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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서유기 ]
손오공의 수행과 깨달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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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2:39  /   조회1,41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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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왕은 나무꾼의 도움으로 영혼의 산(영대방촌산), 마음의 동굴(사월삼성동)에 이른다. 그러나 원숭이 왕은 바로 동굴에 들어가지 않고 그 앞 소나무 위에 올라가 논다. 얼마 후 동자가 나타나 그를 동굴 속으로 안내한다. 동굴 속에는 화려한 누각들과 고요한 거처가 줄지어 들어서 있었고, 동굴의 끝에 이르자 옥으로 된 좌대[瑤臺] 위에 수보리 조사가 앉아 있었다. 

 

마음의 동굴에서 일어난 일들

 

수보리 조사는 원숭이 왕이 돌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손오공孫悟空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공空의 도리를 깨달으라[悟]는 과제를 내린 것이다. 수보리 조사의 문하에 들어간 손오공은 물 뿌려 청소하기, 사람 상대하기, 행동거지 배우기 등을 통해 공부하며 일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스승의 법문이 남김없이 이해되고, 나아가 스승의 마음과 하나로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손오공이 수보리 조사에게 배우고 수행하는 과정은 문밖[門外]→입문入門→승당昇堂→입실入室의 궤적을 그린다. 처음에 문밖을 맴돌던 손오공은 동자의 안내를 받아 동굴 속의 화려한 누각과 고요한 수행처를 목격한다. 그 동굴 깊은 곳에서 손오공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생활 속의 제반 범절을 익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진리의 흐름에 들어가게 된다. 입문이다. 그런 뒤 스승의 법문이 남김없이 이해되는 눈뜸을 체험한다. 승당이다. 승당 이후 손오공은 스승의 암시에 따라 야반 3경에 스승의 방으로 들어가 스승과 한마음으로 만난다. 이것이 입실이다.

 

문밖[門外], 소나무 위에서 놀기

 

나무꾼의 도움을 받아 영대방촌산 사월삼성동에 도달한 원숭이 왕은 그 앞 소나무 위에서 논다. 간절히 찾던 스승이 가르침을 펴고 있다는 동굴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째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무 위에서 노는 것일까? 여기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두 의미가 있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는 원숭이 왕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그냥 나무 위에서 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진 1. 소나무 위에서 노는 손오공.

 

나무는 원숭이의 삶의 현장이다. 원숭이는 마음 밖에 별도의 진리가 있지 않다는 사실, 지금의 이 현장 외에 진리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현장을 대면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때 진리의 동굴 문이 열리고 동자가 나타난다. 동자는 자아의 벽이 없는 천진한 존재라는 점에서 진리에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한다. 문수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오공을 마음의 동굴로 안내한 동자는 문수보살의 화신이다. 왜인가? 손오공의 구도여정은 형상적으로 『화엄경』의 선재동자와 겹친다. 그 선재동자를 구법여행에 나서도록 한 최초의 스승이 문수보살이었다. 문수보살은 주로 동자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들에 있어서 손오공을 안내한 동자는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동굴에 들어가지 않고 그 앞에서 노는 원숭이 왕의 상황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는 나무 위의 원숭이가 노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움직일 때는 옛 가지를 놓기 전에 새 가지를 잡는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我執을 내려놓았다면서 대상에 대한 집착法執에 빠져버리는 수행자의 상황에 대한 비유가 된다. 『금강경』 식으로 말하자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내려놓았다고 자부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했다는 새로운 집착의 가지를 움켜쥐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부처님에게 한 브라만이 두 손으로 오동꽃을 받들어 바치자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내려놓으세요.” 브라만이 왼손을 내려놓자 부처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내려놓으세요.” 브라만이 오른손까지 내려놓자 부처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내려놓으세요.” 브라만이 말한다. “두 손을 모두 내려놓았는데 뭘 내려놓으라는 겁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그대가 상대하는 대상들(6진)과 그것을 인식하는 감각기관들(6근)을 내려놓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인식과 분별(6식)까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태어남과 죽음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집착을 내려놓았다는 자의식 자체가 새로운 집착이다. 그 내려놓음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삼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 가지를 잡으면서 옛 가지를 놓는 원숭이의 나무타기와 같다. 아집을 내려놓았다면서 법집에 빠져버리는 이러한 상황은 대승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제대로 된 수행이 아니다. 다행히 원숭이 왕은 동자가 나타나는 순간 잡고 있던 가지를 모두 놓고 나무에서 내려온다.

 

입문入門 1, 고요한 거처와 화려한 누각

 

원숭이 왕이 동자의 안내를 받아 동굴에 들어가 보니 점입가경漸入佳境의 경계가 열린다. 동굴은 수많은 고요한 거처[靜室幽居]와 화려한 누각[珠宮貝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요함과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수행의 바른길을 제시하기 위한 비유이고 상징이다. 먼저 고요한 거처는 선정을 상징한다. 나와 대상이 하나로 만나는[心一境性] 것이 선정이므로 양변에 의한 갈등이 사라져 고요하다.

 

화려한 누각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밝은 관찰을 상징한다. 주체와 대상이 한 몸으로 통일된 상태에서 알아차리는 일이므로 한 방울의 물조차 버릴 일이 없다. 이처럼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을 때 수행에 진전이 있게 된다. 원숭이 왕은 고요함과 화려함의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계속한다. 정혜쌍수이며 중도 수행인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불성을 확인하는 자리에 이른다. 

 

수보리 조사: 네 부모의 원래 성이 무엇이냐?

원숭이 왕: 저는 부모가 없습니다.

수보리 조사: 부모가 없다면 나무에서 생겼다는 말이냐?

원숭이 왕: 나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돌에서 생겨났습니다. 화과산 위에 신비한 돌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돌이 깨지면서 제가 생겨난 겁니다.

수보리 조사: (속으로 기뻐하며) 그렇다면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것이로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돌원숭이[石猴]의 돌 석石 자는 부처 석釋과 발음이 같다. 원숭이 왕은 스승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부처의 소생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최초의 만남에 불성을 말하는 제자! 조사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버지가 없어서 성이 없는 아이[無姓兒]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5조 홍인스님이 처음 4조 도신스님을 찾아갔을 때의 장면과 겹친다. 

 

도신: 네 성姓이 무엇이냐?

홍인: 성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성이 아닙니다.

도신: 무슨 성이 그런 거냐?

홍인: 불성佛性입니다.

도신: 그러면 너는 성姓이 없느냐?

홍인: 자성에 실체가 없으니[性空] 성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원숭이 왕과 수보리 조사 간의 대화와 완전히 겹친다. 불성에 대한 이러한 대화는 6조 혜능스님이 5조 홍인스님을 찾아갔을 때 또다시 재연된다. 홍인스님이 “남방 오랑캐가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혜능스님이 “사람에게는 남과 북의 구별이 있겠지만 불성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듯 대답한 일이 그것이다.

 

사진 2. 4조 도신선사.

 

불성을 주제로 하는 이 대화는 그 스승이 선종 조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원래 수보리 조사는 공(수보리)과 불성(조사)을 통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다. 수보리 조사가 동굴 속의 옥 좌대[瑤臺]에 앉아 있는 일 또한 공(동굴)과 불성(옥 좌대)의 결합을 형상으로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서 동굴은 비어 있으므로 공이다. 옥으로 된 좌대[瑤臺]는 불변성과 부동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불성의 상징이다. 원래 옥은 돌 속에 간직되어 있다. 돌에 갇힌 옥, 그것은 번뇌에 가려진 불성의 비유이다. 손오공은 돌을 깨고 나온 돌원숭이[本覺]로서 다시 한번 스스로를 깨뜨려 옥으로서의 본체를 완전히 드러내는 여정[始覺]을 걷게 된다. 그 출발점에 옥의 좌대 위에 앉아 몸소 불성을 증명하고 있는 선종의 조사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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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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