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 불교 철학화 주도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근대기 불교 철학화 주도


페이지 정보

원영상  /  2021 년 1 월 [통권 제93호]  /     /  작성일21-01-15 10:19  /   조회6,725회  /   댓글0건

본문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1 |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

 

근대 동아시아는 격동의 시기였다. 제국주의를 앞세운 서양문명의 동진東進은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과학, 자본주의, 기독교 등 이질적인 문명이 급속도로 상륙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체제의 모색을 위해 오랜 전통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동아시아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해온 불교계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양문회(1837-1911), 한국의 한용운(1879-1944), 일본의 이노우에 엔료(1858-1919, 사진 1·2)는 근대기, 이러한 상황에 가장 민감했던 불교인들이다. 이노우에는 일본불교 근대화의 선구적인 인물이다.   

 

  그는 일본 최대종파인 정토진종 오오타니파大谷派 사찰의 주지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에는 메이지혁명(1868년)의 여파인 폐불훼석廢佛毁釋으로 불교계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다. 각 종파는 타개책으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종립학교를 세우거나 서구 유학을 장려했다. 

 


사진1. 이노우에 엔료. 40년대 후반 동양대학. 

 

  이노우에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어릴 때부터 한학과 영어를 공부했다.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들어가서 인도철학, 서양철학, 불교학 등을 배웠다. 서양철학에 눈을 뜬 그는 칸트, 헤겔, 콩트 등을 공부하며 철학회를 조직했다. 졸업 후 종단의 교사가 되거나 정부의 관료가 되는 안정된 길이 있었지만, 일본불교 전체의 쇠퇴를 보고 부흥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열망에 불타올라 고독한 황야로 나섰다. 국가주의에 기반 한 호국애리護國愛理, 불교개혁이 목표였다.

 

  훗날 동양대학이 된 철학관을 비롯하여 중등교육기관, 유치원을 설립하고 경영했다. 철학관은 동경대학에 버금가는 불교계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으로 발전했다. 참된 문명은 미신을 타파하고 고도의 정신문명에 기반한 인심人心의 근대화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근대일본을 이끈 수많은 철학자, 종교가, 사회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다. 

 

  그 외에도 언론단체인 정교사政敎社를 창설하고 여러 기관지를 발행하여 화혼양재의 정신을 고취시켰다. 나중에 철학공원이 된(사진 3), 소크라테스·칸트·공자·석가를 모신 사성당四聖堂을 세웠다. 이 외에 미신타파를 위한 요괴연구에 매진하여 요물 또는 요괴박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가 남긴 저술은 단행본만으로도 160권이 넘는다. 주요 저서는 동경의 동양대학에서 『이노우에 엔료 전집』 25권으로 출판되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의 핵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불교의 철학화일 것이다. 대표적인 철학 저술로는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청년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철학일석화哲學一夕話』와 동서양철학을 정리한 『철학요령哲學要領』, 그리고 이노우에 철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철학신안哲學新案』이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진2. 이노우에 엔료 장년기의 초상. 위키피디아.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를 통해 유심론도 유물론도 한편의 시각이며, 비심非心·비물非物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차별 중에 무차별, 무차별 중에 차별이 있으며, 무차별이 차별이며, 차별이 무차별의 도리이다. 이는 태극(역), 진여(불교), 무명진재(無名眞宰, 노장), 본질(스피노자), 자각(칸트), 절대진리(헤겔), 불가지적(스피노자) 등 동서고금의 철리에 통한다. 마침내 물과 심, 현상과 본질은 일체불이一體不二이다. 마음에서는 유한성과 무한성은 일체화되고, 생사즉열반으로 미망의 세계이면서 생사를 초월한 일여一如의 세계에 주할 수 있다. 서양철학 속에도 불교철학이 내재해 있으며, 불교야말로 중도의 진리에 정통하다,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버린 불타의 중도로부터 천태학에서 말하는 공가중空假中의 논리를 통한 원융삼체의 중도실상에 이르기까지 이는 불교의 극치다.  

 

  무엇보다도 그의 불교철학의 핵심은 『불교활론본론』(사진 4) ,『현정활론顯正活論』, 『불교철학』, 『진리금침真理金針』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인간계의 조직을 속계와 학계로 나누고, 학계를 또한 이학과 철학으로 나눈다. 또 이학은 개별과학으로, 철학은 형이상과 형이하의 철학으로 나눈다. 형이상철학은 순정철학으로 종교를 의미하며, 형이하철학은 넓은 의미의 심리학으로 윤리학이나 논리학을 포함하는 것이다. 순정철학에 대해서는 의문을 그 성격으로 하고, 진리추구를 그 취지로 하는 것으로 여러 이설이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룬다. 

 

  불교는 순정철학의 물체物體, 심체心體, 이체理體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불교가 물物·심心·리理 삼종의 철학인 것도 그 목적은 객관을 버리고 주관으로 들어가며, 주관을 경유하여 이상에 달하므로 결국 그 방향이 객관에서 이상으로 진행된다.“고 본다. 이상론은 ”객관적으로는 만상만물의 실체가 불생불멸이며, 주관적으로도 물심의 내면에는 불생불멸의 진여의 이체가 있으므로, 현상과 진여와의 관계는 만상만물의 불생불멸이 곧 진여이자 실체이기 때문이다.“고 한다. 현상즉실재, 물심동체론, 불생불멸의 진여론을 통해 동서양 철학을 최종적으로 불교로 통합하고자 하는 이노우에의 웅대한 구상이다. 불교의 철학화를 통해 동서양 문명을 주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진 3. 도쿄 철학당 공원. 

 

  한편 그는 당시 서구의 진화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파사신론破邪新論』, 『불교활론』, 『파유물론破唯物論』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기독교 비판의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진화론을 활용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신 창조설의 비합리성을 12가지를 들어 논파한다. 결국 기독교의 창조설은 이학(理學, 여기서는 자연과학)의 진화론과 양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노우에는 물심동일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해석했는데 이를 지구와 우주 전체로 확대했다. 성운처럼 진화가 극점에 달하면 퇴화에 들어가고, 퇴화도 극점에 달하면 진화로 나아간다. 우주전체가 진화와 퇴화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대화大化 혹은 윤화輪化의 순환이라고 한다. 생과 사, 진화와 퇴화, 그리고 그 처음과 끝을 개벽과 폐합이라 하고, 이러한 순환이 마침내 적연한 공경空境에 돌아가 합일하는 것을 우주진화론이라고 한다. 다윈이 본 동식물의 경쟁, 변화, 유전과 관련한 진화만이 아니고 지구나 우주 전체가 대진화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대화의 논리는 진충보국의 정신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태평으로써 상도常道라고 한다면 전쟁도 역시 상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이 없으면 태평도 없고, 태평이 없다면 전쟁은 없다. 따라서 나에게 사회의 진보는 태평 전란, 전란 태평이 전후 서로 교차하여 변천하는 것으로 사회상에서는 태평 전란이 있는 것처럼 천지에는 평온 변재가 있는 것이다.” 사회진화론적 전쟁론을 무한경쟁의 모든 사회현상으로까지 확대한다. 결국, 약육강식의 국제적 상황을 목격하면서 호국과 애리愛理는 불가분임을 강조한다. 

 


사진 4. 불교활론본론. 

 

  이노우에는 교육칙어에 기초한 국민도덕론을 주장하여 서양의 사상을 견제했다. 또한 국민도덕의 한계를 넘어 세계도덕을 제창하여 국민도덕과 세계도덕의 모순을 해소하려 하였다. 나아가 불교의 입장에서 기독교가 국체國體와 조화하지 못하고 애국의 정신이 결핍되어 있다는 이유로 국수주의자, 일본주의자와 손을 잡고 기독교 공격의 최선봉에 서기도 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요괴학이다. 동경제국대학에 재학 중일 때 심리학을 배워 요괴학을 창설했다. 『심리적요心理摘要』, 『불교심리학』, 『심리요법』, 『요괴학강의』(사진 5) 등을 저술, 요괴연구회를 창립하고 요괴학 잡지를 발행했다. 요괴학은 일개인뿐만이 아니라 인류전체가 태고로부터 우주만유, 모든 사물에 걸쳐있는 사상관념의 상태, 또는 모든 현상변화에 걸친 해석과 설명의 정도를 연구하는 독립된 과학이자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요괴의 종류로 이학, 의학, 순정철학, 심리학, 종교학, 교육학, 잡부문의 7대 요괴현상으로 나누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요괴현상을 채록했다. 민간신앙 속에 기괴하고 이상한 현상은 물론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비일상적인 존재를 포함하여 평소에 우리들이 불편함 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관념이나 사소한 경험까지도 총 망라한다. 최종적으로 그가 분류한 요괴연구의 성과는 첫째, 실괴實怪는 ①진괴眞怪 즉, 일명 초리적超理的 요괴, ②가괴假怪 즉, 일명 자연적 요괴, 둘째, 허괴虛怪는 ①위괴僞怪 즉, 일명 인위적 요괴. ②오괴誤怪 즉, 일명 우연적 요괴다. 

 


사진 5. 요괴학강의. 

 

  이노우에는 인간계, 자연계, 절대계의 세 종류가 있는 것처럼 이 4종의 요괴 가운데 진괴, 가괴, 위괴를 세계 삼대괴라고 한다. 이를 분석 연구하면, 가괴와 위괴는 각각 사회, 인정의 비밀과 만유자연의 비밀을 알 수 있고, 진괴는 우주절대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결국 귀신연구는 천도의 대도를 연구하여 처음부터 미신을 타파하고, 불교의 삼계유심에 귀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광활한 우주와 대지로부터 미세한 분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지식이 미칠 수 없는 모든 공간을 일대괴물이라고도 불렀다. 이러한 세계 전체는 불가사의로 가득 차 있으므로 진정한 요괴인 ‘진괴’라고도 하였다. 진괴의 핵심은 불교의 깨달음에 바탕을 둔 진리이자 불생불멸의 우주적 실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근대 국수주의적 계몽주의의 선구자, 불교를 새로운 문명의 설계도면으로 내놓고자 한 이노우에의 야망은 오늘날에도 일본불교계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연구와 교육의 요람으로 우뚝 서게 된 결실로 나타났다. 비록 동서양문명 혼융의 시기, 제국주의, 부국강병, 충군애국의 모순과 한계를 직시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서양철학을 통해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술을 써가면서 불교적 전통을 근대화하고자 한 노력은 사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지금은 동양대학의 이노우에 엔료 기념학술센터에서 그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노우에 엔료 국제학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원영상
원불교 교무, 법명 익선. 일본 교토 불교대학 석사, 문학박사. 한국불교학회 전부회장, 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원광대학교 일본어교육과 조교수. 저서로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공저), 『佛教大学国際学術研究叢書: 仏教と社会』(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일본불교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교훈」 등이 있다. 현재 일본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wonyosa@naver.com
원영상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