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불[火]국토처럼, 명자꽃 피다
페이지 정보
최재목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40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우리 중간 중간 줄줄 새면서 살아왔지만
사이 길에 붉은 꽃 되어, 가을 드는 마을에 마주 앉았다
차마 들킬까 이 마음 숨긴 끝자락 아프도록 문지르며
이나무 먼나무…, 그런 이름들만 들먹여 봐도
아득하여라
햇살로 꽃잎 다독이며 계신, 허접하여 거룩한 하느님
하마터면 뚝뚝 다 익어서 떨어질까 봐
대봉감 홍시 딛고, 하나…둘…일곱 발자국 걸어, 가랑잎 흔들리듯
고요 속을 디디며 부처는 올까
가장 존귀한 것이라곤
얼굴 붉히며 타오르는 이 마음 밖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아니 천상천하 You are 독종…
그래, 세상 살며 진 빚 어쩌다 중간 중간 가을 햇살로 터져
짓무르는데
손 벌려도 더는 없더라, 거기 그저 명자꽃만 궁시렁 궁시렁
불(火)국토처럼, 피어있더라
하마터면 참 아름다웠을 꽃이여
맨발
이 벌판 위에는
여름이라는 맨발이
걸어간다
애비 없는 추억들이, 집 잃은 게딱지 햇살들이
신발을 벗어들고
허물어진 개미둔덕을 넘어,
어리석은 고로, 진실에서만 철썩이는 파도들이
해당화 가시들이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벗어놓고
노을 속으로
에미 없는 돌을 밟으면서
맨발로 걸어간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