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불교의 성, 인간의 성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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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4 년 6 월 [통권 제134호] / / 작성일24-06-05 10:57 / 조회1,258회 / 댓글0건본문
출가자 중심의 종교인 붓다의 가르침은 성과 출산을 전제하는 세속의 삶보다 금욕에 바탕을 둔 범행梵行의 삶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해 왔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붓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비구들아! 두 종류의 행복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속가의 삶이 주는 행복과 출가의 삶이 주는 행복이 그것이다. 두 가지 중에서 출가의 삶이 주는 행복이 월등하게 더 낫다.”(주1)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율장』 등에서 비구와 비구니의 성 윤리에 관한 규정들은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이었으나 재가자의 성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재가자의 성
반면, 피터 하비(2000)는 불교가 종교의 특성상 “독신의 사원 생활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보여왔지만, 독신자의 삶에 헌신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결혼과 가정생활이 적합하며, 그것은 또한 수많은 가치 있는 성질들이 길러지는 영역”(주2)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재가자의 성 윤리에 대한 경전의 관심은 출가자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전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재가자의 성 윤리와 관련된 구체적 행동에 대해서는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의 「업품業品」을 참고할 만하다.
만약 (올바른) 때와 (올바른) 장소가 아닌 곳에서 여자가 아니거나 처녀 혹은 남의 아내를 자기에게 속하게(성관계를) 한다면 이를 사음이라고 한다. (중략) 만약 축생이나 계를 파한 자나 승僧에 속하거나 옥에 갇혔거나 도망하는 자이거나 스승의 부인이거나 출가한 사람이거나 간에 이와 같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 사음을 범했다고 한다. (중략)
만약 혼자나 다른 사람과 함께 길옆이나 탑 옆이나 사당 옆에나 대중이 모이는 곳에서 범행이 아닌 짓을 하면 사음죄를 얻는다. 만약 부모, 형제, 국왕이 지키고 보호하거나 혹은 먼저 남과 더불어 약속을 했거나 먼저 남에게 허락했거나 먼저 재물을 받았거나 먼저 부탁을 받았거나 나무와 진흙으로 만든 형상 및 죽은 시체로서 이러한 사람들의 옆에서 범행이 아닌 짓을 하면 사음죄를 얻는다. 만약 자신에게 속한 것(아내)을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남의 아내)을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역시 사음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음에도 역시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있으니 무거운 번뇌를 따라 중죄를 얻고, 가벼운 번뇌를 따라 가벼운 죄를 얻는다.(주3)
여기서 보듯이 불교에서는 동성애, 혼외정사, 불륜, 수간獸姦, 공연음란, 미성년자 간음, 자위, 시간屍姦, 스와핑 등이 성적 접촉의 금지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는 불사음계의 위반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성적 비행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취지는 불교의 윤리적 가치실현과 함께 사회적 질서의 확립을 돕기 위한 것이지만 현대인들도 여전히 새겨들을 부분이 적지 않다.(주4)
이처럼 재가자의 성과 관련된 언급은 지극히 상식적이어서 별도의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대중적인 의미에서 일상의 관습이나 도덕을 존중하고 그것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편적인 수준의 성을 제안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불교도 성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되었다. 동시에 비혼주의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출가 수행자의 독신생활이 언제까지나 도덕적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불교와 성의 관계: 사구분별四句分別의 적용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는 2,500여 년 동안 많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접촉, 경험, 수용하는 가운데 전개, 변화,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성’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정리하면 불교는 성을 반드시 ‘부정적(negative)’으로만 보지는 않았던 종교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청정 독신 수행을 표방하는 불교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불교의 ‘성’도 과거의 가치에만 머물 수 없으며, 현재와 미래의 ‘성’으로도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서구의 일부 국가들에서 불자 동성애 단체들이 많이 결성되고 있는 현상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성은 역사적으로 인간이 겪은 정치·사회·문화적 경험의 종합산물이다. 불교의 성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하며, 자연스럽게 풍부한 콘텐츠를 포함한다. 그런 만큼 이 문제를 다룰 때는 열린 관점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최근에는 불교와 성의 관계를 ‘사구분별四句分別(catuṣkoti)’의 형식을 빌려 분석하고 있는 흥미로운 논문도 나왔다.(주5)
그리스어 ‘tetralemma’로 번역되는 사구분별은 네 가지 논리적 가능성, 즉 “~이다[有]; ~아니다[無]; ~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亦有亦無]; ~이지도 않고~아니지도 않다[非有非無]”라는 논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위대한 불교 철학자인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가 즐겨 사용했던 논증 방식이기도 하다. 저자인 란젠버그Langenberg에 따르면 불교와 성의 관계는 이 네 가지 범주 모두에 해당할 만큼 실로 다양한 역사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비유하자면 ‘불교’는 완전히 정착한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 장소, 시간, 경전, 언어,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공유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형성, 변화, 발전해 온 살아있는 사물인 것이다.(주6) 불교의 ‘성’도 그런 과정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실로 다양한 빛깔과 향기를 품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불교의 성은 부정적이기도 했고; 긍정적이기도 했으며;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했으며; 부정적이지도 않고 긍정적이지 않기도 했다.(주7) 따라서 불교와 성의 관계는 위의 네 가지 측면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우리가 불교의 성적 입장을 두고 섣부른 성격 규정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불교의 성과 인간의 성: 삶의 목적은 수행인가, 행복인가
오늘날의 성은 이전처럼 엄격한 계율이나 도덕의 영역이 아니라 점차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권리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자신의 개인적 행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주의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만큼 불교에서도 성의 욕망을 깨달음의 방해물이 아니라 행복의 동반자로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교학적 근거를 마련할 때가 되었다. 이는 출, 재가자의 성 윤리가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웃 종교 기관인 교회와 성당에서는 성과 결혼에 대한 담론이 일상적이지만, 사찰에서는 감히 그런 프로그램을 준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산사 음악회는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빼앗아 가 버린다는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붓다는 깨달음의 길에 가장 큰 장애가 성적 욕망이라고 가르쳤다. 그만큼 성은 무섭고 위험한 본능인가 하면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교의 성이 ‘종교적 수행의 영역’으로만 제한되는 것도 ‘개인적 행복의 영역’으로만 치부되는 것도 모두 경계해야 할 세상에 살고 있다. 성이 금지되는 독신 출가자가 있는가 하면 성이 허용되는 미, 기혼 재가자도 있다. 더욱이 동성애와 제3의 성도 인권의 관점에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날이 갈수록 무성애자의 숫자도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아예 성 자체에 관심이 없다. 문제는 그들도 사부대중의 일원으로 동등하게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불교가 성을 수행의 걸림돌로만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21세기의 미래지향적 종교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성을 ‘수행’의 영역으로 보고 통제하는 승가와 성을 ‘행복’의 영역으로 보고 향유하는 재가의 솔직한 대화가 요청된다. 성은 막기만 해서도 안 되고 마냥 풀기만 해서도 안 되는 영원한 도덕적 딜레마다. 그런 만큼 승가와 재가는 서로의 일상적 삶을 존중하면서도 상대방의 성적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성은 출, 재가자를 막론하고, ‘수행이나 도덕’의 영역에서 점차 ‘행복과 권리’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출가자가 율장의 ‘지배’를 받는다면, 재가자는 오계의 ‘관리’를 받는다. 지배와 관리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성은 출, 재가자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평생의 도덕적 화두가 되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자연적 존재인 인간으로선 출가자는 출가자대로, 재가자는 재가자대로, 나름의 타고난 본능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의 문제에 있어서 과연 얼마나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각자의 준비된 답변이 있지 않을까 싶다. 판단은 오롯이 불제자인 그 또는 그녀의 몫으로 남는다.
<각주>
(주1) Paul David Numrich(2009), “The Problem with Sex According to Buddhism”, Dialog: a Journal of Theology (vol. 48, no. 1), 68에서 재인용.
(주2) Peter Harvey(2000), An Introduction to Buddhist Ethics-Foundations, Values and Issues(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03; 허남결(2014), 『불교윤리학 입문-토대, 가치와 쟁점』 (서울:씨아이알), 200-201.
(주3) 『大正新修大藏經』, Vol. 24, No. 1488. 「優婆塞戒經」, “若於非時非處非女處女他婦. 若屬自身是名邪婬.(中略) 若畜生若破壞. 若屬僧若繫獄. 若亡逃若師婦. 若出家人近如是人. 名爲邪婬.(中略) 若自若他. 在於道邊塔邊祠邊大會之處. 作非梵行得邪婬罪. 若爲父母兄弟國王之所守護.或先與他期. 或先許他. 或先受財.或先受請. 木埿畫像及以死尸. 如是人邊作非梵行. 得邪婬罪. 若屬自身而作他想. 屬他之人而作自想. 亦名邪婬. 如是邪婬亦有輕重. 從重煩惱則得重罪.從輕煩惱則得輕罪”.
(주4) Damien Keown(2005), Buddhist Ethics: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60; 허남결(2007), 『불교 응용 윤리학 입문』(서울: 한국불교연구원), 90.
(주5) Amy Paris Langenberg(2015), “Sex and Sexuality in Buddhism: A Tetralemma”, Religion Compass 9/9. 276-286.
(주6) Langenberg(2015), 285.
(주7) 허남결, 「불교와 성:수행의 영역인가, 행복의 영역인가」, 『종학연구』 7집(동국대학교 종학연구소, 2022), 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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