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이래저래 살다가 갔다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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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12 월 [통권 제6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18회 / 댓글0건본문
#. 내게는 열반송 같은 거 없다.
천하에 대단한 존재란 따로 없다. 대단하게 보니까 대단해 보일 뿐이다. ‘스타’란… 사람들이 그가 쏟아낸 말에만 현혹되어, 그가 쏟아낸 똥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아 벌어지는 현상.
천하에 초라한 존재도 따로 없다. 초라하게 보니까 초라해 보일 뿐이다. ‘거지’란… 사람들이 구걸이란 ‘광경’에만 현혹되어, 구걸이란 ‘노동’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아 벌어지는 현상.
나는 상관에게 잘 보이려고
너는 고객에게 잘 보이려고
또 너는 자식에게 잘 보이려고
자식은 너에게 잘 보이려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우리는 불보살에게 잘 보이려고
다들 용깨나 썼다.
비가 내린다.
땅에게 잘 보이려고,
하늘조차 구슬땀을 흘린다.
큰스님들이 돌아가시면 대개 열반송이 발표된다. 인생을 돌아보며 평생 쌓아올린 수행의 경지를 마지막으로 드러내는 노래다. 하나같이 장엄하고 신비롭다.
=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고자 한다면, 후회 없이 일해야 하는가. 후회 없이 놀아야 하는가.
조계종 제8대 종정을 지낸 서암홍근(西庵鴻根, 1917~2003)에게도 그럴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는 열반송을 거부했다.
= 어느 쪽을 택하든 지치긴 마찬가지.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인네 이래저래 살다가 이래저래 갔다고 해라.”
= 어제 산 것처럼, 오늘 죽었으면.
어려서는 단것을 즐겨 먹었다. 일찍 담배를 배우면서 20대부터는 담배가 단것의 쾌락을 대체했다. 40대부터는 당뇨에 대한 두려움이 단것을 더 멀리 밀어내버렸다. 입맛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단것을 접할 기회는 극히 드물다. 사는 게 원래 쓴맛임을 아는 낫살이기도 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만 그나마 돈이 벌리더라.
운동을 싫어하지만 군대에 가야 했다. 부득이하게 축구를 해야 한다면, 골키퍼를 봤다. 수비에만 급급한 것이 천성이었던 것이다. 재산이 생기고 세금이 늘어나면서, 더욱 공고한 보수주의자가 되어간다. 젊어서는 진보주의자인 척 했다. 내가 좋아했던 달콤함이 가득했던 말이니까. 더구나 또래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쪽이었고 고립되지 않기 위해 그쪽을 택했다. 사실, 지킬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그랬다.
정말로 많이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여길까? 나는 ‘그들의 소유는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계산하지 못할 만큼 많을 것이다’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손에 쥔 것이 빤하니까, 누가 내 것을 앗아갈까 철저히 마음을 잠가놓는다. 일례로 보수는 ‘좋은 것을 지키자’는 정신이고 진보는 ‘나쁜 것을 바꾸자’는 정신이라는데…, 나는 ‘나에게’라는 보어補語가 생략됐음을 모르는 인간이라며 그의 이해력을 비웃는다. 사회생활이란 사람을 어디까지 미워할 수 있는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으며 조심조심 기어간다. 지킬 것은 고작 몇 방울인데, 잃은 것은 벌써 하천을 이뤘다.
삶을 돌아보면, 실수가 많았다. 누가 “잘못 살았다”고 한다면, 그냥 “잘 못 살았다”고 하겠다. 여하튼 청춘에 먹던 밥과 누던 똥을 나이 들어서도 먹고 눈다. 과거의 현실이나 현재의 현실이나 기본적인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지난날의 그 많은 밥과 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내가 거닐었던 평야의 거름이 되었는지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갯벌의 진흙으로 뒹구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위를 떠다니는 풀잎이나 찌꺼기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강의 하구엔, 내가 기억하지 못할 시간들이 더 드넓고 짭짤한 물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걸 추억이라 부르든 악몽이라 부르든 무의미하다. 완전히 녹아 없어졌거나 물고기가 주워 먹은 뒤다.
●
거북이는 200살을 산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던데,
삶이 느리면
죽음도 게을러질까.
#. 굳게 닫아건 마음에는 어둠이 틈입하지 못한다.
명상가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들 말한다. 하기야 부처님도 그랬다. 『잡아함경』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이미 가버린 과거를 후회하지 말라”는 요지의 설법이 나온다. 그러나 ‘명상가게’에서 나와서 숨 몇 번 쉬고 밥 한 술 뜨면, ‘지금’은 금세 ‘과거’가 된다. 그리고 ‘여기’는 어디까지인가. 내 발밑까지인가, 우리 집 현관까지인가. 부질없는 계산이다.
현재만을 온전히 즐기다간 머지않은 시간에 파출소 유치장에 갇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십상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조심하는 동시에 미래를 잊지 않고 준비하면서 살아온 총체가 오늘날의 나인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실체가 애매하듯, 현재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강물을 움켜쥐었다는 자를, 나는 본 적이 없다. 현재에 대한 착각은, 무슨 일이든 쉽게 생각하고 사람에게 쉽게 상처 주는 ‘욜로 yolo’들만 양산한다.
통도사 경봉정석(鏡峰靖錫, 1892~1982)은 1982년 7월17일 입적했다. 생의 마지막을 앞둔 스님에게 제자 가운데서 누가 물었다.
= 살아서 못한 효도 죽어서라도 할라치면, 꼬박꼬박 묘소를 찾아가라.
“스님이 가시고 나면 어디서 스님의 모습을 뵐 수 있겠습니까?”
= 다리가 아프니, 위안이 될 것이다.
그는 좌우로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 너도 곧 죽을 테니, 면피가 될 것이다.
대낮에는 대낮만 보인다. 세상이 너무 밝고 환하게 드러나 있어서, 그들은 무방비가 된다. 봄볕에 취하면 가슴이 달아올라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다. 꽃망울을 손끝으로 건드리면 ‘톡’ 하고 터지면서, 내 앞에서 막 옷을 벗을 것만 같다.
다만, 아무리 뜨거운 여름날이어도 밤은 온다. 호수에 반짝이는 햇살은 그러나 깊이 상심한 마음 쪽에서 응시하면, 깨진 유리조각으로 보인다. 주간晝間에 부지런히 나다녔을 열기들은, 천지 곳곳에 부딪치느라 때로는 상처도 줬을 열기들은 빠르게 내려앉아 식는다. 땅거미 주변에는 녀석이 먹다가 흘린 빛들의 시체들이 널려 있다.
산사의 여름밤은 특히 쌀쌀하다. 대낮에도 조용히 지내서 그런 모양이다. 쇠로 만든 문빗장은 더욱 차갑다. 한밤중 견고한 냉기는 두 눈을 부릅뜬 듯 매섭다. 남들 다 자고 있는데 혼자만 깨어있는 것 같다. 삼경三更은 오후11시부터 오전1시까지를 가리킨다. 옛 스님들은 과거의 시간 개념을 쓰면서 우직하게 살았다. 굳게 닫아 건 마음에는 어둠이 틈입하지 못한다.
나도 문빗장이 되고 싶다. 수행이 부족했다면, 쇳가루라도 되고 싶다.
●
구름은,
걷힌다.
네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그가 예정豫定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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