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이능화․양건식 등 거사들이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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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1 년 3 월 [통권 제95호] / / 작성일21-03-05 11:15 / 조회5,645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잡지 산책 ③ 『불교진흥회월보』(불교진흥회 발행, 통권 9호, 1915.3-1915.12)
『불교진흥회월보』는 불교진흥회의 기관지로 등장하였다. 불교진흥회는 불교 교단을 대표하는 30본산 주지들, 그리고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성의 불교계 인사(거사)들이 협력하여 구성한 승속의 연합체다. 불교진흥회는 30본산 주지와 불교계 지식인(거사)이 주가 되어 1914년 9월 창립되었다. 승려 측 인사로는 해인사의 이회광會主, 용주사의 강대련(副會主, 30본산 위원장)이 대표적이고 이외에 봉선사의 홍월초, 범어사의 오성월, 백양사의 송종헌, 법주사의 서진하 등 당대의 대덕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30본산의 주지들은 실제로 잡지의 발행과 편집 방향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1. 불교진흥회월보 표지
승속의 연합체이지만 이들 주지와 승려들은 거사 활동의 외호자로서 자리 잡고 있고, 실제 활동은 경성 중심의 거사 연합이 담당했다. 진흥회가 발기될 당시 참여한 거사는 모두 19명으로, 김홍조, 신우균, 박두영, 장지연, 최동식, 김영진, 윤태흥, 이능화, 이상화, 윤직구, 양건식, 성훈, 김영칠, 이명칠, 송헌석, 마상학, 송재구, 정규항, 이재인 등이다. 이후 회원은 수백 명으로 확장되었고, 그 명단은 월보 3호부터 「회록會錄」란에 소개되어 있다.
사진2.불교진흥회 제1회 정기총회 사진(5호)
불교진흥회 본부는 경성부 수송동 82번지 각황교당으로 정하고, 임원으로는 회주會主 1인, 간사 약간 인을 두고, 이무부理務部와 사무부事務部를 두어 집무하게 하였다. 불교진흥회의 설립 취지는 “불교를 진흥하여 우리 동포로 하여금 함께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것이다.(「불교진흥회취지서」) 진흥회의 목적은 “불교 종지宗旨를 강구講究하여 교육보급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부와 지사를 완비하며, “본회 내에 양성소를 설치하고 포교사를 양성하는 일”, “승려 포교서와 일반 신도에 필요한 포교서를 편찬 간행하는 일”, “회보會報를 발행하여 본회의 취지를 발표하고 일체 회중의 사업을 게재하는 일” 등을 실행 목표로 상정하였다. 회보는 곧 『불교진흥회월보』를 말한다. 월보는 불교진흥회의 기관지로서 진흥회 활동의 성쇠와 명운을 함께 하였다.
발행인과 편제 _ 이능화, 양건식
발기에 참여하거나 이후 합류한 상당한 인원의 거사 가운데 월보의 발행과 제작에 참여한 중심인물은 단연 ‘발행 겸 편집인’인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이다. 이능화는 근대적 대학기관이 세워지기 전인 1910년대부터 20년대에 걸쳐 『백교회통』, 『조선불교통사』, 『조선도교사』, 『조선무속고』, 『조선여속고』, 『조선해어화사』 등을 저술한 대학자이다. 그는 비교종교학 불교사학 민속학 등 다방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인 국학자로 평가된다. 그는 한성외국어학교 학감 출신으로 구한말에 사용되고 있던 모든 외국어(영어, 불어, 일어, 중국어)에 통달한 외국어 교사였고, 1910년대 후반기에 『불교진흥회월보』, 『조선불교계』, 『조선불교총보』를 연속하여 발행한 거사불교운동의 중심인물이다.
사진3. 이능화
발기인 19명 중에는 ‘문장가, 철학가, 교육가, 수학가, 의학가’ 등이 있고(『불교진흥회월보』 2호: 18), 잡지의 광고란을 보면 여러 분야의 사업가도 포함되어 있다. 잡지 발행이나 투고에 관여한 인물로 주목되는 이는 선암사 출신으로, 사료발굴에 앞장서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저술에 도움을 준 최동식(거사)이다. 또 대한제국기에 『산학통편算學通編』(1908)을 저술한 수학자 이명칠(李命七, ?~?)도 진흥회 재무부장으로 참여하였고, 당시 언론인으로 친불교계 인사였던 장지연(張志淵, 1864~1921)도 진흥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발기인은 아니었지만 이능화가 한성외국어학교의 학감으로 있을 당시 제자였던 양건식(梁建植, 1889~1944), 아직 정체가 불분명하나 상당한 수준의 교리를 한문으로 소개한 유경종劉敬鍾 등도 대표적인 필진으로 등장하였다. 이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성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불교진흥회월보』는 경성을 중심으로 전개된 거사불교운동의 실제 내용을 담고 있는 매체라는 의의를 지닌다.
사진5. 이능화 논설(2호)
『불교진흥회월보』는 1호부터 종간호까지 일관된 체제를 보여주고 있다. 즉 「논설-교리-사전史傳-학술-문예-잡조雜俎-소설-회록․관보․휘보」의 순이다. 「논설」은 신문의 사설과 마찬가지로 편집진의 시대인식을 반영한 불교시론을 수록하였다. 「교리」는 선리와 교리에 대한 글을 수록하였고, 「사전」은 불교사 자료와 관련 논설을 수록하였다. 「학술」은 인도철학, 서양철학의 개념과 학설 등을 소개하였다. 「문예」는 현재 문학을 연상하는 것과 다르게 한문으로 지은 상량문, 기문 등을 수록하였다. 「잡조」는 다양한 글을 수록하고 있는데 우화, 전설, 영험담, 민속 관련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소설」은 본격적인 근대소설에는 미치지 못하는 전근대적 양식인 강담講談문학을 주로 수록하였다.
월보에는 이능화로 대표되는 당대 불교계 대표 학자들의 국학 자료 탐색과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는데, 본고에서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시사적인 글과 경성의 생활상이 반영된 문학 작품을 위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거사의 존재 부각
이 시기에 경성을 중심으로 거사불교운동이 시작된 이유와 의의를 추정해 볼 때 고려할 만한 것은 먼저 애국계몽기를 거치면서 등장한 친불교적인 지식인群의 존재다. 승려의 도성출입이 가능해진 시기에 불교에 관심을 가진 다수의 지식인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기독교 천도교 등 타 종교지식인 그룹의 활동에서 자극을 받아 집단적인 문화운동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아울러 근대 전후에 중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거사 중심의 불교개혁운동이 언론을 통해 소개된 정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거사불교운동은 불교의 근대적 연구를 성립시켰고 상당한 성과를 축적하였다. 양문회楊文會(1837~1911) 등이 주축이 된 거사운동은 불교연구와 다양한 전적 및 정기간행물의 간행을 통해 청대에 쇠퇴한 불교학을 부흥시키고 그것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자 노력한 바 있다. 당연히 불교진흥회의 조직이나 잡지의 발간에 당시 중국의 거사불교운동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월보의 논설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불교진흥회의 중요한 구성원인 ‘거사’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현 단계의 자세를 논구한 글이다. 이능화는 「불교진흥佛敎振興은 삽십보살三十菩薩과 무수유마거사無數維摩居士」(2호)에서 유마거사가 병에 들었을 때 석가세존이 문수사리보살을 보내 문안함에 일체중생의 병이 자신의 병이라 한 문답을 인용하고, 유마거사가 말하는 중생의 병을 지옥, 축생, 인취, 선취, 아수라, 천취 중생의 병으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이상의 일반론에 이어 불교진흥회가 30명의 주지와 19명의 거사가 모여 발기한 내력을 소개하고, 불교진흥회의 활동이 유마거사의 실천행임을 말하며 제방의 선사善士들에게 본회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였다.
최동식은 「불교진흥佛敎振興에 제대거사諸大居士」(3호)에서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국왕 대신, 장자 거사에게 불법을 부촉한 이유를 제시하며 불교 흥성이 거사의 힘에 의지했다는 점을 밝히고, 이 시대에도 거사들의 참여가 없으면 불교발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하면서 진흥회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어 『화엄경』 53선지식 중 하나인 명지明智 거사와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29명의 거사를 호명하며 협주에 그 행적을 낱낱이 소개하였다.
권상로는 「조선불교朝鮮佛敎와 제대거사諸大居士」(5호)에서 거사의 위상과 불교진흥회의 의의를 강조하며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거사 27인(노춘盧椿 거사-고려 석간石澗 거사)의 행적을 충실히 소개하였다. 이어 불교진흥회의 활동으로 정기회, 신구본 대장경 열람, 공안참구, 보시법약布施法藥, 대개법전大開法戰 등을 소개하며 불교진흥의 기대감을 표출하였다.
이상의 거사 담론을 보면, 이능화가 거사 불교의 교리적 근거와 불교진흥회의 의의를 앞장서서 제시하고, 최동식과 권상로가 중국과 한국의 예를 실증적으로 소개하여 뒷받침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경성 시정 담론과 포교
‘잡조’는 ‘잡록’과 같은 의미다. 앞서 소개한 여러 편목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흥미로운 이야기나 진기한 사건 소식을 소개한 지면이다. 여기서도 가장 주목되는 필자는 이능화인데, 다양한 주제의 친근한 이야기를 담아 대중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글쓰기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6. 이능화의 호끽연시화(2호)
이능화의 글은 주제가 다양한데 먼저 우리 민속과 관련된 짧은 이야기로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의 연기緣起」(1호)와 「조선의 온돌과 임야」(5호), 「율주신주栗木神主」(6호)가 있고, 시정에서 들은 재미난 이야기에 도덕적 불교적 주제를 가미한 글로 「호끽연시화虎喫烟時話」(2, 3호), 「호시능령악자회과好詩能令惡子悔過」(2호), 「악명사惡名詞」(2호), 「일전一錢의 화話」(5호) 등이 있는데, 이는 야담 성격을 갖는다. 또한 불교 경전에서 발췌하여 교훈을 주는 짧은 이야기로 「이식흥의以食興衣」(1호), 「중맹모상衆盲模象」(2호)등이 있다.
이 가운데 「호끽연시화」는 일명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로 번역된다. 강원도 시골 양반인 김태산과 함경도 향족鄕族인 전약수라는 두 사람은 고향에서는 인정받는 가문의 사람들이나, 서울에 와서는 물장수하며 부를 축적한 과정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였다. 셋방에 살며 서울 사람들에게 온갖 하대를 받으면서도 큰 부자가 된 그들은 자신들이 부를 일군 과정이 바로 참을 인忍자 공부였다며 ‘야소교’의 마태복음과 개운사 인공忍空 스님의 『금강경』 설법을 소개하며 그 가치를 부각시켰다. 아울러 돈을 벌어 양반행세를 한 것이 다행이라는 점, 그리고 경성에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 등, 서울살이의 실상이 구체적인 대화를 통해 소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불교의 광대무변한 설법을 말하며 불교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며, 불교진흥회에 대한 기대까지 담아내는 교훈성도 지니고 있다. 시정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고 불교적 교훈으로 갈무리하는 서사 구조를 지닌 시정한담은 조선후기의 야담의 전통을 잇고 있고, 구비문학적 전통의 ‘소화笑話’ 양식을 포교의 매개로 활용한 특징이 있다.
양건식의 불교 소설
「소설」란은 1910년대 당시에 창작한 서사물을 소개하는 지면이다. 이 지면을 독점적으로 활용한 이는 양건식이다. 그가 창작한 소설은 <석사자상石獅子像>(1호), <미迷의 몽夢>(2, 3호), <귀거래歸去來>(6호). <파경탄破鏡歎>(7호)이 있다. 모두 순한글로 발표되었고, 구어체에 가까운 문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월보의 대부분 글이 순한문이나 국한문체(현토체) 일색인 가운데 상당한 이채를 띠고 있다.
사진7. 양건식의 소설 석사자상(1호)
<석사자상>은 남편 김재창과 부인 영자씨가 봄날에 한양 성중의 서십자각에서 담장을 끼고 광화문으로 걸어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남자는 자수성가하여 남을 돕는데 매우 인색하고 또 자선보시를 하지 않는 자신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부인은 마침 석사자상 앞에 구걸하는 양손의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나이 든 걸인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오십 전짜리 은전을 그에게 전해주었고, 남자도 이를 따라 무의식중에 적선하였다. 통신관리국까지 걸어간 후, 남자는 무슨 생각인지 다시 그곳을 되돌아보았으나 말 없는 석사자상만 엄연히 높이 있더라 하는 스토리다. 양건식의 소설로는 최초로 발표된 작품이다.
사진4. 양건식. 앞줄 맨 왼쪽. <삼천리>, 1934.9 (사진:불교신문)
이 작품은 이광수의 <무정>(1917)보다 앞서 발표된 것으로, 근대인의 허위의식을 완결된 구조로 형상화한 최초의 지식인 소설로서 평가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신소설을 벗어나 근대소설의 단계로 넘어서는 중간에 위치해 있다. 다만 여기에 소개하지 않은 양건식의 소설 <미의 몽>(2,3호) <귀거래>(6호), <파경탄>(7호)은 <석사자상>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하고 작자의 개입이 이루어지거나 신파조로 회귀하는 한계가 있다.
1910년대는 본격적인 근대소설이나 근대시가 등장하기 직전의 시기인데, 1915년 창간된 『불교진흥회월보』에는 이전 문학사 단계의 여러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양건식의 소설 창작은 월보의 소중한 문예적 성과 중의 하나이다. 근대적인 혁신성과 선도적인 평가는 받지 못하지만, 신구문학이 혼효된 불교문학의 장을 펼쳤다는 점에서 월보의 복합문화적인 성격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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