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간다라 조각으로 보는 항마성도기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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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9 년 2 월 [통권 제70호] / / 작성일20-06-15 16:25 / 조회6,162회 / 댓글0건본문
유근자 | 동국대 겸임교수·미술사
고행, 고행의 중지, 수자타의 공양
사진 . 오른쪽부터 고행, 고행의 중지, 수자타의 공양, 간다라(2~3세기), 베를린아시아박물관
석가 보살은 ‘나는 하루 깨 한 톨과 쌀 한 알을 먹었으며, 때로는 이레 동안에 그렇게 먹기도 하였으니 몸이 야위어서 마치 마른 나무와 같다.
고행을 닦아 6년이나 되었는데 해탈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릇된 길이다. 이제 내가 만약 이 마른 몸으로 도를 얻는다면 저 외도들은 굶주림이 바로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할 것이다. 고행을 포기한 뒤 몸을 회복한 뒤에 도를 이루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과거현재인과경』 권3, <사진 1> 향 우측 첫 번째 장면).
“고행을 그만 둔 석가 보살은 자리에서 일어나 네란자라 강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였다. 그러나 몸이 너무 야위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올 수가 없자 천신이 내려와서 나뭇가지를 내려뜨려 주었으므로 그것을 잡고 강을 나올 수 있었다(『과거현재인과경』 권3).” <사진 1>의 중간 부분에는 나뭇가지를 잡고 물 위에 간신히 서 있는 석가 보살이 표현되었는데 『과거현재인과경』의 내용과 일치된다.
“그때 그 숲의 바깥에 소치는 여인이 있었는데 정거천이 내려와서 권하기를 ‘태자께서 지금 숲 속에 계시니 그대는 공양을 올리라’라고 하였다. 여인은 우유죽을 가지고 태자에게 공양을 올렸다. 태자는 여인의 보시를 받으면서 기원하였다. ‘보시하는 음식은 먹는 이에게 기력을 차릴 수 있게 하니, 보시하는 이는 담력을 얻고 기쁨을 얻어 안락하며, 병 없이 오래 살게 될 것이며, 지혜가 두루 갖추어지리라.’ 그리고 또 태자는 말하였다. ‘나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음식을 받는다.’ 기원하기를 마치고 우유죽을 드시자 몸에서 빛이 나고 기력이 회복되었다(『과거현재인과경』 권3, <사진 1> 향좌측 장면).”
<사진 1>은 향우측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데 석가 보살의 고행, 고행을 그만두고 네란자라 강에서 목욕하는 보살, 수자타로부터 공양을 받는 석가 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길상초를 보시받는 석가 보살
사진2. 길상초를 보시받는 석가보살,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기력을 회복한 석가 보살은 ‘과거의 부처님들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에 이르렀을 때 어떤 자리에 앉았을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풀로 된 자리였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풀로 된 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하자, 석가 보살의 오른쪽에서 풀을 베고 있는 사나이가 눈에 들어왔다. 『방광대장엄경』에 의하면 ‘보살이 깨끗한 풀 위에 앉아서 정각을 이룰 풀을 줄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자 제석천이 몸을 변화시켜 풀 베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는 보살의 오른편에 서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자리에서 풀을 지니고 서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풀은 청정하고 아름다우며 공작새의 깃털처럼 또는 고급 양탄자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었다. 더군다나 그 풀은 모두 오른쪽으로 말려 있었다. 석가 보살이 다가가서 그 사나이의 이름을 물으니 길상吉祥이라는 뜻의 솟티야(Sothiya, 吉祥)라고 했다. 솟티야로부터 길상초를 받은 석가 보살은 보리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다라의 불전도 가운데 <길상초를 보시 받는 석가 보살(사진 2)>의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풀베는 솟띠야의 머리 뒤에는 나무가 있고 풀은 이미 석가 보살의 손에 건네진 후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솟띠야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입는 짧은 하의下衣를 걸치고 합장하고 있으며, 그의 허리춤에는 풀을 베는 도구가 꽂혀 있다. 그와 석가 보살 사이에는 풀이 소복이 쌓여 있으며 보살의 뒤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헤라클레스 모습을 차용한 금강역사가 금강저를 손에 든 채 그를 호위하고 있다.
보리수 아래에서 만난 석가 보살과 마왕
사진3. 보리수 아래에서 만난 석가보살과 마왕, 간다라(2~3세기), 미국 클리브랜드박물관.
풀 베는 청년 솟티야로부터 길상초를 받아든 석가 보살은 보리수 아래로 발길을 옮겼다. 보리수 아래에 석가 보살이 앉자 마왕은 그가 곧 깨달음을 이룰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는 온갖 방해를 시작했다. 보리수 아래에 자리를 마련한 보살은 ‘내 이제 이곳에 앉아서 번뇌의 바다를 건너지 못하면, 차리리 이 몸을 부수어버릴지언정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그러자 욕계欲界의 주인인 마왕 마라가 나타나 이 보리수 아래는 밤이 되면 귀신과 야차 등이 자주 와서 사람의 고기를 먹는 무서운 곳이니, 우루웰라 촌락에 가서 머무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회유했다. 보살은 ‘이곳은 지난 옛날 모든 부처님도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고 하면서 떠나지 않았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에서는 ‘마왕이 보리수 아래를 택해 깨달음을 이루려는 보살을 방해하기 위해 그 앞에 동자로 변신해 나타났다’고 전한다. <보리수 아래에서 만난 부처님과 마왕(사진 3)> 불전도는 보리수 아래에서의 보살과 마왕 마라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보살이 앉을 보리수 아래에는 솟티야에게서 받은 풀이 깔려 있고, 그 아래에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에 ‘성난 얼굴을 한 채 작은 심부름꾼 동자로 변신한’ 마왕이 꿇어앉아 부처님께 간청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보리수를 사이에 두고 향좌측에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그 아래를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한 석가 보살이 서 있고, 반대편에는 깨달음을 방해하려는 세 명의 딸을 대동한 마왕이 마주보고 서 있다. 설전舌戰을 벌이는 모습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중앙의 보리수는 부처님의 성도를 뜻하는 우주축의 상징이며, 길상초가 표현된 사각형의 자리는 바로 부처님이 앉아 깨달음을 성취할 금강보좌金剛寶座를 의미한다.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
사진4. 항마성도, 간다라(2~3세기), 독일 국립베를린아시아박물관
부처님께서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나 출가 수행자가 되어 오랜 수행을 통해 깨달아 중생 구제의 길로 들어선 것을 우리는 항마성도降魔成道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욕망 세계의 주인공을 마왕으로 여겼고 욕망이 다스려진 평화로운 내면을 깨달음인 부처님으로 대비시켰다.
부처님의 일대기에서 욕계欲界의 주인공인 마왕 마라는 주로 언제 나타났을까? 부처님의 출가·성도·열반 장면에 어김없이 그는 등장하고 있다. 마왕이 위력을 발휘하는 최대의 순간은 불교의 시작을 의미하는 항마성도 때이다.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다양한 욕망의 세계를 석가보살 앞에 펼쳐 보이는 마왕은, 항마성도 장면에서는 겁박과 패배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딸들을 앞장세워 석가 보살을 유혹하기도 하고 군대를 동원해 위협해 보지만, 결국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표현한 불전미술에서는 이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간다라의 항마성도 불전도를 보자.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이르길 “그대는 전생에 착한 일을 한 가지 한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났지만 나는 무수한 세월 동안 공덕을 쌓아왔다”고 하셨다. 이에 마왕은 “그것을 누가 증명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이에 부처님께서 손으로 지신地神을 부르니 지신이 부처님의 과거생의 공덕을 증명했다고 한다.
<사진 4>는 부처님과 마왕과의 결전을 다룬 불전 경전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은 왼손으로는 가사 자락을 잡고 오른손을 내려뜨려 지신을 부르고 있다. 대좌의 풀잎 사이로 고개를 들어 합장하고 있는 여인은 부처님께서 전생에 쌓은 공덕을 증명하고 있는 지신이다. 간다라에서 처음 나타난 이 도상은 부처님을 대표하는 손 모양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기원이 되었다.
부처님의 좌우에는 공격하는 마왕과 그의 아들들에 의해 공격을 제지당하는 마왕이 표현되어 있다(사진 5). <사진 5>의 향우측에 허리에 찬 칼을 뽑아들고 있는 마왕은 공격하는 마왕이고, 향좌측의 왼손을 위로 들고있는 마왕은 공격을 제지당하는 마왕이다. 간다라에서 마왕을 갑옷을 입거나 무기를 든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호전적이었던 쿠샨 유목민을 반영한 것으로, 간다라 미술을 꽃피운 쿠샨족들은 마치 전쟁을 치르듯 석가 보살과 마왕의 결전을 묘사하고 있다. 대좌 앞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쓰러진 두 명의 인물은 패배한 마중魔衆을 표현한 것으로 마왕의 패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5. 항마성도, 간다라(2~3세기), 미국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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