 모르는 구절이 더 많아서 당황했던 기억입니다.

큰스님의 법문 녹음과 직역 구술을 가지고 낑낑거리고 있는데 마침 동국역경원의 월운 큰스님께서 『선문염송』을 5권으로 번역·출간하셨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큰스님의 법문 녹음과 구술, 그리고 월운 큰스님의 『선문염송』을 참고해서 원고를 정리해 올리니 그제서야 긍정하시며, “상당법문을 잘 정리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소납이 깨달은 것은, 큰스님 녹음 번역은 구술형으로 문장이 늘어지고 월운 큰스님 번역은 문어체로서 간결함이 ‘결정적’ 차이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1982년 12월 17일에 『성철선사 법어집 본지풍광』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본지풍광』이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로 출간되기까지
뉴욕에서 포교를 하고 있는 원영스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이런저런 소식을 나누다가 원영스님이 물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에 「본지풍광 평석」이 몇 편 있어서 『본지풍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던데, 평석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말 마소. 옛날에는 어떻게 그렇게 녹음을 정리했는지 신통하네요. 요즈음은 시간이 없어서 일 년이 지나도 한 칙도 제대로 정리를 못 합니다.”
“원택스님이 아직도 큰스님 시자란 생각만 하고 있습니까? 녹취한 것을 선을 공부한 석·박사들에게 정리하라고 하면 될 터인데, 꼭 그것을 스님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원영스님의 말끝에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집중하지도 못하면서 내가 해야 한다고 끙끙거리고 있는 내 잘못이 크구나. 내가 그동안 정리한 녹취록과 테이프를 정리하여 선학 석·박사들을 찾아 맡기면 되는 것을…”
그 후 다시 『본지풍광』의 평석 작업을 진행하여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1권(469쪽)을 2007년 10월 3일, 제2권(519쪽)을 2009년 2월 15일 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를 2권으로 출판하니, 서점에서도 힘들어하고 독자들의 반응도 1권과 2권에 편차가 생겨 2020년 6월 10일에 1, 2권을 합쳐 요샛말로 벽돌책(868쪽)으로 발간하게 되니, 『본지풍광』을 처음 발간한 후 28년이 지났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해야 한다, 해야 한다고 걱정만 하고 살다가 원영스님의 충고 덕으로 각오를 새로이 해서 큰스님께서 강설하신 것을 녹취하여 정리하고 보니, 예전 『본지풍광』과는 또 다른 두께의 책이 되어 큰스님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는 훌륭한 ‘선 해설서’가 되었습니다.
깊은 인내심이 필요한 BTN불교TV의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10월 중순부터 BTN불교TV에서 〈본지풍광 설화–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가 방송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니, 귓가에 큰스님 불호령이 떨어진 듯 옛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와서 몇 마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맘 먹고 이 책을 손에 든 독자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수시든, 본칙이든, 염이든, 송이든, 결어이든 그 어디에서도 “깨쳐야 알지 깨치기 전에는 모른다.”라는 성철 종정예하의 방·할이 끝없음에 지루함, 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물며 BTN불교TV 화면으로 시청하시는 여러분들의 노고는 이루 말씀드릴 수 없는 인내가 있어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며 시청자 여러분에게 깊은 인내심을 부탁드립니다.
〈본지풍광 설화–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는 프로를 시청하시면서, 모든 알음알이를 끊고, 부처님과 가섭존자, 역대 조사의 암호밀령을 깨치시는 언하무심言下無心의 인연을 가지신다면 누구보다도 성철 종정예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철 종정예하께서 상당법문을 하실 때마다 “깨쳐야 알지 사량분별하는 생각으로는 알 수 없다.”라는 말씀을 귀가 따갑도록 되뇌이면서 후학들을 일깨우시려고 주장자를 휘두르셨습니다. 부디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인내하시면서 큰스님의 가르침의 뜻을 터득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법안문익의 생애와 일체현성一切見成의 개오
중국선 이야기 54_ 법안종 ❶ 중국은 당조唐朝가 망한 이후 북방에서는 오대五代가 명멸하고, 남방에서는 십국十國이 병립하는 오대십국의 분열기에 들어서게 되었고, 이 시기에 남방에…
김진무 /
-
검선일여劍禪一如의 주창자 다쿠앙 소호
일본선 이야기 21 일본 역사의 특이점은 1192년 가마쿠라 막부로부터 1868년 메이지 혁명에 이르기까지 무사의 통치가 장기간 이어졌다는 점이다. 왕이 존재함에도 …
원영상 /
-
붓다, 빛으로 말하다
밤하늘 남쪽 깊은 은하수 속, 용골자리 성운은 거대한 빛의 요람처럼 숨 쉬고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적외선 눈은 그 안에서 막 태어난 별들의 울음과 죽음을 준비하는 거대한 별의 고요한 숨을 …
보일스님 /
-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오래전 이런저런 일로 서울을 오르내릴 때, 조계사 길 건너 인사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 이층집 벽면에 벽을 가득히 타고 올라간 꽃줄기에 주황색 꽃잎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
원택스님 /
-
‘마음 돈오’와 혜능의 돈오견성 법문
보리달마菩提達磨는 인도에서 건너와 중국에 선법禪法을 전한 초조로 알려져 있다. 이후 중국 선종은 『능가경』에 의거하는 달마-혜가慧可 계열의 선 수행 집단인 능가종楞伽宗, 선종의 네 번째 조사[四祖]…
박태원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