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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황금빛 깨달음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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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4 년 7 월 [통권 제135호]  /     /  작성일24-07-04 17:04  /   조회1,376회  /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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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7호 불화장 금초 이연욱 

 

섬세하고 수려한 고려의 미술에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고려 불화의 정수라고 불린다. 달이 비친 바다 가운데 금강보석金剛寶石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님은 불자가 아닌 이들의 눈에도 충분이 자비롭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비단 위에 주사硃砂와 석록石綠, 석청石靑 등의 천연 안료를 사용하여 붉은색, 녹색, 청색, 흰색, 금색의 5가지 색으로 수월관음도의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종이의 뒷면에 색을 칠하여 은은한 느낌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背彩法의 사용으로 원색은 화려함과 더불어 고상미를 높여준다.

 

사진 1. 고려시대 수월관음도.

 

관음도의 백미는 황금빛 금니金泥에 있는데 보살의 고귀함을 극치에 이르게 한다. 금니 사용은 고려 불화의 주요한 특징인데 그들이 얼마나 불교 장엄에 진심인지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채색 없이 순금으로만 그린 불화로 ‘아미타 삼존도(1359년)’가 있는데, 비단 바탕 전면에 군청색을 칠하고 그 위에 금니만으로 그린 고려 유일의 금선묘 불화이다. 아쉽게도 일본 야마나시현에 있는 사찰 손타이지(尊體寺)에서 소장하고 있어 쉽게 만날 수는 없다. 

 

 사진 2. 강화도 보문사 황금 104위 신중탱화.

사진 3. 십일면 42수 관세음보살.

 

세월이 흘러 천여 년이 지난 관음도는 이제는 바탕이 되었던 비단도 낡아지고, 채색도 시간 속에 흩어져 화려했던 원래의 색은 사라지고 그 기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후대에도 여전히 수월관음도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여전하다. 아마도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섬세한 필치와 은은하게 펼쳐지는 금니의 황금빛 그윽함에 매료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수월관음도의 채색은 거의 사라져 관세음보살님은 떠나고 반짝이는 황금빛 여운만이 남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 곁에 찾아왔다 고요히 떠나가는 불화 속 부처님 이야기를 만나보자.

 

다시 시작되는 황금탱화

 

불교 미술인 불화佛畫는 불교신앙의 내용을 압축해서 그림으로 표현한다. 천이나 종이에 그려 족자, 액자의 형태로 벽에 거는 불화인 탱화幀畵, 벽에 그려지는 벽화壁畫, 책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경화經畵로 구분된다. 단청도 넓은 의미에서 불화에 포함된다. 고려시대 전기까지의 불화는 주로 벽화로 그려졌는데, 점차 제작이 간편하고 이동이 쉬운 탱화가 많이 그려졌다. 

 

사진 4. 법화경 다보탑 허공회도.

 

전문 화사畫師가 아닌 불교회화를 담당하는 승려가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도화서 화원으로 유명한 김홍도와 같은 화가도 탱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부처님의 일화나 생애 등 경전의 내용을 담은 상단탱화, 시왕도와 지옥도와 같은 중단탱화, 신장상 등이 묘사된 하단탱화로 구분된다. 한 면으로 된 그림 안에는 부처님의 일생, 인간의 복잡 다양한 감정들, 중생들을 위한 위로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함축과 상징으로 표현된다. 

 

사진 5. 탱화 후면 옻칠 중.

 

그중에서 금빛 찬란한 금으로 된 탱화는 일상에서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불화이다. 고려나 조선에서 가끔 나타나지만 금이라는 귀한 재료와 섬세한 기법을 생각한다면 흔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황금탱화는 귀한 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그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금인 줄 모르고 스치듯 지날 수도 있고, 사진으로 찍어도 누르스름하게 표현되고 제 색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자세히 보아야 그 은은한 밝음을 알 수 있고, 빛과 만나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발색의 빛을 마주할 수 있다. 오래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진 6. 탱화 후면 옻칠 과정.

 

불화와 만나는 빛의 각도나 세기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관람객의 요소도 반영된다. 바로 관람하는 사람의 옷색에 따라서 금빛은 정밀하게 달라진다. 붉은 옷을 입고 다가가면 홍금빛이 나고, 흰옷을 입고 다가가면 백금빛으로 보이게 되니, 만나는 이들의 차림새에 따라 다른 빛의 부처님이 되시겠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금이라는 재료를 잘 사용하고 표현하기 위해 상당히 고심하게 된다. 그래서 바탕을 원형이나 선으로 화면畫面이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고분高粉한다. 이후에 황금을 붙이고 그 위에 생채색으로 그림과 문양을 그린다. 완성된 작품이 오래 유지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옻칠 과정이 추가된다. 탱화 앞면에는 엷게, 뒷면에는 여러 번에 걸쳐 옻칠을 한다. 그래야 곰팡이가 피지 않고 부식되지 않는다.

 

사진 7. 순금 바탕에 문양을 그리는 생채색기법.

 

여름철 덥고 습한 날씨에 탱화가 쉽게 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안해 낸 이연욱 불화장의 탱화 사랑의 결과이다. 금을 사용할 때에도 용도에 따라 금박을 사용하기도 하고, 가루금을 쓰기도 한다. 금박은 광택이 나기 때문에 장식의 기능이 크고, 가루금은 광택이 없기 때문에 얼굴이나 살 부분에 써서 고상한 빛을 나게 한다. 황금탱화는 이연욱 불화장이 오랜 기간 동안 연구와 실험 끝에 지금의 안정적인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붓으로 펼치는 부처님 세계

 

이연욱 불화장의 표정은 편안하고 말은 고요하다. 마치 부드러운 붓이 비단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여운이 남는다. 그의 그림은 단청에서 시작한다. 금초錦草라는 호는 단청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기하학적 문양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모습이 수를 놓은 비단처럼 보여서 비단 무늬를 뜻한다. 

 

어린 시절 그의 고향 경남 산청엔 목화씨를 가지고 온 문익점 비각이 있는데, 오래되어 단청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때 김한옥(단청 전문위원) 선생이 단청작업을 하였고, 새롭게 그려지는 단청의 매력에 매료되어 인연을 맺게 되었다. 불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서울 조계사에서 벽화를 그렸던 조정우(대구무형문화재 제14호 단청장) 선생을 만나서이다. 청년 시절 낮에는 단청을, 밤에는 불화 연습을, 전통 문양 모두를 섭렵하기 위해 날을 지새우며 수십 년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 불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기도를 시작했다.

 

사진 8. 이연욱 불화장의 작업실. 

 

“붓으로만 그린 그림은 ‘불화’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보살을 그리는 일은 성화聖畫를 그리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이 경건하고 신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그림과 기도 수행을 함께 했어요.”

 

이연욱 불화장의 하루는 매일 아침 관음기도와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배로 시작한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매일의 일상이듯 그는 기도하고 그림 그리는 일이 그의 일상이고 늘상이다. 물론 불화는 부처님의 말씀을 옮기는 작업이기에 경전 내용을 공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진 9. 이연욱 불화장.

 

“그림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지난 세월 수없이 많은 불화를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저에게 있어 불화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도였지요. 불교에서 황금빛은 영원히 타고 있는 불을 상징하며 이는 곧 깨달음의 높은 경지를 의미하지요. 금빛 부처님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작은 등불을 밝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10. 미국LA 카운티박물관 소장, 지장십왕도 원형 모사.

 

그는 붓을 들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부처님의 형상과 생전의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보람과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그림 그리는 과정은 고단하고 녹록치 않아 자신을 이겨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붓을 잡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기에 하루도 쉼 없이 손에서 붓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황금빛 탱화에 감동하는 것은 그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 내면에 의미하고 있는 깨달음을 향해 가는 행보임을 알기에 감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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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중현中玄 김세리金世理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다산숲 자문위원. 성균예절차문화연구소, 중국 복건성 안계차 전문학교 고문. 대한민국 각 분야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 중. 저서로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차의 시간을 걷다』, 『영화,차를 말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공감생활예절』 등이 있다.
sinbi-10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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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전정애님의 댓글

전정애 작성일

수월관음도는 언제 보아도 경외심을 불러 있으킵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 57호 금초 이연욱 불화장이 그리는 황금빛 깨달음도 아름답고,
중현 김세리 선생님의 글도 참 맑고 향기롭습니다.
불화를 보고, 중현 김세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도 맑아지길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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