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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산책]
한가로이 석벽에 시 한 수를 적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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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8 년 6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7-14 17:34  /   조회12,18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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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동국대 역경원 역경위원) 

 

가야산 해인사로 가는 산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한참을 올라가면 백련암이 나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주문을 지나 정념당(正念堂) 지하 계단을 오르면 백련암의 전각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누구 보다도 먼저 마당 가장자리에 언제나 그렇게 우뚝 서 있는 불면석이 수인사를 하고, 단아한 듯하면서도 지혜의 보검을 옆으로 비껴 뽑아든 것 같은 기상을 뿜어내는 원통전의 관세음보살님의 미소가 문 사이로 환하게 퍼져 나온다.

 

 

인파스님의 임종게가 주련으로 걸려 있는 원통전. 1년에 네 번하는 아비라기도 때 처사님들의 기도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원통전에는 한 시절을 이곳에 주석했던 인파(仁坡: ?~1846)스님의 임종게가 주련으로 걸려 있다.

 

橫抽寶劍按靈臺 (횡추보검안영대)

殺活奇權手端開 (살활기권수단개)

龍將雲雨飛神變 (용장운우비신변)

風得虛空任往來 (풍득허공임왕래)

 

보검을 비껴 뽑아 영대를 어루만지니

살활자재 선방편(善方便)이 손 끝에서 전개된다.

용은 구름과 비로 신통변화 일으키고

바람은 허공 얻어 마음대로 오고가네.

 

백낙천(白樂天)의 후신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시재(詩才)를 지녔던 인파 스님의 게송은 자유자재하면서도 활기에 넘친다. 영대(靈臺)는 우리의 마음을 가리킨다. 보검은 지혜의 상징이다. 근본 마음자리[實相般若]에서 지혜를 발휘하여 관조하니[觀照般若], 바로 이 자리, 마음과 지혜가 둘이 아닌 자리에서 자유자재한 방편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方便般若]. 마음과 지혜는 둘이 아니고 마음과 지혜와 방편은 또한 셋이 아니다. 이 자유자재한 경지를 용과 바람을 빌려 비유하고 있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從龍風從虎].”는 말이 있는데, 참배를 마치고 원통전 앞에 서 있노라면 저 앞산 머리에서 불어오는 바람 따라 구름과 비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용의 힘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발걸음을 옮겨 고심원(古心院)을 참배하고, 큰스님이 머무셨던 염화실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적광전(寂光殿) 앞에 선다. 측면 주련에 살활자재하는 기상을 호방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 낸 시구가 걸려있다. 

 

一拳拳倒黃鶴樓

一踏踏翻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한 주먹질에 황학루를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리고

한 발길질에 앵무주를 밟아서 뒤엎으며

의기(意氣)가 솟구칠 땐 의기를 더해주고

풍류가 없는 곳에는 풍류를 넘치게 한다네.

 

이것은 소동파와도 깊은 교유를 가졌던 북송 때의 소산 광인(疏山光仁)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법신의 향상사는 어떤것입니까[如何是法身向上事]” 하고 물었을 때 대답한 선구이다.

황학루를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리고 앵무주를 발로 밟아서 뒤집어 엎는 것은 살활자재하는 방편 중에서 살(殺 : 雙遮)에 해당하고, 의기를 솟게 하고 풍류가 넘치게 하는 것은 활(活 : 雙照)에 해당한다. 이 살활의 방편은 살 따로 활 따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살과 활이 동시에 행해지는 것이다[殺活同時]. 전체를 부정하고 부정하는 그 찰나에 다시 전체를 긍정하는 대자재가 한 순간에 동시에 펼쳐지는 것이다[雙遮雙照 遮照同時].

 

이태백은 그의 시(時)에서 “나는 그대를 위해서 황학루를 망치로 쳐서 부수어 줄테니(我且爲君槌碎黃鶴樓), 그대도 나를 위해서 앵무주를 밟아서 뒤엎어 주제나(君亦爲吾倒却鸚鵡洲)”하고 노래하였다. 호방표일 하면서 선미(禪味)가 넘쳐흐르는 시이다. 스즈끼 다이세쯔(鈴木大拙)선사도 적광전에 걸려 있는 바로 이 선시를 애송하였는데, 당호(堂號)를 이 시 구절에 있는 내용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중국 선사가 지은 시구가 한국의 절 주련으로 걸려 있고, 이 시를 일본의 선사도 애송하였으니 시대와 국적은 다르지만 불심(佛心)은 다를 바 없음을 여기에서도 보게 된다.

 

서로 화답이나 하는 듯이 원통전과 적광전에 걸려 있는 주련은 말 없이 고요하지만[寂光] 의미는 서로 원만하게 통하고 있는 것이다[圓通]. 적광전과 원통전이 서 있는 뜨락을 오락가락 마음대로 거닐다가 불면석 앞에 이르렀을 때쯤 노스님께서 나직하게 읊조렸을 법한 한산시 한 수를 읽어 본다.

 

一住寒山萬事休

更無雜念掛心頭

閒於石壁題詩句

任運還同不繫舟

 

한산에 한 번 머물러 모든 일을 쉬어서 

다시는 잡념을 마음 속에 걸어두지 않았네.

한가로이 석벽에 시 한 구를 적으니

마음대로 오고감이 불계주와 같도다.

 

불계주(不繫舟), 어디에도 묶여 있지 않은 배이다. 본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우리 마음을 가리키는 말일 터이다.

이 일 아니면 저 일에 묶여서 온갖 잡사에 얽매이고, 얽매이지 말라는 말귀에까지 잔뜩 얽매여 사는 중생의 입장에서 ‘얽매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무슨 잠꼬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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