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로 세상 읽기]
꾸밈이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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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9 년 6 월 [통권 제74호] / / 작성일20-05-29 10:43 / 조회6,845회 / 댓글0건본문
김군도 | 자유기고가
조주 화상이 한 암주를 찾아 물었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그 암주가 주먹을 들어보였다. 조주가 “물이 얕아 배를 세울 곳이 안 되는군요.” 하고 돌아갔다. 또 다른 암주를 찾아 “계십니까? 계십니까?” 하니 암주가 역시 주먹을 들어보였다. 조주 스님이 이를 보고 “능수능란하고 살활자재하다.”고 칭찬했다.
趙州到一庵主處問: “有麽有麽?”. 主竪起拳頭, 州云: “水淺不是泊舡處”, 便行. 又到一庵主處云: “有麽有麽?” 主亦竪起拳頭, 州云: “能縱能奪能殺能活.” 便作禮. (『무문관』 제11칙)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선사는 『조주진제선사어록병행장趙州眞際禪師語錄幷行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등 현전하는 문헌에 의하면 중국 산동성 조주부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학郝씨이고 법명은 종심이며 조주는 법호다.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 20년간 법을 배운 후 그의 뒤를 이었다. 조주선사는 각 지방을 순례하면서 여러 대덕들을 만나 법거량하며 선기禪機를 다듬었다고 한다. 당시 조주선사는 “7세 아동이라도 나보다 나으면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세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하면 내가 그를 가르칠 것이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선사의 선풍은 고준하고 질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직설적이기도 했고, 어떤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친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문관』 제11칙에 전해지는 이 공안은 선사의 법거량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주선사가 어느 날 한 암자를 찾아가 ‘계세요? 계세요?’ 하니 암주가 아무 말 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였다. 이에 조주 선사는 “물이 얕아 배를 댈 수 없다.”며 돌아 나왔다. 암주의 법력이 아주 보잘 것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어 찾은 다른 암자에서 암주 역시 아무 말 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인다. 전 암주의 상황과 똑같다. 그런데 조주선사의 반응은 정반대다. 이번엔 “능통능란하고 살활자재하다.”면서 암주의 법력을 높이 샀다.
같은 상황에 나타난 서로 다른 반응
같은 상황에 정반대로 나타난 조주선사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조주선사는 있는 그대로 반응했을 뿐이다. 전암주는 채 무르익지 않는 법력에서 주먹을 불끈 들어보였으니 가소로웠을 뿐이고, 후암주는 터질 듯 농익은 법력 상태에서 주먹을 들어보였으므로 그 선기가 허공을 차고 넘친다. 그러므로 선사의 칭찬세례가 가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전암주는 자신의 법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꾸몄다. 마치 크게 있는 것처럼 치장한 것이다. 반면 후암주는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자신의 법력을 드러냈다. 차이는 거기에 있었고 조주선사는 그에 따라 자신의 반응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나라에 요즘 외모 지상주의가 젊은이 사이에서 크게 번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옷과 머리 모양 등을 따라 자신들의 외모 가꾸기가 유행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예뻐지고 싶은 것은 인간 누구나 갖는 욕구다. 한 통계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은 외모 가꾸기에 하루 평균 53분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루 8.3회 거울을 보고 있으며 화장품의 종류는 기초화장을 포함해 7개를 넘는다고 밝혔다.
외모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13~43세 여성의 68%가 “외모가 인생의 성패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으며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의 절대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외모 지상주의로 불리는 ‘루키즘Lookism’이 대도시는 물론 지방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의 영향에 힘입어 성형외과 의사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전철을 오가는 대형입간판과 웬만한 여성 월간지엔 성형을 유혹하는 병원과 의사의 광고로 넘쳐난다.
불교의 출가 수행자는 머리를 깎고 버려진 헝겊을 모아 물을 들여 꿰맨 옷을 입어야 한다. 이것이 삭발염의削髮染衣다. 엄격한 계율을 중시하는 출가승들에게 있어서 외모를 가꿀 여지란 없다. 출가 수행자가 머리를 깎는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다른 종교의 출가 수행자와 모습을 다르게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세속적 번뇌를 단절하기 위함이다. 삭발은 다른 말로 ‘체발剃髮’ 또는 ‘낙발落髮’이라고도 한다. 낙발은 세속적 번뇌의 소산인 일체의 장식을 떨쳐버린다는 의미에서 낙식落飾이라고도 부른다. 또 하나 출가 수행자에게 있어서 머리를 무명초無明草라고도 부르는데 출가인이 머리 모양에 연연하는 것은 출가 의지를 흐리게 하고 무명을 증장시킨다 하여 이렇게 명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삭발과 외모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현대의 세속인이 하루 평균 53분을 외모 가꾸기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면 출가자는 그럴 시간에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시로 삭발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아가 외모 보다는 내적 성숙과 발전을 기해 불성佛性을 길러야 한다는 불가 전통의 엄숙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삭발염의는 또 무엇보다도 평등성을 지향하는 출가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외모로 평가되지 않는 특징이라는 말이다.
조주선사는 각기 다른 암자의 암주가 손을 들어 보이는 똑같은 응답을 했음에도 하나는 ‘미치지 못한다’며 폄훼하고 또 다른 하나에 대해선 극찬했다. 왜 그랬을까 원인은 꾸밈에 있었다. ‘물이 얕아 배가 머물 수 없다’며 수모당한 암주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치장을 했다. 치장은 번뇌에 해당하며 자신을 속박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능통능란하고 살활 자재하다’며 칭찬받은 암주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 인위적 힘을 빌려 외양을 가꾸지 않더라도 수행이 수승하므로 눈빛이 형형하다. 수행이 잘 된 스님들은 삭발염의의 모습이지만 거기에서 남다른 자태가 빛으로 드러난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게에 압도되면서도 수행자다운 면모에 외경심畏敬心이 발휘된다.
우연히 만들어지는 인생이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폐인으로서는 최초 공식적으로 라이브 드로잉 작가로 등단한 한부열씨가 주목받고 있다. 그가 작품성을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단순히 자폐증에 대한 동정이 작용해서가 아니다. 그의 그림 소재는 일상의 경험들을 옮긴 것인데 작가의 꾸밈없는 천진난만한 시선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준비하거나 꾸미는 시간이 없다. 마음 내킬 때 주저 없이 있는 그대로 떠올린 영상을 화지 위에 옮긴다. 그는 1984년생이다. 2012년 그의 나이 29세 때 처음 붓을 잡았다고 하니 화력畵歷은 이제 겨우 7년차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이 대중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꾸밈이 없는 천진난만함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걸레 스님 중광이 꾸미지 않고 그려내는 그림을 선화禪畵라고 반겼던 것과 흡사하다. 한부열 작가가 더욱 대중들에게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아티스트로서만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한 베품에도 있다. 2014년 첫 개인전을 중국 홍십자(적십자) 100주년을 기념해 칭다오에서 한인문화대축제 초청전으로 가졌는데 이때 수익금 전액을 중국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의 수술비로 기부했다. 가식과 꾸밈이 없는 그의 그림활동이 이름을 더욱 빛내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인생이란 없다. 과거 출가 수행자들이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구도심을 발휘해 선풍을 드날렸듯이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삶의 이면에는 눈물과 고통을 이겨낸 역사가 숨어 있다. 이런 이치가 무시되는 삶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따라서 녹슨 쇠그릇이 금 그릇처럼 보일 수는 없다. 부지런히 갈고 닦아 제련의 과정을 거쳐야 빛을 취할 수 있는 법이다. 내면의 나를 잘 가꿀 때 용모 또한 준수하게 틀을 갖추고 품격의 향기가 상대방을 압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꾸밈과 가장과 위선을 털어내고 진실한 마음을 찾아야 하겠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란 외모 가꾸기에 있지 않다. 부처님 말씀대로 ‘마음 가꾸기’에 보다 우리 노력을 투자한다면 행복한 삶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면 먼저 ‘마음 가꾸기’로 방식을 바꿔보길 권한다.
조주선사는 120세까지 장수했다. 선사의 장수비결 역시 꾸밈이 없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선사는 임종을 맞아 제자들에게 당부하길 “내가 죽은 후 화장한 다음 사리를 챙기지 말라. 이 몸이 헛된 것인데 사리가 어찌 나오겠는가. 이는 부질없는 일이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보여주고 가신 대선사의 마지막 유훈에서도 진솔한 인간의 향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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