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한국미술에 보이는 제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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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20 년 11 월 [통권 제91호] / / 작성일20-11-25 10:13 / 조회9,353회 / 댓글0건본문
『동국이상국집』 권41에 거란 군사를 퇴치하기 위해 제석천에게 재를 올리는 글이 전한다.
“제석천께서는 상계上界에서 육천六天을 통솔하시니 나쁜 자에게 화를 주고 착한 자에게 복을 주심이 틀림없겠지만, 우리나라도 사주四洲의 동방과 같아서 부처님을 공경하고 스님에게 귀의하는 것이 유래가 있으니, 혹시 위급한 사정을 하소연한다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낼 것입니다. 이상하게 거란의 남은 족속들이 여진女眞에게 귀속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마치 주인을 보고 짖는 개와 같이 반란을 일으켜 설치다가, 마침내 수림樹林을 잃은 노루처럼 온갖 광증을 부려 좌충우돌하였습니다. 게다가 남의 경계에 침범하고도 도리어 우리를 원수로 삼아 남의 땅과 인접해 있으면서 사람을 괴롭히기 일쑤이고, 남의 양식을 빼앗으면서 사람을 해치는 것을 즐겁게 여기며, 심지어 나이든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용서없이 죽이고, 새끼 밴 망아지와 젖먹이 송아지를 남김없이 도살하며, 불사佛寺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기도 하고, 범서梵書를 찢어서 뒷간에 버리기도 하니, 이것이 이른바 짐승의 마음이지 어찌 사람의 정(情)이겠습니까. …(중략) … 엎드려 원하건대 신위의 도움을 내리고 사기(士氣)의 앙양을 더하여 왕의 군사는 마치 땅을 진동하는 빠른 우레처럼 가는 곳마다 떨치고, 오랑캐 종자는 마치 강물에 던지는 횃불처럼 저절로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동국이상국집> 권41).
앞의 기록은 고려 때 거란군이 침입하자 거란군을 물리치기 위해 제석천에게 올리는 기원을 담은 기도문이다. 고려시대에는 궁에 내제석원內帝釋院과 외제석원外帝釋院을 두었던 사실을 통해 제석천에 관한 신앙이 성행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불화 중에는 왕의 모습으로 그려진 제석천도가 전하고 있어 왕실과 제석천 신앙과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토함산 석굴의 범천과 제석천
경주 토함산 석굴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중심 공간에는 석가여래의 주위를 11면관음보살상, 10대제자상, 문수·보현보살상, 제석천·범천상이 감싸고 있다. 중심 공간인 주실主室은 불·보살·나한이 머무는 공간이고 주실 앞의 전실前室과 주실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팔부중· 금강역사·사천왕 등 불법을 수호하는 천신天神들이 지키고 있다. 제석천과 범천 역시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중임에도 불구하고 불·보살·나한이 머무르는 주실에 배치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석천과 범천에 관한 인식이 남달랐던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표현한 간다라 불전 미술 속에서 항상 한 쌍으로 표현되었던 범천과 제석천은 751년 경 조성된 토함산 석굴에서도 나란히 등장하였다. 본존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향좌측에는 범천상(사진 1)이, 향우측에는 제석천상(사진 2)이 배치되었다. 우아한 모습의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손에 든 지물과 몸에 걸친 옷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토함산 석굴의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652년 당나라 수도 장안에 도착한 중인도 출신의 스님이었던 아지구다阿地瞿多가 번역한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반야보살의 오른쪽 행랑에는 범천梵天을 안치한다. 온 몸이 흰색이고 귀에 보배 귀걸이를 했으며, 목에 칠보의 영락을 두르고 양탄자 위에 서 있다. 오른손은 팔을 구부려 어깨 위로 향하여 손에 흰 불자拂子를 잡고 왼손은 팔을 편 채 손에 조관澡罐을 잡고 있으며, 허리 밑으로 조하군朝霞裙을 입고 화려한 비단그물과 수로 장식한 의복을 입고 있다. 그 범천은 몸에 자색紫色 가사를 입고 화관花冠을 머리에 쓰고 파기광簸箕光을 내고 있으며 손과 발과 손목에는 모두 보배 팔찌를 두르고 있다. 보살의 왼쪽 행랑에는 제석천帝釋天을 안치한다. 온몸이 흰색이고 귀에 보배 귀걸이를 하고 있으며, 목에 칠보의 영락을 두르고 양탄자 위에 서 있다. 오른손은 팔을 구부려 어깨 위로 향하게 하여 손에 흰 불자를 잡고, 왼손은 팔을 구부려 팔꿈치를 왼쪽으로 향하게 하고 손바닥을 배쪽으로 향하게 하며 위로 뒤집고 손바닥 안에 발절라跋折羅 한 개를 놓되, 발절라의 끝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놓고 화염이 발절라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그 제석상은 허리 아래로 조하군을 입고 화려한 비단에 수놓아 장식한 의복을 입고 있으며, 천의天衣를 전부 휘감아 농락籠絡을 두르고 머리에 파기광을 내는 화관을 쓰고, 손과 발과 팔목에 모두 보배 팔찌를 하고 있다.” (<다라니집경>권3 「반야화상법」)
토함산 석굴의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공통적으로 오른손으로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으며, 몸에 장신구를 걸치고 머리에는 위가 넓은 타원형의 두광을, 두 발로는 타원형의 대좌를 밟고 서 있다. 타원형의 두광은 <다라니집경>에서 언급한 파기광簸箕光 즉 곡식을 체질할 때 쓰는 도구인 ‘키’의 형태에서 유래했으며, 발 밑 타원형의 대좌는 간다라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특산물인 양탄자에서 비롯되었다(허형욱, 「석굴암 梵天·帝釋天像 도상의 기원과 성립」, 2005). 토함산 석굴의 범천상과 제석천상의 모습에는 통일신라 당시 서역과의 교류가 반영되어 있다.
토함산 석굴 범천상의 왼손의 지물인 정병淨甁은 <다라니집경>에서 언급된 조관澡罐의 다른 표현으로 인도 수행자의 지물인 물병에서 비롯된 도상이다. 제석천이 들고 있는 끝이 다섯 갈래로 된 금강저金剛杵는 <다라니집경>의 발절라를 의미하며 벼락을 형상화한 것이다. 옛 인도 신화에서부터 제석천이 지녔던 강력한 무기를 상징하며, 후대에는 수행자가 지녀야 할 수행법구로 정착되는데 고려시대의 나한상 가운데는 금강령과 함께 지물로 금강저를 들고 있는 예를 볼 수 있다.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의 제석천상
조선 세조의 원찰인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에는 1466년에 조성된 문수동자상과 함께 왕의 모습을 한 제석천상이 모셔져 있다(사진 3). 1645년에 조성된 상원사 목조 제석천상은 보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장신구가 화려하게 치장된 모습은 왕을 보는 듯하다.
사진3. 오대산 상원사 제석천상, 1645년, 상원사 문수전, 월정사 성보박물관 제공.
상원사 문수전의 목조 제석천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현재 일본 성택원(聖澤院)에 소장된 제석천도와 비슷하다. 1466년에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그의 남편 정현조와 함께 조성한 문수동자상 발원문에 의하면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16나한, 천제석왕天帝釋王’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세조의 원찰인 상원사에는 1466년에 제석천상을 조성했으나 어느 때인지 없어진 후 1645년에 현재의 제석천상을 다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상원사 목조 제석천상은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1612-1645)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소현세자는 음력 4월26일에 돌아가시고 상원사 목조 제석천상은 1645년 6월13일에 조성되었다. 이 상을 조성할 때 왕실 인물들이 시주자로 참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선조와 온빈 한씨(1581-1664)의 차남인 경평군(1600-1673) 내외는 황금을 시주하였고, 선조와 인빈김씨 소생으로 신익성(1588-1644)과 혼인했던 정숙옹주(1587-1627) 영가를 위해 후손들이 면금面金을 시주하였다. 이 외에도 효령대군의 7대손인 이명(1570-1648) 부부 역시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완주 송광사 나한전의 제석천사 2위
1656년(효종 7)에 완주 송광사에서는 나한전에 모실 존상이 대대적으로 조성되었다. 석가여래·제화갈라보살·미륵보살을 비롯한 석가삼존상, 16나한상, 5백나한상, 용녀상, 제석천상· 장군상·사자상·동자상 2위 등 527존을 대웅전에서 조성한 후 나한전으로 옮겨 모셨다.
제석천과 범천이 간다라 불전미술에서부터 한 쌍으로 조성되던 전통은 조선시대에는 상원사처럼 제석천상만 단독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완주 송광사 나한전처럼 좌우로 2위의 제석천상 만이 봉안되기도 하였다(사진 4). 조선시대의 나한전에는 범천상은 사라지고 제석천상 2위가 16나한상·장군상·사자상 등과 함께 좌우에 배치되었던 것이다.
사진4 . 완주 송광사 나한전 제석천상 2위, 1656년, 영산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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