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불교의 성, 인간의 성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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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3:27 / 조회1,739회 / 댓글0건본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던 일들이 불교계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사찰에서 진행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제로 기획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너무 반갑고 또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결혼 기피와 출생률 저하가 사회적 화두가 된 마당에 불교가 ‘성’을 계속 깨달음의 장애물로만 간주한다면, 불교는 시대적 문제를 외면하는 출가자들만의 한가한 종교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도 인간의 삶을 두루 보살피는 세상의 종교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불교와 성
빨리 율장에는 바라이죄에 저촉되는 출가자들의 성적 위반 혹은 패배(pārājika)의 사례가 자세하게 적시되어 있다. 표현과 묘사가 너무 적나라해서 어떤 경우에는 마치 외설적인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가능한 온갖 종류의 성행위가 한꺼번에 열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유·무형의 인간 형상과의 성관계뿐만 아니라 기발한 방법의 각종 자위행위와 심지어 수간獸姦과 시간屍姦에 대한 언급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성행위 과정에서 단계별로 변화하는 당사자의 내밀한 심리상태도 조목조목 점검해서 바라이죄의 충족 여부를 따졌다.(주1)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언제나 독신 수행 공동체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탄트라불교의 제의祭儀들은 성적 욕망의 종교적 고양이자 해소 수단이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주2) 란젠버그(Langenberg)는 불교의 성 윤리가 예외 없는 적용을 받는 도덕적 의무이기에 앞서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한 개인의 ‘인격적 성숙(personal thriving)’(주3)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가 성을 ‘불교의 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성’이라는 관점에서도 더욱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붓다의 가르침은 2,500여 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치는 동안 다르마의 수레가 지나간 지역의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여 한층 더 풍부한 콘텐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만큼 불교가 성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그다지 바람직한 접근방법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교단의 스승들과 수행자들은 실제로 서로 다른 많은 방식으로 성을 고민했고, 말했으며,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겼다.(주4) 불교에서도 성의 문제를 수행이나 계율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 권리의 입장에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키온(Keown)은 “성 윤리에 관한 불교의 가르침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많고, 좀 더 주의 깊게 검토되어야 할 점도 많다.”(주5)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불교가 성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시대적 고민을 요청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달라이 라마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주6)
수행과 욕망
소속 공동체에서 영원히 쫓겨나는 처벌은 예나 지금이나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최고의 형벌이다. 세속의 사형제도가 대표적이다. 승단 추방죄에 해당하는 파라지카(pārājika)는 수행자에게 계율을 지키지 못했다는 의미의 도덕적 ‘패배(defeat)’뿐만 아니라 승단으로부터의 ‘추방(expulsion)’(주7)이라는 실질적인 불이익을 가져다 준다. “성적 교섭에 참여한 수행승은 어쨌든 패배한 자이며, 그는 더 이상 공동체 안에 머물 수 없다.”(주8) 그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곧 그와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겠다는 뜻이다.(주9)
율장과 경전에서는 출가자의 성적 비행과 관련된 언급들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수행과 깨달음의 길에서 결정적인 ‘방해물’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욕망을 잘 다스려서 율장에 기술된 특정한 행동을 범하지 않도록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을 끊임없이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가자의 이런 청정한 행동을 가리켜 통상 ‘범행(brahmacarya, 梵行)’(주10)이라고 부른다.
수행자가 성적 교섭을 하면 바라이죄를 짓게 되는 대상들에는 ‘인간의 여성, 비인간의 여성, 축생의 여성; 인간의 양성, 비인간의 양성, 축생의 양성; 인간의 빤다까, 비인간의 빤다까, 축생의 빤다까; 인간의 남성, 비인간의 남성, 축생의 남성’ 등 12가지 형상들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섹스, 즉 (인간, 비인간, 축생) 여성과의 섹스, (인간, 비인간, 축생) 양성과의 섹스, (인간, 비인간, 축생) 빤다까와의 섹스, (인간, 비인간, 축생) 남성과의 섹스를 확인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종류의 섹스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율장』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어쩌면 역사적 사건과 도덕적인 요청이 미래의 예방조치라는, 율장 조항으로 정립된 것이 아닐까 싶다.
율장의 가르침
『율장』에는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주11) 하지만 전적으로 상상의 산물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대부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계기로 공동체 내부의 규율을 다시 확립할 필요에서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쑤딘나(Sudinna) 비구의 에피소드와 암원숭이를 유혹하여 성적 교섭을 맺은 수행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주12) 두 가지 사례에서는 특히 행위자의 성적 의도(cetanā)가 쟁점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유사한 사건을 경계하기 위한 세부 조항들도 추가되었을 것이다. 『율장』의 관련 언급을 인용해 본다.
인간의(비인간의, 축생의) 여성과 세 가지 방식, 즉 항문과 성기와 구강으로 성적 교섭을 행한다면, 바라이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간의(비인간의, 축생의) 양성과의 세 가지 방식, 즉 항문과 성기와 구강으로 성적 교섭을 행한다면, 바라이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간의(비인간의, 축생의) 빤다까와 두 가지 방식 즉, 항문과 구강으로 성적 교섭을 한다면, 바라이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간의(축생의, 비인간의) 남성과 두 가지 방식, 즉 항문과 구강으로 성적 교섭을 한다면, 승단 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중략)(주13)
이어서 가능한 경우의 상황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바라이죄에 해당하는 성적 교섭의 사례들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는 성행위 과정에서 느끼는 각 단계의 즐거움을 바라이죄의 적용 기준으로 판단한다. 말하자면 다음의 ①, ②, ③, ④ 가운데 어느 하나의 즐거움이라도 느꼈다면 바라이죄를 범하게 되며, 네 가지 즐거움을 모두 느끼지 않았다면 바라이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 본다.
수행승의 적대자들이 인간의 여성을(깨어있는 인간의 여성, 잠든 인간의 여성, 술 취한 인간의 여성, 정신착란된 인간의 여성, 방일한 인간의 여성) 수행승의 앞으로 데리고 와서 그녀의 항문에(성기에, 구강에) 그의 성기를 들어가게 할 경우, 그러한 ①적용시에 동의하여 즐거움을 느끼고, ②삽입시에 동의하여 즐거움을 느끼고, ③유지시에 동의하여 즐거움을 느끼고, ④인발(사정)시에 동의하여 즐거움을 느끼면 바라이죄를 범하는 것이다.
곧바로 뒤이어 성적 욕망의 대상인 시신의 부패 정도에 따른 죄의 경중을 묻는 언급이 나온다. 각각의 단계마다 행위 대상만 다를 뿐 형식과 내용 및 결론은 그대로다. 이런 방식으로 수행승의 적대자들이 각각 ‘비인간, 축생, 인간의 양성, 비인간의 양성, 축생의 양성, 인간의 빤다까, 비인간의 빤다까, 축생의 빤다까, 인간의 남성, 비인간의 남성, 축생의 남성’을 데리고 와서 각각 ‘깨어있는, 잠든, 술 취한, 정신착란된, 방일한, 죽었지만 아직 무너지지 않은, 죽었지만 대체로 무너지지 않은, 죽어서 거의 무너진’ 상태의 시신과 위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경우 바라이죄를 범하게 된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적 교섭의 행위 주체가 남성 수행자, 즉 비구인 경우만 살펴보았다. 여성 수행자인 비구니와 관련된 성적 교섭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주14) 상대적으로 ‘자위自慰(masturbation)’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는 정도만 지적해 두겠다. 문헌에는 다양한 자위 방법과 자위 기구가 등장한다. 대체로 그와 같은 위반은 바라이죄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시적이고 가벼운 성적 욕망은 참회와 재발 방지의 차원에서 훈계, 관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처럼 불교에서 수행자의 경우 성적 욕망은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와 억제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성적 욕망을 극복하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각주>
(주1) 전재성(2020), 『비나야삐따까』(서울:한국빠알리성전협회), 1328∼1619.
(주2) Paul David Numrich(2009), “The Problem with Sex According to Buddhism”, Dialog: A Journal of Theology, vol.48. no.1.62∼73; Amy Paris Langenberg(2015), “Sex and Sexuality in Buddhism: A Tetralemma”, Religion Compass 9/9. 276∼286.
(주3) Amy Paris Langenberg(2018), “Buddhism and Sexuality”, Cozort, Daniel& Shields, James Mark eds. The Oxford Handbook of Buddhist Ethics, Oxford University Press., 568.
(주4) Langenberg(2015), 278.
(주5) Damien Keown,(2005), Buddhist Ethics: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68.
(주6) 같은 책, 같은 쪽.
(주7) 빠알리어 ‘pārājika’는 어원상 ‘패배’를 의미하는 ‘parā-√ji’와 ‘추방’을 의미하는 ‘parā-√aj’로 분석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어떤 의미를 적용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재성(2020), 1295.
(주8) Langenberg(2018), 574; Numrich(2009), 65에서 재인용. 바라이죄에 따르는 일정한 후렴구다.
(주9) 전재성(2020), 1358.
(주10) Langenberg(2018), 568.
(주11) Langenberg(2018), 574; Numrich(2009), 66. 율장의 성적 표현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재성(2020), 1297의 설명을 참조할 것.
(주12) 전재성(2020), 1328~1358에는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 및 붓다의 입장 제시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Langenberg(2018), 574~578; Numrich(2009), 64~65에도 관련 언급이 보인다.
(주13) 전재성(2020), 1358~1360.
(주14) 붓다고사의 『청정도론』에서도 추가적인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대림스님(2004), 『청정도론』, 울산: 초기 불전연구원., 12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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