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드디어 마나사로바 호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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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6 년 1 월 [통권 제153호] / / 작성일26-01-04 18:01 / 조회67회 / 댓글0건본문
어김없이 ‘시간의 수레바퀴’ 깔라차크라(Kalachakra)는 돌고 돌아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되었다. 특히 다가오는 새해는 ‘붉은 말띠해丙午年’여서 많은 복덕을 기대해도 될런가 모르겠지만….
따시 로싸르
티베트력曆에서는 특히 ‘말띠’를 길상吉祥의 해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 배경은 “붓다가 태어나신 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올해의 카일라스 순례 행위는 특별한 공덕이 있다고 믿고 있어서 수많은 이들이 ‘수미산꼬라(Kora)’를 벼르고 있다고 한다.

사진 1. 마나스 호수 저편에 솟아 있는 성스러운 카일라스산의 신비스러운 자태.
사진 2. 네팔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바로 카일라스산으로 가는 행선도.
3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나의 6번에 걸친 ‘수미산 순례기’들이 난해한 경전의 밀림 속에서 희미한 옛길을 찾아 헤매던 노정路程이었다면, 지난 여름의 순례는 의미가 좀 색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바로 ‘회향回向’이란 단어로 함축되는, 어떤 방점傍點을 찍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추구했던 화두를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되었기에 이번 순례에 나서는 마음가짐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고경』에 실었던 남인도 엘로라석굴 ‘카일라사-나트(Kailasa-nath)’ 사원 순례 글도 그런 의미였다. 지난날의 순례를 되돌아보면서 어떤 미진함을 보충해 보고자 함이었으니까….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바람과 구름의 고향
필자를 포함한 다국적 순례단을 태운 차는 정들었던, 케룽(Kerung) 마을을 출발하여 막막한 고원의 평원길을 달렸다. 가끔은 꼬부랑 고개를 넘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였다. 아침에는 해와 달을 동시에 바라보며, 낮에는 시퍼런 하늘에 낮게 떠다니는 흰 구름과 경주하듯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대낮에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져 긴급대피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흙먼지를 휩쓸고 다니는 시커먼 회오리바람 속을 뚫고 나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역마살驛馬煞을 타고난 이생의 까르마(Karma, 業)를 모두 살풀이하듯이 그렇게 한恨없이 원願없이 달렸다.

그리하여 어느 하루 저녁노을 무렵, 범상치 않은 산의 자태가 올려다보이는 넓은 바가(Baga) 평원[카일라스산과 마나스 호수 사이에 펼쳐진 스와스띠까(Swastika, 卍字)라고 부르는 평원] 아래 넓은 호수에 도착하여 뿌쟈(Puja)용 가트(Ghat, 聖浴所) 근처 숙소에다 배낭을 풀고 휴식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대개의 순례단은 급한 마음에 바로 성산 순례의 베이스캠프인 다르첸(Darchen)으로 달려가지만, 급격한 고도 상승은 고산병에 걸리기 쉽기에 고도 적응을 겸해서 우선 ‘마나스 순례(Manas Kora)’부터 하자는 팀장의 의견에 따른 일정 변경이었다.

지구별의 배꼽, 마나사로바 호수
마나사로바(Mnasarova) 또는 마팜윰초(Mapham Yumtso, 瑪旁雍錯)라고 불리는 이 성스러운 호수의 새벽은 너무나 맑고 쾌청하였다. 티베트 서부 응아리현(Ngari)에 위치한 마나사로바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담수호(4,556m)로 둘레가 약 60km에 달해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는 4~5일이 걸리는 규모를 자랑한7다. 호수의 평균 수심은 46m이고, 최고 수심은 81m로 깊지만 매우 맑은 호수이다.
오늘 하루는 예비 휴식일이기에 일행들은 자유롭게 쉬면서 호숫가 ‘가트’에서 뿌쟈(Puja)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혼자서 숙소 뒤편의 자그마한 산 위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치우카르 곰빠(Chiu Khar Gompa)로 올라갔다.

그리고 동굴사원에 안치되어 있는 구루 린뽀체(Guru Rinpoche)의 소상에 분향하며 귀환인사를 드리고는 호수가 잘 내려다보이는 하얀 초르뗀(White Chörten) 아래 앉아 화두삼매에 빠져들어 갔다.
마나스 호수에는 8개의 곰빠(Gompa)가 있는데, 동쪽에는 세와롱, 남동쪽에는 니에궈, 남쪽에는 겔추구, 남서쪽에는 궈주, 북서쪽에는 카지(Kaji)와 중앙에 치우(Chiu khar), 북쪽에 랑나(Langna), 북동쪽에 벤리(Benri) 곰빠가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 치우곰빠가 명불허전, 천하의 명당이다.

사진 6. 드넓은 마나스 호수.
사진 7. 호숫가에 휘날리는 오색 깃발 다르뽀체.
눈 아래로는 사바세계의 배꼽에 해당하는 ‘마음호수’가 펼쳐져 있고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면 마치 하얀 왕관 같은 카일라스가 구름 속에서 솟아오르며 무한한 우주와 영혼의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카일라스산은 “지구별의 수메루Sumeru, 즉 척추”에 해당된다. 땅과 하늘의 영적인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우주신경의 중심축이다.

딴트라 사상이나 음양오행론으로 해석하자면 카일라스산은 동적 에너지를, 마나스 호수는 정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방편과 반야’, ‘자비와 지혜’, ‘행위와 침묵’과 같은, 모든 이원론적二元論的 논리의 후자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런 대칭되는 이론은 힌두교에서 비롯되었다. 창조주 브라흐만은 우주의 중심축 카일라스와 한 쌍을 이루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마음’으로 생각하자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정화능력이 있는 호수”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호수의 이름을 ‘마음의 호수(Manas+Sarova)’로 부르게 되었다.

이런 배경적 이론을 바탕으로 힌두인들은 카일라스와 마나스를 결합하여 ‘우주창조의 일번지’라는 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카일라스라는 남성적 심볼(Linggam)에서 흘러나오는 창조의 정액을 받아 만물을 잉태하는 ‘우주의 자궁’이 바로 마나스 호수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힌두 삼신(Tri-Murti) 중에서 후기에 주도권을 잡은 로드쉬바(Lord Shiva)의 반려자들도 이곳으로 이주하여 이 성스러운 호수의 물의 정화력으로 신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논리가 생겨났고, 물론 그런 결과에 의하여 ‘강가(Ganga)의 정화력’ 같은, 이방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신앙도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고….
이런 힌두의 우주론은 불교의 판테온(Pantheon)으로 들어오면서 4세기 대승불교의 불교적 우주론을 확립한 세친世親(Vasubandhu)보살의 『구사론俱舍論』(주1)이 한역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한역 ‘수미산설須彌山說’이 정립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한국불교에서 수미산은 가장 친숙한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카일라스산의 원주인이었던 브라만과 인드라 신은 한역의 과정을 거치며 ‘대범천大梵天’과 ‘제석천帝釋天’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 산과 호수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제석천이 카일라스 산의 주신”이라는 이야기이다.
후에 힌두교의 지역별, 시대별 변천에 따라 시바교(Shivisim)가 득세하면서 이 ‘창조의 일번지’는 링가(Linggam; 男根)와 요니(Yonis; 女陰)로 상징화되어 사원 안으로 들어와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시간적으로는 같은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같은 시대의 인도인들을 볼 때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신화와 현실의 모호성에 있다”라고 흔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갠지스(Ganga)의 정화력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그들의 눈에도 더럽게 보이는 강물이 그런 신비의 신통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그 원천수인 이 마나스 호수가 얼마나 신성할까?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호수는 신화가 아니라 수천 년 전에 각색되어진,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현실인 셈이다.

우주의 마이너스 에너지의 총화인 마나스 호수에 이윽고 핏빛 같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지만, 나는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우나사루스’ 즉 ‘대자유’ 경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도 우주와 하나 되는 엑스터시를 맛보는 법열法悅에 빠져 있었을테니까.
<각주>
(주1) 『아비달마구사론』은 4세기 인도의 세친보살이 지은 불전이다. 약칭하여 『구사론』이라고도 부른다. 세친과 그 맏형인 무착은 불교의 요충인 유식불교를 창시한 형제 보살로 유명하다. 7세기 당나라 현장법사가 유식학을 한역하여 법상종을 창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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