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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과학으로 보는 중중무진법계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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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1997 년 3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7,57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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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와 새책을 소개합니다 / 과학으로 보는 중중무진법계연기 

양형진(고려대 물리학과 부교수/물리학 이론 전공)

 

양형진 님은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인디아나대학에서 「니켈-인 비정질 합금의 전자적 성질에 관한 계산」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도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설 성철선사상연구원 학술연구비 지원에서 저서 부분에 <과학으로 보는 중중무진법계연기> 연구기획서가 선정되어 현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는 10월 큰스님 4주기를 즈음하여 출간될 예정이며, 그에 앞서 책의 특성과 연구 방향 등을 미리 저자에게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 편집부

 

오늘날 물리학을 비롯한 현대의 제과학은 자연현상을 상당히 신뢰할 만하게 설명하고 있다. 자연과학이 자기 외부를 그 탐구대상으로 삼았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에게서 시작된 불교는 우리들 자신의 내부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다루면서 마침내 그 모든 외적 조건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현대과학과 불교라는 두 가지 정신활동은 다루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적으로는 2500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 가지의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험과 관찰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과학의 세계 이해가 오직 명상만으로 이룩해 낸 불교적 세계관에 접근해 가고 있다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경험을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와서 하게 되었다.

 

 


 

 

서구의 환원주의적 세계관은 세계를 부분에 대한 분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에 근거하여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세계에 대한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깊어감에 따라 전체계는 부분의 단순한 합으로 구성될 수 없으며, 그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의 과학이 세계의 총체성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단계까지 성숙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는 과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일체의 사물이 서로의 연관성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곧 자연과학에 의한 세계 이해가 불교에서의 연기론(緣起論)에 기초한 세계관에 다다르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세계의 총체성을 일단 지각하고 나면 굳이 난해한 현대과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올바른 세계 이해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언뜻 보기에는 법계의 사물이 제각기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도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오로지 서로의 인연에 의하여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천정에 달려 있는 전등을 살펴보자. 중력이 전등을 끌어내리고 있음에도 전등의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천정이 전등을 들어 올려주기 때문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면 천정이 전등을 위로 당기는 만큼 전등도 천정을 끌어내리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정이 내려앉지 않는 것은 기둥과 벽이 천정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기둥과 벽이 천정을 받쳐주는 만큼 천정은 기둥과 벽을 내리누르지만 기둥과 벽은 집의 기초가 받쳐주며, 이 기초는 지반이 받쳐주고, 지반은 다시 지구 전체와 연관되며, 지구는 다시……. 이와 같은 연관의 고리는 우주 전체가 드러날 때까지 계속된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전등이 천정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이 매우 간단하게 보이는 사건도 무한한 연관의 상호교섭에 의하여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사건에 전 우주가 동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상즉상입의 구조는, 우리가 자연현상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어디에서도 드러나게 된다.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존재하며,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존재한다. 저것을 있게 하는 이것이요, 이것을 있게 하는 저것이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이란 전우주를 포괄하는 공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생성과 소멸을 포함하여 변화의 과정이라는 시간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는 전체와 연관되고 순간은 영원과 관통하게 된다.

 

<과학으로 보는 중중무진법계연기>는 자연세계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사물의 상호 연관성이 어떤 것인지를 밝힘으로써 그것이 불교에서의 연기론적 세계관을 어떻게 예증하여 주는지를 보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지고 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우선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론의 대의를 살펴본 다음, 내 마음에 그려지는 객관의 세계라는 것이 어떠한 성질을 가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내 마음에 그려지는 세계상이란 객관세계에 의하여 일의적이고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의 어우러지는 인연에 의하여 성립된다는 것을 우선 밝히고자 한다. 이는 결국 오온에 관한 문제가 되며, 따라서 이에 관한 고찰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는 결론으로 귀착하게 될 것이다.

 

오온개공을 밝힌 다음 이러한 오온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는 생명체를 포함하여 생명 전반의 연기성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생명계의 연기성에 대한 고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현대생물학에서의 성과가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생명 현상의 특징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생명의 특성에 비추어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연기성이 탐구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명의 특성이란 우리가 보는 생명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어서 사실은 지구 전체를 커다란 생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 비판적으로 검토될 것이다. 또한 다아윈 이후 생물학의 기본이론이 되고 있는 진화론을 현대의 분자생물학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이러한 이론이 생명현상에서의 중도실상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진화론은 우리 마음의 심층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하여 부분적으로나마 해명해 주리라고 기대된다. 따라서 진화론의 관점에서 유식학을 조명하면서 이러한 논의가 어떻게 중중무진법계연기의 실상인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끝으로 물질에 대한 상호 연관성에 대하여 탐구하고자 한다. 현대의 천문학이 제시하는 우주론이나 현대물리학이 제시하는 소립자의 세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여 가면서 삼천대천세계이든 미진세계이든 상관없이 중중무진한 법계연기가 그 안에서 성립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또한 최근에 확증된 EPR실험이 어떻게 사사무애한 법계의 모습과 연관되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그리고 끝으로 시공간에 대한 현대물리학의 이해가 어떻게 극적으로 일체 법계의 무한한 연기성을 설명하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이러한 모든 논의에 의하여 연기, 공성, 무아, 무상의 의미를 해명하고자 하며, 이 모든 것이 중도를 기반으로 하는 화엄사상에 의하여 원만하게 조명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과학과 불교를 연관시키고자 하는 이러한 논의의 목표는 우주 법계의 어느 곳을 살펴보아도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연기법에 어긋나는 곳이 하나도 없음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로서의 법과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로서의 법이 둘이 아님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를 포함하여 우주 법계 전체가 어느 하나의 예외도 없이 부처님의 음성이요 부처님의 모습이어서 일체 법계 그대로가 부처님의 몸임을 보이려는 것이 그 궁극의 목표라 하겠다.

 

성철스님의 큰 법력으로 우둔한 필자도 불교의 대의를 조금은 맛볼 수 있었다.이 책을 쓸 수 있게 한 고마운 인연에 깊이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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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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