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카일라스산 VS 카일라사 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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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5 년 12 월 [통권 제152호] / / 작성일25-12-04 10:29 / 조회61회 / 댓글0건본문
『고경』을 읽고 계시는 독자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필자는 히말라야의 분수령에 서 있다. 성산聖山 카일라스산을 향해 이미 순례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앞다리는 티베트의 땅을 딛고 있지만, 뒷다리는 아직 네팔 땅을 밟고 있는 처지이다. 어찌 보면 우주적인 거창한 모양새이긴 한데, 그러나 내 영혼은 오히려 카일라스산이 아닌, 머나먼 남인도 땅, 엘로라(Ellora)석굴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나 자신도 헷갈려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뜬금없이 웬 인도? 하며 의아해하시는 독자분들이 계시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엘로라석굴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울림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애써 무시하고 오히려 오랫동안 별러오던 카일라스산을 향해 히말라야 분수령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역시 마음은 무겁기 짝이 없다.
카일라스 성산 VS 카일라사 나트
카일라스산과 카일라사 사원은 도대체 무슨 연결고리가 있어서 이토록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인가? 이 화두를 해결하지 않고 ‘카일라스 꼬라’에 오르는 것은 뭔가 격이 맞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기야 ‘카일라스 꼬라’를 잠시 미뤄두고 손오공 거사의 동족인 하누만(Hanuman)의 근두운筋斗雲을 불러 타고 엘로라석굴로 날아가는 차선책을 택하였다.

흔히 카일라사로 알려진 이 석굴사원의 정식명칭은 ‘카일라사-나타(Kailāśa-Nātha)(주1)인데, 여기서 ‘나타’는 존칭어이기에 별 뜻은 없다. 그러니까 그냥 ‘성스러운 카일라사’ 사원이란 뜻이다. 이곳은 바로 중인도 마하라쉬트라(Maharashtra)주州에 위치한 엘라푸라(Elapura=Ellora) 석굴군에 속한 사원으로 경사진 현무암 절벽을 따라 2km 이상 뻗어 있는데, 오른쪽으로부터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순서로 총 34개 석굴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카일라사-나트(KailasaNath)’는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제16번째 석굴로,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석굴사원으로 높이 32m, 길이 78m의 규모를 자랑한다.
유일무이한 수직 굴착掘鑿 공법
이 석굴을 참배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말은 “불가사의不可思議!” 그 한마디였다. 우리 호모사피엔스에게 개미의 DNA가 섞여 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인간들은 개미처럼 땅을 파들어가서 석굴사원들을 만들었다. 부연하자면 암벽을 옆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바닥과 천장과 기둥 그리고 기타 종교적 구조물을 남겨 놓고 공간을 비워두었다는 말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카일라사-나트’였다. 거대한 단일 암석을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파 내려가는 수직굴착공법으로 마치 우물을 파 내려가듯이 사원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현대적인 3D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이 없었던 중세 시절에 오직 망치와 끌만으로 이러한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간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원 속의 구조물만을 남겨 놓고 쪼아내어 외부로 옮긴 암석 부스러기의 중량은 무려 20만 톤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총 4천 명의 석공들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완성된 구조물이나 부조들을 도상학적圖像學的(주2) 특징으로 살펴본 바로는 한 왕조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왕조가 대를 이어가며 대략 2백년 동안 공사를 이어갔을 것이라고 한다.
‘스탐바’는 우주와 지상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기둥
외부세계와 석굴사원의 경계를 구분 짓는 관문인 고뿌람(Gopuram)을 지나면서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석굴사원이란 이미지로 인해 참배객들은 우선 놀란다. 어둠침침할 줄 알았던 석굴사원 안쪽으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드넓은 안마당을 바라보니 바로 왼쪽 눈앞에 거대한 코끼리 조각상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 앞에 거대한 사각석주四角石柱가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스탐바(Stambha)’였다. 우주와 연결되는 ‘수메루(Sumeru)’산을 상징하는 ‘우주목宇宙木’(주3)으로서의 카일라스산을 상징하는 바로 그 기념 석주였다. 그러나 내 눈에는 진짜 카일라스산을 닮은 게 아니라, 마치 지붕이 있는 이집트식 오벨리스크(Obelisk)를 닮은 모양이다. 그래도 모든 자료에서는 그것이 바로 카일라스산을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4각형의 돌기둥은 높이 15.5m, 폭 2.4m의 크기로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형태로 4면에는 시바신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아이콘들이 부조되어 있다. 나는 감격에 겨워 석주를 시계방향으로 몇 번이나 돌면서 ‘카일라스산 VS 카일라사–나트 사원’이라는 화두삼매에 빠져 들어갔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려 드넓은 시계방향으로 화랑을 따라 꼬라를 돌다가 역시 U자형 반대편 공간에 서 있는 오른쪽 스탐바 석주와 코끼리 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왼쪽과 오른쪽 스탐바를 비교해 보기도 하였다.
시바신에게 헌정한 카일라사-나트 사원
이 사원 곳곳에는 ‘스탐바’ 기둥처럼 카일라스산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상징물도 있는 반면에 시바교파(Shivism)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스토리가 조각상 또는 부조浮彫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시바신상이 모셔진 중앙 사당은 고색창연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2층에 있는데, 그곳에는 성스러운 황소 난디(Nandi Mandapa)(주4)를 모신 사당과 그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구름다리 같은 석조다리가 놓여 있고 부속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드디어 시바신의 심장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옴 나모 시바야.”
시바교파를 중심으로 한 이런 판테온(Pantheon)의 설계는 고대 힌두교의 삼신사상(Trimurthi)에서 쉬비즘(Shivism)이 대두하는 시기에 이 사원의 개창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8~9세기부터 시작된 인도 대륙 전체의 공통된 현상이었고, 당시 이 사원을 개창한 라쉬트라꾸따(Rashtrakuta) 왕조의 크리슈나(Krishna I세, 656~773) 라자(Raja)도 당시 유행하는 시바교파에 경도傾倒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원 이름도 ‘카일라사-나트’로 명명되었던 것이고….
카일라스산과 영웅 하누만
힌두교 판테온에서 신들은 일반적으로 복합적인 캐릭터와 다양한 아이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특히 시바신의 경우가 두드러진다. 힌두교가 고대 브라만교의 바통을 넘겨받으면서 부라만, 비슈누, 시바의 삼신주의(TriMurthi)로 굳어질 때 시바의 역할은 ‘파괴와 소멸’의 몫이었다. 그러나 후에 브라만교의 중요한 신들의 권력을 시바교파가 인수하면서 교세가 커지자 창조와 유지의 몫까지 맡으면서 많은 아이콘과 아바타(Avatha)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중 원숭이신 하누만도 있었다.

처음에는 조연급이었던 하누만은 힌두의 양대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로 존재감을 나타내면서 서사시의 주인공 라마 왕자를 도와 시따(Sitar) 공주를 구출하는 중요한 배역을 맡아 힌두문화에서 주인공급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의 화두인 ‘카일라스산 VS 카일라사-나트’에 한해서라면 하누만의 역할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그저 랑카전투에서 부상당한 라마왕자의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신비의 약초가 자라는 카일라스산을 통째로 날라 왔다는 대목이나 악마의 왕 라바나가 시바신을 시샘하여 산을 밑둥치에서부터 흔들었다는 대목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정도여서 살짝 섭섭함을 금할 수 없지만, 이 또한 설화의 한 토막인 것을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랜만의 이번 남행길에서 우주적인 석주 ‘스탐바’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하누만의 근두운 값은 건졌으리라….

<각주>
(주1) 이런 표기는 IAST(International Alphabet of Sanskrit Transliteration)으로 범어에 대한 로마-알파벳 표기법이다. 그리고 ‘Nātha’는 ‘군주’를 의미하나, 힌두교의 다양한 경전과 요가 전통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로 성자들의 이름으로 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주2) ‘팔라’와 ‘찰루키아’ 식의 건축 양식이 섞여 있는 걸로 보아 오랜 세월 동안 굴착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3) 비교신학자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종교학에서 사용한 용어로 우주목宇宙木(cosmic tree)은 하늘, 땅, 지하 세계를 연결하는 ‘세계의 축(axis mundi)’이자 우주론적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주4) ‘난디’란 시바의 탈것인 황소를 말하는데 난디 사당은 2층에 중앙에 구름다리로 주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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