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빛의 말씀]
오매일여寤寐一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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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0 년 7 월 [통권 제87호] / / 작성일20-07-20 14:18 / 조회8,834회 / 댓글0건본문
성철 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1. 영겁불망永劫不忘
우리가 도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는 영혼이 있어 윤회를 거듭합니다. 그와 동시에 무한한 고苦가 따릅니다. 미래겁이 다하도록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되며 무한한 고가 항상 따라다니는 이것이 이른바 생사고生死苦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한한 고를 어떻게 해야 벗어나며 해결할 수가 있는가? 그러기 위하여서는 굳이 천당에 갈 필요도 없고 극락에 갈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 곧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여 활용하면 이 현실에서 대해탈의, 대자유의, 무애자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원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불성佛性’이니 ‘법성法性’이니 ‘여래장如來藏’이니 ‘진여眞如’니 등등으로 말하고 있으며, 누구나 이것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개발하면 곧 부처가 되므로 달리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생사해탈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일찍이 선문禪門의 조사祖師 스님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산 법문 끝에서 바로 깨치면 活句下薦得
영겁토록 잊지 않는다. 永劫不忘.” (주1)
곧 불교의 근본 진리를 바로 깨치면 그 깨친 경계, 깨친 자체는 영원토록 잊어버리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배운 기술이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도 합니다만, 도를 성취하여 깨친 이 경계는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금생에만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내생에도, 내내생에도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동시에 생활의 모든 것을 조금도 틀림없이 모두 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영겁불망永劫不忘이라는 것입니다. 마조馬祖 스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깨치면 영원히 깨쳐서 一悟永悟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不得更迷.”(주2)
그러므로 깨쳤다가 매昧했다 또 깨쳤다 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 깨치면 금생, 내생, 여러 억천만 생을 내려가더라도 영원토록 어둠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원오圜悟 스님도 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깨치면 영원히 얻어 一得永得
천겁, 만겁을 두고 億千萬劫
그와 똑같을 뿐 변동이 없다. 亦只如如.”(주3)
깨친 경계에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그것은 바로 깨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에 따르는 그 신비하고 자유자재한 활동력인 신통묘력神通妙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참으로 불가설不可說 불가설不可說입니다.
대자유에 이르는 길, 곧 영겁불망永劫不忘인 생사 해탈의 경계를 성취함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화두話頭가 근본이며,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하여 바로 깨치면 영겁불망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겁불망은 죽은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전에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숙면일여熟眠一如하면, 곧 잠이 아무리 깊이 들어도 절대 매昧하지 않고 여여불변如如不變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숙면일여가 여래如來의 숙면일여가 되면 진여일여眞如一如가 되지만, 보살의 숙면일여는 8지 보살의 아리야(阿梨耶, Ālaya) 위位에서입니다. 제8 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나고 죽음에서, 곧 분단생사分段生死에서 자유자재합니다. 그러나 미세한 무의식이 생멸하는 변역생사變易生死가 남아 있어 여래와 같은 진여위眞如位의 자재自在함은 못 됩니다. 그러므로 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바로 깨친 것이 아니며, 여래위·진여위에서의 숙면일여가 되어야만 참다운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8지 이상의 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만 되어도 결코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매하지는 않습니다. 영원토록 퇴진退進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라야위에서의 불망不忘과 진여위에서의 불망은, 차이는 있지만 다시 매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은 같습니다. 오매일여도 여래위에서의 오매일여와 아라야위에서의 오매일여가 다르면서 또한 같은 것과 흡사합니다. 숙면일여라고 하여 잠이 깊이 들어도 여여한 것이라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대종사, 대조사 치고 실제로 숙면일여한 데에서 깨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깨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식심분별識心分別이므로 앞 못 보는 영혼에 불과합니다. 봉사 영혼이 되어 수업수생隨業受生하니 곧 업 따라 다시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김 씨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고, 박 씨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중처변추重處便墜로 곧 자기가 업을 많이 지은 곳으로 떨어집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입니다. 자기의 자유가 조금도 없는 것을 수업수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자재한 경계가 되면 수의왕생隨意往生하니 곧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김 씨가 되던 박 씨가 되던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의왕생으로, 불교의 이상이며 부처님 경전이나 옛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의왕생이 되려면 숙면일여가 된 데에서 자유자재한 경계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부처님 이상 가는 것 같아도 그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몸을 바꾸면 다시 캄캄하여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960년대 중반의 어 날 북한산에 오른 향곡 스님, 성철 스님, 청담스님(왼쪽부터)
송나라 철종哲宗 원우元祐 7년(1092)이었습니다. 소동파蘇東坡의 동생이 고안高安에 있을 때 동산문洞山文 선사와 수성총壽聖聰 선사와 같이 지냈습니다. 그 동생이 하루는 밤에 두 스님과 함께 성 밖에 나가서 오조계五祖戒 선사를 영접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이튿날에 형인 동파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동파의 나이가 마흔 아홉이었는데 계戒선사가 돌아가신 지 꼭 오십 년이 되던 때였습니다. 오십 년 전 그의 어머니가 동파를 잉태하였을 때 꿈에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윈 스님이 찾아와 자고 가자고 하였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계 선사였습니다. 계 선사는 살아서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위었습니다. 동파 자신도 어려서 꿈을 꾸면 스님이 되어서 협우陜右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계 선사가 바로 협우 사람이었습니다.(주4)
이 사실들로써 동파가 계 선사의 후신인 줄 천하가 다 잘 알게 되어서 동파도 자신을 계 화상戒和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동파는 자주 동산洞山에게 편지를 해 ‘어떻게 하든지 전생과 같이 불법佛法을 깨닫게 하여 달라’ 하였으나 전생과 같이는 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오조五祖 계戒 선사는 운문종의 유명한 선지식이었는데, 지혜는 많았지만 실지로 깊이 깨치지 못한 까닭에 이렇게 어두워져 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옛날의 고불고조古佛古祖는 오매일여가 기본이 되고, 영겁불망이 표준이 되어 수도하고 법을 전했습니다. 여기에 실례를 들어 이야기하겠습니다.
2. 대혜 선사(주5)
오조법연 선사의 제자에 원오극근圜悟克勤 선사가 있고, 그 제자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있습니다. 강원에서 배우는 <서장書狀>이라는 책이 대혜종고 선사의 법문으로, 그는 임제의 정맥으로 천하의 법왕法王으로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대혜 스님이 어떻게 공부했고 어떻게 인가를 받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혜 스님은 스무 살 남짓 되었을 때, 요즘 말로 ‘한 소식’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진짜 소식이 아니라 가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도 전생 원력이 크고, 또 숙세宿世의 선근善根이 깊은 분이어서 그 지혜가 수승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소식을 진짜 소식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가짜 소식을 가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는데, 이 가짜 소식에 모두 속아 넘어갔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대혜 스님이 성취한 것은 엽전에 불과한데 세상 사람들은 진금眞金처럼 여기고 ‘바로 깨쳤다’고 인가를 하여 대혜 스님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날뛰고 다녔습니다.
그 무렵 ‘천하 5대사’라는 다섯 분의 선지식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담당문준湛堂文準 선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대혜 스님이 이 선사를 찾아가며 “천하 사람이 나를 보고 참으로 깨쳤다고 하고 진금眞金이라고 하니 이 스님인들 별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병의 물을 쏟듯,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는 체하는 말을 막 쏟아 부었습니다. 담당 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네 좋은 것 얻었네. 그런데 그 좋은 보물 잠들어서도 있던가?” 하고 물어 왔습니다. 자신만만하게 횡행천하橫行天下하여 석가보다도, 달마보다도 낫다 하던 그 공부가 잠들어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력이 천하제일이라고 큰소리 텅텅 쳤지만 잠이 들면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혜 스님은 담당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천하 사람들이 모두 엽전인가 봅니다. 저를 엽전인 줄 모르고 금덩어리라고 하니 그 사람들이 모두 엽전 아닙니까? 스님께서 제가 엽전인 줄 분명히 지적해 주시니 스님이야말로 진짜 금덩어리입니다. 사실 저도 속으로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자유자재 하지만 공부하다 깜박 졸기만 하면 그만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이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담당문준 선사는 크게 꾸짖었습니다.
“입으로 일체 만법에 무애자재 하여도 잠들어 캄캄하면 어떻게 생사를 해결할 수가 있느냐! 불법이란 근본적으로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 생사해탈을 얻는 것이 근본이야. 잠들면 캄캄한데 내생은 어떻게 하겠어.”
그러면서 담당 스님은 대혜 스님을 내쫓았습니다. 대혜 스님의 근본 병통病痛을 찔렀던 것입니다.
또 옛날에 경순景淳 선사(주6)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자신의 법이 수승한 듯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잘못하여 넘어져 중풍에 걸렸는데, 그러더니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 법문했던 것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그만 캄캄한 벙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법을 아는 체했지만 실지로 바로 깨치지 못했기에 한 번 넘어지면서 모든 것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 도솔혜조兜率惠照 선사라는 이가 행각行脚을 다니다 이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한탄했습니다.
“한 번 넘어져도 저렇게 되는데 하물며 내생來生이야!
偶一失跌尙如此, 况隔陰耶!”
이 생사 문제는 영겁불매가 되어 억천만겁이 지나도록 절대 불변하여 매昧하지 않아야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넘어져도 캄캄하니 몸을 바꾸면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 것 같았던 대혜 스님도 문준 선사가 그렇듯 자기의 병통을 콱 찌르니 항복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정진하고 있었는데 담당문준 선사가 시름시름 병을 앓더니 곧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경사京師의 원오극근 선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유언을 따라 그는 원오극근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 무슨 말을 걸어 보려고 하나 원오 스님은 절벽 같고, 자기 공부는 거미줄 정도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원오극근 선사가 자기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기색이면 그를 땅 속에 파묻어 버리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찾아갔는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하, 내가 천하가 넓고 큰 사람 있는 줄 몰랐구나!’라고 크게 참회하고 원오선사에게 여쭈었습니다.
“스님, 제가 공연히 병을 가지고 공부인 줄 잘못 알고 우쭐했는데, 담당문준 선사의 법문을 듣고 그 후로 공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잠들면 공부가 안 되니 어찌 해야 됩니까?”
“이놈아, 쓸데없는 망상 하지 말고 공부 부지런히 해. 그 많은 망상 전체가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때 비로소 공부에 가까이 갈지 몰라.”
이렇게 꾸중 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원오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확철廓徹하게 깨달았습니다. 기록에 보면 ‘신오神悟’라 하였는데, 신비롭게 깨쳤다는 말입니다. 그때 보니 오매일여입니다. 비로소 꿈에도 경계가 일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원오스님에게 갔습니다. 원오 스님은 말조차 들어보지 않고 쫓아냈습니다. 말을 하려고만 하면, “아니야, 아니야[不是, 不是].”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러다가 원오 스님은 대혜 스님에게 ‘유구와 무구가 등칡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다[有句無句, 如藤倚樹]’는 화두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대혜 스님은 자기가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 것 같아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원오 스님은 거듭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놈아,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야. 공부 더 부지런히 해!”
대혜 스님이 그 말을 믿고 불석신명不惜身命하여, 곧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더욱 부지런히 공부하여 드디어 깨쳤습니다. 이렇듯 대혜 스님은 원오 스님에게 와서야 잠들어도 공부가 되는 데까지 성취했습니다. 이렇게 확철히 깨쳐 마침내 원오 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임제의 바른 맥[臨濟正宗]을 바로 깨쳤다고 하여 원오스님이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를 지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대혜 스님은 임제정맥의 대법왕으로서 천하의 납자衲子들을 지도하고 천하 대중의 대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대혜 스님 어록에 남아 있습니다. 잠이 깊이 들어서도 일여한 경계에서 원오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애석하다! 죽기는 죽었는데 살아나지 못했구나.
可惜! 死了不得活.”
일체망상이 다 끊어지고 잠이 들어도 공부가 여여한 그때는 완전히 죽은 때입니다. 죽기는 죽었는데 거기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살아나느냐?
“화두를 참구 안 하는 이것이 큰 병이다. 不疑言句, 是爲大病.”
공부란 것이 잠이 깊이 들어서 일여한 거기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참으로 크게 살아나야만 그것이 바로 깨친 것이고 화두를 바로 안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마음의 눈을 바로 뜬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 깨치려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항상 이 오매일여를 주장한다고 오매일여병에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오매일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법佛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선禪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 오매일여는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매일여를 반대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과 같은 대大 근기根機도 오매일여가 되기 전에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를 말씀했으니 안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부처님 말씀이 거짓말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다가 자기가 완전히 오매일여가 되고 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대혜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라 하신 말씀이 참말이요, 실제로구나.
佛說寤寐一如, 是眞言是實言.”
3. 태고 선사
지금까지 중국 스님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나라 선문에 태고太古 스님이 계십니다. 태고 스님은 공부한 지 20여 년 만인 나이 마흔에 오매일여가 되고 그 뒤 확철히 깨쳤습니다. 깨치고 보니 당시 고려의 큰스님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인가해 줄 스님도 없고, 자기 공부를 알 스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 임제정맥을 이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스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점점 오매일여한 때에 이르렀어도 漸到寤寐一如時
다만 화두 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음이 중요하다. 只要話頭心不離.”(주7)
이 한 마디에 스님의 공부가 다 들어 있습니다. 공부를 하여 오매일여한 경계, 잠이 아무리 들어도 일여한 8지 이상의 보살 경계, 거기에서도 화두를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몽중일여도 안 된 거기에서 화두를 다 알았다고 하고 내 말 한번 들어 보라 하는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면 이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이 병은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고치려 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좋은 약을 가지고 와, “이 약만 먹으면 산다.”며 아무리 먹어라 해도 안 먹고 죽는다면, 억지로 먹여 살려낼 재주 없습니다. 배가 고파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만반진수滿盤珍羞를 차려 놓고 “이것만 잡수시면 삽니다.”고 말해도 안 먹고 죽으니, 부처님도 어찌 해볼 재주가 없습니다. 아난이 부처님을 30여 년이나 모셨지만 아난이 자기 공부 안 하는 것은 부처님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내가 항상 말하는 것입니다만 누구든지 아무리 크게 깨치고 아무리 도를 성취했다고 해도 그 깨친 경계가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하여야만 실제로 바로 깨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정일여도 안 되고, 몽중일여도 안 된 그런 깨침은 깨친 것도 아니고 실제 생사에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참선은 실제로 참선해야 하고 깨침은 실제로 깨쳐야 합니다. 그래야 생사에 자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생각으로만 깨쳤다고 하는 것은 생사에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깨침이 아니라 불교의 병이요, 외도外道입니다. 참선의 근본 요령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공부는 실제로 오매일여가 되어 영겁불망이 되도록 목숨을 던져 놓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목숨도 돌보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스님, 저는 화두를 배운 지 십 년이 지났습니다만 공부가 안 됩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해도 안 된다는 것은 결국 공부를 안 했다는 말입니다. 마치 서울에 꼭 가고 싶으면 자꾸 걸어가야 끝내는 서울에 도착하게 되듯이, 십 년 이십 년을 걸어가도 서울이 안 보인다는 말은 서울로 안 가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4. 불등수순 선사(주8)
불등수순佛燈守詢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조법연 선사의 손제자孫弟子되는 분으로, 대혜 선사와는 사촌 간이었습니다. 불감혜근佛鑑慧懃 선사 밑에서 약 삼 년 동안 공부하였는데 불감혜근 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 이 스님이 근기는 괜찮은데 게을러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불감혜근 스님이 한번은 불등수순 스님을 조용히 불러 “네가 내 밑에서 얼마나 있었느냐?”라고 물으니, “삼 년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삼 년 동안 공부한 것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불등수순 스님은 큰 일 났습니다. 삼 년 동안 밥이나 얻어먹고 낮잠이나 자고 공부는 안 했으니 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불감혜근 스님께서 공부에 대해 한마디 물어보았으나 도무지 캄캄하여 대답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불감혜근 스님은 “이 도둑놈, 밥 도둑놈아. 삼 년 동안 내 밥만 축냈구나. 삼 년을 공부했다면 어찌 이것을 대답 못 해? 밥만 축낸 밥 도둑놈, 이런 놈은 하루 만 명을 때려 죽여도 인과도 없어.” 하고는 마구 패는 것이었습니다.
불등수순 선사는 가만있다가는 그냥 맞아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안 맞아 죽으려고 도망을 쳤습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도망가다가 처마 밑에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코도 입도 몸뚱이도 불감혜근 선사와 똑같은데 왜 저 스님은 두들겨 패고, 나는 맞아야 하는가? 어째서 저 스님은 도를 성취했는데 나는 이루지 못하는가?’
이렇게 반성하며 다시 절로 들어가서는 자신이 스님에게 한마디 대답도 못 하고 밥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쫓겨났으니, 바로 깨치게 될 때까지는 언제까지라도 자지 않고 눕지도 않고 오직 서서만 지내겠다고 대중에게 선언했습니다. 정진은 계속되었습니다. 밤이 되었는지 낮이 되었는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잊은 채 계속 정진하였습니다. 불감혜근 스님이 이를 보고는 용맹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불등수순 스님은 화두 하나만 갖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루는 불감혜근 스님이 그를 불렀습니다. 불등수순 스님은 겁은 났지만 부르는데 안 갈 수가 없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스님 앞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불감혜근 스님이 무슨 법문을 해주시는데, 그 법문을 듣는 순간 불등수순 스님은 그만 확철히 깨쳤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정진을 시작해 도를 성취하기까지의 기간을 헤아려 보니 사십구 일 동안이었습니다. 사십구 일 동안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입는 것,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서서 공부만 했던 것입니다. 불등수순 스님은 실제로 용맹정진을 했고, 그리하여 깨쳐서 인가를 받은 것입니다.
불감혜근 스님의 사형되는 분에 원오극근 선사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는 찾아왔습니다. “그까짓 며칠 동안 공부한 것 가지고 뭘 안다고 인가를 해줘. 사람을 죽여도 푼수가 있지. 내가 봐야겠으니 그놈 오라고 해.” 이렇게 불등수순 스님을 불러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산모퉁이를 도니 절벽이 나오는데, 절벽 밑에는 폭포가 있고 폭포 밑에는 깊은 소沼가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는데 원오 스님이 그를 절벽 밑의 폭포 속으로 확 밀어 넣더니 공부한 것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물길이 깊어 발이 땅에 닿지도 않고, 입으로 코로 마구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데다가 폭포소리가 요란하여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정신을 잃게 해 놓고는 법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등수순 스님은 마치 방안에 앉아 대답하듯 묻는 말에 척척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을 본 원오 스님은 “그놈 죽이기는 아깝구나. 끄집어 내줘라.”고 말했습니다.
주)
주1) 『원오불과선사어록』 권제11 등 여러 곳에 나온다. 각주는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가 붙인 것이다. 이하동일.
주2) 『사가어록』 권제1 「마조도일선사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주3) 『원오불과선사어록』 권제25 등 여러 곳에 나온다.
주4) 소동파와 오조계 선사의 이야기는 혜홍이 편찬한 『선림승보전』 권제29 「운거불인원雲居佛印元 선사禪師」조에 있다.
주5) 도겸道謙이 편찬한 『대혜보각선사종문무고大慧普覺禪師宗門武庫』 상권의 77번째 이야기가 담당문준과 대혜종고의 탁마 일화이며, 원오극근과 대혜종고의 일화는 『대혜보각선사연보大慧普覺禪師年譜』 「1125년 선화7년 을사」조에 실려 있다.
주6) 경순 선사와 도솔혜조 선사의 일화는 도겸道謙이 편찬한 『대혜보각선사종문무고大慧普覺禪師宗門武庫』 상권의 6번째 이야기이다.
주7) 『조선불교통사』 중편中篇 「태고어록 - 시소선인示紹禪人」조에 있는 구절이다.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상·중편), 서울:경희출판사, 1968, p.232; 『태고록』(선림고경총서 21), 합천:장경각, 1991, p.84.
주8) 불등수순 스님의 일화는 『고애만록枯崖漫錄』 권하 「동산도원東山道源 선사禪師」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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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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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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