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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중도적 · 창조적 불학체계 수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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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9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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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동국대 교수

 

만학의 제왕은 철학哲學이 아니라 국학國學이다. 서양의 철학은 서양의 국학이며, 동양의 철학은 동양의 국학이다. 서양철학사는 서양경학사이고, 중국철학사는 중국경학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껏 경학은 ‘보편적인 학문’, ‘영원불변한 학문’, ‘모든 것의 벼리를 이루는 학문’으로 간주해 왔다. 그 결과 우리의 국학은 ‘국소적인 학문’, ‘지역적인 학문’, ‘상대적인 학문’으로 오해되어 왔다. 

 

전통학의 계승

 

왜 이러한 인식이 생겨났을까? 이것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문명질서를 지배해온 중화주의의 권력구조가 뿜어낸 무의식적 편견에 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의 경학과 달리 우리의 국학을 국부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치부해온 결과라 할 수 있다. 고전주석학인 경학은 중국의 국학일 뿐이다. 이 국학의 기반을 이룬 문헌 또한 춘추전국시기 이후 서한시대에 뒤늦게 성립한 비중국적인 것이다. 따라서 국학은 경학에 필적하는 주체적이고 자내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학’은 우리 민족문화와 정신문화의 주체적 표현이다. 반면 ‘한국학’은 우리 민족문화와 정신문화의 타자적 표현이다. 우리의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종교와 예술에 대한 자내적 온축을 인문학이라 한다면, 우리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와 과학에 대한 객관적 지평을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횡단적 인문학과 종단적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국학 연구가 우리의 정체성을 주체화하는 학문방법이라면, 한국학 연구는 우리의 인식틀을 타자화하는 학문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원한 대자유를 추구하는 불교는 붓다의 자비와 지혜를 중도 연기로 총섭하고 있다. 상호존중의 중도행과 상호의존의 연기법은 우리의 삶의 깊이와 앎의 너비를 질적으로 제고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불학 혹은 불교학은 이 땅에서 오랫동안 국학 또는 한국학의 저변을 이루어 왔다. 이 때문에 이 땅의 연구자들에게는 국학 또는 한국학의 기반을 이루는 한국불교사상과 한국불교역사의 기반을 보다 주체화하고 자내화하여 더욱더 객관화하고 타자화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수입학의 등장

 

그렇다면 우리는 국학으로서 자리해온 전승 불학을 어떻게 계승하고, 서구 근대가 발명해낸 근현대 불교학을 어떻게 전개해 가야할까? 불학자 혹은 불교학자인 우리는 국학인 ‘전통학’을 계승해 오면서 새로운 ‘수입학’을 받아들였고, 이들 두 학문에 대한 ‘시비학’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창조학’으로 나아가야 하는 단계에 놓여있다. 우리가 전통학과 수입학과 시비학을 거쳐 새로운 창조학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학문을 해야만 할까? 아마도 주체적인 인식 위에서 전승 불학의 강점과 장점을 계승하고 근대불교학의 장점과 강점을 적취하여 새로운 창조학으로서 불교학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난 세기 이래 서구 근대에서 발견한 ‘불교’와 서구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불교학’을 ‘전근대’시대에 수입하면서 ‘근현대’ 이후 우리 학문은 전통의 학문적 지형에 상당한 도전을 받아오고 있다. 그것도 일본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말이다. 이러한 수입학의 도입은 새로운 도전이자 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창조학으로서 불교학을 전개해 나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학문적 자세 위에서 전통학-수입학-시비학-창조학의 순환구조를 적절히 활용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먼저 전승의 불학이 지닌 강점과 장점을 발견하고 근현대 불교학이 지닌 장점과 강점을 흡수하여 새로운 창조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전통학이 지닌 계정혜 삼학의 병수, 불도유 삼가의 전관, 문사철 삼학의 흡수 아래 선교禪敎의 화회의 지향이 요청된다. 특히 불교의 격의格義와 교판敎判 및 신(不覺)-해(相似覺)-행(隨分覺)-증(究竟覺)의 수행 4단, 도가(도교)의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와 행무언지교行無言之敎 그리고 지족知足과 귀유貴柔 및 겸하謙下와 부쟁不爭, 유교의 격물-치지-성의-정심 및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8조목 그리고 존양성찰存養省察과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같은 전통학이 지닌 방법론과 실천행의 장점과 강점을 계승하고 근대불교학이 지닌 방법론과 실천행의 강점과 장점을 흡수하여 새로운 불교학을 열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학으로서 불학과 서구 근대의 발명품인 불교학을 수입학으로서 받아들이면서 시비학의 과정 속에서 학문을 전개하고 있다. 전통학과 수입학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비학의 과정은 새로운 창조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승의 불학이 국학으로 자리해 왔음을 자각하여 근현대불교학과 접목하여 새로운 한국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스스로 불교학을 종교학의 구심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철학의 원심으로 뻗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역사학은 종학사와 철학사로서 우리 학문의 기반과 저변이 되어줄 것이다. 

 

시비학의 과정

 

개인적으로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전승 불학이 국학으로 자리매김 되어온 것처럼 근현대불교학은 한국학으로 자기매김 시켜 갈 것이다. 국학의 구심에는 인문학으로서 문사철학과 종학과 예학이 어우러져 있으며, 한국학의 원심에는 사회과학으로서 정경사회학과 문화와 과학이 수놓아져 있다. 구심의 국학이 원심의 한국학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불(교)학은 국학의 구심성과 한국학의 원심성을 회복해야 한다. 더 이상 실천적 종(교)학의 범주와 이론적 철학의 범주에만 갇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통섭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광범위한 지평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

 

인도에서 비롯된 불교는 실크로드와 바다를 거쳐 동아시아로 전래되었다.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래’된 이래 ‘수용’과 ‘공인’을 거쳐 ‘유통’되었다. 순도 혹은 아도 또는 묵호자에 의해 전해진 불교는 붓다를 상징하는 ‘불상’과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경(율론)교’와 이것을 전하는 상가의 일원인 ‘승려’였다. 즉 세 가지 보배인 삼보 즉 붓다라는 보배인 불보와 불법이라는 보배인 법보와 상가라는 보배인 승보였다. 여기서 법보는 다시 경장과 율장과 논장으로 펼쳐졌고, 승보는 다시 계학과 정학과 혜학으로 전해졌다. 이때부터 붓다의 가르침인 ‘불교’와 붓다에 대한 연구인 ‘불학’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붓다에 대한 학문적 탐구의 노력인 불학은 동아시아에 전래된 이래 위진남북조와 수당시대를 거쳐 비로소 도학과 유학과 함께 ‘삼학’ 혹은 ‘삼가’로서 자리해 왔다. 불도유 혹은 불선유 삼가 또는 삼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도가(도교)로 재편되었고, 신유학(성리학, 양명학)으로 재편되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 전승된 불학은 불선유 또는 불도유 삼교와 문사철, 계정혜와 선교 화회의 맥락 속에서 체계화 되어 왔다. 이러한 불학적 전통이 19세기에 서구에서 발견한 불교와 서구에서 발명한 불교학과 변별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근대의 ‘발견’으로서 불교와 서구 근대의 ‘발명’으로서 근현대불교학이 만나는 지점은 주체의 발견이자 세계의 확장이다. 서구가 오리엔탈리즘으로서 붓다를 발견하고, 문헌학으로서 근대불교학을 재구성했다면, 이제 이 땅의 불(교)학은 붓다의 가르침인 중도와 연기처럼 학문의 구심과 원심이 상호존중행과 상호의존성 위에서 재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시비학의 과정을 거쳐 창조학으로 가는 과정이 아닐까? 

 

창조학의 과제

 

창조학으로서 불(교)학의 과제는 중도 자비의 상호존중행과 연기 지혜의 상호의존성을 새로운 불(교)학에도 원용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불교학을 나는 ‘중도불학’ 혹은 ‘중도불교학’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것은 ‘체계불학’과 ‘실용불학’을 통섭한 중도불학이며, ‘순수불교학’과 ‘응용불교학’을 화회한 중도의 불교학이다. 창조학으로서 불(교)학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간세계를 불쌍히 여기고 천인세계와 인간세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유행하라. 하나의 길을 둘이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고 뜻[義]과 글[文]을 갖춘 법을 설하고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학문적으로 실현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아래의 순서에 따라 전통학-수입학-시비학의 과정을 거쳐 창조학의 과제라는 관점에서 전개해 보고자 한다. 이어질 글의 순서는 2. 전근대의 전승불학, 3. 근현대의 개신불교학, 4. 상현 이능화(1869-193)와 석전 박한영(영호 정호, 1870-1948)의 학문방법론, 5. 퇴경 권상로(1879-1965)와 포광 김영수(1884-1967)의 학문방법론, 6. 영담 김경주(1896- ?)와 현주 허영호(1900-1952)의 학문방법론, 7. 무호 백성욱(1897-1981)과 범란 김법린(1899-1964)의 학문방법론, 8. 뇌허 김동화(1902-1980)와 효성 조명기(1905-1988)의 학문방법론, 9. 현곡 김잉석(1900-1965)과 매헌 장원규(1909-1995)의 학문방법론, 10. 법운 이종익(1912-1991)과 불화 이제병(1915?-1985?)의 학문방법론, 11. 일붕 서경보(1914-1996)와 고봉 황성기(1919-1979)의 학문방법론, 12. 소산 우정상(1917-1966)과 미산 홍정식(1918-1995)의 학문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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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와 같은 대학원 석 · 박사과정 졸업,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불학과 불교학』, 『한국불학사』, 『한국사상사』, 『한국불교사궁구』, 『원효, 한국사상의 새벽』, 『삼국유사 인문학 유행』 등 논저 다수가 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한국불교사학회 회장 겸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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