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및 특별서평]
시인 21일의 작품세계 탐색
페이지 정보
김시열 / 2019 년 11 월 [통권 제7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445회 / 댓글0건본문
김시열 / 도서출판 운주사 · 자유문고 대표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백원기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자연 관조와 명상, 시가 되다>(운주사, 사진)는 한국 근현대 시인들 중에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면서 빛나는 서정 세계를 일궈낸 작가’들을 가려내 그들의 시 세계를 농밀하게 들여다보고 읽어낸 평론집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작가 21명의 대표적인 시들을 소개하면서, 그 시들이 품고 있는 의미와 속내에 치밀하게 천착하여, 이를 통해 문자 너머의 시인의 내면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저자가 다른 문인들은 이광수, 정지용, 박종화, 신석초, 정완영, 김상옥, 조지훈, 조병화, 신달자, 조창환, 이상국, 문정희, 최동호, 황지우, 최승호, 나병춘, 공광규, 이정록, 이홍섭, 장석남, 김선우 등이다. 한국문학사에서 나름대로 발자취를 남긴 작고 문인들과 현재 시적 성취를 이루어가고 있는 현역 원로 및 중진, 그리고 신진 시인 21명이 대상이며, 저자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정신의 긴장과 폭력, 분단과 전쟁, 가난과 슬픔, 생태위기와 생명연대의식, 그리고 비움과 버림의 세계관’과 맞닿은 다양한 시학을 담론으로 삼아, 각각의 시들이 품고 있는 내밀한 의미와 더불어 시인들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추적하고 있다.
사실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그야말로 격동과 변화, 변혁의 소용돌이 시기였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과는 물론이고, 삼라만상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존재인 시인은 응당 그런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내고 성찰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며, 절망하기도 하고 희망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면서 빛나는 서정세계를 일궈낸 사유의 시’를 내놓은 작가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1명의 시인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그것을 과시하며 끊임없이 대립한다. 때문에 근원적인 삶에 대한 의문을 우주에 던지고 그곳으로부터 답을 찾으려 하는 시인들은 자연 속을 거닐며 자연과 스스럼없이 교감하고, 마음에 이는 파문을 주시한다. 그래서 자연을 관조하는 일은 곧 자신을 들여다보는 명상이다.
생명경시가 만연한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상실과 불안감, 고독과 소외감은 이미 위험수위에 와 있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가슴을 적시며 영혼의 울림을 주는 ‘자연과 명상’의 시는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흐렸던 정신을 맑게 해준다. 아픈 영혼을 치유시켜 주고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이 책이 던져 주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은 자연친연성을 바탕으로 한 존재의 상호연기에 대한 깊은 천착을 드러내 보이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다분히 불교의 화엄적 상상력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므로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면서 빛나는 서정 세계를 일궈내고 있는 사유의 시들은 세상에 붙지 말고, 세상을 탈 줄 아는 반야왕거미의 지혜를 일러줄 뿐만 아니라 배려와 연민, 그리고 공감으로 끊임없는 명상과 치유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바로 여기에 실린 시들이 보여주는 치유의 힘이 있다.
모든 존재는 개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서로 물감처럼 번지며 또 다른 하나를 완성해 나간다. 여름이 번져 가을이 되고, 꽃이 번져 열매를 맺고, 삶이 번져 죽음이 되고, 저녁이 번져 밤이 되고, 나는 네게로 번지는 것이다. 이것은 바뀜이 아니라 번짐이다. 결국 번진다는 것은 경계와 경계를 무너뜨리는, 더 큰 하나로 전이되는 과정을 말한다. 즉 주고받음의 상쇄에 의해서 경이롭게 열리고 닫히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좋은 시는 마음으로 번져가는 시이고, 마음으로 읽는 시이며, 상생과 공감의 시로 읽히는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좋은 시, 좋은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성을 실현할 때
생명이 약동하는 봄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음력 2월 19일은 성철 종정예하의 탄신일입니다. 큰스님께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시고 난 다음 해, 큰스님 탄신일을 맞이하여 자리를 함께한 사형사제 …
원택스님 /
-
김천 송학사 주호스님의 사찰음식
경전의 꽃이라 불리는 『화엄경』을 수행 속 화두로 삼아 정진하고 있는 도량이 있습니다. 바로 김천 지례마을의 대휴사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 도량으로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92호인 목조보살 좌상…
박성희 /
-
티베트 불교의 학문적 고향 비크라마실라 사원
인도불교의 황금기에 빛났던 ‘마하비하라(Maha-Viharas)’, 즉 종합수도원 중에서 불교사적으로 특히 3개 사원을 중요한 곳으로 꼽는다. 물론 나란다(Nalanda)를 비롯하여 비크라마실라 그…
김규현 /
-
향상일로, 한 길로 올곧게
수행 방법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도수행을 하시는 분들이 상황에 따라 어떤 때는 이 기도를 하고 어떤 때는 저 기도를 합니다. 기도 방법이 다양하게 있는 만큼, 한 사람이 하는 기도의 종…
일행스님 /
-
갈등 해결과 전쟁 방지를 위한 불교적 해법
이 순간에도 세상의 어디에선가는 크고 작은 다툼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반인륜적인 잔학행위와 문명파괴 행위가 끊임없이 자행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불살생계不殺生戒를 강조하…
허남결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