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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이단의 선사 덴케이 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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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17:03  /   조회3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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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선 이야기 25

 

이단은 확립된 전통 혹은 주류 교단과는 노선을 같이 하지 않거나, 그들로부터 배척된 부류를 칭한다. 역사가 흘러 주류가 이단을 흡수하기도 하고, 역으로 이단이 독립해 주류보다 세력이 더욱 커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단이라고 낙인이 찍혔다고 해서 역사는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종교사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일본불교 또한 마찬가지다. 12세기부터 등장한 중세 신불교는 기존의 불교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탄압을 당했다. 그러나 현재는 중세 교단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교단 내에서도 이단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15~16세기의 전국戰國시대에 잇코잇키[一向一揆: 정토진종의 신도들이 지방 정부나 권력자들에 대항해 일으킨 봉기] 당시 세속 권력에 굴복한 자들을 이단으로 보았다. 

 

사진 1. 덴케이 덴손(天桂傳尊, 1648~1735)의 정상頂相. 양송암陽松庵 소장.

 

조동종의 경우는 교단 권력의 향배에 따라 이단시되었다. 덴케이 덴손(天桂傳尊, 1648~1735)은 교단 법도法度 제정에 있어 만잔 도하쿠(卍山道白)의 종통복고운동의 핵심인 면수사법面授嗣法을 교단이 수용하자 이에 반발했다. 당시에는 학인의 깨달음에 관계없이 스승과 제자가 인연을 맺으면 불법이 계승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사자면수師資面授라고도 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견성사법見性嗣法이라는 말이 대두하기도 했다. 덴케이는 대오확철하여 부처의 지견을 얻는 것이야말로 바로 사법이며, 면수는 본래의 면목을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불법을 깨달으면 한 사람의 스승에게 면접을 보지 않아도 사법이 가능하다고까지 보았다. 그러나 그는 만잔파에 의해 결국 이단으로 몰렸다. 사실 임제종이든 조동종이든 애초에 견성하지 않은 승려는 사법이 불가능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덴케이의 깨달음

 

덴케이는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나 창예사窓譽寺에 출가하고, 18세 이후는 아이치현의 만송사萬松寺, 교토부의 흥성사興聖寺 등의 사찰에서 수행했다. 황벽종의 데츠겐 도코(鐵眼道光)로부터 『능엄경』, 제종겸학의 쇼센 뇨슈(正專如周)로부터 『화엄경』을 배우고, 시즈오카현의 정거사静居寺에서 고호 카이온(五峯海音)의 법을 계승했다. 불생선不生禪을 주장한 반케이 요타쿠의 문하에서도 참선했다.

 

그가 첫 깨달음을 얻은 것은 23세 때다. 천용사泉涌寺의 가이코 인슈(戒光院周) 율사가 『법화경』을 강의할 때, “육십소겁위여식경六十小劫謂如食傾”과 “보살지서원사菩薩地誓願事”라는 말에 의단이 생겨 율사를 비롯하여 노숙들에게도 물어봤지만 해답을 얻지 못했다. 이후 참선에 몰두했다. 3년 뒤에 산천의 풍광이 명미明媚(매우 아름다움)함을 느끼고 마음이 확연해졌다. 그는 “지금부터 섬기전전閃機電轉(전광석화처럼 기틀을 보고 밝은 지혜를 굴림), 그 칼끝에 제대로 닿는 자 없으리라.”라고 읊었다.

 

사진 2. 와카야마시의 창예사窓譽寺 전경. 사진: Ameba 홈페이지.

 

또 다른 계기는 반케이와의 만남에서다. 승당에 걸린 선불장選佛場 액자를 보고, 반케이는 “이것 또한 야호굴野狐窟”이라고 했다. 덴케이는 “안피불만眼被佛瞞(눈이 부처에 의해 가려졌다)”이라고 했다. 반케이는 “실로 종문의 노골과老骨檛다.”라고 칭찬했다. 도가 무르익은 인천人天의 스승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송나라 여정선사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고 귀국했을 때, 도겐이 “눈은 횡으로 코는 수직으로 난 것을 인득하고, 다시는 속임을 당하지 않았다.”(『영평광록』)는 말에 의거한 것이다. 살불살조의 경지다. 

 

종조 정신의 계승

 

무엇보다도 그가 잘 알려진 계기는 종조 조겐의 『정법안장』에 최초의 주석을 하여 자신의 사상을 드러낸 것에 있다. 『정법안장』은 4종이 있다. 75권본(舊草)과 12권본(新草)은 각각 다른 내용으로 도겐이 직접 편집을 행한 것으로 본다. 60권본은 영평사 5대 기운義雲이 편찬한 것으로 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9대인 소고[宋吾]가 서사한 것으로 소고본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28권본은 60권본을 편찬하고 남은 것을 모은 것으로 본다. 이를 『비밀정법안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는 75권본이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다.

 

덴케이가 종통복고운동을 비판하면서 종조의 정신을 밝히기 위해 활용한 것은 60권본이다. 그 주석서를 『정법안장변주병조현正法眼蔵弁註並調絃』(1726~27)이라고 이름 지었다. 당시에는 어떤 본이 도겐이 직접 편찬한 것인지 아닌지 구별이 되지 않을 때였다. 덴케이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내용에 오자나 탈루를 판별하여 어구를 삭제하거나 개정하기도 했다. 

 

사진 3. 덴케이 덴손의 시. 에도[江戶]시대 시집.

 

『정법안장』의 면수, 사법, 수기권을 주석하면서 견성사법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많아 150년이 지난 1881년에서야 간행되었다. 그는 교단 주류인 만잔파에 대항해 절치부심하며 만년에 주석서를 냈다. 경외시된 그의 문하에 참선하는 것을 ‘덴케이 지옥’으로 비꼬아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시로써 “사람이 무엇을 말하든 마음대로 말해도 좋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지금 이렇게 나니와[難波]에 살고 있으니”라고 했다. 

 

나니와는 현재의 오사카의 한 지역 이름이다. 시를 지을 때 나니와는 갈대[葦]와 연어緣語(인연 있는 글자)다. 이 갈대의 일본어 발음이 ‘좋다, 나쁘다’라는 양쪽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아무튼 그는 종조의 철학이 바르게 계승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은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

 

덴케이의 선사상

 

덴케이의 선사상은 어떤 것일까. 그는 말한다. 일체중생이 원래부터 미혹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이라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은 진실한 불법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외에는 불성이 없다고 한다. 견문각지의 대상이 없음에도 묘하게 견문각지 하는 것이 자신의 묘법이자 성불의 정인正因인 불성이다. 원래부터 잘못된 것도 없고 파괴될 것도 없는 해탈의 불심은 일체중생에게 있으며 그렇다고 한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는 남음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무생무멸’의 불심이다.(『선문조종법어전집』, 이하 동일) 이렇게 보면 그는 다분히 반케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보인다.

 

덴케이는 “견문각지는 망심이며, 부처다 법이다라고 분별하는 것은 모두 외도의 견해”라고 한다. 이 마음에는 “정예浄穢도, 본래 참도 허망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미혹한 범부이며, 부처는 각자覺者라고 생각하는 것은 둘도 셋도 아닌 유일한 불승佛乘의 본심, 본불本佛을 등지는 것이다.”라고 한다. 따라서 수많은 분별을 분별하지 않고 쉬면서 단지 “나의 본래부터 분명한 불심은 묶여진 것이 있는가, 풀어진 것이 있는가,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일어나고, 전념 후념은 어디로 향해 사라지고 있는가를 조견해야만 한다.”고 한다.

 

이는 주객미분의 상태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는 이 일념을 무념이라고 한다. 선악전후라는 갖가지 분별은 모두 무념무심의 그림자이며, 물에 비치는 달과 같이 취사애증해서는 안 된다. 이 묘한 불심을 얻을 때, 일체의 물에 방해받거나 분별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때를 “부처의 마음, 부처의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중국·일본선의 핵심 사상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성미래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덴케이는 불성무성설佛性無性說, 불성미래설佛性未來說을 주장한다. 먼저 그는 정각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여래의 정각이 쉬울까 빠를까를 논하는 것은 마설魔說이다. 대론大論(『대품반야경』)에도 설한다. 여래는 부처가 오는 것처럼 중생도 오는 것이다. 불심과 중생심 두 가지는 없다. 여래의 본각이 오래전에 이미 성불을 나타내는 까닭은 중생의 화도化度를 위해서다. 이것을 우리의 불설이라고 숭앙했다.

 

마야태산摩耶胎産에서부터 8상성도는 마설이다. 중생이 본래성불임을 모르기 때문에 8상으로 보여준 것이다.”(『여이탄금변주驢耳弾琴辯註』, 이하 동일) 여기서 본래성불을 견지하며 여래 성불을 마설로 본다. 불성이 인연에 의해 드러나는 시점을 보여준다. 그는 “만법 유식의 나타남은 자심의 보경寶鏡에 비춰진 그림자다. 견문각지가 불성이라는 것도 거울에 비친 마음의 그림자다.”라고 한다. 그리고 “불성과 중생은 이명동의異名同義. 비유하자면 8식이 변하여 대원경지가 되는 것과 같다. 단지 그 이름이 변하는 것일 뿐. 그 형태가 있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이름을 설할 때는 4성6범四聖六凡(성문·연각·보살·부처의 출세간과 육도의 범부). 그 뜻을 말할 때는 모두 같은 일성一性, 소위 무성無性이다.”라고 한다.(『여이탄금驢耳弾琴』) 불성은 무성이다.  

 

사진 4. 만년에 덴케이 덴손이 머문 오사카부 이케다시 양송암陽松庵 전경. 사진: 양송암.

 

이를 위해 마음에 염정선악染淨善惡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천태의 성구설性具說과 불개不改의 성을 들어 비판한다. “선악은 모두 인연이다. 이를 천태가 성선, 성악이라고 한다. 부처가 받들지 않은 것을 말하고 오히려 자랑하는 것이다.”(『여이탄금변주驢耳弾琴辯註』, 이하 동일) 그리고 “일체의 법은 인연 외에는 없다고 결정해야 한다. 천태에서 성性이 있다고 한다. 부처가 뱃속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닌가.”라며, 또한 “천태의 성은 불개라고 한다. 안에 무엇이 있는가. 찾아서 보라. 천태승의 뱃속에 어떤 덩어리가 있는가. 더욱이 타종에는 없는 이야기라며 자랑한다. 온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대승불교에서 창안된 불성의 실체설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덴케이는 인중설과因中說果라는 방편을 통해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수행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고 한다. “일체중생도 불성도 인연에 의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고 설한다. 마음 있는 자는 성불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인중설과라고 한다. 이는 중생 인화引化를 위한 것이다.” 불성은 인연이며, 인중설과는 방편인 것이다.

 

나아가 그는 도겐의 설을 끌어들여 “누가 도를 성취하는가. 불성은 반드시 성불한다, 불성은 성불 이후의 장엄이라고 한다. 또한 소위 불성은 성불보다 앞에 구족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한다. 불성은 반드시 성불과 동참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또한 “천제인闡提人에게도 불성은 있어 지금은 선근을 끊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지만 미래에는 일어나기도 한다.” 일천제 성불론은 종파마다 다르지만 대비일천제는 중생 제도를 위해 성불을 미룬다고도 본다.

 

이를 종합하면, 불성의 현현은 미래의 일이며 수행으로 그것이 비로소 드러난다. 즉, 불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묘각의 깨달음을 통해 이뤄진다. 마치 도겐의 지관타좌를 극한으로까지 몰고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불성은 성불 이후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불성을 이해하는 것은 지혜에 달려 있다. 그는 “모든 법은 무성으로 스스로의 존재가 없다.”고 하며, 불성 자체도 무상하며 인연에 따라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다. 『중론』의 무자성이기 때문에 공이라는 점과도 상통한다. 긍정 부정을 떠나 불법을 관통하는 덴케이의 치열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관자재는 바로 너다!

 

덴케이는 시가현의 대운사大雲寺, 오사카의 장로암蔵鷺庵, 도쿠시마현의 장육사丈六寺 등에도 머물렀다. 탁발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만년에는 오사카현의 양송암陽松庵에 주석했다. 그곳에서 『유마경』, 『벽암록』, 『반야심경』 등의 대승경전을 젊은 승려들에게 강의했다. 그는 “관자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다.”라고 하며, 모든 사람이 관자재임을 설파했다. 덴케이 또한 ‘본래무일물’의 관자재보살이었다. 그 후광이 너무나 두렷하고 밝아 산천을 다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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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원불교 교무, 법명 익선. 일본 교토 불교대학 석사, 문학박사. 한국불교학회 전부회장, 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원광대학교 일본어교육과 조교수. 저서로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공저), 『佛教大学国際学術研究叢書: 仏教と社会』(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일본불교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교훈」 등이 있다. 현재 일본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wonyo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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