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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손가락 사이]
불[火]국토처럼, 명자꽃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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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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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우리 중간 중간 줄줄 새면서 살아왔지만
사이 길에 붉은 꽃 되어, 가을 드는 마을에 마주 앉았다
차마 들킬까 이 마음 숨긴 끝자락 아프도록 문지르며
이나무 먼나무…, 그런 이름들만 들먹여 봐도
아득하여라
햇살로 꽃잎 다독이며 계신, 허접하여 거룩한 하느님
하마터면 뚝뚝 다 익어서 떨어질까 봐
대봉감 홍시 딛고, 하나…둘…일곱 발자국 걸어, 가랑잎 흔들리듯
고요 속을 디디며 부처는 올까
가장 존귀한 것이라곤
얼굴 붉히며 타오르는 이 마음 밖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아니 천상천하 You are 독종…
그래, 세상 살며 진 빚 어쩌다 중간 중간 가을 햇살로 터져
짓무르는데
손 벌려도 더는 없더라, 거기 그저 명자꽃만 궁시렁 궁시렁
불(火)국토처럼, 피어있더라
하마터면 참 아름다웠을 꽃이여

 


 

 

맨발

 

이 벌판 위에는
여름이라는 맨발이
걸어간다
애비 없는 추억들이, 집 잃은 게딱지 햇살들이
신발을 벗어들고
허물어진 개미둔덕을 넘어,
어리석은 고로, 진실에서만 철썩이는 파도들이
해당화 가시들이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벗어놓고
노을 속으로
에미 없는 돌을 밟으면서
맨발로 걸어간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최재목
영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영남대 철학과 졸업,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 취득. 전공은 양명학・동아시아철학사상・문화비교. 동경대, 하버드대,북경대, 라이덴대(네덜란드) 객원연구원 및 방문학자. 한국양명학회장 · 한국일본사상 사학회장 역임했다. 저서로 『노자』,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일본판, 대만판, 중국판, 한국판),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상상의 불교학』 등 30여 권이 있고, 논문으로 「원효와 왕양명」, 「릴케와 붓다」 등 200여 편이 있다.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6권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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