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간다라 미술로 보는 부처님 출가기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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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9 년 1 월 [통권 제6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63회 / 댓글0건본문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 · 미술사
성도成道를 향해 가는 싯다르타의 여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은 태자 시절 아버지를 따라 참석한 농경제農耕祭 때 일어난 일이다. 잠부 나무[염부수閻浮樹] 아래에서 명상에 잠겼던 태자 시절의 행복한 경험은 출가한 수행자 싯다르타가 혹독한 고행을 포기하게 하고 결국 성불로 향하게 하는 나침반이 되었다.
잠부 나부 아래의 선정
부처님의 생애에서 특히 중요시 되는 몇 사건이 있는데 잠부 나무 아래에서 첫 선정에 잠긴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는 주로 벼농사 중심의 농경 사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례행사로 열리는 농경제는 카필라성의 축제이기도 하였다. 봄이 되면 씨앗을 땅에 심기 전에 행했던 농경제에 싯다르타 태자는 아버지 정반왕과 함께 참석했다.
정반왕은 아들 태자를 잠부 나무 아래의 시원한 그늘 아래 왕자를 머물게 했다. 나무 아래의 땅에는 최상의 천이 깔려 있었고 머리 위로는 형형색색의 천으로 만든 일산日傘이 설치되었다. 동행했던 시녀들과 호위대는 정반왕이 쟁기질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태자 곁을 떠났다.
싯다르타 태자는 잠부 나무 아래에 앉아 아버지의 쟁기질 장면을 보고 있었다. 흙덩이가 부서지며 벌레가 나오자 까마귀가 벌레를 쪼아 먹고, 또 지렁이가 나오자 개구리가 지렁이를, 뱀이 개구리를, 공작이 뱀을, 매가 공작을, 독수리가 매를 잡아먹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약육강식의 광경을 본 태자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어 고요하게 다리를 맺고 앉아 과거의 여러 겁 동안 많은 생을 살면서 습관적으로 실천했던 선정禪定에 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나무의 그늘은 변하고 있는데 태자가 앉아 있는 잠부 나무 그늘만은 정오가 지났는데도 태자가 명상에 잠길 수 있도록 머리 위에 둥근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반왕은 자신의 눈으로 이 광경을 보고는 감탄하였다.
잠부 나무 아래에서 첫 선정에 든 태자를 표현한 불전 미술 가운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소장품인 <사진 1>이 가장 유명하다. 잠부 나무 아래에 앉은 인물은 싯다르타 태자로 장신구를 걸치고 두 손을 배 앞에 둔 채 깊은 선정에 들어 있다. 태자가 앉은 대좌에는 오른쪽 끝에서부터 채찍을 든 농부와 쟁기질하는 두 마리의 소, 불이 피어오르는 향로, 향로를 향해 합장하고 서 있는 두 사람,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정반왕이 앉아 있다.
<사진 1>은 이야기 중심의 불전미술에서 단독 예배상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는 작품으로, 불전佛傳은 대좌에 작게 표현되고 예배상으로서 석가보살은 크게 표현되었다.
유람과 고뇌 … 아픈 사람을 만나는 싯다르타
성城 안에서 주로 생활하였던 싯다르타 태자에게 성 바깥으로의 유람은 가슴 설레는 나들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 밖으로의 유람은 삶은 고통으로 이루어진 또다른 세계라는 것을 경험케 하였다. 불전문학에서는 싯다르타 태자가 동남서북 네 문을 통해 밖에서 경험한 일들을 사문유관四門遊觀 또는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 한다.
싯다르타 태자가 왕궁의 정원에 머물고 있을 때 천신들은 “싯다르타 왕자가 부처님을 이룰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니 그가 세상을 버리고 사문이 되게 할 장면을 보여줍시다”라고 의논했다. 한 천신은 동쪽 성문에서 나이든 허리가 굽은 노인의 모습으로, 남쪽 성문 근처 길가에서는 아픈 사람으로,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으로, 북문 근처에서는 머리와 수염을 깎은 수행자로 변신하여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싯다르타 태자 눈에만 보였다.
싯다르타 태자는 노인과 아픈 사람 그리고 장례식을 보고는 인생의 고통과 허무를 깨달았고, 출가 사문을 보고는 구원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으로 불전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진 2. 사문유관四門遊觀 중 아픈 사람을 만나는 싯다르타 태자,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조선시대 팔상도 가운데 세 번째로 등장하는 사문유관은 네 문에서 일어난 사건이 한 장면에 표현되고 있다. 간다라 불전미술 중에는 남쪽 문에서 아픈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 남아 있다<사진 2>. 야외에서 벌어지는 장면임을 나타내기 위해 태자의 뒤쪽으로 나무가 묘사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갈비뼈가 앙상한 아픈 사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수행본기경』의 “하늘 사람이 병든 사람으로 변해 길 곁에 있었다. 몸은 파리하고 배는 컸다”는 내용처럼, 간다라 불전도 속의 유난히 큰 배와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아픈 사람의 모습은 경전의 내용과 일치한다. 왼쪽의 성문을 나서는 태자의 뒤에는 카필라성을 수호하는 여신이 뒤따르고 있다.
사진 3. 싯다르타 태자의 궁중생활,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카라치박물관.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궁중생활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전 궁중생활에 대해서 『본생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을 위해 세 철에 알맞은 세 채의 궁전[삼시전三時殿]을 지었다. 하나는 9층이고 하나는 7층이며 또 하나는 5층이었다. 그리고 4만의 무희들이 싯다르타 태자를 모시고 있었다. 태자는 마치 천왕이 천녀들에게 둘러싸인 것처럼 아름답게 장식한 무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남자가 없는 여자들만이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며 철에 따라 거기에 맞는 궁전에 살고 있었다. 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소다라는 그 첫째 부인이었다.”
<사진 3>은 싯다르타 태자의 궁정 생활을 표현한 것인데 간다라 불전미술 속의 궁중생활은 음악과 춤으로 가득 차 있다. 궁전 안 침상 위에는 싯다르타 태자가 오른손을 들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으며, 옆에는 아내인 야소다라가 침상 끝에 걸터앉아 있다. 주위에는 태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거나 춤추는 무희들이 태자로 하여금 세속 생활에 흥미를 갖게 하려는 듯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경전의 내용처럼 남자는 오직 싯다르타 태자뿐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여인들은 북, 하프, 탬버린 같은 악기를 들고 있는데 필자가 파키스탄을 방문했을 당시 저녁 식사 후 관람했던 민속 공연 때 연주하던 악기와 유사하다.
사진 4.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간다라(2~3세기), 로리안 탕가이Loriyan Tangai 출토, 48×48cm, 콜카타 인도박물관.
수행의 길로 나서는 태자
싯다르타 태자는 어둠의 세계를 버리고 광명의 길로 나섰다.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것을 출가出家라 하며 부처님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남인도 불전미술에서 육신의 탄생보다 정신적 탄생을 의미하는 출가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보살의 길로 접어들었다. 출가부터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룰 때까지의 수행자를 보살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보살은 마부 찬나와 애마 칸타까를 데리고 성을 넘어 출가의 길로 나섰다. 이때 천신인 사천왕은 말발굽을 받쳐 소리 나지 않게 했고, 애마가 소리를 내어 궁중에 알리려 하자 천신들이 소리를 흩트려 모두 허공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각 경전에서는 전한다. 보살은 말에 올라 성문을 나가는데 여러 하늘·용·신神·제석·범천·사천왕이 모두 즐거워하며 인도하고 따르면서 허공을 덮었다고도 한다.
초기부터 불교도들은 부처님 일대기 가운데 출가 장면을 중요시 여겨 미술로 남기고 있다. 간다라의 로리안 탕가이에서 출토된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장면은 먼저 성문을 나오는 보살이 개선·입성·행진하는 로마 황체처럼 오른손을 든 채 말 위에 앉아 출가를 단행하고 있다<사진 4>. 대부분의 불교 경전에서는 보살이 출가할 때 말발굽의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네 발을 사천왕이 받쳤다고 하지만, 실제로 간다라 불전도에서는 사천 왕 대신 두 명의 약샤Yaksha가 애마의 발을 받치고 있다. 마부 찬나는 햇빛 가리개인 일산을 들고 보살의 뒤를 따르고 있으며, 마부 위에는 보살의 호위 임무를 맡은 금강역사가 두 손으로 몽둥이 형태의 금강저를 들고 호위하고 있다. 이제 정각을 향한 위대한 출발이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아 눈부신 해가 떠오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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