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나옹혜근의 생애와 선사상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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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17:16 / 조회34회 / 댓글0건본문
한국선 이야기 25
나옹은 태고와 백운과 함께 여말삼사麗末三師의 한 분이자 지공과 무학과 더불어 조선 초기 증명삼화상證明三和尙의 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진묵과 더불어 석가모니불의 후신後身으로 민중들 속에서 추앙되고 있다. 나옹은 가사歌辭와 선시禪詩의 대가이자 풍수지리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호에서는 나옹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선사상의 형성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옹 관련 문헌과 나옹의 삶
나옹혜근懶翁慧懃(1320~1376)의 생애에 대한 1차 자료로는 문인 각굉覺宏이 찬한 「나옹화상행장」과 이색李穡이 찬한 「선각탑명」이 있다. 『동국승니전』 「명승」편, 『동사열전』 권1 「나옹왕사전」, 『조선불교통사』 등에도 나옹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행장’과 ‘탑명’의 내용을 재수록하고 있다. 『한국불교전서』 6책에는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과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이 실려 있어서 그의 삶과 사상을 유추할 수 있다.
나옹은 태고보다 19년 늦게 태어났지만 6년 먼저 열반에 들었다. 나옹이 살았던 시대는 원 간섭기였으며, 홍건적과 왜구들의 침입이 더해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나옹의 삶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그런데 나옹의 행장과 탑명의 내용 상당 부분이 그가 중국에 들어가 구법 활동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그의 어록과 가사의 내용 또한 그와 관련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나옹의 삶에 대해서는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指空과 평산平山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온 사실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
“청산은 말이 없이 나를 보고 살라하고”라는 노래가 나옹의 가사로 알려져 있으나, 『나옹화상가송』에서 확인되진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옹은 평생 천암만학千巖萬壑을 거닐며 자연과 함께 노닐면서 임성소유任性遡遊하는 삶을 갔다. ‘유곡遊谷’이란 제목의 나옹의 시가 그것을 말해 준다.
한가로이 오가며 늘 적적히 지내니 더없이 마음이 비었다.
날마다 험준한 산과 깊은 골짜기의 고요 속을 거닐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산을 감상해도 아직도 흡족하지 않아
이제는 산중 깊은 굴속에 또 하나의 문을 닫아걸고 은거하려 한다.(주1)
국내에서의 수행
나옹은 입원 전 출가하여 구도의 과정을 거쳐 이미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가 어떠한 수행을 통하여 깨달았는지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제자 각굉覺宏이 찬한 「행장」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스님의 휘는 혜근慧懃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거처하던 방은 강월헌江月軒이라 하였고, 속성은 아씨牙氏로 영해부寧海府 출신이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이며 선관서령膳官署令이란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주2)
‘선관서령’이란 왕실의 음식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혜근의 집안이 귀족 출신은 아니라 해도 왕실의 돌아가는 사정은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태어난 것은 1320년(충숙왕 7) 1월 15일이다. 그의 어머니 정씨가 꿈을 꾸었는데, 금색 송골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나옹혜근은 태어날 때부터 골상이 보통 사람과 달랐으며 근기가 뛰어났다.

나옹이 20세 때 경북 문경에 있는 공덕산 묘적암(현 대승사)의 요연선사了然禪師에게 출가한다. 나옹의 출가 동기에 관하여 각굉은 첫째, 어려서부터 출가를 원했고 둘째, 8세 때에 지공을 만나 보살계첩을 받았으며, 셋째,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서 생사에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옹의 은사였던 요연선사는 당시 사굴산문 소속의 선승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큰 활약상은 나타나 있지 않다. 나옹은 요연선사가 있던 묘적암에 소속을 두고 4년여를 여러 절을 다니며 공부를 하다가 1344년(충목왕 1)에 회암사에 당도한다. 그리고 한 방을 잡고서 주야로 앉아서 참선 수행을 한다.
이 당시 회암사에 머물고 있던 일본 승 석옹石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에 내려와 선상禪床을 치며 말하기를,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라고 묻자, 대중은 말이 없었으나 나옹은 다음과 같은 게偈를 지어 올렸다.
선불장 안에 앉아서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이것은 옛 주인이다.(주3)
보고 듣는 것 자체가 곧 주인공이라는 나옹의 말에서 마조의 선사상에 보이는 ‘작용즉성作用卽性’의 원리를 이미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나옹은 회암사에서 계속 수행하던 중 어느 날 아침에 정신이 맑아지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一但忽開悟]고 한다. 무사자오無師自悟한 것이다.
입원 구법
나옹이 입원을 하게 된 이유는 태고와 같이 깨달음 이후 ‘인가’를 중시했던 몽산 선풍의 영향이라 말할 수 있다. 1347년(충목왕 3) 11월 나옹은 양주 회암사를 출발하여 1348년(충목왕 4) 3월 대도(북경)에 있는 법원사에 도착한다. 법원사는 지공이 머물던 사찰로 나옹은 출발할 때부터 지공을 찾아가려 했던 것이다. 회암사는 태고가 출가한 사찰로서 법원사와는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옹이 법원사에 도착한 해에 태고는 귀국했다. 이러한 사실이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 태고와 지공 모두 기황후를 매개로 하여 원 황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옹은 법원사에 있던 지공을 만나러 갈 때 8세 때에 지공으로부터 받았던 보살계첩을 가지고 갔다. 지공을 만나 그로부터 신표信標와 ‘나옹懶翁’이란 법호를 받게 된다. 당시 법원사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던 지공으로부터 인정받고, 그의 수제자로서 10년 간의 원나라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각굉이 찬한 「행장」에는 원나라에서 나옹의 활동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선원에 가서 방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실을 만나 문답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나옹이 지공을 처음 만나 문답할 때, 지공이 “어떻게 왔는가?”라고 묻자 나옹이 “신통으로 왔다.”라고 대답하고서 합장하고 섰다. 이러한 내용은 많이 알려져 있다.
나옹과 지공과의 의미 있는 만남은 두 차례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공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시기에 대한 이견異見이 존재하고 있다. 나옹이 지공으로부터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최초로 인정받게 된 것은 다음의 게송을 통해서이다. 그 시기는 1348년에서 1350년 사이의 어느 날이었다.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 또한 그러하도다
자성이 원래 청정한 줄을 비로소 알았나니
티끌마다 세계마다가 다 법왕신이네.(주4)
이 게송을 통해 나옹은 지공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서, 그의 문하에서 10년간 판수板首의 역할을 맡게 된다. 법원사에서 판수로 있으면서 나옹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350년(충정왕 2) 1월 1일 지공은 순제의 황후였던 기황후가 내린 가사를 입고 법회를 하였는데, 이때 지공이 대중들에게 나옹을 소개한다. 이로 인하여 대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나옹의 명성이 드높아지게 된다.
강남 유력과 평산처림의 인가
나옹은 1350년(충정왕 2) 3월에 대도를 떠나 강남으로 내려간다. 당시 대도를 중심으로 한 원나라 북부는 라마교의 영향이 강했지만, 한족이 살고 있던 강남 지역은 임제종의 선풍이 유지되고 있었다. 나옹의 강남 유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옹이 처음 누구를 찾아갔는가?’ 하는 문제와 ‘나옹이 누구로부터 인가를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나옹이 처음 찾아간 곳은 몽산덕이蒙山德異(1231∼1308)가 머물렀던 휴휴암이다. 몽산이 열반에 든 지 이미 42년이 지난 때였다. 나옹은 이곳을 찾아 하안거를 마치고, 7월 19일에 그곳을 떠나게 된다. 나옹의 마음속에 몽산이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나옹이 휴휴암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떠나올 때, 그곳 장로에게 남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긴다.
쇠지팡이를 가로 날려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어 이내 쉬었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四海와 오호五湖 마음대로 유람하리라.(주5)
휴휴암에 몽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옹은 그곳을 찾아 한철을 나고서야 당시 임제종의 명안종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평산처림平山處林과 설창雪窓, 고목영枯木榮, 오광悟光, 천암원장千巖元長, 요당了堂, 박암泊菴 등을 만나 법거량을 나누며, 결국 평산으로부터 인가를 받게 된다.

휴휴암을 떠난 나옹이 찾아간 것은 항주 정자선사淨慈禪寺에 머물고 있던 평산이었다. 정자사는 영명연수永明延壽가 법을 폈던 영명사永明寺를 말한다. 나옹이 평산을 만나 법거량을 나누는 과정에서 좌복으로 평산을 내리쳤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어 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 결국 나옹은 평산으로부터 임제선의 선법을 전해 받게 되었는데, 평산의 인가송印可頌은 다음과 같다.
법의와 불자를 지금 부촉하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 없는 옥이어라.
계율이 항상 깨끗해 보리를 얻었고
선정과 혜광을 다 구족하였네.(주6)
이렇게 나옹은 강남 지역을 유력하며 당시 임제종 고승들과의 법거량을 통해 고려 선승의 선기를 보여주었으며, 결국 지공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임제종의 법맥을 전수하게 된다.
지공과의 재회와 부촉
1352년(공민왕 1) 나옹은 대도 법원사로 되돌아와 지공으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를 받게 된다. 그 상징으로 법의法衣 한 벌과 불자拂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받았으며, 다음의 전법게를 받았다.
백양에서 차 마시고 정안正安에서 과자 먹으니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을 준다.(주7)
이러한 지공의 전법게에 대해 나옹은 다음의 게송으로 화답하였다.
스승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을 올리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네.(주8)
나옹이 지공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자, 그 소식이 원 황실에 알려져 1355년(공민왕 4)에는 북경의 원 순제의 명으로 광제선사廣濟禪寺의 주지직을 맡게 된다. 그리고 1358년(공민왕 7) 3월 23일에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각주>
(주1) 『懶翁和尙歌頌』(H6, 736a), “閑來閑去復閑閑 常往千巖萬壑閒 翫水觀山猶未足 洞門深處作重關.”
(주2) 『懶翁和尙語錄』 「行狀」(H6, 703a), “師諱慧勤 號懶翁 舊名元慧 所居室曰江月軒 俗姓牙氏 寧海府人也 考諱瑞具 官至膳官暑令 母鄭氏.”
(주3) 『懶翁和尙語錄』 「行狀」(H6, 703a), “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주4) 『懶翁和尙語錄』 「行狀( H6, 703b), “山河大地眼前花 萬像森羅亦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
(주5) 『懶翁和尙語錄』 「行狀」(H6, 703b), “鐵錫橫飛到休休 得休休處便休休 如今捨却休休去四海五湖任意遊.”
(주6) 『懶翁和尙語錄』 「行狀」(H6, 705b), “拂子法衣今付囑 石中取出無瑕玉 戒根永淨得菩提 禪定慧光皆具足.”
(주7) 『懶翁和尙語錄』 「行狀」(H6, 705b), “百陽喫茶正安果 年年不昧一通藥 東西看見南北然 明宗法王給千劒.”
(주8) 『懶翁和尙語錄』 「行狀」(H6, 705b), “奉喫師茶了 起來卽禮三 只這眞消息 從古至于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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