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도]
차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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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1 년 2 월 [통권 제94호] / / 작성일21-02-05 10:38 / 조회6,546회 / 댓글0건본문
지난 호에서 불교와 차와의 인연을 이야기하였다. 사실 불교와의 인연이 해인사 수련이었고, 일타 스님의 계율 강의를 듣고, 당시 종정이셨던 윤고암 스님으로부터 오계를 수지하였지만, 항상 성철 방장스님을 필자의 은사님으로 마음속에 모셨었다. 물론 성철 스님과 성철 스님 문도회에서는 필자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효당스님의 차
필자의 첫 번째 차 스승님은 효당 최범술(1904-1979) 스님이다.(주1) 효당 스님과 반야로 효당사문도회 역시 필자가 효당 스님을 차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성철 스님을 홀로 마음속 은사로 모시게 된 연유와 같은데, 공식적인 연계를 지속하지 못해 제자로서의 공적 인정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다 한들 어떠리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속 은사님으로 차 스승님으로 모시고, 가끔 마음속 문안 여쭈면 나만의 은사님 스승님이 되는 것이니, 어물쩍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부려봄직하다.
다솔사 수련은 지구별 연합 수련의 하나로 주제는 『반야심경』 공부였다. 그러나 일정표에 나와 있는 참선 토론 시간을 반시간으로 줄이고 강의를 한 시간 더 많이 받았다. 즉, 하루 10시간씩 『반야심경』을 공부하고, 한국의 茶道 강의를 들었다. 총림叢林(주2)보다 조금 늦은 새벽 4시 반에 기상하여 예불을 시작으로 진행하였다(사진 1).
사진 1. 1972년 대불련 영남지구 다솔사 동계 수련회 기념촬영. 맨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효당 스님. 의자에 앉은 분이 환경 스님. 그 옆이 당시 경북대불교학생회 지도법사 종범 스님. 가슴에 빨간 점이 찍힌 사람이 필자 오상룡 교수다.
다솔사 수련은 강의 위주였다(사진 2). 『반야심경』을 공부하고(사진 3), 차를 공부하였다. 마지막 차 강의를 필자의 첫 번째 차 스승님이 되신 효당 스님(사진 4)께서 주재하셨다. 이 마지막 강의에서야 처음으로 차 한 잔을 맛볼 수 있었다. 차는 맛이 없었다.(주3) 마치 맥주를 처음 맛보았을 때는 그 맛이 별로였으나 2-3번 맛보며 그 미묘한 맛을 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차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는 가급적 좋은 차를 시음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왔다. 차를 처음으로 맛보는 그 순간의 기억이 초급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진 2. 다솔사 수련 반야심경 강의 노트
사진 3. 다솔사 수련회 일정표
차 맛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차 시음을 하며 효당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차가 무엇이냐, 차가 무엇이냐?’고
내게 기어이 묻는다면,
‘차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차의 정의
차는 좁은 의미로는 차나무과Theaceae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 식물인 차나무Camellia sinensis L.의 어린 잎[葉]이나 순[筍]을 재료로 하여 만든 기호음료이다. 한편, 넓은 의미로 보면 기능성이 있는 생약재 등과 같은 재료에 물을 20-50배가량 넣고 끓이거나, 잘 끓인 물[湯水]에 기호성이 있는 식물질 등을 우리거나 타서 마시는 것, 혹은 그것들을 미리 제조하여 음용하기 쉽게 한 마실거리 모두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보통 그 재료가 차나무로부터 만든 것을 ‘정통차正統茶’라하고, 차나무 이외의 것들을 주로 하여 만든 것을 정통차 대신 마신다고 하여 ‘대용차代用茶’라고 하며, 이것은 다시 동양식 대용차와 서양식 대용차로 나눈다.(주4)
차는 원래 약용으로, 식용으로, 기호용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정신음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필자가 차를 정의할 때 ‘기호음료’라는 말을 붙인 것은 기호음료가 주된 용도일 뿐 아니라 전술한 효당 스님의 ‘차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는 가르침 때문이다.
차의 종류(주5)
기호성 차이
우리나라, 일본, 중국을 녹차 문화권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동양 3국의 차에 대한 기호도가 확연하게 다르다. 녹차뿐만 아니라 대용차를 만들 때에도 빛깔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찻잎을 찌고, 향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발효시키고,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볶는다. 녹차는 제조 초기에 찻잎에 존재하는 효소를 불활성화시킴으로써 발효를 정지시킨다. 발효를 정지시키는 방법으로는 ‘볶음’ 방법과 ‘찜’ 방법이 있는데, 전자를 볶은차, 덖음차, 부초차釜炒茶라 하고, 후자를 찐차 혹은 증제차蒸製茶라 한다.
빛깔에 대한 기호도와 감성이 풍부한 일본 사람들은 제조 초기에 증기에 의해 효소를 불활성화 시켜 찻잎의 파란색이 유지된 찐차 계통인 센차煎茶를 좋아한다. 음식의 빛깔을 중시하여 음식을 눈으로 먹는다고 하는 일본 사람들의 기호성 때문이다. 우리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으나 이것은 우리 음식에서 양념이 잘되고, 정성을 들여 아름답게 담아 내놓은 음식을 말하는 것이지, 일본 사람들처럼 외관을 중시하여 과대 포장을 하고 색소를 넣은 듯한 원색의 음식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향성이 풍부한 중국 사람들은 향기로운 차를 좋아한다. 원료 찻잎의 품질이 여의치 않아 향기가 생성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장품 냄새가 난다고 하여 싫어하는 자스민 꽃잎으로 화훈花薰하여 향기를 입히기까지 한다. 반 발효시켜 향기로운 청차 계통의 차를 여러 종류 발전시키게 된 것도 이렇게 향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향성 때문일 것이다.
사진 4. 효당 스님저 한국의 차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 젓갈, 식혜 등 발효 식품을 상식常食하는데, 이는 그 발효 식품들의 ‘맛’이 좋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색과 향에 각기 유난한 일본 사람, 중국 사람에 비해 맛의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맛감각에 뛰어나다는 또 다른 예는 우리들의 일상어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사람을 표현할 때 ‘저 사람은 싱겁다’ ‘저 분은 짜다’ ‘저 이는 맛이 갔다’는 등의 맛에 관한 관용적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이유
우리네 조상들은 차를 즐겨 마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종합하여 집약하고 있다.(주6).
첫째,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며
둘째, 사색의 공간을 넓혀주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기 때문이며
셋째,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롭게 하기 때문이다.
첫째, 차가 건강에 이롭다는 것에 대해서는 최근의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계속하여 증명되고 있다. 차의 생리적 기능은 항산화, 항돌연변이, 항암,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혈압상승억제, 혈당상승억제, 혈소판응집억제, 항균, 항바이러스, 충치예방, 항종양, 항알레르기, 장내 균총 개선, 소취, 모세혈관 저항성 증가, 강심, 이뇨 등에 그 효과가 탁월하며, 이를 증명하는 연구들이 책으로 한권이 넘을 만큼 많이 보고되고 있다.
사진 5. 어린이 차 교육.
둘째, 차는 사색의 공간을 넓혀주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남긴 많은 차시茶詩와 차게茶偈(주7)로 미루어 알 수 있다(사진 5).
셋째, 차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롭게 한다는 것은 차를 마시면 기다리는 마음, 안정된 마음, 여유 있는 마음이 생겨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게 함을 이른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생활 차례는 물론 차례, 봉채식, 팔관회 등과 같은 의식차를 많이 발전시켜 왔다(사진 6).
사진 6. 청소년 인성교육의 하나로 차교육.
앞에서 언급한 효당 스님의 ‘차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차는 어려운 것이 아니니 편한 마음으로 접하라는 뜻과 차는 기호음료라는 두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는 TV에 나오는 것처럼 멋진 옷을 차려 입고 비싼 차 도구를 사용하여 격식에 맞게 마셔야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하고 자연스럽게 목마름을 달래는 것으로 시작하여 꾸준히 마시다 보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정신음료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차란 그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주)_
1) 효당 최범술은 해인사 주지와 다솔사 조실을 지낸 스님이며, 독립운동가, 교육자,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가, 현대 한국 차도의 중흥조.
2) 총림은 참선수행을 하는 선원, 경전을 교육하는 강원, 계율을 전문 교육하는 율원 등이 갖춰진 종합대학교 같은 사찰로 우리나라에는 7개의 총림이 있다.
3) 당시 차는 고급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68명의 수련생에게 한꺼번에 시음하도록 해 차를 내는 것만도 쉽지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4) 오상룡, 『차도학』, 국립 상주대학교출판부, 2005, pp.5-8.
5) 오상룡, 『차도학』, 국립 상주대학교출판부, 2005, p.1.
6) 석용운, 『한국다예』, 도서출판 초의, 1988, p.11.
7) 사찰에서 불·보살님께 차나 청정수를 공양할 때 독송하는 시의 일종으로 20여종이 전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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