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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해우당 원융 대선사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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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47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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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수좌 해우당海牛堂 원융圓融 대선사(1938~2019)가 3월3일 해인사 관음전 수좌실에서 입적했다. 세수 82세, 법랍 48년. ‘간화선 선양’을 사명으로 생각했던 선사는 열반 전 문도와 제자들에게 “평생 좌우명인 ‘깨달음을 극칙極則으로 삼는다’는 이오위칙以悟爲則을 명심하며 절대로 화두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를 하며 오직 화두참선을 통해 생사해탈에 이를 것을 마지막까지 강조했다.  

 

 

멀리서 성철 스님을 모시고 있는 원융 스님

 

 

 

성철 스님을 모시고 있는 원융 스님(뒷줄). 앞줄 왼쪽부터 법전 스님, 성철 스님, 혜암 스님. 일타 스님

 

 

 

선사는 청년 시절 조계사에서 청담 대종사로부터 『신심명』 강의를 듣던 중 홀연 발심해 수행자의 길을 서원했고, 당대의 선지식인 성철 대종사를 스승으로 1972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1974년부터 해인사 퇴설당 선원에서 12년간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실천한 것은 유명하다. 1993년부터는 해인사 선원장과 해인총림 유나維那로, 2006년부터는 해인총림 수좌首座로 후학들을 제접해 왔다. 

 

선사는 스승 성철 대종사에 대한 지극한 신심으로 평생 선방시자를 자처하며 스승의 법문집인 『본지풍광』과 『선문정로』의 필사를 도왔고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전심법요』, 『임제록』, 『조주록』 번역에 힘을 보탰을 뿐만 아니라 1999년 『간화선』을 저술하여 선종의 돈법頓法사상 선양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 기본선원 교선사敎禪師 시절에는 손수 편집한 『서장』을 교재로 후학들의 안목을 열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2002년 동안거 해제 후에는 일주일 동안 서울 사당동 정안사 묘심선원에서 『서장』 강석을 폈고, 2005년 부산 범어사 설선說禪대법회에서 4,000여 명의 사부대중에게 간화선의 요체를 밝히는 사자후를 토했다. 

 

선사는 생전 스승 성철 대종사에 대해 “큰스님은 본분종사로 평생을 일관하신 분입니다. 큰스님의 사상이야말로 우리 선종의 사상이고, 선종 사상은 불교의 핵심을 차지하는 바른 이념입니다.”라고 강조하곤 했다. 다비식은 3월7일 해인사에서 해인총림장으로 영결식이 마무리된 뒤, 해인사 연화대에서 거행됐다. 

 

 

원융 스님의 사형인 천제 스님이 원융 스님 영전에 분향하고 있다.

원융 스님의 상좌 스님들이 3월 7일 합장한 채 다비식장을 지키고 있다.

3월 7일 해인사에서 거행된 원융 스님의 다비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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