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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바른 믿음과 두 가지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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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0 년 5 월 [통권 제85호]  /     /  작성일20-06-01 16:51  /   조회17,40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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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거예요.” 어릴 때 부르던 동요의 한 소절이다. 그때는 무심코 따라 불렀지만 다시 음미해 보니 마음에 빛깔이 있다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우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하얗다거나 까맣다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알다시피 하얀 것은 착한 마음을, 검은 것은 악한 마음을 의미한다.

 


하얀 마음 검은 마음

송나라 때 승려 종방從芳은 『백법론현유초百法論顯幽鈔』에서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의 마음은 하얗고(饒益人是白心), 이익이 주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검다(不饒益人是黑心)라고 했다. 이번 호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의 색깔에 대한 것이다.

 

 지난 호에서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를 컴퓨터의 작동원리에 견주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컴퓨터와 마음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계와 달리 사람의 마음에는 노랫말과 같이 색깔이 있다. 컴퓨터의 작동은 선악의 의도가 없기에 희지도 검지도 않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의도에 따라 희거나 검은 색깔을 띤다. 어떤 때는 따뜻한 선의가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때는 찬바람이 쌩하게 불거나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에 하얀 색으로 표현되는 선한 작용과 검은 색으로 표현되는 악한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식학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볼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법상유식에서는 인간의 마음작용에 대해 51가지 심소로 구분했다. 그 중에서 5가지 변행심소遍行心所와 5가지 별경심소別境心所는 이미 살펴보았다. 변행심소가 항상 작동하는 운영체제와 같은 것이라면 별경심소는 각각의 대상에 따라 작동하는 응용프로그램 같은 것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변행심소와 별경심소는 모두 마음의 작동원리에 대한 설명이다. 반면 이번에 살펴볼 선심소와 번뇌심소는 하얀 마음과 검은 마음처럼 마음의 색깔, 즉 선악이라는 특성에 대한 것이다. 

 

법상유식에서 말하는 선심소善心所는 말 그대로 착한 마음작용을 말한다. 색깔로 비유하자면 하얀 마음이다. 물론 선심소에 대응하는 번뇌심소도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선심소는 11가지인데 반해 번뇌를 일으키는 번뇌심소는 두 배가 넘은 26가지나 된다. 이는 인간의 마음은 선한 마음보다 번뇌를 일으키는 부정적 심리요소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뇌심소가 선심소 보다 많기 때문에 이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번뇌에 이끌려 악업을 짓고 무명의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11가지 선심소와 믿음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따르면 11가지 선심소는 “신信·참慙·괴愧와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 근勤·안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 그리고 불해不害”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나열하는 11가지 착한 심소는 따뜻한 마음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과 같은 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식에서 선심소는 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한 자기성찰 그리고 성실한 수행과 타인에 대한 자비 등 수행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마음을 말한다. 

 

11가지 선심소 중에 첫째는 믿음(信)이다. 수많은 마음작용 중에 착한 심리작용의 첫째로 믿음을 꼽고 있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대목이다. 믿음이란 심오한 불법의 진리를 이해하고, 그런 진리에 입각해 바르게 살아가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바른 믿음을 가져야 올바른 삶과 수행에 대한 의욕을 일으킬 수 있고, 그로부터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지혜를 얻는 과정에서 믿음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화엄경』에서도 “믿음은 도의 으뜸이며 공덕의 어머니(信爲道源功德母)”라고 했다. 종교적 이해와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바른 믿음이다. 바른 믿음이 있어야 종교적 실천을 하게 됨으로 믿음은 도행의 근본이 된다. 모든 공덕은 그와 같은 도행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믿음은 또 공덕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대지도론』에서도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써 들어가고 지혜로써 건너간다(佛法大海 信爲能入 智爲能度)”라고 했다. 불법이라는 진리의 바다로 들어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바른 믿음이 있어야 진리의 바다로 들어가게 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실천이 있어야 지혜의 배를 탈 수 있고, 지혜의 배를 타야 고해의 바다를 건너 피안으로 가게 된다. 이처럼 바른 믿음에 의해 바른 가치관이 확립되고, 그것에 의해 바른 업業을 짓게 되고, 그로부터 지혜가 성취된다. 그래서 믿음은 11가지 선심소 중에 하얀 마음을 대표하는 첫 번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부끄러움

선심소의 둘째와 셋째는 참慚과 괴愧인데, 이 두 심소를 합쳐 참괴심慚愧心이라고 한다. 여기서 참은 자참自慚의 뜻으로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라는 시인처럼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아서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마음이 참이다. 반면 괴는 참타愧他의 의미로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참이 자기 양심과 결부된 것으로 자신의 내면적 문제라면 괴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대한 타인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성철 스님은 이 두 심소에 대해 “참은 남이 있든 없든, 남이 알든 모르든 내가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 ‘군자는 혼자 있을 때도 삼가 해야 한다’는 논어의 가르침과도 통하는 내용이다. 반면 “괴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보고 내가 이런 허물을 지었으니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이 스스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능能의 측면이라면 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끄러움을 알게 되는 소所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부끄러움에 대한 내용은 『잡아함경』 47권에 실린 「이정법경二淨法經」에도 나오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두 가지 깨끗한 법[二淨法]’이 있어 세상이 보호된다고 하셨다. 그 두 가지란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慚]’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愧]’이다. 만약 세상에 이 두 가지 깨끗한 법이 없다면 세상은 부모·형제·자매·처자·종친·사장師長·존비尊卑에 차례[序]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짐승[畜生]과 다름없게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남이 자신의 허물을 볼까 부끄러워하는 마음 때문에 윤리도덕이 서고, 세상이 지탱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자, 세상을 지탱하는 도덕과 윤리의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맹자 또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仰不愧於天), 사람들을 굽어보아 부끄럽지 않는 것(俯不怍於人)”을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중에 하나로 꼽았다. 이 역시 스스로 당당한 자기 내면의 양심과 타인에게 부끄럽지 않는 행위야말로 군자의 조건임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참괴심을 선심소로 꼽는 이유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륜과 도덕이 바로 서지 못하고, 사람 세상이 짐승들과 다름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세상에 만일 부끄러워하는 법이 없었다면 청정한 도를 어기고 뛰어넘어서 생·노·병·사를 향해 달려가리라.”라고 하셨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세상의 질서와 윤리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악행을 제어하지 못해 번뇌의 불길 속으로 달려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유교경>에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낙엽을 모으는 쇠갈퀴와 같아서 능히 사람의 그릇된 법을 잘 다스린다. 그러므로 비구는 항상 부끄러워하여 잠시도 계행을 게을리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니,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선법을 지닐 수 있지만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단지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하는 다짐을 한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고, 바른 수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계행을 잘 지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남에게 부끄럽지 않는 당당함은 바른 언행과 맑은 삶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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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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