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간다라 미술로 보는 부처님 탄생기 미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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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8 년 11 월 [통권 제6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900회 / 댓글0건본문
필자는 2006년 여름 학기에 서북 인도 간다라에서 꽃핀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불전 미술을 다룬 「간다라 미술의 불전미술」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의 국내외 지역의 기초학문 육성 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사)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가 3년간 진행한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2002년 8월부터 2005년 7월까지 3년간 파키스탄의 주요 박물관인 라호르Lahore·페샤와르Peshawar·탁실라Taxila·스와트Swat ·디르 Dir 박물관의 유물 조사와 사원지 답사 그리고 발굴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사진 1). 국가의 연구비 지원과 연구소의 배려가 없었다면 수행하기 어려운 연구였다.
사진 1. 탁실라 Jaulian Ⅱ 사원지 발굴, 2004년 2월. 왼쪽 두 번째가 필자.
다른 나라의 국가 박물관 소장 유물을 통째로 조사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미술사연구소의 많은 연구 인력과 국가의 연구비 지원 그리고 시절 인연으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진행된 파키스탄의 박물관 소장품의 조사는, 필자의 연구 분야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의 병고病苦로 인해 시작된 ‘통일신라 약사불상의 연구’는 간다라 조사를 계기로 ‘간다라의 불전 미술’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08년부터 2년간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의 ‘부처님의 생애’ 공동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다.
고려 말 전라도 강진 만덕산 백련사白蓮社 출신이었던 운묵무기雲黙無寄 스님은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2권을 저술하였는데, 불교에 입문한 사람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알아야 함을 강조하셨다. 부처님께서 교화한 자취와 중생을 이롭게 한 법을 아는 것이 불자佛子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마군魔群의 무리라고도 하셨다. ‘부처님 생애와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불교를 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핵심적인 요건이며 삼보에 귀의하는 첫 번째 관문’이라는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편찬의 『부처님의 생애』 서문과도 일맥상통한다.
간다라 미술 속의 부처님 일대기는 2~3세기경의 서북인도인들의 불교를 만나는 지름길이며, 우리나라 팔상도八相圖를 이해하는 기초이다. 불교 경전에서 언급한 부처님의 생애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 전달되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미술은 언어를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이고 상징이기 때문이다. 간다라 미술 속의 부처님의 생애를『고경』에 다시 소개하면서, 필자가 간다라 불전 미술 연구를 통해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찾고자 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부처님의 탄생은 성도·초전법륜·열반과 함께 부처님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일인 4대사 기념일 가운데 하나이다. ‘보살은 어머니가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동안에만 태어나는데 마치 카시kasi 산産 천 위에 놓여진 홍옥처럼 순결하게 태어난다.
마치 설법자가 법을 전하고 난 뒤 조용하고도 서서히 법좌에서 내려오는 것 같고, 1천 개의 광선을 가진 태양이 황금의 산에서 고개를 내밀며 나타나는 것 같다. 그처럼 보살은 쉽고도 편안하게 출생하니, 다리는 쭉 뻗고, 손을 활짝 편 채로, 눈을 크게 뜨고,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기억과 지혜를 갖추고 탄생하는 것이다.’(밍군 사야도 저·최봉주 역주, 『大佛傳經』 Ⅳ, 한언, 2009, p.30)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나는 싯다르타 태자
화창한 봄날 친정으로 향하던 마야 왕비는 룸비니 동산에서 산통産痛을 느끼고는, 나뭇 가지를 잡고 선 채로 아기를 낳았다. 부처님의 탄생은 중생의 모든 근심을 잠재울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그 나무를 무우수無憂樹라고 불렀다. 경전을 내용을 반영하듯 간다라의 불전 속 탄생 장면은 일정한 형식을 갖게 된다(사진 2).
무우수 나뭇가지를 오른손으로 잡고 두 다리를 교차시킨 마야 왕비가 화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마야 왕비의 오른 옆구리에서는 머리에 두광頭光을 갖춘 싯다르타 태자가 두 팔을 뻗은 채 어머니 태속에서 몸을 내밀고 있다.
이처럼 오른 옆구리로 태어난 것은 싯다르타 태자의 신분이 크샤트리아 계급인 것을 상징하며, 두 팔을 앞으로 쑥 내밀고 있는 모습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 정결하여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손발을 쭉 뻗어 나왔다’는 불전 경전의 내용을 잘 반영한 것이다.
여러 경전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날 때 인간보다 먼저 신들이 그를 받았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지금 싯다르타 태자를 받고 있는 인물은 제석천이다. 제석천은 높은 관을 쓰고 몸에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며 두 손으로 천을 든 채 싯다르타 태자를 받고 있다. 제석천 뒤에 긴 머리칼을 올려 묶고 합장한 채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범천이며, 범천 뒤의 또 다른 천신은 오른손으로 날리는 천의天衣를 잡고 왼손은 입에 대어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을 찬탄하고 있다.
사진 2 .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 간다라(2~3세기), 미국 Freer Gallery 소장
향우向右측 나무 아래에는 거울을 든 여인과 뚜껑이 있는 상자와 종려나무 잎을 든 여성이 서 있다. 두 여성은 마야왕비의 시중을 드는 여인이며, 탄생을 비롯한 간다라 불전도에 등장하는 종려나무는 태양을 상기시켜 명성·승리·의로움을 나타낸다. 싯다르타 태자가 바로 태양과 같은 존재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간다라 불전도 속 탄생 장면은 출산의 고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은 룸비니 동산에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는 듯이 묘사되고 있으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표정은 기쁨에 가득 차 있고, 나뭇가지는 흥겨움에 나부끼는 것처럼 보인다.
파키스탄의 라호르박물관에 소장된 또 다른 탄생 장면(사진 3)은 <사진 2>와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화면 상단 빈 공간에 공중을 떠다니는 하프와 북 같은 악기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탄생 당시 허공에 신묘한 음악이 울렸다고 하는 것을 상징한다.
한 손으로는 나뭇가지를 잡고 두 다리는 꼰 채 서서 아기를 낳는 마야 왕비의 모습은, 인도인들이 전통적으로 신앙하던 재보財寶와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나무의 여신 약시Yakshi와 닮았다. 전통 여신의 모습을 마야왕비에게 대입시켜 부처님의 탄생이 인류에게 행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진 3.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 간다라(2~3세기), 라호르박물관, 파키스탄.
부처님은 태어나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는 천상과 천하를 구원해 건지고,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고귀한 이가 되며, 나고 죽는 고통을 끊고 일체 중생들을 언제나 편안케 하리라”( 『보요경』 )고 하셨다. 탄생게誕生偈에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불교 이념이 잘 담겨 있다. 간다라에서는 칠보七步 장면을 별도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탄생과 한 장면에 나타낸 경우가 많다(사진 4). 조선시대 팔상도 속 칠보 장면은 솟아오른 연꽃 위에 사방으로 걷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과 달리, 나신裸身으로 두 팔을 내린 채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처님 오신 날의 가장 큰 의식은 아기 부처님의 머리 위에 물을 부어 목욕시키는 관욕식이다. 불전 경전에는 탄생게를 외친 다음 “사천왕은 곧 하늘의 비단으로 태자의 몸을 감싸 보배에 놓았다. 그러자 제석천이 손에 보배 일산을 가지고 왔다.
또 대범천왕도 흰 불자拂子를 가지고 좌우에 모시고 섰으며, 난타 용왕과 우바난타 용왕이 공중에서 깨끗한 물을 뿌리는데, 한 줄기는 따스하게, 한 줄기는 시원하게 해 태자의 몸에 부었다. 태자의 몸은 황금 빛깔에 서른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나 있었고, 큰 광명으로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다.”(『과거현재인과경』)고 한다.
칠보七步와 관욕灌浴
간다라의 불전도에 등장하는 관욕 장면의 태자는 사자 다리로 된 평상위에 나신裸身으로 두 손을 아래로 내리고 서 있다(사진 5). 우리나라의 탄생불처럼 한 손은 위로, 한 손은 아래로 하는 천지인天地印 수인을 한 것과는 다른 자세이다. 태자의 두 팔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여인은 카필라 성의 궁녀들로 생각된다. 보배 일산日傘 아래에 서 있는 태자의 머리 위로는 제석천과 범천이 따뜻한 물과 시원한 물이 든 항아리에서 쏟아 붓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사진 4.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과 칠보, 간다라(2~3세기), 라호르박물관, 파키스탄.
이것은 『보요경』의 ‘제석천과 범천이 홀연히 내려와서 여러 향수로 보살을 목욕시켰다’고 하는 것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간다라 ‘관욕’ 장면에 『보요경』의 내용처럼 제석천과 범천이 태자를 목욕시키는 도상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중인도의 마투라 지역에서 두 마리의 용이 등장해 태자를 목욕시키고 있는 것과는 다른 표현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홉 마리의 용들이 입에서 물을 뿜어 싯다르타 태자를 목욕시켰다는 ‘구룡토수九龍吐水’ 전승이 유행하였다.
사진 5. 싯다르타 태자의 관욕灌浴, 간다라(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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