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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세계]
금강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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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20 년 8 월 [통권 제88호]  /     /  작성일20-08-28 13:43  /   조회9,56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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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고향으로 향하다가 말라족이 다스리는 쿠시나가르에 도착하셨다. 더 이상 아픈 몸으로 고향으로 갈 수 없게 되자 부처님은 제자 아난에게 두 그루의 사라수 사이에 누울 자리를 마련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라수 아래에서 부처님은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自燈明 法燈明]”는 말씀을 남기고 모든 번뇌가 소멸된 적멸寂滅에 드셨다. 우리는 이것을 부처님의 열반이라고 한다(사진 1).  

 

 


사진 . 열반에 든 부처님, 간다라(2-3세기), 빅토리아 앤 알버트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우리에게 익숙한 누워있는 부처님인 와불상臥佛像을 처음으로 표현한 것은 간다라인들이었다. 침상 위에 두 다리를 포갠 채 오른 옆구리를 침상 위에 대고 누운 부처님의 모습은 평온하다. 침상 앞에는 열반을 앞둔 부처님을 찾아와 마지막 제자가 된 120살의 수밧다가 선정의 자세로 앉아 있다. 수밧다가 바라문 수행자였음을 상징하는 것은 머리에 쓴 두건, 남은 머리카락, 물주머니가 달린 삼각대 등이다. 수밧다가 이제 막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은 이마 위에 남겨진 머리카락의 표현이다. 

 

부처님보다 40살이 더 많은 수밧다는 오랫동안 바라문 수행자로 살았지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는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들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스승을 잃는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던 수밧다는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부처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간다라의 불전도 속 열반 장면에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 수밧다가 침상 앞에 표현되는 이유이다.

 

침상 앞에는 침착한 모습의 수밧다와는 달리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통곡하는 금강 역사가 표현되어 있다. 억제하기 힘든 슬픔으로 금강 역사는 부처님을 호위했던 상징물인 금강저를 땅에 내팽개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아! 부처님께서 영원히 열반에 드셨으니 모든 중생들은 구호 받지 못하고 생사의 저 큰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구나. 또한 안목이 없는데 이끌어줄 스승을 여의었으니 누가 그 길을 보여줄 것인가? 여래의 짙은 구름은 능히 감로의 비를 내렸는데 무상無常의 바람이 그 구름을 불어 없애버렸구나. 나는 여래를 따라다니기를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다니듯 하면서 조화롭게 받들고 순종하여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아! 너무 괴롭다. 이제 이 금강저로 누구를 보호한단 말인가? 곧 던져버리리라. 지금부터는 누구를 받들어 모실 것이며 누가 마땅히 나를 자비롭고 가엾게 여겨 가르쳐 줄 것인가?”

(『불입열반밀적금강역사애련경佛入涅槃密迹金剛力士哀戀經』).

 

<사진 1> 열반 장면에서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금강역사와 애통해하는 쿠시나가르의 말라족 그리고 나무에 사는 수신樹神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이 더 이상 계시지 않는 슬픔을 금강 역사, 말라족, 사라수의 나무신을 통해 간다라인들은 우리에게 절절하게 전하고 있다. 부처님의 발 부근에는 나체 수행자인 이교도로부터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전해들은 가섭 존자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서 있다.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는 금강 역사를 바라보는 가섭존자의 표정에는 억제된 슬픔이 배어 있다.  

 

“금강 역사는 손을 내젖고 부르짖으며 소리내어 슬피 울었다. 마치 제석천이 가진 당기의 끈이 끊어져 땅에 넘어진 뒤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땅을 구르며 울부짖어 황망히 앉은뱅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한참 후에 소생하였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여 일어나려 하지만 자꾸만 땅으로 빠져 들어갔다. 세상이 노래지고 캄캄하고 어지러워졌다. 마음과 뜻이 뒤바뀌고 헷갈려서 정신을 잃었다. 입술은 마르고 혀는 타서 말이 어긋나고 목이 쉬었다. 목숨이 곧 끊어져 부처님을 버리고 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슬피 부르짖으며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금강역사에게 제석천이 말했다. ‘멈추어라, 멈추어라. 그만하면 되었다. 너는 지금 부처님의 짧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모든 것은 무상하여 머물지 않고 바탕[體]을 믿을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달라지는 법[變易法]이다. 모든 것은 모였다가 흩어지며 다시 모였다가 없어진다. 높은 것은 반드시 떨어지고 합하고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 생겨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죽고 일체 모든 것은 하천과 언덕의 나무와 같다. 또한 물 위의 그림 같아 그림을 찾아도 없다. 또한 물거품 같고 나뭇가지 위의 이슬 같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신기루가 잠시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사람의 목숨도 화살보다 빠르다. 천하에 세월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사람 목숨의 신속함은 이 하늘보다 더하여 무상하고 무너진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불사佛事에 부족함이 있으면 열반에 들지 못할 것이고 불사를 두루 마치면 열반에 들어간다. 사람과 하늘에 부촉할 중요한 일을 성문 제자에게 맡기고 두려움 없는 적멸처로 향해 갈 것이다. 모든 존재들은 괴로움을 다해 다시는 태어남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크게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불입열반밀적금강역사애련경佛入涅槃密迹金剛力士哀戀經』).

 

<사진 2>는 금강 역사의 슬픔이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화면 오른쪽에는 물주머니가 걸린 삼각대가 놓여 있고 선정에 든 수밧다가 앉아 있다. 수밧다의 머리에는 바라문 수행자였음을 의미하는 머리카락이 일부 남아 있다. 

 

고개를 숙인 금강 역사는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곱슬머리의 한 남성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가슴에 댄 채 하늘을 우러러 “이제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요?” 라며 탄식하고 있다. 화면 왼쪽 끝에는 금강저를 땅에 버리고 주저앉은 금강 역사를 제석천이 일으켜 세우며 위로하고 있다. 

 

부처님의 열반을 애도하는 다섯명의 인물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스승을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먼저 죽음을 선택한 수밧다는 처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황망하게 부처님의 열반을 접한 금강 역사와 또 한명의 인물은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슬퍼하고 있다. 애도에 잠긴 금강 역사를 일으켜 세우는 제석천은 수닷다처럼 이성을 찾은 모습이다.  

 

 


사진2.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는 금강 역사, 간다라(1-2세기), 독일 베를린인도박물관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금강 역사는 열반에 든 부처님을 두고 그 곁을 떠나버릴까도 잠시 고민했다. 중국의 불교도들은 부처님을 잃은 외로운 금강 역사를 두 명으로 되살려냈다. 좌우대칭을 중요시 여겼던 중국인들에게 부처님 좌우를 금강역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던 것이다. 

 

‘목숨이 곧 끊어져 부처님을 버리고 갈 것만 같았던’ 금강 역사는 신라인들에 의해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의 문지기로 환생했다. 부처님의 열반을 접한 금강역사는 그림자처럼 호위하며 지녔던 금강저를 땅에 팽개쳐 버렸다. 그 때문일까. 634년에 조성된 경주 분황사석탑의 금강 역사는 금강저 대신에 권법 자세를 취하고 있다(사진 3·4). 1층 탑신 각 면에 한쌍씩 모두 8구가 배치되었는데 금강저 없이 권법 자세로 표현된 8구의 금강 역사는 어느 경전에 유래하고 있는지는 명확치 않다. 

 

 


사진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634년  

 


사진 . 부처님의 사리를 수호하는 권법 자세의 금강 역사,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간다라 불전도 속 부처님을 잃고 슬픔에 잠긴 금강 역사의 모습에서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방황했던 필자의 모습을 보았다. 1986년 봄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떠나셨고 금강 역사처럼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던 나를 그 해 여름 친구는 순천 송광사 수련회에 데리고 갔다. 송광사 수련회는 필자가 불교에 입문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86년 송광사 사자루에서 듣던 금강 역사의 울부짖음 같던 계곡의 물소리를 2020년 7월 고성 연화산 옥천사에서 다시 듣고 있다.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부처님의 사리를 수호하기 위해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모습을 바꾼 금강 역사처럼, 1986년 여름 송광사의 나는 이제 2020년 여름 옥천사의 또 다른 나로 변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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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 구」로 문학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초빙교수,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저서에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 연구』, 공동 저서로 『치유하는 붓다』·『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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