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산승이 달빛을 탐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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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 1997 년 6 월 [통권 제6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9,234회 / 댓글0건본문
이규보(1168-1241)는 고려 사대부 계층을 대표하는 문신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교의 교리를,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진리를 응용하였다. 이규보는 이러한 부류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의 호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하였으며, 수많은 승려와의 교유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의 시 중에서 불교적인 정신세계를 탐색하는 색채가 강렬한 시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詠幷中月
山僧貪月色 산승이 달빛을 탐내어
幷汲一甁中 한 병에 함께 길었네.
到寺方應覺 절에 닿으면 곧 알리라
甁傾月亦空 병을 기울이면 아무 것도 없으리란 것을.
산승은 산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한가로움을 몸소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 한가로운 마음이 어느 한 순간 잠시 우물 속의 달을 보면서 색을 구분하는 분별심이 머리를 내밀었다. 달은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이며, 달빛은 변화되는 존재를 말한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산승이 바라본 달은 본체요 동시에 본성의 자리이다. 반면에 우물의 달빛은 그것의 가시적인 존재에 해당한다. 그 본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인 달빛을 탐하여 그것을 병에다 담아오는 스님이 있다.
그 병 속에 달빛이 없다는 것을 절에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절은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는 공간적인 의미이며, 절까지 오는 오솔길은 수도하는 시간을 양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병을 기울여 보니 달빛이 없는 즉 본성 또한 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바로 달은 텅 비고, 달빛은 형상이 없고, 병 속의 달빛이 지음이 없다는 것이며, 이것은 마음과 뜻과 식(識)의 세 해탈문을 말한 것이다. 이때 둘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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