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법문 해설]
유식무경과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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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0 년 2 월 [통권 제8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571회 / 댓글0건본문
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백일법문』의 일관된 논지는 ‘불교사상의 핵심은 중도사상’이라는 것이다. 위로는 초전법륜에서 아래로는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사상을 관통하는 근간은 중도라는 것이 성철 스님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만법유식과 유식무경을 골자로 하는 유식사상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상종의 유식사상 역시 중도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법상종의 중도사상
현장은 『성유식론』에 대해 “세 번째 시기인 중도[三時中道]의 가르침”이라고 소개했다. 나아가 유식에 대해 “증 · 감의 양변을 멀리 떠나[遠離增減二邊] 유식의 뜻을 성취하고[唯識義成] 중도에 계합한다[契會中道].”라고 설명했다. ‘증감의 양변’이란 생성을 늘어남으로 보고, 소멸을 줄어드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이 대립적 개념으로 생멸을 보거나 있음과 없음이라는 극단에 집착하는 사유를 말한다.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짓고 집착하는 양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유식의 바른 뜻이 성립함으로 유식 역시 중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식의 근본 뜻을 알기 위해서는 생멸이나 유무로 대변되는 변견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 수 있다.
자은대사(慈恩大師) 규기(窺基, 632년 ~ 682년)
성철 스님은 『성유식론』에 등장하는 “아와 법이 있는 것이 아니며[我法非有], 공과 식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空識非無] 있음을 떠나고 없음을 떠났으므로[離有離無], 중도에 계합한다[故契中道].”는 대목에 주목한다. 존재의 실상에서 보면 ‘나[我]’라는 개체적 실체도 공空하고, 법法이라는 보편적 존재의 실체도 공하다. 이렇게 나와 법이 모두 실체가 없음으로 비유非有가 된다. 그러나 비유만 고집하면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극단에 빠진다. 그런 견해에 치우친 사유를 단멸공斷滅空이라고 하고, 공을 잘못 인식했다는 뜻에서 악취공惡取空이라 하고, 한쪽에 치우친 견해이므로 변견邊見이라고 한다.
중도에서 말하는 공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멸공이 아니라 연기공緣起空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는 개체적 실체로써 고정불변의 자아는 없지만 무수한 조건과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렇게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으면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연기공이라고 한다. 만물은 자아의 고정된 실체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타자들과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맺으며 생주이멸生住異滅할 수 있다. 존재의 그런 원리를 중관학에서는 공空이라고 했고, 만물의 근간이 되는 공에 해당하는 것을 유식에서는 식識이라고 했다.
대상적 존재들은 실체가 없는 비유이지만 존재의 원리인 공이나 식은 존재함으로 비무非無가 된다. 성철 스님은 유식학의 이런 교설을 바탕으로 “아와 법이 공하다고 해서 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니, 있음도 떠나고 없음도 떠나서 중도에 계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성철 스님은 유식학의 근본 역시 중도이며 ‘공견空見이나 유견有見에 집착한 변견邊見’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비유비무
삼거 법사 규기는 『성유식론술기』를 통해 『성유식론』의 중도설을 계승하여 유식의 중도사상에 대해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규기는 유식의 중도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공가중空假中이라는 삼제의 논리로 풀어내고 있다.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으로 헤아리는 아我와 법法은 있는 것이 아니고[我法非有], 진여의 공한 이치[眞如空理]와 능연의 진실한 식識은 없는 것이 아니다[能緣眞識非無]. 혹 공은 그 이치이며[空卽其理] 식은 세속의 일이어서[識卽俗事] 처음에는 있음을 떠나고 나중에는 없음을 떠나기 때문에[初離有後離無] 중도에 계합한다[故契中道].”
인용문에서 보듯이 규기는 유식사상에 대해 비유, 비무, 중도라는 세 가지 명제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비유非有로서 유를 부정한다. 마음 밖에 실재한다고 생각하는[心外所計實] ‘나’라는 개체와 ‘법’이라는 보편적 존재들은 실체가 없고 인연따라 성립한 것이므로 비유非有이다. 무수한 존재들이 펼쳐져 있는 것 같지만 그 존재의 실상을 파고들면 본성은 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상적 존재들을 실재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는 중생의 첫 번째 변견이 부정된다.
둘째는 비무非無로써 무를 부정한다. 존재의 실상이 텅 비고 공하다고 해서 진여의 이치가 되는 공[眞如空理]과 객관대상의 근원이 되는 참다운 식[能緣眞識]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부정만 하면 단견에 떨어져 역시 실상에서 멀어진다. 비록 대상으로 인식되는 아我와 법法은 그 실상이 공하지만 단멸공이 아니라 연기공으로써 존재한다. 마음 밖에 분별 되는 갖가지 현상들은 실체가 없지만 그들 존재의 근본이 되는 참된 식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견이 부정된다.
셋째는 중도로서 있음과 없음을 동시에 부정하고 또 동시에 긍정하는 것이다. 공이란 존재의 연기적 관계성을 의미함으로 공이야말로 존재의 원리[空卽其理]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유식사상은 처음에는 아와 법이라는 현상적 존재들을 부정하고[初離有], 다음 단계로 공과 식을 인정함으로써 없음을 부정한다[後離無]. 따라서 유식은 있음과 없음을 동시에 부정하고, 동시에 긍정함으로 중도의 이치에 부합한다.
유식무경
법상유식의 근본도 중도라는 것은 『성유식론』의 미륵 보살의 게송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미륵 보살은 “일체법은[故說一切法]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며[非空非不空], 있고 없으며 함께 있기 때문에[有無及有故] 이것이 중도에 계합한다[是則契中道].”고 노래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눈앞에 드러난 존재는 가유假有로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본질은 공하다. 일체법이란 유위와 무위를 통칭하는 개념인데, 규기는 유위는 ‘허망한 분별[妄分別]’로 무위는 ‘공성空性’으로 정의했다. 모든 존재는 허망분별이라는 유위와 공성이라는 무위의 특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이처럼 있음과 없음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음으로 모든 존재는 그 자체가 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중도적 특성을 갖게 된다.
있음과 없음 그리고 함께 있음이라는 이런 논리는 비유비무非有非無와 역유역무亦有亦無라는 천태와 화엄의 중도론과 궤를 같이한다. 유와 무는 대립적 특성이지만 하나의 존재 안에 이 두 성질은 공존하고 있다. 허망하게 분별 되는 개별적 존재들 속에는 진공眞空으로써 이법이 있고, 진공이기 때문에 자기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인연을 따라 자유롭게 드러날 수 있다. 이처럼 허망하게 분별 된 존재들의 속성은 진공이고, 진공은 또 허망하게 분별 되는 존재들로 드러난다. 공이라는 본질과 허망하게 분별되는 거짓 존재들은 서로 대립적이지만 서로 소통하고 있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진공이기 때문에 존재들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묘유妙有로 드러난다.
이렇게 모든 존재의 실상이 유有이면서 동시에 무無이므로 존재는 그 자체로 중도의 원리를 체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눈 앞에 펼쳐진 모든 존재는 그대로 진여로 긍정된다. 규기는 ‘진여는 공성空性이어서 공에 의지하여 나타난다[眞如是空性 依空所顯]’고 했다. 진여의 성품은 실체가 없는 공성을 띠고 있다. 진여는 실체 없는 공에 의지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한 송이 꽃은 무수한 관계에 의지해 피어난다. 존재가 갖는 그런 이치를 화엄종의 법장은 ‘탁사현법託事顯法’이라고 표현했다. 본질로서 진여는 공한 사물에 의탁하여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식학의 기본은 만법유식萬法唯識이고 유식무경唯識無境이다. 삼라만상은 실체가 없고 오로지 식만 있다는 것이 만법유식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중도의 논리가 그대로 내포되어 있다. 모든 것이 오직 식이라고 했기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진 현상으로써 사물은 공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식은 존재함으로 비유비무라는 중도의 논리가 성립된다. 유식무경 역시 경계로 분별 되는 사물은 실체가 없지만 식만은 존재함으로 이 역시 비유비무라는 중도가 성립된다. 따라서 유식의 핵심명제는 그 자체로 중도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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