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물소리 솔바람 소리 모두가 설법이네
페이지 정보
고경 필자 / 1997 년 9 월 [통권 제7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11,889회 / 댓글0건본문

이곡은 고려 말의 인물로 이색의 아버지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했을 때 원나라에서 관리생활을 하였다. 그는 중국의 성리학이 융성하여 고려로 전래되어 고려의 불교와 마주치는 시대에 살았다. 그래서 이곡은 현실적으로는 유학자의 생활을 하였고, 반면에 정신적으로는 산사의 생활을 즐겨하고 선사(禪師)의 생활을 흠모하였다.
다음의 시는 어느 산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자신의 심정을 그려놓은 것이다.
宿長安寺」
曉霧難分跬步前 새벽 안개 자욱하여 앞길도 분간 못하나
日高淸朗謝龍天 아침 해 높이 뜨니 어디론가 사라졌네.
雲連山遠西南北 구름은 산 멀리 서남으로 깔렸고
雪立峯攢萬二千 눈은 겹겹이 만 이천 봉에 쌓였구나.
一見便知眞面目 보자마자 그 진면목 알리니
生多應結好因緣 태어나 응당 좋은 인연 맺으리.
晩來更向蓮房宿 저물자 다시 방에 가서 잠을 자려니
溪水松風總說禪 시냇물 솔바람 소리 모두가 설법이네.
장안사는 강원도 금강산에 있는 사찰로 자연의 풍광이 수려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시에는 작자의 불교에 대한 강렬한 정서가 자연의 사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잘 드러나 있다. 안개, 해, 구름과 눈은 부처님의 자비를 나타내기 위한 구체적 사물이다. 이것들은 각각 ‘태양’과 ‘하늘’, ‘구름’과 ‘산, ‘눈과 ‘봉우리’들이 서로 대를 이루면서 변하는 대상과 변하지 않는 본체를 대비되고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 ‘보자마자 진면목’이란 것은 첫 순간에 본래 자리를 발견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속계나 진계에서 한 가지로 보이는 것이지 둘이 아닌 상태를 말한다. 나아가서는 시냇물 소리나 부처님 말씀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일체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일체의 경계에 이르러야 온전한 탈속의, 진계를 벗어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곡은 이러한 상태를 유교적인 것과 불교적인 것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융합된 지점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네팔 유일의 자따까 성지 나모붓다 사리탑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52km 떨어진 바그마띠(Bagmati)주의 까브레빠란 삼거리(Kavrepalan-Chowk)에 위치한 ‘나모붓다탑(Namo Buddha Stupa)’은 붓다의 진신사리를 모…
김규현 /
-
햇살 속에서 익어가는 시간, 발효의 기적
8월은 발효의 계절입니다. 찌는 듯 무더운 날씨 가운데 발효는 우리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선사합니다. 오늘은 발효가 되어 가는 향기를 맡으며 발효를 이야기해 봅니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음식을 경험…
박성희 /
-
초의선사의 다법과 육우의 병차 만들기
거연심우소요 58_ 대흥사 ❻ 초의선사의 다법을 보면, 찻잎을 따서 뜨거운 솥에 덖어서 밀실에서 건조시킨 다음, 이를 잣나무로 만든 틀에 넣어 일정한 형태로 찍어내고 대나무 껍질…
정종섭 /
-
인도 동북부 수해 지역 찾아 구호물품과 보시금 전달
연등글로벌네트워크 회원들은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州 마이뜨리뿌리 지역의 사찰과 마을을 찾아 수해복구를 위한 보시금과 구호물품 등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지역은 지난 6월 초…
편집부 /
-
운문종의 법계와 설숭의 유불융합
중국선 이야기 53_ 운문종 ❽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문명을 구가하던 당조唐朝가 멸망하고, 중국은 북방의 오대五代와 남방의 십국十國으로 분열되었다. 이 시기에 북방의…
김진무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