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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의 세계]
시왕도와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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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72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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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불화가 · 철학박사

 

우리들의 삶은 대체로 모호한 상태에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다가 언젠가는 더 이상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한 ‘죽음’이라는 특수한 처지에 다다랐을 때, 죽음 이후는 육신을 잃은 ‘중음中陰’ 상태가 된다. 육신을 잃었지만 정신과 마음이 살아있는 중음 상태를 완전히 죽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또 세상이 정의하는 ‘죽음=육신의 죽음’이라는 단계 이후에 어디로 가는 것인지 …. 이러한 물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 아니 몇 번 쯤 가져보는 의문이라 하겠다.

 

사찰의 명부전에는 가운데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좌협시로 도명존자, 우협시에 무독귀왕으로 삼존을 이루고 다시 도명존자 옆으로 1, 3, 5, 7, 9 대왕을 배치하고, 무독귀왕 옆으로 2, 4, 6, 8, 10 대왕을 배치한다. 망자와 관련된 이러한 시왕의 개념은 당말唐末 오대五代『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이하 『예수시왕경』)에 의거해 하나의 완전한 신앙체계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의 ‘시왕’은 통일신라 초에 소개되어 고려시대 때 성행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사찰 안 명부전에 시왕도가 봉안되어 독립된 신앙형태로 발전하였다. 「시왕도十王圖」는『예수시왕경』에 딸린 변상도에서 비롯되었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시왕도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은 돈황에서 발견된 10세기 경의 경전에 그려진 ‘시왕경도권十王經圖卷’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것은 13세기경 해인사 목판으로 새겨진「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佛說預修十王生七經變相圖」인데 이것은 조선시대에 이어 현재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1. 염라대왕

 

시왕도(사진1 염라대왕)의 화면 구성은 상, 하단으로 나뉘어 상단에는 각 대왕들이 재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 하단에는 죄업에 따라 벌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의 시왕도는 명부전 또는 시왕전에 시왕상과 함께 봉안되기도 한다. 최근 흥미를 끌었던 영화 ‘신과 함께’(사진2 신과함께 2편 –인과 연)는 시왕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보다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영화는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데 일반인들에게 시왕의 개념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2. 신과합께 2편 - 인과 연

 

시왕도에는 각각의 죄업에 따라 고통스럽게 과보를 받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제5 염라대왕의 발설지옥(사진 3-발설지옥 부분도) 장면을 보도록 하자. 염라대왕은 시왕 가운데 중심 격으로 지장보살님께 발원하고 귀의하였다. 염라대왕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실천하여 남들로 하여금 신뢰를 받아 무슨 말이든지 믿도록 하라고 가르친다. 만약 거짓말로 속이고 진실되지 못하고 불신을 조장하였다면 혀를 뽑는 발설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시왕도에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진3. 발설지옥 부분도

3-1. 해인사 시왕탱. 제5염라대왕 업경대 부분도

 

<사진3-1 해인사 염라대왕 부분도>의 오른쪽에 보면 해태 형상에 단청이 잘 올려진 받침대 위에 ‘업경대業鏡臺’가 있다. 업경대는 생전에 지은 선, 악의 모든 업을 비추어 준다. 그림에서는 생전에 지은 살생의 업을 비추고 있고 업경대 아래로는 종이와 붓을 들고 있는 녹사가, 그 아래쪽으로는 말을 끌고 등 뒤에 활을 찬 사부사자(연월일시를 관장한다)가 망자의 생전 업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녹사에게 건네고 있다. 그 옆으로는 옷이 벗겨진 채로 포승줄에 묶인 죄인이 황망하고 두려운 표정으로 팽개쳐져 있는데 이 죄인을 밧줄로 묶어 바닥에 눕혀 발로 밟고 돌망치를 들고 서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의 나찰이 보인다.

 


사진4. 현대적 표현의 발설지옥

 

그림을 따라 왼쪽에는 형틀에 매단 죄인의 입에서 혀를 길게 뽑아내어 소가 쟁기로 밭을 갈고 뒤에 나찰은 채찍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형틀 뒤에는 매단 죄인의 혀를 쇠꼬챙이로 억지로 뽑아내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역시 형틀 앞에는 바닥에 고정된 고리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죄인을 나찰은 세 개의 눈으로 칼을 들어 죄인의 입과 얼굴을 관통시킨 장면인데 보기만 해도 끔찍하여 그 고통을 형용할 수 없겠다. 발설지옥은 ‘말’로써 지은 죄업을 받는 형벌로서 제5 염라대왕에 주로 그려졌다. 

 

이러한 장면을 필자는 현대적인 인물로 새롭게 출초하여 그렸다(사진4 – 현대적 표현의 발설지옥). 이 그림은 구업口業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개인의 욕망으로 말의 신뢰를 떨어뜨린 이들이 발설지옥에 끌려와 과보를 받고 있는 장면을 구상화 한 것이다. 이 시왕도는 현재 용인에 소재하고 있는 전통사찰 동도사 지장전에 봉안되어 있다. 

 


사진5. 해인사 오도전륜대왕

 

그리고 시왕도의 마지막 장면은 제10 오도전륜대왕(사진5 – 해인사 오도전륜대왕)과 전륜대왕이 관장하는 흑암지옥이다. 제5 염라대왕과 같이 배경에 대나무가 그려진 병풍을 두르고 본존에 용머리가 장식된 의자에 앉아있는 제10 오도전륜대왕이 보인다. 홀을 쥐고 있으며 머리에 봉시회鳳翅盔 형태의 관을 쓰고 있다. 상단 본존 맨 위에 양 협시로 동자가 우산 형태의 진연 의궤인 용산龍傘과 부채翼扇를 들고 있다. 그 아래로는 홀을 쥔 판관判官 권속이 오도전륜대왕을 둘러싸고 있으며 본존 탁자(나무로 된) 위에 경책에는 대승경전이 놓여 있고 그 아래에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놓는 녹사가 두루마리를 서로 맞잡고 펴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각종 두루마리와 필요한 물품을 들고 있는 동남동녀 무리 아래로 성벽이 그려져 있다. 상단과 하단을 나누는 회화적 표현으로 성벽 밑에는 지옥을 표현하는 구름이 띠처럼 둘러져 있다. (사진 5-1, 5-2, 5-3 오도전륜대왕 하단 부분도)

 

사진 5-1. 오도전륜대왕 부분도

사진 5-2. 오도전륜대왕 부분도 

 

하단 오른쪽으로부터 우두나찰과 마두나찰이 지키고 서 있고 그 아래로 당번을 들고 있는 사자가 책과 붓을 쥐고 있는 녹사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장면이 보인다. 그 옆으로 홀을 쥔 판관이 상단 대왕의 명을 기다리고 있고 곁에 동자 둘이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말을 끌고 있는 사자 아래로 보면 녹사로 보이는 관료가 팔을 걷고 밧줄에 묶인 죄인의 옷을 벗기는 장면이 보인다. 이러한 여러 장면들 가운데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장면은, 자신이 지은 죄업에 대한 과보를 받고 다시 육도로 환생하는 장면이다. 축생의 과보를 받을 이에게 그에 해당하는 장면이 특별히 인상적인데, 업이 결정된 후 아귀신의 머리 위에서 전륜대왕이 바라보는 가운데 상단 위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 그 서기瑞氣 안에는 즉 육도(천계, 인간계, 수라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로 환생하는 길을 묘사하고 있다. 

 


사진 5-3. 오도전륜대왕 하단 부분도

 

명부전에 모셔진 시왕도 가운데 제5 염라대왕과 제10 오도전륜대왕도를 통해 우리 삶의 중요한 지침과 방향을 확인하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래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이지만, 현실에 충실하고 또한 참회의 마음을 일으켜 수시로 허물을 털어낼 수 있는 가르침을 시왕도는 제시하고 있다. 허물을 털어낼 용기와 호기로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가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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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위덕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철학박사). 김해시청 벽화공모전, 전통미술대전 심사위원역임. 미술실기 전서-산수화의 이해와 실기(공저)
사)한국미술협회 한국화 분과위원, 삼성현미술대전 초대작가. 국내외 개인전 11회, 단체 및 그룹전 300여 회.
다수의 불사에 동참하였으며 현재는 미술 이론과 실기 특히, 한국 불화의 현대성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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