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서산대사-푸른 물이여! 청허의 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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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19 년 3 월 [통권 제7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59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 문학평론가
오랫동안 묘향산 서쪽에 살았다 하여 묘향산인 또는 서산 대사로 불리는 청허휴정(1520~1604)은 1534년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친구들과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숭인 장로를 만나 큰 꿈을 이루려면 ‘심공급제’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불교에 입문하였다. 부용영관에게 선을 배우고, 18세에 구족계를 받고 법명을 휴정이라 하였다. 휴정은 1552년 부활된 승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후일에 선교양종판사를 지냈다. 또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구로 8도16종도총섭이 되어 승병을 모집, 한양 수복에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유정사명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에서 여생을 보내다 1604년 1월23일에 원적에 들었다. 세수 85세 법랍 67세였다. 선사가 남긴 『선가귀감』은 선문은 견성법見性法을 전하고 교문은 일심법一心法을 전하는 것임을 밝혀, 수행자의 지남指南을 알려주는 귀중한 텍스트가 되고 있다.
‘회통사상’으로 선교일치를 주장하고, 유불도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였던 휴정은 세속의 이해와 욕심을 버리고 초연한 ‘심공급제心空及第’와 ‘촉목보리觸目菩提’(주1)의 자세로 세상을 의연하게 살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의 시문학에는 선승으로서의 탈속한 마음의 경계가 한결 잘 묘사되고 있다. 휴정의 어릴 때 이름은 운학이다. 운학은 15세에 지리산에 들어온 뒤 출가 의 결의를 「화개동 입산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름은 화개로되 꽃은 지고 花開洞裏花猶落
청학동 둥지엔 학은 아니 드네 靑鶴巢邊鶴不還
잘 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珍重紅流橋下水
너는 바다로 가고 나는 산으로 가려네 汝歸滄海我歸山
- 「화개동 입산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지고한 몸짓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독특한 시적 서정이 만들어 낸 의경이 한결 돋보인다. 꽃피는 동네에 꽃은 피지 않고 오히려 지고 있으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청학동에 학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운학은 바다로 흘러가는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과 이별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입산, 출가하고자 한다. 담대하고도 조용하게 출가의 심경을 밝히는 시적 표현에는 장차 대선사가 될 운학의 놀라운 각성과 감성이 담겨 있다.
출가 후 휴정은 임제종의 종풍을 이어받아 청산과 백운을 아끼고 그들과 더불어 일심으로 수행정진 하였다. 그러던 휴정은 31세에 부활된 승과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그 후 중선中選을 거쳐 37세 때에 선교양종판사가 되었다. 또한 문정왕후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던 보우대사의 후임으로 봉은사의 주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벼슬과 명리가 출가의 본 뜻이 아님을 깨닫고 38세 때 승직을 버리고 금강산에 잠시 머문 뒤 40세에 마음의 고향인 지리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신라 때 창건된 화개동천의 허물어진 내은적암을 중수하고 맑고 가난하게 살고자 염원하며 자신의 호 청허淸虛를 따서 ‘청허원淸虛院ʼ이라 이름 하였다.
도반 대여섯이 有僧五六輩
내은암에 집을 지었네 築室吾庵前
새벽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晨鐘卽同起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暮鼓卽同眠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共汲一澗月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煮茶分靑烟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日日論何事
참선과 염불일세 念佛及參禪
- 「두류산 내은적암」
새벽에 일어나 취침 전까지 참선과 염불로 정진하던 휴정의 수행 일과가 선연하게 묘사되고 있다. 계곡물처럼 깨끗하고[淸]과 달처럼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비어있는[虛] 것을 관조하는 선승의 산중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청렬한 골짜기의 물을 퍼 차를 달여 마시는 대목은 선정에 드는 시심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달빛 아래 물을 긷는 것은 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달을 길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것은 달을 마시는 것이다. 그게 바로 다선일미요, 해와 달이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방촌일월方寸日月ʼ의 경지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선가귀감』 등의 저술활동을 했던 10년이 휴정에게 가장 빛나는 시기였을 것이다.
깨닫고 보면, 모든 분별망상이 없고 얽매임 또한 없으며, 진속일여이고 물아일체 그대로이다. 그래서 삼라만상은 진여일심의 표상이고 일체가 상호조응하며 하나로 된다. 휴정의 시 세계에서도 자연은 단지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연합일을 추구하는 이상이며 그 자신의 해탈의 경계이다. 휴정의 이러한 선심은 춘산春山의 맑고 그윽한 공적을 일깨워 주는 「불일암에서」라는 시에서 한결 깊어진다.
깊은 산속 암자, 붉은 꽃비처럼 흩날리는데 深院花紅雨
긴 대숲에 어린 안개는 푸른 연기일레라 長林竹翠烟
흰 구름은 산 고개에 엉기어 잠을 자고 白雲凝嶺宿
푸른 학은 스님을 벗 삼아 졸고 있네 靑鶴伴僧眠
- 「불일암에서」
세상 바깥에서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휴정의 세외지심世外之心이 잘 드러나 있다. 화사한 꽃비가 날리고, 대숲에 안개가 드리워져 있으며, 멀리 산마루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다. 흰 구름은 아무런 걸림이 없는 이른바 부주심不住心, 즉 무상심의 선적 상징이다. 이처럼 분별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자연을 대하면 자연은 언제나 나와 하나가 되는 묘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산승으로서 휴정의 이러한 자연합일의 청정심은 다음의 시에서 잘 묘출되고 있다.
선방에 높이 누워 세상 티끌 멀리 떠나 雲房高臥遠塵紛
단지 솔바람 좋아 선방문을 열어 놓았네. 只愛松風不閉門
서릿발 같은 삼척검으로 一柄寒霜三尺劍
마음 속의 잡된 생각 모두 잘랐네. 爲人提起斬精魂
- 「각행대사 1수」
선방은 선승의 물외 공간으로, 세외지심世外之心을 함축한 세속 초월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성적적의 공적한 환경은 차갑고 순수한 감각을 제공한다. 이 차갑고 순수한 감각은 바로 깨달음의 여정에 들어가는 핵심적 요소이다. 이처럼 맑고 깨끗한 세계 속에서 화자는 서릿발 같은 삼척검, 즉 취모검으로 잡되고 산란한 생각머리[心頭]를 싹 잘라내고 무생의 이치를 깨닫는다. 미혹을 깨뜨리고 돈오의 경계로 진입하는 선심을 묘사하고 있다. 취모검은 칼날 위에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으로 ‘훅’ 불면 잘려지는 아주 예리한 명검을 뜻한다. 마음속 잡된 생각 모두 잘랐으니 화자는 마음과 풍경이 하나 되는 가운데 ‘영원’의 깨달음을 획득하게 된다.
진정한 선미는 청풍명월과 같은 맑고 차가운 청한淸寒의 경계에 있다. 일상 속에서 자연 경물을 접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경계는 선기禪機 넘치는 직관력으로 포착하여 함축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물은 스님의 푸른 눈과 같고 水也僧眼碧
산은 부처님의 푸른 머리일세 山也佛頭靑
달은 변치 않는 한 마음이고 月也一心印
구름은 만 권의 경이로다 雲也萬卷經
- 「사야정」
「사야정四也亭」은 한유韓愈의 「사시四時」 결구를 빌어 세간과 출세간의 동일성을 암시하고 있다. 물은 스님의 푸른 눈을 상징한다.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의 눈은 맑은 시냇물처럼 푸르고 맑다. 그래서 ‘벽안의 납자’는 눈 밝은 수행자를 의미한다. 또한 청산은 불변의 체로, 부처의 푸른 머리[佛頭靑]를 상징한다. 1구의 ‘푸른[碧]과 2구의 푸른[靑]의 낱말은 냉엄한 선적 세계와 맑게 갠 선적 각성을 상징하는 형용사이고 색상이다. 선가에서 달은 영원히 변치 않는 불성을 상징한다. 하나의 달이 천강을 비추듯 모든 중생의 마음속에는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달이 가장 투명하게 빛난다고 하여 달을 ‘일심인一心印’이라고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구름은 온갖 모습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을 한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대장경이다. 구름을 만 권의 대장경에 비유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삼라만상을 진여일심의 현현으로 보는 휴정의 물아일체의 자연교감을 잘 표현한 압권의 시이다.
구름과 산, 그 산이 머금고 있는 물, 그리고 달은 선승에겐 삶 그 자체와 하나가 되는 자연물이다. 텅 비고 집착이 없는 선의 마음으로 세계를 보면 어디에나 부처의 이치가 있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깨달음, 즉 ‘보리菩提’이다. 이것이 바로 ‘촉목보리’이다. 당나라의 시승 한산은 이러한 텅 비고 고요한 선심의 세계를 “내 마음은 가을 달과 같다[吾心似秋月]”는 시구로 표현하였다. 세속적인 욕망과 번뇌를 벗어버린,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은 곧 천강에 밝게 비친 달과 같다는 선심은 「청허가」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그대 거문고 안고 큰 소나무에 기대앉았으니 君抱琴兮倚長松
큰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이로소이다. 長松兮不改心
나는 길게 노래 부르며 푸른 물가에 앉았으니 我長歌兮坐綠水
푸른 물이여! 청허의 마음이로다 綠水兮淸虛心
마음이여, 마음이여! 내가 곧 그대로다 心兮心兮 我與君兮
- 「청허가」
‘맑고 텅 빈’ 선미는 선사가 자연과 더불어 선정에 잠길 때 한결 잘 드러난다. 청정한 자연이 그대로 청빈한 도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의 ‘거문고’는 줄이 없는 거문고인 심금心琴, 즉 마음을 상징한다. 줄이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울린다고 하여 이르는 말이다. 무한의 소리를 느끼고 감동하려면 분별과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줄 없는 거문고는 궁극의 소리에 이르는 법구인 것이다. 이처럼 선의 세계는 언어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한편,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인 자성을 상징한다.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본체를 인식한 긴 노래는 깨달음의 노래이다. 푸른 물은 휴정의 눈 밝은 모습이고, 맑고 빈 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대’와 ‘나’는 바로 휴정 자신의 마음과 육신의 이미지로 물아일체의 깨달음의 경지이다. 텅 비고 집착이 없는 선의 마음으로 세계를 보면 어디에나 부처의 이치가 있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깨달음, 즉 ‘보리菩提’이다. 이것이 바로 ‘촉목보리’이고 ‘일체현성’이다. 여기에 선적 사유를 통해 화엄법계를 조응하는 휴정의 시적 미학의 생명력이 있다 할 것이다.
주)
1) ‘심공급제心空及第ʼ는 마음이 비어 걸림 없게 됨으로써 만인을 품을 수 있는 경지를 말하며, ‘촉목보리觸目菩提’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그대로 보리, 곧 진리와 지혜와 깨달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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