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허당지우의 법을 이어 순수선을 개척한 난포 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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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1:40 / 조회1,354회 / 댓글0건본문
일본선 이야기 5 |
일본 중세 선종의 특징 중 하나는 중국에서 본격적인 순수선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는 난포 조묘(南浦紹明, 1235〜1309), 슈호 묘초(宗峰妙超), 간잔 에겐(關山慧玄)의 3대에 걸친 오토칸(應燈關)의 일파다. 난포의 제자 슈호는 교토의 대덕사, 슈호의 제자 간잔은 묘심사의 개산조다.
허당지우를 사사하고 인가받다
시즈오카현 출신인 난포는 가마쿠라의 건장사建長寺에 주석하고 있던 중국 선사 난계도륭蘭渓道隆의 문하에서 15세 때부터 수학했다. 이후 난계의 지도로 1259년 송나라로 건너가 송원파의 허당지우虛堂智愚에게 사사했다. 8년간 수학하여 인가를 받은 후 귀국 후에는 규슈에서 법을 펼쳤다. 1304년에는 고우다 상왕의 초청을 받아 교토의 만수사 주지가 되었고, 1307년에는 건장사에 돌아와 활동하다 그곳에서 입적했다. 후에 엔츠다이오(圓通大應) 국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오늘날 임제종 대부분은 그의 계통에 속한다.
난포가 허당의 문하에서 어떻게 수학했는지는 사료가 거의 없어 불문명하다. 산재된 자료들에 의해 단편만이 알려져 있다. 『엔츠다이오국사어록』(이하 어록)에서는 1265년 31세에 좌선 중에 대오했다고 한다. 허당은 “남포가 마침내 대철大徹했다!”고 외치며 당내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변방에서 온 승려가 깨달음을 얻자 대중들도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남포는 확철대오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홀연히 심경心境을 함께 잊을 때, 산하대지는 기틀을 수려하게 벗는다. 법왕의 전신 전체가 현성하고, 시절의 사람은 서로를 대하여 서로를 모를 뿐.” 주객 미분의 상태에서 온 세계는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상대를 향한 분별 작용은 사라지고 진여의 상태만이 남는다. 법신의 세계에 합일하여 진리의 작용을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날카롭고 엄격한 선풍
난포가 수행한 경산의 만수사는 난계의 스승인 무준사범이 주지로 있던 곳이다. 난계는 1246년에 도일하여 당시의 실권자인 호조 도키요리에 의해 건장사의 개산조가 되었다. 건장사에서는 중국 선사들이 주로 활동하면서 중국과 일본 선문화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난계는 제자를 기르는 동시에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들을 중국으로 유학 보냈다.
『원형석서』에 의하면 그의 선풍은 초상화에서 느끼듯이 날카롭고 엄격했다. 그는 “참선하는 학인들 가운데는 일상에서 저 한 뙈기 오묘하고 맑고 신령하고 밝은 밭을 지나다니면서도 그곳에 있는 조옹祖翁을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만약 조옹을 알아차렸다면 내가 또 묻겠다. 계약서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계약서를 얻은 뒤에는 이 한 뙈기 땅이 너희의 처분에 맡겨질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중국의 활발발한 임제선을 전파하였다. 난포 또한 난계의 풍모를 그대로 전수받았음을 알 수 있다. 난계의 기획대로 난포는 중국에서 임제종의 선풍을 익히게 되었다.
1267년 33살에 난포가 귀국할 때 허당은 그에게 전별의 게를 주었다. “너는 제방의 문을 두들겨 정밀한 선의 깊은 뜻을 갈고 닦아 도달해야 할 곳에 드디어 도착하여 다시 일본에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일체를 분명히 너에게 다 주었다. 지금부터 너의 힘으로 일본에서는 날마다 선종이 번영하리라.” 다이오선(大應禪)이 꽃피울 것을 예언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경산의 승려들이 송별시를 선물했다. 후에 44인의 시를 편찬하여 낸 책의 제목을 『일범풍一帆風』이라고 했다.
외교적 활동
귀국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을 향하는 배가 있는 항구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했다. 갑자기 흰 토끼가 난포를 향해 달려왔다. 수십 마리의 늑대가 근처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난포는 토끼를 품에 안고 경문을 외었다. 그러자 늑대들은 산속 깊이 사라졌다. 토끼를 놓아 주었지만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앞서 가기까지 했다. 이윽고 배가 출항하는 종소리가 들리고 별수 없이 토끼를 다시 품에 안고 승선했다.
배가 현해탄을 건널 무렵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마저 불어 배가 흔들렸다. 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때 거칠던 바다 속으로 토끼가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 토끼가 지나가는 파도 위에 평탄한 길이 생겼다. 사람들은 배에서 내려 질풍노도의 양쪽 바다를 보며 걸었다. 하카타까지 이어져 그곳에 도착했다. 마침내 흰 토끼는 금색의 모습으로 변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팔대용왕이 되어 사라졌다. 이 용왕은 불법의 수호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불심을 깨달은 승려들을 위호하는 민중의 마음이 투영된 설화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난포의 법력을 상징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포는 귀국 후 주로 규슈 각지에서 30여 년 동안 법을 선양하며, 9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엔니벤넨이 세운 숭복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임제선을 알렸다. 이 외에도 막부의 명에 의해 원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여 외교 사무를 맡기도 했다. 당시 중국과의 교류는 중국 유학승들의 능력을 활용했다. 중국 사정에 밝고, 언어와 문서작성에 능했던 때문이다. 1273년 원나라 사신 조양필과 시를 주고받기도 했다.
어록의 내용을 소개한다. “외국의 덕 높은 인사가 일본에 오니 서로 만나 담소하며 현묘한 도리를 토로하다.” “먼 이역이지만 길은 다르지 않고 눈을 마주친 순간 도가 그곳에 있으니 그 위에 누가 있으랴.” 전통적으로 촉목보리觸目菩提와 목격도존目擊道存의 세계는 도를 체득한 선승들의 기틀을 말한다. 도학을 삶의 목표로 두었던 인문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동아시아의 지智의 교류를 목격하는 듯하다. 또한 1274년과 1282년 몽고가 고려군과 함께 침입했을 때 그곳의 현지사령관인 쇼니시의 외교고문이자 가정도사를 맡기도 했다.
그렇다면 난포의 선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훗날 임제종의 중흥조인 하쿠인 에가쿠(白隠慧鶴, 1686〜1769)가 체계화시킨 공안선의 기능을 일찍이 분석한 엔니벤넨의 사상을 계승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에 있다. 하쿠인은 공안선을 법신·기관機關·언전言詮·난투難透·향상의 다섯 가지로 보았다. 엔니는 이치·기관·투과·향상을 언급했다.
난포는 어록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 종宗에는 3중의 뜻이 있다. 소위 이치·기관·향상이 그것이다. 처음의 이치라는 것은 제불이 설한, 더불어 조사가 보인 심성 등 이치의 말이다. 다음으로 기관이라는 것은 제불조사가 참된 자비를 내려 이른바 코를 짓눌러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진흙소가 허공을 날고, 석마石馬가 물에 들어가는 것 등이 이것이다. 뒤의 향상이라는 것은 불조의 직설, 제법의 실상 등, 소위 하늘은 바로 하늘, 땅은 바로 땅, 산은 바로 산, 물은 바로 물, 눈은 가로로 코는 바로 뻗은 것 등 바로 이것이다.”
이치는 제불조사들이 설한 이치를 탐구하는 교리를 말한다. 기관은 현실의 삶 속에서 묘처를 참구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직입하는 것을 말한다. 향상은 언어와 현실을 뛰어넘어 모든 수행의 자취마저도 남기지 않는 중에서도 바로 여기에서 진리가 현성現成하는 것이다. 일본 선종사에서 난포의 위치는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일본 내에서 대하는 임제종의 종풍을 토착화시킨 주역인 점에 있다.
교토 대덕사에 차문화를 전수하다
난포는 경산의 만수사에서 선학을 배우는 동시에 제다製茶 기술과 다연의례茶宴儀禮를 배웠다. 스승으로부터는 다대자茶臺子를 비롯한 여러 다구들을 받았다. 또한 제다법, 음다법을 배우고, 『다도청규』와 같은 다양한 차 문헌, 여러 종류의 차를 가지고 귀국했다. 이로써 일본의 다도세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경산 다대자는 다연의 핵심 도구다. 그 위에는 차를 우릴 때 쓰는 자사호紫沙壺, 자기로 만든 잔, 주석제 다관茶罐 등을 놓는다. 다연의 필수물들이다. 매우 편리한 도구인 셈이다. 이를 천룡사의 개산조 무소 소세키(夢窓疎石)가 소유하여 다연을 베풀기도 했다.
그가 가져온 중국의 차 문화는 교토 대덕사에 전수되었다. 훗날 대덕사가 선과 차의 역사로 유명하게 된 것은 난포의 덕이다. 지금도 사원 안에는 그 당시의 다실인 밀암석密庵席을 비롯한 다양한 다도문화와 관련된 시설들이 남아 있다. 대덕사에는 1265년에 스승 허당의 초상화를 제작하여 그에게 찬문을 부탁하여 직접 쓴 묵적이 있다. 중국에서 가져온 유학승들의 묵적은 일본의 다실을 장식하는 다괘가 되었다.
대덕사가 본격적인 중국풍의 차문화를 갖게 된 것 또한 난포의 공덕이다. 대덕사는 훗날 사회를 풍자하며 해학이 담긴 광가狂歌와 서화는 물론 파계행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파천황의 선승 잇큐 소준(一休宗純)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광운집狂雲集』에는 난포에 대해 언급한 시가 있다. “활안대개活眼大開의 진면목, 천년 뒤에도 정혼精魂을 놀리도다. 허당화상의 법손은 난포이며, 동해의 잇큐는 그의 6대손이다.”라고 한다. 잇큐의 자유자재한 선풍의 기원이 살활자재한 난포의 임제선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난포의 문하
난포의 제자 중 슈호 묘초는 당대唐代의 선풍을 부활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공안을 창안하여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야말로 허당과 난포의 뜻을 잘 이해한 선승이었다. 그는 학문으로는 박람강기한 자에 지나지 않으며, 대장부가 되는 것은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의 선의 세계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23세에 가마쿠라 만수사의 고호 켄니치(高峰顯日)의 문하에서 수행했다. 좌선삼매 중에 벽을 사이에 둔 한 승려가 “영광독로靈光獨露하여 형탈근진逈脫根塵하니 체로진상體露眞常하여 불구문자不拘文字로다.”라는 백장선사의 법어를 외는 것을 듣고 단박에 깨달았다. 견해를 들은 고호는 “참되고 바른 견해”라며 인가했다.
그때 이 견해를 인정하지 않은 난포가 교토에 왔다는 사실을 들은 슈호가 인사하고 그를 따라 참선했다. 가마쿠라의 건장사에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운문雲門의 관자關字’ 화두를 타파하여 일거에 대오했다. 난포는 슈호의 견해를 듣고는 “어젯밤에 운문대사가 내 방에 들어오는 꿈을 보았다. 너는 운문대사가 다시 온 것이다.”라고 했다. 이후 20여 년간 초암을 짓고 교토에서 걸식을 했다. 엄하기 이를 데 없는 수행 풍모로 인해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숙부의 귀의에 의해 대덕암大德庵을 짓게 되었다. 훗날 많은 명승들을 배출하고, 일본차의 진원지로 유명한 대덕사가 바로 그곳이다.
준재들을 길러낸 난포는 본격적인 임제선의 세계를 일본에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산하대지, 초목수림, 눈에 들어오고 귀가 듣는 것은 공안이 아님이 없다.”라는 그의 법어는 임제선의 선풍을 잘 보여준다. 난포의 시대는 남송에서 원으로의 교체기였다. 일본은 송나라와의 무역은 번성했지만, 원나라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갖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선승들이 그랬듯이 문물 교역의 전담자로서, 상대방 이익의 균형을 잡는 외교관으로서, 그리고 불조의 혜명을 잇고 계승하는 진리의 수호자로서 고난의 시기를 운명으로 알고 개척해 왔다. 난포 또한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는 어느 해 석존의 열반일을 당해 상당하여 설했다. “불신佛身은 법계에 충만하다. 널리 일체의 군생 앞에 드러나도다.” 1309년 75세의 난포는 건장사에서 결가부좌하고 법신과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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