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읽는 일요일]
생각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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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글 / 2019 년 7 월 [통권 제7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614회 / 댓글0건본문
곰글 | 불교작가
조주는 선사禪師다. 선禪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인가. 일단 선은 범어 ‘dhyana(禪那, 선나)’의 음사이며, 정려靜慮 또는 사유수思惟修라는 뜻을 갖는다. 풀이하면 ‘조용히 생각한다’ 혹은 ‘생각으로 하는 수행’ 쯤 되겠다. 알다시피 수행은 해탈을 목표로 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궁극적인 행복을 지향한다. 결국 선은 생각을 잘 이용해서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조용히 생각하면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고, 생각이 인생의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수행은 견실심을 얻어내는 과정
불교에서는 생각의 종류로 사심四心을 이야기한다. 육단심肉團心과 연려심緣慮心과 집기심集起心과 견실심堅實心이다. 육단심은 육체에 의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이다. 연려심은 보고 듣는 감각에 의해 일어나는 생각이다. 집기심은 자아의식과 뿌리 깊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다. 견실심은 육체와 감각과 ‘나’라고 하는 심층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을 부처의 마음이라 쳐준다. 곧 수행이란 육단심과 연려심과 집기심을 걷어내고 견실심을 얻어내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생각하는가? 우선 무언가가 계속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내일까지 숙제를 마쳐야 할 때에도 생각해야 하고 눈앞에 난동을 부리는 취객을 맞닥뜨렸을 때에도 생각해야 한다. 의사가 계속 이렇게 살면 죽는다고 하니까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생각을 해야만 살아갈 방법이 생긴다. 부지런히 생각을 해야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생각해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삶과 생각은 이렇듯 긴밀한 관계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삶과 생각은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생각이 곧 삶이다. 내가 생각한 만큼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내 마음이 괴롭다고 여기니까 삶이 괴로운 것이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니까 세상이 부정적인 것이다. 부처님도 내가 봐줘야만 비로소 부처님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명제를 역易으로 해석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명제에 도달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현실은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다. 생각이 없으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낀다. 불교에선 이러한 감각작용을 6식六識이라고 한다. 각각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에다가, 의식意識을 더해서 6식이다. 불교에선 생각도 감각의 하나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눈이 보지 못하고 귀가 듣지 못하고 코가 맡지 못하면 삶이 매우 불편해진다. 혀가 맛보지 못하면 독약을 들이키기 쉽고 몸이 고통을 모르면 과다출혈로 죽기 쉽다. 감각은 결국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위험이 닥치거나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사람은 온힘을 다해 끙끙 앓는다. 결국 생각이란 일종의 방어본능이어서, 내게 좋은 것만을 바라거나 내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게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좋은 생각이란 당장 내게만 좋은 생각이다. 객관적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념이란 생각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無念者 于念而不念.” 『육조단경』
조사선의 개념을 정립한 인물은 중국 선종의 6조 혜능이다. 그는 『육조단경』에서 자신의 종파는 무념위종無念爲宗이라고 규정했다. 무념을, 곧 생각하지 않음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생각하면서 생각하지 말라’는 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이겠다. 앞서 밝혔듯이 생각이란 착오이거나 번뇌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생각을 떠날 수는 없다.
'생각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것’ 필요
돈을 벌려면 생각해야 하고 결혼을 잘 하려면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모두가 각자의 몸에 종속되어 있고 몸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부지런히 뛰어야 하는 것이 마음의 운명이다. 육단심이든 연려심이든 집기심이든 나의 이익을 위한 생각으로 수렴되고 귀결된다. 다만 생각에 휘감겨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오래 고통을 받거나 자살을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생각하면서도 생각하지 말라’는 혜능의 조언은 생각을 이용하되 생각에 이용당하지 말라는 소리다.
생각이 지닌 단적인 특징은 분별과 선택이다. 이것과 저것을 나누고 안과 밖을 나누고 행복과 불행을 나누고 이익과 불이익을 나눈다. 문제를 쪼개놓아야만, 내가 어디까지 피할 수 있는지 무엇까지 가질 수 있는지 누구까지 내편이 되어줄 수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이로움이 될 것을 선택한다. 삶이 괴로운 까닭은 정말로 삶이 괴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임의대로 생각을 잘라서 쓰던 버릇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내 몫을 갈라놓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나의 적으로 돌아선다. 또한 정작 내가 저버려놓고는, 나중에는 가지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후회하거나 질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지 말아야만, 삶과 화해할 수 있다.
조주종심에게 누가 물었다.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有嫌揀擇’이라 했는데 이마저도 간택이 아닙니까?”
조주가 말했다. “어째서 그 화두를 다 인용하지 않는가?”
질문을 던진 자가 답했다. “거기까지만 기억합니다.”
조주가 답했다. “지도무난 유혐간택이다.”
‘지극한 도를 알기란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하지만 말라(至道無難 有嫌揀擇)’은 선종의 3조 승찬이 저술한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이자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조주 역시 승찬의 경구警句를 인용하며 생각의 결점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한편 간택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의 간택 결국 생각이 아니냐는 반론이 날카롭다. 그러나 여기에 말문이 막힐 조주가 아니다. 구순피선이란 명성답게 별 어려움 없이 반론의 기를 꺾는다. 생각의 경계에 빠져들어 헷갈리거나 우물쭈물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말하고 있다. 어찌 됐든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니 오직 간택하지만 말라.” 부연설명 없이 신심명의 구절을 그대로 반복하는 행위는 ‘간택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의 간택이라는 것도 간택일 뿐’이라는 되치기다. 깊게 생각해봐야 뾰족한 방도는 없으니 그쯤에서 그만두라는 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기껏해야 꼬리나 물 줄 안다.
여하간 내가 잘 살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잘 산다고 해서 세상이 잘 살지는 않는다. 나는 가만히 고분고분 서 있는데 돌연 세상이 불어와 가지를 거세게 흔들거나 심지어 내 나무를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수도 있다. 운명 앞에서 간택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바람도 살아야 하니까, 자기도 잘 살아보려니까 내게 패악을 부리게 된 것이리라. 곧 나의 생각은 나의 삶 안에서만 유효하다. 남들의 삶이 와 괴롭히면 대책이 없다.
자아는 불완전하다. 육단심과 연려심과 집기심은 한계가 명확하다. 견실심만이 참다운 생각이요 삶의 희망이다. 술 취해서 나불거리는 마음을 견실하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즐거워서 들뜬 마음도 그렇지 않다. 슬퍼서 하소연하는 마음도 두려워서 벌벌 떠는 마음도 매한가지다. 반면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면 견실하다고 한다. 시련을 굳세게 견디면 견실하다고 한다.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을 하되 생각을 하는 그 힘으로 동시에 실행하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금 주어진 일을 하라. 그냥 하고 빨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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