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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힌두교 불이론 베단타의 창시자 샹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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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5 년 6 월 [통권 제146호]  /     /  작성일25-06-04 13:33  /   조회19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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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카라는 누구?

 

샹카라(Śankara, 약 788~820년)가 인도 종교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고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위대하고 심오한 사상가일 뿐 아니라, 자기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널리 주유천하하면서 불교를 비롯해 자기 생각에 이설이라고 생각되는 사상을 논박하는 데 앞장서기도 하고, 승단을 창설하거나 승원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 최대의 공헌은 이른바 ‘불이론不二論 베단타’, 범어로 ‘아드바이타 베단타(Advaita Vedanta)’라는 학파를 공고한 터전 위에 세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 1. 샹카라(Śankara, 약 788~820). 인도의 철학자로 베다와 브라만 전통의 개혁가. 사진: wikipedia.

 

‘아드바이타’란 ‘불이不二’라는 뜻으로 영어로 ‘non-dual’이라 번역합니다. 그는 인도 남쪽 케랄라(Kerala)에서 태어났습니다.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살았던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샹카라의 부모는 아이가 없어 애를 태우다가 오랜 기도 끝에 그를 낳았습니다. 샹카라는 5세에 ‘학생의 삶’을 시작, 8세에 베다경에 통달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출가 수행자가 되려는 성향을 보였지만 어머니의 허락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허락이 떨어지자 스승을 찾아 북쪽으로 떠났습니다. 나르마다강 기슭에서 고빈다 바가밧파다를 만났습니다. 그가 샹카라에게 어디에서 온 누구냐는 등 질문을 던지자 즉석에서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 기초한 대답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깊이 감명받은 바가밧파다는 그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날로 더해 갔습니다.

 

브라흐만의 진리

 

바가밧파다는 샹카라에게 『브라흐마 수트라(Brahma Sutras)』에 대한 주석서를 써서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널리 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샹카라는 『브라흐만 수트라』뿐 아니라 열 편의 『우파니샤드(Upanishad)』 및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 대한 주석서도 썼는데, 이것이 아드바이타 베단타 학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삼론三論’이 되었습니다.

 

아드바이타 베단타 사상의 뼈대는 샹카라 이전 가우다파다에 의해 제시된 것이지만, 샹카라가 이를 체계화하고 널리 전파하였기에 그를 실질적인 창시자라 여깁니다.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기원전 9~7세기에 나타난 『우파니샤드』라는 문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15세기경 지금의 이란에서 인도로 들어온 아리아족에서 유래된 인도 최초의 경전인 베다경이 인드라 신을 비롯하여 여러 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복을 비는 ‘기도’를 중요시하고, 기원전 10세기경에 나타난 『브라흐마나』라는 문헌이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를 강조한 데 반하여 『우파니샤드』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깨달으라는 것인가? 『우파니샤드』에서는 우주의 궁극실재 ‘브라흐만(Brahman)’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브라흐만은 ‘네티 네티’라고 합니다. ‘이것이라 할 수도 없고 저것이라 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절대적인 실재이므로 ‘이것’이나 ‘저것’으로 한정 지을 수도 없고, 우리의 제약된 생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도덕경』 첫 장 첫 줄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즉, “도라고 말하면 정말 도가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세계종교들의 심층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사진 2. 인도 남부 스링게리(Sringeri) 소재 샹카라 사원 마타(Mathta). 사진: wikipedia.

 

한편, 이 절대적인 실재로서의 브라흐만은 단순히 추상적인 원리만이 아니라 각 사람 속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적이며 참된 ‘자아自我(아트만)’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참나’는 브라흐만의 구체화된 상태로서, 이런 의미에서 “나는 곧 브라흐만이다.”라는 진리가 성립됩니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탓트밤아시(tat tvam asi)’라고 하는데, ‘그대는 바로 그것(브라흐만)’이라는 뜻입니다. 한문으로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옮깁니다. 이렇게 내가 바로 브라흐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곧 무명無明이요, 이를 몸소 체득하여 깨닫는 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라고 하였습니다.

 

샹카라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사상은 이같이 『우파니샤드』의 기본 가르침에 따라 성립된 것입니다. ‘베단타’라는 말 자체가 ‘베다(Veda)의 끝(anta)’이라는 뜻으로 그 기본 사상이 베다의 끝인 『우파니샤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드바이타’라는 말도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 사상에 따른 것입니다. 샹카라에 따르면 “브라흐만만이 참 실재요, 시공의 세계는 허상에 불과하므로 궁극적으로 브라흐만과 개인적 참 자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궁극실재로서의 브라흐만은 결국 인간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아무런 특성도 지닐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 브라흐만을 ‘니르구나 브라흐만(nirguna Brahman)’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불교에서 궁극실재는 언설을 이離한다는 뜻에서 공空이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3. 파괴의 신인 시바의 화신인 춤추는 신 나타라자(Nataraja). 사진: 나무위키.

 

그러나 브라흐만을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이라 한정된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어떤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일종의 차선책이라 할까, 양보라고 할까, 브라흐만에 모든 아름다운 특성을 다 붙여서 생각해도 좋다고 합니다. 이런 면의 브라흐만을 ‘사구나 브라흐만(saguna Brahma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움, 위대함, 능력 있음 등의 특성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특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 특성’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이 허상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은 브라흐만을 ‘이슈바라(Ishvara, 주님)’라고 부르고 인격신으로 경배해도 좋다고 합니다. 샹카라 자신도 시바나 비슈누 신을 위한 찬송시를 짓고, 스스로도 시바 신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샹카라에 의하면 브라흐만을 이렇게 인격신으로 섬긴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방편에 불과할 뿐, 우리가 취해야 할 궁극 목표는 아니라고 합니다. 궁극 목표는 물론 니르구나 브라흐만을 체득해서 그로 인해 해탈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해탈의 경험, 지반묵티

 

브라흐만이 ‘유일무이’한 절대적 궁극실재라고 하는 주장은 동시에 브라흐만만이 참 실재이고 다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마야(maya)’에 의해 나타난 허상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허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허상도 브라흐만에서 나온 것이므로 브라흐만은 허상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마술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영적 눈을 뜰 수 있다면 마야의 허상을 통해 브라흐만을 접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태양의 광채 속에서 녹아 없어지듯

만물도 영원한 실재 속에서 녹아 없어진다.

 

여기에서 샹카라의 생각이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과 다르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샹카라에게 있어서 현상 세계는 브라흐만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샹카라에 의하면 우리가 그 영원한 실재와 하나가 되면 신기루 같은 이 현상 세계도 사라집니다. 그는 이런 사상을 확대해서 삶과 죽음과 다시 태어남, 몸부림과 고통, 선과 악, 속박과 해방 등도 결국은 허상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4. 백조(Hamsa)는 아드바이타 베단타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불교의 연꽃처럼 백조도 물 위에 살지만 깃털이 젖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샹카라에 의하면 절대적인 궁극실재는 ‘꿈이 없는 수면(dreamless sleep)’ 상태에서 체득될 수 있다고 합니다. 꿈이 없는 수면 상태란 ‘편안한 즐거움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상태에서 궁극실재에 대한 계시가 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샹카라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아누바바(anubhava)’, 곧 궁극실재에 대한 직관直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앎’,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직관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우주적 정신과 ‘하나’라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개별적 자의식은 사라지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우주 의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샹카라는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도 해탈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살아서 정신적 해방을 경험하는 것을 ‘지반묵티(jivanmukti)’라고 하고, 이렇게 해방된 사람을 지반묵타(jivanmukta) 혹은 마하트마(mahatma)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되 ‘꿈에서 본 땅에 사는 것처럼’ 살고, ‘이 몸이 계속되는 동안 그것을 그림자처럼’ 여깁니다. 이렇게 살다가 이 몸이 끝나는 날 개별적 존재로서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찬연히 빛나는 영원의 광채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가면서 한마디

 

샹카라는 힌두교를 중흥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공헌한 인물입니다. 인도 밖에서도 힌두교나 인도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우파니샤드』와 샹카라의 사상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세계종교의 심층에 흐르는 기본적 가르침의 전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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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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