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세계]
사리불 존자가 가르침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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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0 년 3 월 [통권 제83호] / / 작성일20-06-12 10:20 / 조회6,617회 / 댓글0건본문
이은희 | 불화가·철학박사
법문을 들을 경우 청법게請法偈와 함께 3배의 예를 갖추고 청해 듣는다. 이런 예법이 불화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주로 영산전에 봉안되는 석가후불도의 ‘청문상請問像’이다. 청문상은 석가후불도와 함께 괘불에 흔히 나타나며, 드물지만 아미타 후불도에도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주 법당 내부에 봉안하는 탱화는 크게 불보살을 모신 상단탱화上壇幀畵, 신중을 모신 중단탱화中壇幀畵, 그리고 감로탱甘露幀 등을 봉안하는 하단의 영단靈壇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단탱화는 다시 전각殿閣에 모신 본존과 관련하여 대웅전 후불탱화, 영산전 후불탱화, 극락전 후불탱화, 약사전 후불탱화, 관음전 후불탱화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대웅전 후불탱화와 극락전 후불탱화는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불화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이 주존인 대웅전 또는 영산전에 모셔지는 불화가 영산회상도다. 석가모니불의 많은 존칭 가운데 하나인 대웅大雄은 산스크리트어 마하비라Mahāvīra의 의역으로 『법화경』 「종지용출품從地踊出品」 및 『화엄경』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등에 보인다. 위대한 지혜의 힘으로 일체의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장애를 극복한 분이라는 데서 붙여진 덕호德號가 바로 석가모니불이다.
바로 이 대웅전이나 영산전의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에 주로 등장하는 도상圖像이 이번에 살펴볼 ‘청문제자상’이다. 이 도상의 근거가 되는 경전은 『법화경』으로, 특히 「서품」과 「방편품」에 관련 내용이 드라마틱하게 설해져 있다. 『법화경』 「서품」의 내용을 보자.
“그 때 하늘에서는 만다라꽃·마하만다라꽃·만수사꽃·마하만수사꽃을 내리어 부처님 위와 대중들에게 흩으며,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 때 모인 모든 대중들이 전에 없던 일을 만나 환희하여 합장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미간의 백호상으로 광명을 놓으시며, 1만 8천의 세계를 비추시니, 두루 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 때 미륵보살은, ‘지금 세존께서 신기한 모습을 나타내시니, 무슨 인연으로 이런 상서를 일으키는 것일까. 이는 부사의하고 희유한 일이다 마땅히 누구에게 물으며 또 누가 능히 대답할 것인가.’ 그 때 문수사리 보살은 미륵보살마하살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내가 생각건대 세존께서 이제 큰 법을 설하시며, 큰 법비를 내리시며, 큰 법소라를 부시며, 큰 법法 북을 치시며, 큰 법의 뜻을 언설하시리라. 선남자들이여, 나는 과거 여러 부처님에게 이러한 상서를 보았나니, 이 광명을 놓으시고는 큰 법을 곧 설하시었나이다. 그러므로 지금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으심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 세간에서 믿기 어려운 법을 듣게 하려고 이런 상서를 나타내신 줄 아시오. 지금 이 상서를 보니 그 때의 근본과 다르지 아니하므로, 오늘날 여래께서도 마땅히 대승경을 설하시리니 그 이름이 『묘법연화경』이라.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는 바일 것입니다.’”
사진1. 송광사 영산전 석가모니불탱
사진2. 송광사 영산전 석가모니불후불탱 부분도. 사리불 존자.
사진3. 영수사 괘불탱
사진3. 영수사 쾌불탱
더욱 풍부한 내용이 「방편품」에 나온다.
“여러 성문과 번뇌가 다한 아라한인 1천2백인과,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낸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이 제각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세존께서는 방편을 찬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이 얻으신 법은 매우 깊어 이해하기 어렵고 말하는 뜻도 또한 알기 어려워서, 성문이나 벽지불로는 미칠 수가 없다고 하시는가. 그리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한 해탈이란 뜻은, 우리들도 그 법을 얻어 열반에 이르렀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전연 알 수가 없구나!’ 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 때 사리불이 사부대중의 의심을 알고 또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여러 부처님들의 제일 방편과 깊고 묘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법을 찬탄하시나이까. 제가 예전에는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일이 없나이다. 지금 사부대중이 모두 의심하고 있사오니 바라옵건대 이 일이 무슨 뜻인지 말씀하옵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다시 말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이 일을 말한다면, 모든 세상의 하늘이나 인간들이 다 놀라고 의심하리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말씀하여 주옵소서. 말씀하여 주옵소서. 왜냐하면, 여기에 모인 무수한 백천만억 아승지 중생들은 일찍부터 여러 부처님을 친견하옵고 모든 근성이 영리하여 지혜가 아주 밝사오니,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오면 능히 공경하여 믿으오리다.’ 그 때 세존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말하지 말라. 나의 법은 미묘하여 어렵나니 증상만 사람들이 이 법 들으면 공경하여 믿지 않으리.’
사리불은 또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말씀하여 주옵소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여기 모인 대중 가운데 저와 같은 백천만억인들은 세세생생에 이미 부처님의 교화를 받자왔나이다. 이 사람들이 반드시 공경하고 믿고 긴긴 밤에 편안하게 이익이 많을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사리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네가 은근하게 세 번이나 청하였으니 어찌 말하지 아니하랴! 너는 이제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해서 말하리라.’
그리하여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리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자세히 듣겠나이다.’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말씀하시었다. ‘이런 미묘한 법은 여래께서 때가 되어야 말하는 것이니, 마치 우담바라꽃이 때가 되어야 한 번 피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아, 너희들은 부처님의 말을 반드시 믿을지니 그 말은 허망하지 않느니라.’”
사진5. 갑사 쾌불탱 부분도. 청문제자
사진6. 천은사 극락보전 아미타후불탱.
사리불 존자의 삼청三請으로 『묘법연화경』이 설해지게 됐다. 법을 세 번 청하는 사리불의 모습이 불화 속에 나타난 것이 청문상請問像이다. 송광사 영산전 석가모니후불탱(사진 1)에는 이런 내용이 잘 구현되어있다. 항마촉지인을 한 부처님이 많은 권속과 대중들 속에 위의를 갖춘 채 연화좌에 앉아 계시고, 그 앞에 법을 청하는 사리불 존자(사진 2)가 있다.
법주사 말사인 영수사에 소장된 괘불(사진 3)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높이가 8m정도 되는 영수사 괘불에는, 화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제자와 대보살 및 사부대중이 석가모니불을 에워싸고 있고, 사리불 존자(사진 4)가 부처님 앞에 나아가 법을 청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청문상은 주로 스님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갑사 괘불에서는 화려한 복식과 화관을 쓴 밀교형(사진 5)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드물지만 아미타후불탱에도 청문상이 등장한다.
사진7. 천은사 극락보전 아미타후불탱화 부분도. 청문제자.
아미타후불탱은 극락전 등에 모셔지는데,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이 성취되어 이뤄진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구현한 법당이 극락전이다. 아미타불과 함께 극락전에 모셔지는 아미타후불도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에 근거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표현한 그림. 이런 아미타 탱화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다.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의 아미타후불도(사진 6)는 아미타불과 관음·세지 두 협시보살 외에 여러 보살상과 사천왕·불제자들 그리고 청법자聽法者와 설법자를 아울러 그린 것으로, 크기와 내용에서 조선후기 불화를 대표한다. 천은사 아미타후불도에도 청문상(사진 7)이 있는데, 두광 부근에 ‘사리불존자舍利弗尊者’라고 이름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법을 청함으로 가르침이 이뤄지고, 가르침을 들어야 수행도 할 수 있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청문상이다. 따라서 영산전 후불탱이든 아미타 후불탱이든, 이들 불화를 제대로 살펴보는 자체가 바로 수행이 될 수 있다. 그림을 자세하게 보는 것이 가르침을 듣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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