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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조사 문중의 열 가지 폐단을 지적한 『종문십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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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17:10  /   조회6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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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58_ 법안종 ❺   

 

법안종은 조사선의 오가 가운데 마지막으로 세워졌다. 법안문익이 활동하던 시기는 당조가 망하고, 오대·십국의 분열기에 속해 있다. 그러한 까닭에 이 시기는 중국 전체가 다양한 전란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남방에 속한 십국에는 오히려 불교가 흥성했다. 그러나 당시 남방에서는 다양한 종파들이 난립하고 있었고, 주류를 이루었던 조사선의 계열에서도 일부 승려들이 참다운 종풍宗風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선리를 제창하는 폐단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익은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을 찬술하였는데, “자서自敘”의 끝부분에서 “종문宗門에 병폐를 지적하여 간략히 변별한 열 가지 조목은 일시적인 폐단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망령된 말을 해석한 것이다.”(주1)라고 밝히는 바와 같이 당시 ‘종문’, 즉 위앙·임제·조동·운문 등의 조사선에 나타난 병폐를 열 가지 조목(주2)으로 규정하고, 그를 하나하나 상세히 논하고 있다.

 

사진 1. 법안문익 선사가 『종문십규론』을 찬술한 남경 청량사 입구.

 

그러나 이 저술에는 선문을 비판하면서도 문언 자신의 선리를 선양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개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열 가지 조목을 모두 나열하면서 설명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지면의 한계로 최대한 간결하게 문언의 조사선에 대한 인식과 평가, 이사원융, 선교불이 등의 세 가지 측면에서 『종문십규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언의 조사선 인식과 평가

 

『종문십규론』에서 문언은 자신이 속한 ‘종문’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구에서 유추할 수 있다.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것은, 전할 만한 어떤 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곧 부처가 되게 하려 했을 뿐[見性成佛]이니, 어찌 특별히 숭상할 만한 문풍門風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후대의 종사宗師들은 교화를 펼치는 데 각각 차이가 있었고, 이에 따라 문풍도 점차 달라졌다. 예컨대 혜능慧能과 신수神秀 두 선사는 근본적으로 한 조사의 법을 이었으나, 견해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세상에서 이들을 남종·북종이라 불렀다. 혜능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에 남악회양南嶽懷讓과 청원행사青原行思 두 선사가 그 교화를 이어받았다. 행사 선사 아래에서는 석두희천石頭希遷 선사가 나왔고, 회양 선사 아래에서는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배출되었다. 또한 강서江西의 마조와 (호남湖南의) 석두 두 선풍이 있어 두 갈래로 나뉘어 각기 문파를 이루었고, 모두 한 시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 근원과 흐름은 매우 복잡하여 자세히 기록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윽고 덕산德山·임제臨濟·위앙潙仰·조동曹洞·설봉雪峰·운문雲門 등이 출현하였고, 각 문정門庭의 시설施設이 있어 높고 낮음의 품격을 갖추게 되었다.(주3)

 

이로부터 문언의 명확한 ‘종문’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데, 서쪽에서 온 달마조사로부터 문익 이전에 이미 출현한 임제·위앙·조동·운문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신수의 북종도 종문에 포섭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그 까닭은 문언의 사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신수의 사상은 『대승기신론』을 원용하여 선리를 제창하는데, 화엄학을 원용하는 문언과 어느 정도 통하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문언은 하택신회荷澤神會와 후대에 동산법문의 법계로 조작한 우두종牛頭宗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는 문언의 ‘종문’에 대한 인식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문익의 시대에 아직 명료한 선종 법계를 논한 선종사서禪宗史書가 출현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선종에 대한 법계의 인식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사진 2. 청량산 입구.

 

문익은 이렇게 종문을 논하면서 특히 조사선의 각 종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석하고 있다. “조동은 고창敲唱으로 용用을 삼고, 임제는 호환互換으로 기機를 삼고, 소양韶陽(雲門)은 함개절류函蓋截流하고, 위앙은 방원묵계方圓黙契한다.”(주4)라고 한다. 이어서 “이는 마치 골짜기에서 메아리가 운율에 맞게 응하는 것 같고, 빗장과 자물쇠가 꼭 들어맞는 것과 같다. 비록 규범과 의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융통하고 회통함에는 아무 장애가 없다.”(주5)라고 하여 모두 종안宗眼을 지녔음을 인정한다. 문익이 자신이 세운 법안종을 제외한 오가에 대한 평가는 이후 상당히 거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오가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평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문익은 이들의 후예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의 종사들은 근거를 잃었고, 학인들은 의거할 바가 없다. 인아人我를 내세워 기세를 다투고, 생멸生滅을 취하여 얻은 바라 여기며, 중생을 접하는 마음은 어디 있는지 파사破邪의 지혜는 들을 수 없다. 방할棒喝을 함부로 베풀면서 스스로 말하길, “나는 증삼曾參·덕교德嶠·임제를 이어받았다.”라고 하고, 원상圓相을 번갈아 내세우며 오로지 말하기를, “나는 위산潙山·앙산仰山을 깊이 터득했다.”라고 한다. 그러나 문답에 있어서는 강종綱宗을 분별하지 못하고, 작용에 있어서는 요안要眼을 알지 못한다. 이는 대중들을 속이고 성현을 기만하며, 참으로 곁에서 보는 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또한 현세의 과보를 스스로 초래한다.(주6)

 

이러한 문익의 비판에는 당시 조사선의 후예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문익은 이렇게 조사선의 후예들이 참답게 ‘종안’을 갖추지 못한 까닭을 “종문宗門을 지킨답시고 문중을 편당하고, 조사를 내세우면서도 진제眞際를 따져 보지 않으니,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져 서로 모순되게 공격할 뿐이며, 승려인지 속인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주7)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 3. 청량사 경내에 새겨진 청량문불.

 

다시 말하여 종파주의에 매몰되어 조사들이 중시하는 심지법문心地法門에 대한 참학을 도외시하고, 조사들이 제시한 참다운 선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논쟁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문익은 “근본적인 번뇌[根塵]를 아직 다 해결하지 못한 채 경솔하게 삿된 해석을 내리면, 다른 마계魔界에 들어가게 되어 정인正因을 완전히 잃고 만다.”(주8)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사원융의 중시

 

문익은 나한계침으로부터 ‘일체현성一切現成’의 문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던 까닭에 ‘이사원융’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음은 앞에서 논한 바와 같다. 사실상 법안종의 모든 선리는 이사원융의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종문십규론』에서는 당시 선림에서 “이理와 사事가 서로 어긋나고, 부딪치는 현상과 청정한 본체를 분별하지 못함”을 병폐를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논한다.

 

대체로 조사와 부처의 종지는 이치[理]와 일[事]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일은 이치에 의해 성립하고, 이치는 일을 통해 드러난다. 이치와 일은 서로 의지하니, 마치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다. 만약 일이 있고 이치가 없다면 진흙에 갇혀 통달하지 못함이요, 만약 이치만 있고 일이 없다면 한량없이 흩어져 돌아갈 바가 없다. 그 불이不二를 바란다면, 원융圓融을 귀하게 해야 한다.(주9)

 

이로부터 명확하게 ‘이사원융’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경덕전등록』 권28에 실린 문익의 상당上堂 법어에 “이치에 일이 없으면 나타나지도 않으며, 일이 이치가 없으면 소멸되지 않아, 일과 이치가 둘이 아니니, 일에 이치가 없는 것이 아니며, 이치에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 4. 청량사의 법안조정.

 

이와 같이 문익은 이사원융의 중시를 반복적으로 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종문십규론』에서 “예컨대 조동曹洞의 가풍에는 편偏과 정正, 명明과 암暗이 있고, 임제臨濟에는 주主와 빈賓, 체體와 용用이 있다. 비록 교화를 건립하는 방식은 같지 않으나, 혈맥血脈은 서로 통해서 어느 하나도 빠짐이 없고, 모든 거동이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다.”(주11)라고 논한다. 이는 조동종과 임제종에서도 이사원융을 주장하였지만, 그 출발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이어서 문익은 또한 다음과 같이 논한다.

 

법계관法界觀에서는 이사理事를 함께 논함을 갖추고 있다. 색과 공의 분별을 스스로 끊으면, 법계의 바다와 같은 성품은 끝이 없다. 한 터럭 끝 위에도 모든 법을 포섭할 수 있으며, 가장 큰 수미산조차도 겨자씨 하나 속에 감출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인의 신통력으로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참된 이치가 본래 그러함에 합당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신통 변화로 꾸며낸 기이한 현상도 아니며, 억지로 미신적 숭상을 붙여 칭찬한 것도 아니다. 다른 데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부처와 중생이 본래 평등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주12)

 

이로부터 문익은 화엄의 법계관을 원용하여 이사원융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음을 여실하게 볼 수 있다. 문익은 이에 이어서 “편偏과 정正이 회호迴互에서 막혀버리고, 체體와 용用이 자연自然이라는 이름 아래 뒤섞여 버린다면, 이를 ‘한 법도 밝히지 못한 것’이라 한다. 티끌 하나가 눈을 가리는 격이니, 자기 병조차 제거하지 못하면서 어찌 남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깊이 살피고 신중히 해야 하니,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주13)라고 하여 조동의 ‘편정’과 임제의 ‘체용’에 대하여 은근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교불이禪敎不二

 

본래 선종에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교외별전教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기치를 세우고, 교학을 철저하게 배제해 왔다. 이는 남종선으로부터 임제·위앙·조동·운문의 조사선에서 지극히 강조하는 견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문익의 법안종에서는 이러한 전통을 벗어나 선과 교는 불이不二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종문십규론』에서는 여덟 번째 항목에 “교전敎典의 뜻을 통달하지 못하고 함부로 인용하는 병폐”에서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대체로 종승宗乘을 드높이고자 하여 교법을 인용하려면, 반드시 먼저 부처의 뜻을 밝히고, 다음으로 조사들의 마음에 부합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들어올려 적용하며 그 촘촘함과 성김을 비교하고 판정할 수 있다.(주14)

 

이로부터 문익은 조사선의 종의宗義를 드높이려면 반드시 먼저 교법을 통해 불의佛意를 깨달아야 하고, 그 후에 조사의 마음에 계오契悟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익은 “우리 조종祖宗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억지로 경전을 가로지르며, 옛것에 널리 통달한 체하는 이가 있어, 혀놀림을 날카로운 칼끝처럼 자랑하고, 학문의 풍부함을 곡식이 창고에 가득 쌓인 듯 뽐낸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면 마땅히 고요히 침묵해야 하니, 말길이 펼쳐지기 어렵다. 예로부터 기억하는 말과 글은 모두 남의 보물을 세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로소 이 문門이 기이하고 뛰어남을 믿게 되니, 바로 교외별전敎外別傳이다.”(주15)라고 하여 함부로 경전을 이끌어 조사선의 선리에 맞추는 것을 경책하고 있다. 이로부터 조사선과 교학이 불이不二의 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진 5. 『종경록』을 찬술한 영명연수 선사.

 

그런데 문익이 말하는 교학은 바로 『화엄경』과 화엄학을 의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문익의 어록에는 법장法藏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과 『화엄경의해백문』 등과 이통현李通玄의 『신화엄경론』 등을 인용하고 있고, 또한 「송화엄육상의」, 「송삼계유심」 등과 같은 게송은 물론 여러 곳에 화엄학을 연상시키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익의 법손法孫인 영명연수永明延壽는 『종경록宗鏡錄』에서 “교教에 의지한다면, 바로 『화엄경』으로 일심一心의 광대무변함’을 드러낸 문구를 말한다. 종宗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달마達磨로 ‘중생의 심성心性을 곧바로 밝히는 종지’를 가리킨다.”(주16)라고 하여 화엄과 선을 융합시키고 있는데, 이는 문익의 절대적인 영향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종문십규론』에 나타난 문익의 조사선에 대한 인식과 이사원융, 선교불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사실상 문익은 당시의 조사선에 만연한 병폐를 바로 잡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서 『종문십규론』을 찬술했지만, 그 문맥 가운데 명확하게 자신의 선사상을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도 여실하게 보였다고 하겠다. 

 

<각주>

(주1) [南唐]文益撰, 『宗門十規論』(卍續藏63, 36c), “宗門指病, 簡辯十條, 用詮諸妄之言, 以救一時之弊.”

(주2) 위의 책, “① 자기 心地가 밝아지지 않았으면서 함부로 남의 스승이 되려 하는 병폐[自己心地未明妄爲人師第一], ② 자신이 속한 문중의 門風만을 지키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병폐[黨護門風不通議論第二], ③ 禪師의 指示와 宗風을 들면서도 그 法脉을 알지 못하는 병폐[擧令提綱不知血脉第三], ④ 문답할 때 시절 인연을 살피지 못하고 또한 각 종파의 宗眼을 갖추지 못한 병폐[對答不觀時節兼無宗眼第四], ⑤ 理와 事가 서로 어긋나고 부딪치는 현상과 청정한 본체를 분별하지 못하는 병폐[理事相違不分觸淨第五], ⑥ 古今의 言句를 충분히 가려내지 않고 제멋대로 단정하는 병폐[不經淘汰臆斷古今言句第六], ⑦ 기록하고 암송하기만 할 뿐, 妙用을 이해하지 못하는 병폐[記持露布臨時不解妙用第七], ⑧ 敎典의 뜻을 통달하지 못하고 함부로 인용하는 병폐[不通教典亂有引證第八], ⑨ 聲律에 통달하지도 못하고 이치에도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歌頌을 짓기 좋아하는 병폐[不關聲律不達理道好作歌頌第九], ⑩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 논쟁과 승부를 좋아하는 병폐[護己之短好爭勝負第十]”

(주3) 앞의 책(卍續藏63, 37a), “祖師西來, 非爲有法可傳, 以至於此. 但直指人心, 見性成佛, 豈有門風可尙者哉! 然後代宗師, 建化有殊, 遂相沿革. 且如能·秀二師, 元同一祖, 見解差別, 故世謂之南宗·北宗. 

能旣往矣, 故有思·讓二師紹化. 思出遷師, 讓出馬祖. 復有江西·石頭之號, 從二枝下, 各分派列, 皆鎭一方, 源流濫觴, 不可彈紀. 逮其德山·臨濟·潙仰·曹洞·雪峰·雲門等, 各有門庭施設, 高下品題.”

(주4) 앞의 책(卍續藏63, 37c), “曹洞則敲唱爲用, 臨濟則互換爲機, 韶陽則函蓋截流, 潙仰則方圓黙契.”

(주5) 위의 책, “如谷應韻, 似關合符. 雖差別於規儀, 且無礙於融會.”

(주6) 앞의 책, “近代宗師失據, 學者無稽. 用人我以爭鋒, 取生滅爲所得. 接物之心安在, 破邪之智蔑聞. 棒喝亂施, 自云曾參德嶠·臨濟; 圓相互出, 惟言深達潙山·仰山. 對答旣不辨綱宗, 作用又焉知要眼. 誑謔群小, 欺昧聖賢, 誠取笑於傍觀, 兼招尤於現報.”

(주7) 앞의 책(卍續藏63, 37a), “護宗黨祖, 不原眞際, 竟出多岐, 矛盾相攻, 緇白不辨.”

(주8) 위의 책, “未了根塵, 輒有邪解, 入他魔界, 全失正因.”

(주9) 위의 책(卍續藏63, 37c), “大凡祖佛之宗, 具理具事; 事以理立, 理假事明; 理事相資, 還同目足. 若有事而無理, 則滯泥不通; 若有理而無事, 則汗漫無歸. 欲其不二, 貴在圓融.”

(주10)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28(大正藏51, 449a), “理無事而不顯, 事無理而不消, 事理不二, 不事不理, 不理不事.”

(주11) [南唐]文益撰, 『宗門十規論』(卍續藏63, 37c), “且如曹洞家風, 則有偏有正, 有明有暗. 臨濟有主有賓, 有體有用. 然建化之不類, 且血脈而相通, 無一不該, 擧動皆集.”

(주12) 앞의 책, “法界觀, 具談理事. 斷自色空, 海性無邊. 攝在一毫之上, 須彌至大, 藏歸一芥之中. 故非

聖量使然, 眞猷合爾. 又非神通變現, 誕生推稱. 不著它求, 盡由心造. 佛及衆生, 具平等故.”

(주13) 위의 책, “偏正滯於迴互, 體用混於自然. 謂之一法不明, 纖塵翳目, 自病未能勦絕, 他疾安可醫治? 大須審詳, 固非小事.”

(주14) 앞의 책(卍續藏63, 38b), “凡欲擧揚宗乘, 援引敎法, 須是先明佛意, 次契祖心, 然後可擧而行, 較量疎密.”

(주15) 위의 책(卍續藏63, 38b), “與我祖宗, 全無交涉. 頗有橫經大士, 博古眞流, 誇舌辯如利鋒, 騁學富如囷積. 到此, 須敎寂默, 語路難伸. 從來記憶言辭, 盡是數他珍寶. 始信此門奇特, 乃是教外別傳.

(주16) [宋]延壽集, 『宗鏡錄』 卷34(大正藏48, 614a), “若依敎, 是華嚴, 卽示一心廣大之文. 若依宗, 卽達磨, 直顯衆生心性之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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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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