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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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20 년 4 월 [통권 제84호] / / 작성일20-05-28 16:00 / 조회9,079회 / 댓글0건본문
유근자: 동국대 초빙교수. 미술사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온 세계가 신형 바이러스인 코로나 19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국가 간 왕래가 제한되고 감염자와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은 격리되어 병마와 싸우고 있다. 세계가 신형 코로라 19로 인해 고통받는 지금 누구나 간절하게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석가여래는 중생의 병을 치유하기 때문에 큰 의사선생님이라는 의미로 대의왕(大醫王)이라고도 했다.
이와 별도로 불교에는 특별히 병을 고치는 부처님으로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존재한다. 약사여래는 바로 ‘힐링붓다(Healing Buddha)’로 고대로부터 가장 현실적인 부처님으로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일수록 약사신앙은 대중들의 삶 속에 깊게 자리잡았다.
이러한 약사신앙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보살로 관세음보살이 있다. 대자대비의 관세음보살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분이 바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천수관음’으로 약칭)이다. 코로나 19로 고생하는 세계인들에게 지금이야말로 천수관음의 자비력이 필요하다.
그림1. 중국 사천 보정산석굴 천수관음보살상, 남송(1127~1279), 높이 7.2m, 너비 12.5m, 2016년 2월 유근자 촬영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해야 하기 때문에 한 가지 모습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관음을 변화관음(變化觀音)이라 하는데 그 가운데 천수관음이 대표적이다. 천수관음(千手觀音)이 여러 개의 손과 눈을 가진 형태로 표현된 것은 과거 정법명여래였을 때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나타낸 보살신(菩薩身)이기 때문이다.
천광왕불에게 대비신주(大悲神呪)를 얻어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천수천안의 모습이 되었다. ‘천수(千手)’는 보살이 구제하는 손이 미치는 범위가 광대하고 그 방편이 무량하다는 것을 상징하며, 구제할 때 중생의 근기에 따라 적당한 방편을 나타내는 지혜로운 덕이 원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림 1).
<사경지험기(四經持驗紀)> 속 천수관음 영험담 寶頂山石窟
<사경지험기>는 조선후기에 활동한 백암성총(1631~1700) 스님께서 청나라 주극복이 편찬한 <관세음지험기>, <역조법화지험기>, <역조금강지험기>, <역조화엄경지험기>의 내용을 발췌하고 편집해 1686년(숙종 12)에 간행한 것이다. 즉 <화엄경>·<금강경>·<법화경>·<관음경>을 사경하거나 독송하고 간행해 유포한 이들의 영험담을 엮은 것인데 이 가운데 <관세음지험기>에 천수관음신앙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주목된다.
당나라 이흔(李昕)은 천수천안주(千手千眼呪)를 열심히 독송하였다. 어떤 사람이 학질에 걸리자 이흔이 그를 위해 주문을 외워 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귀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그에게 “내 본래 당신에게 큰 곤욕을 치르게 할 작정이었으나 이씨네 열넷째 아들이 무서워 감히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겠구나.” 하였다. 이씨네 열넷째 아들은 바로 이흔이다.
그가 하남을 여행할 때였는데 여동생이 질병에 걸려 죽었다가 며칠 만에 다시 살아나서 “처음에 여러 사람들에게 붙잡혀 무덤 사이로 끌려갔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사람은 이씨네 열넷째 아들의 여동생인데 그가 지금 하남에서 돌아오는 길이어서 곧 집에 도착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여동생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분명 신주(神呪)로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할 것이니 차라리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여동생이 살아나자 이흔 역시 집에 도착했다.
백암성총의 <관세음지험기>의 내용은 당나라 때 이흔이 천수천안주를 외워서 학질을 고쳤으며 그의 누이가 병에 걸려 죽었다가 되돌아온 이야기이다. 이같은 내용은 가범달마 스님께서 번역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천수경으로 약칭)의 내용과도 부합된다. <천수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께서 주문인 대비주(大悲呪)를 외우면 “내가 천안으로 비추어보고 천수로 보호해 지킬 것이며 8만4천 종류의 병을 치료해 완쾌시킬 것이다. 만약 산이나 들에서 경전을 독송하거나 참선을 하는데 산에 사는 잡신들의 방해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해도 관세음보살 대비주를 한 편만 외우면 모든 귀신들은 포박된다.”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그림 2).
그림2 . 중국 사천 안악석굴 제45호 장경동 천수관음상, 당(8세기), 중앙의 합장한 두 손과 좌우로 든 4개의 손이 있고 벽면에는 천수가 선각되어 있다. 아래로 내린 내린 두 손 밑에는 동전을 받고 있는 인물상과 아귀가 표현되어 있다.
흥천사의 천수관음상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흥천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에는 중앙에 천수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그림 3).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42개의 손을 가진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으로 우리나라에는 남아있는 예가 드문 천수관음상이다.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의 손에 든 지물은 현재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오른쪽의 경우 20수 가운데 보라수(寶螺手)만 남아 있고, 왼쪽은 오색운・화궁전・발절라・보탁・불퇴금륜・연화・군지・보경・백불・여의주 등 10수가 남아있다.
그림3 . 흥천사 42수관음상, 조선초
천수관음보살상은 대부분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진 보살상인데 중앙에 합장한 두 손을 제외하고 좌우로 각각 20수씩 40수로 나타낸 상을 42수관음보살상이라고 한다. 육도윤회하는 중생을 25계층으로 세분하고 40수×25계층 = 1000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조각의 경우 천수관음상은 주로 42수관음보살상으로 조성하였다.
1894년에 두 명의 상궁이 42수관음상의 불공에 사용할 물품을 시주했다는 「삼각산 흥천사 42수관세음보살불량시주」 기록을 통해 흥천사 천수관음보살상은 왕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상임을 알 수 있다.
<오대진언>, 42수(手)와 진언(眞言)
관음신앙의 여러 성격 가운데 일찍부터 유행한 것은 당나라 이흔이 외워 학질에 걸린 사람을 구하고 귀신에게 잡혀간 여동생을 되돌아오게 한 ‘천수천안주’와 ‘신주’ 등으로 통칭되는 ‘관세음보살대비주’이다. 세조의 병 치유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진 1466년에 조성된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의 내부에서는 여러 종류의 경전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조성된 천수관음보살상이 42수로 표현된 것과 관계된 것이 바로 1485년(성종 16년)에 간행된 <오대진언(五大眞言)>이다. <오대진언>에는 42수인도와 진언 및 진언의 영험이 기록되어 있어 특히 조선시대 42수천수관음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림4 . <오대진언> 수인도와 진언, 1485년
이 경전은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 한씨가 일반 민중들이 진언을 쉽게 익혀서 암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범문(梵文)의 한자 대역에 다시 정음(正音)으로 음역을 붙여서 간행한 것이다. ‘오대(五大)’는 책 이름으로 흔히 「42수진언」, 「신묘장구대다라니」, 「수구즉득다라니」, 「대불정다라니」, 「불정존승다라니」 등 다섯 편의 진언이 실려 있다.
상원사 본 <오대진언>은 5가지 다라니 진언을 범자·한글·한자순으로 함께 기록해 간행한 목판본이다. 경전 첫머리에 대비심대다라니 계청이 나오고 이어서 관세음보살 여의주수진언(如意珠手眞言) 등 42 진언이 표기되어 있다. 상단에는 지물(持物)과 수인이 함께 표현된 수인도(手印圖)가 있고, 하단에는 그에 대한 용례의 설명과 해당 다라니가 실려 있다(그림 4).
그림5 . <오대진언> 수인도와 진언, 1485년
그림5 . <오대진언> 42수인도, 조선(1485년)
<오대진언> 42수 명칭
1.여의주수(如意珠手), 2.견삭수(羂索手), 3.보발수(寶鉢手), 4.보검수(寶劍手), 5. 발절라수(跋折羅手), 6. 금강저수(金剛杵手), 7. 시무외수(施無畏手), 8.일정마니수(日精摩尼手), 9.월정마니수(月精摩尼手), 10. 보궁수(寶弓手), 11. 보전수(寶箭手), 12. 양지수(楊枝手), 13. 백불수(白拂手), 14. 보병수(寶甁手), 15. 방패수(傍牌手),16. 월부수(鉞斧手), 17. 옥환수(玉環手), 18. 백련화수(白蓮華手),19. 청련화수(靑蓮華手), 20. 보경수(寶鏡手), 21. 자연화수(紫蓮華手), 22. 보협수(寶篋手), 23. 오색운수(五色雲手), 24. 군지수(君遲手), 25. 홍련화수(紅蓮華手), 26. 보극수(寶戟手), 27. 보라수(寶螺手), 28. 촉루장수(髑髏杖手), 29. 수주수(數珠手), 30. 보탁수(寶鐸手), 31. 보인수(寶印手), 32. 구시철구수(倶尸鐵鉤手), 33. 석장수(錫杖手), 34. 합장수(合掌手), 35. 화불수(化佛手), 36. 화궁전수(化宮殿手), 37. 보경수(寶經手), 38. 불퇴금륜수(不退金輪手), 39. 정상화불수(頂上化佛手), 40. 포도수(蒲桃手),41.감로수(甘露手), 42. 총섭천비(摠攝千臂)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발견된 <오대진언> 가운데 천수관음 신앙 및 미술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관세음보살 42수진언’으로 각 진언마다 상단에 수인도를 수록하고 있는 점이다(그림 5). 또한 경전에 끝에는 한문으로 된 <영험약초>가 첨부되어 있어 <오대진언>집에 실린 다섯 가지 진언이 갖고 있는 영험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오대진언류 계통의 유행은 점점 현세 구복적인 민간의 의례와 의식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서민적 불교로 정착되어 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42수진언만을 독송한다면 재난은 곧 소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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