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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한국불교 연구 초석 다진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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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1 년 1 월 [통권 제93호]  /     /  작성일21-01-15 10:15  /   조회6,12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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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1 – 이능화

 

 이능화(李能和, 1869-1943, 사진 1·2)는 불교사를 포함하여 근대기 한국학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앞장선 학자이다. 호는 상현尙玄이며 1869년 1월 19일 충청도 괴산의 전주 이씨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원긍은 이조참의, 법부협판 등 고위 관직을 지냈지만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의 영향으로 이능화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배우고 서양 문물에 큰 관심을 가졌다. 1897년 한성법어학교의 교관으로 프랑스어를 가르쳤고 1906년에 교장이 되었으며, 1908년부터는 한성외국어학교의 학감을 지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불교에 심취하였는데, 1907년 근대식 불교학교인 명진학교의 제2대 교장을 맡았고 1912년에는 능인보통학교를 설립했다. 1910년대 중반부터는 불교 잡지 《불교진흥회월보》와 《조선불교총보》의 편집 및 발행을 주관했다. 또한 1920년에는 조선불교회를 조직하였고 1922년부터 약 15년 동안 35권의 『조선사』를 펴낸 조선사편수회의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 1930년대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조선 종교사를 강의했다. 하지만 그는 총독부의 사업에 협력하고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친일행적으로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1. 이능화

 

 이처럼 다채로운 삶의 편린을 보였지만 이능화는 불교를 중심으로 한국학 연구에 평생을 매진하였다. 그의 저술 활동은 1910년대 초부터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백교회통』(1912)은 불교를 우위에 두면서 도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동서양의 여러 종교들을 비교 정리한 책이다. 이어 한국불교의 문헌과 사료를 집성한 자료집이자 통사인 『조선불교통사』(1918)를 출간하였다. 이밖에도 『조선유학사상사』, 『조선사회사』, 『조선상제예속사』, 『조선의약발달사』를 썼지만 전하지 않고, 『조선종교사』, 『조선무속고』, 『조선기독교급외교사』, 『조선여속고』, 『조선해어화사』 등 한국의 종교 및 민속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저작들이 남아있다.

 

 그의 주저인 『조선불교통사』는 1918년 경성(서울)의 신문관에서 출간되었다. 상중·하 2책으로 되어 있고 총1,268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신문관은 최남선이 1907년에 세운 출판사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잡지인 「소년」, 대중 계몽을 위한 「청춘」 등을 발간하였고 전문서와 교양서, 소설 등을 펴냈다. 최남선은 조선광문회를 만들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동국통감』 같은 역사서를 비롯해 『율곡전서』와 『이충무공전서』, 『지봉유설』과 『성호사설』, 『택리지』, 『동국세시기』, 『열하일기』 등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들을 모아 유통시켰다. 이 책들을 간행한 곳이 바로 신문관이었는데, 『조선불교통사』의 경우 최남선이 직접 교열을 담당했다.

 

 『조선불교통사』는 고대부터 근대기까지 한국불교사 전체의 흐름을 시기별·주제별로 나누어 총정리한 책이다. 이능화는 책의 출간을 앞두고 쓴 글에서 “조선의 승려조차도 조선 불교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계통적 역사 서술이 없다.”고 비판하며 이는 족보와 계보를 몰라 상놈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한국불교사에 대한 계통적 이해를 도모하고 참고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오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책은 한문 원문을 그대로 인용해 썼고 서술도 국한문 혼용이 아닌 한문으로만 쓰고 있다.

 

 이능화는 책의 서문에서 한국불교의 12종파와 900개 사찰의 역사가 방치되고 잊혀 진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서 일일이 고증하고 공부하는 공력을 들인 끝에 책을 마칠 수 있었다고 되돌아보았다. 책 끝의 발문은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을 비판하는 논설인 「시일야방성대곡」을 황성신문에 실은 장지연이 썼다. 그는 이능화가 유학자이면서도 불교를 좋아하여 연구에 전념해왔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불교는 유교와 함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전해지는 기록이 적어 저자가 늘 안타깝게 여기다가 이 책을 펴냈다고 적고 있다. 

 

 이능화는 이 책에서 엄밀한 사료적 근거에 의해 객관적 접근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근대불교학의 연구방법론인 문헌학과 역사 실증주의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문헌들만 해도 역사서와 지리지, 문집과 불서 등 다양하며, 비문 등의 금석문과 사적기 등 수많은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역사서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을 주로 활용하였고 『용재총화』, 『대동야승』 같은 야사류도 포함되었다.

 


사진2.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의 상편에서는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이 책이 저술된 20세기 초까지의 사료를 시기별로 편년체로 배열해 서술하고 있다. 중편은 불법승 삼보의 원류와 유통을 다룬 것으로서 인도에서 중국까지 불교의 역사적 흐름을 정리하였고, 신라와 고려 각 종파의 연원과 특징을 간추렸는데 한국불교 전통의 주류를 임제종 중심의 선종으로 파악했다. 하편은 200여 개 주제를 엄선하여 인물과 사상, 사건과 제도, 신앙과 영험, 사적과 지리, 문화예술 및 출판 등 다양한 문제들을 폭넓게 조명하였다. 여기서 그가 한국불교의 주요 전통으로 꼽은 것은 선종에서는 보조 지눌과 조계종, 교종에서는 원효와 의상 이래의 화엄종이었다. 그리고 백제 승려 겸익의 인도 구법행과 율장 전래에 대한 기록은 이 책에만 보이며, 또 한글을 창제한 원리가 인도의 산스크리트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이능화는 한국불교의 시대별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먼저 삼국과 통일신라는 불교가 수용되고 교학이 일어난 ‘경교 창흥’ 시대, 나말여초는 선종이 도입되고 번창한 ‘선종 울흥’ 시대, 고려는 선과 교가 함께 융성하여 오교양종이 성립된 ‘선교 병륭’ 시대, 조선은 선과 교가 합쳐지고 쇠퇴의 길을 간 ‘선교 통일’ 시대, 근대는 제도적으로 선과 교가 유지된 ‘선교 보수’ 시대로 명명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일반적인 시기구분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국불교사의 전체 흐름을 시대별로 구분하려는 시도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는 또 교단사의 전개 문제에서 고려시대 오교구산과 오교양종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의천 당시에는 계율, 법상, 법성, 원융, 열반의 5교와 선종의 9산 선문을 합쳐 오교구산으로 불렀고, 고려후기에는 계율, 법상, 법성, 원융(화엄), 천태의 5교와 선적종 및 조계종의 2종을 오교양종으로 칭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후 오교양종의 오교는 교종이고 양종은 조계종과 천태종을 가리킨다는 설이 제기되어 통설이 되었지만, 이 문제를 학술 담론으로 제기한 것은 이능화였다.

 

 이어 조선전기에는 선교양종이 세워졌다가 혁파되었지만, 고려 말 태고 보우가 전수해 온 임제종 법맥이 청허 휴정을 거쳐 후기까지 이어졌고 또 휴정이 선을 중심으로 교까지 포섭하여 통합한 사실을 강조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임제법통과 관련해 이 책에서는 1911년 자주적 종단을 세우기 위해 일어난 임제종 건립 운동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근대 불교계에 대한 이능화의 평가에서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그는 당시의 고승들은 대개 교학 승려이며 선승은 경허, 만공, 한암 등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오늘날의 일반적 상식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이능화는 조선후기 불교가 겉으로만 선종이지 실제로는 선교겸수를 통해 교학 전통을 면면히 계승했고 그것이 당시까지 이어졌다고 본 것이다.

 

 『조선불교통사』를 보면, 불교 쇠퇴기로 불린 조선시대의 서술 비중이 의외로 적지 않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시대에 간행되어 전해지는 불서의 수가 가장 많고 인물, 사건 등에 대한 정보가 많이 축적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상편은 불교가 처음 전해진 4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1600여 년의 불교사를 개설하였는데 이 중 조선시대가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또 전체 등장인물 266명 가운데 조선시대에 속한 인물이 93명으로 가장 많고, 불상과 탑 등의 유물도 213건 중 90건에 이른다. 이는 200여 개의 주제를 다룬 하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시대 관련 항목 및 분량이 전체의 약 40%를 점한다.

 

 이능화는 조선시대가 한국불교의 정체성이 형성된 시기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비록 조선시대 불교가 고려시대보다는 쇠퇴했지만 선과 교가 공존하였고 임제법통을 세워 불교의 혜명을 이어간 시기로 보았다. 당시 후루타니 기요시 같은 일본인 학자는 조선시대를 ‘한 편의 불교 쇠망사’라고 단언하고 부정적 시각에서 폄하하려 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를 재조명하여 전통의 뿌리를 찾으려고 한 그의 노력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1920년에 쓴 글에서 조선시대에 승려가 7천(賤)의 천민과 같았다고 한 다카하시 도오루 등의 주장에 대해 역사에 몰상식한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하였다. 그 근거로 조선후기의 법전 어디에도 승려를 천인으로 규정한 내용이 없으며 학문과 계행이 부족하고 양식을 구걸하는 일부 승려들 때문에 수준 낮은 승려 이미지가 통용되었을 뿐임을 들었다. 

 

 20세기 이후 문헌 및 금석문 자료가 집성되고 근대학문의 방법론을 적용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전체상이 그려지게 되었다. 그 단초를 연 것이 바로 한국불교 연구의 초석을 놓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였다. 이 책은 체계적 자료 조사와 수집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자료를 모아서 수록했다. 그렇기에 이후에 나온 많은 연구들은 이 책에 있는 자료들을 활용하여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능화는 한국불교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개관하고 여러 종파의 연원을 밝혔으며 무엇보다 주요 사건과 인물, 정책과 제도, 사찰과 서책 등을 망라하여 후속 연구의 지침이 되었다. 그는 한학과 외국어에도 뛰어났고 불교를 비롯한 종교와 민속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주저인 『조선불교통사』는 유교와 함께 한국의 전통 사상과 종교를 대표하는 불교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그 역사를 체계화시킨 기념비적 저작이다. 이처럼 근대기 학술 영역에서 한국학의 기반을 닦고 불교를 주축으로 하는 전통을 학술담론으로 승화시킨 그의 공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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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서울대 국사학과 문학박사 학위 취득(2008). 저서로 『韓國佛敎史』(2017, 東京:春秋社), 『토픽 한국사12』(2016, 여문책),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 법통과 교학전통』(2010, 신구문화사)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및 한문불전 번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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