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암 거사와 배우는 유식]
마음만 존재 한다
페이지 정보
허암 / 2018 년 11 월 [통권 제6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74회 / 댓글0건본문
불교의 핵심인 마음에 대한 탐구는 붓다의 가르침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내부에서 이 마음에 대한 탐구를 체계화시키고 완성시킨 사람들은 기원후 4-5세기경에 활동한 유가사(yogācāra, 요가를 실천하는 자)들, 이른바 유식학파唯識學派였습니다.(주1) 이 유식학파에 의해 발전한 유식사상 또는 유식불교는 ‘오직 마음[識]만이 존재한다고 여기며 대상[境]을 부정(無)하는 입장’입니다. 이 말을 한자로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합니다.(주2) 유식무경이라는 말은 원래 인도불교에서는 없던 용어입니다. 단지 인도불교[유식학파]에서는 유식(vijñaptimātra, 오직 식뿐이다)이라는 용어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유식종파인 법상종에서 ‘유식’이라는 말에 ‘무경’이라는 말을 첨가한 것입니다. 물론 ‘무경’이라는 말을 첨가했다고 해서 의미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식’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무경’이라는 의미가 전제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불교에서는 보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을 명확히 한 것뿐입니다.
병령사 석굴 불상
그런데 이 말을 유식사상의 완성자인 세친(世親, Vasubandhu) 보살은 『유식삼십송』(주3)이라는 논서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아我와 법法]은 가설[임시적인 것]이고 모두 식전변(識轉變, vijñāna-pariṇāma)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나(我)와 나의 것(我所) 및 사물[법]은 인연에 의해 생긴[가설] 것으로 실체가 없다. 모든 것은 식識이 변화[轉變]하여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식(識, vijñāna)(주4)이란 ‘사물을 구별하여 하는 것’ 즉 사물을 주관과 객관의 둘로 나누어 아는 것[認識]을 말합니다. 즉 마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임시적인 것”
이 마음[식]은 8가지가 있다고 세친보살은 말합니다. 8가지의 마음[식]이란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 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입니다. 이 8가지 마음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변pariṇāma이란 ‘다른 성질로 변화하는 것[다른 것으로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말로 설명하면 ‘원인의 찰나 존재가 소멸함과 동시에 성질을 달리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유식사상에서는 ‘유식무경’, 즉 ‘식전변’을 주장합니다.(주5)
자- 여기서 독자들께서는 의문을 제기해야 되겠죠! 마음 바깥에 분명히 사물이 존재하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무슨 이런 비상식적인 소리를! 우리 주변에 태풍·지진·쓰나미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 며칠 전에도 수천 명이 죽었는데 이것을 자신의 마음속 현상이라니, 도저히 수긍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먹으로 한 대 맞으면 아프며, 돌이 떨어져 머리에 맞으면 피가 나고 굉장한 아픔을 경험합니다. 이때 타인이나 타인의 주먹과 돌은 분명히 자신의 마음 바깥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유식무경이라는 유식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유식무경’에 대해서는 몇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만, 너무 학술적인 내용이라 생략하고 필자가 이해한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我]·나의 것[我所]’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늘 잠재해있기 때문에 삶이 고통스럽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바르게 살고 있다. 내가 옳다.’는 판단이나 행위에는 언제나 ‘나는~이다’는 생각이 잠재해 있습니다. 특히 ‘나는~이다’는 주격 표현은 ‘선인가, 악인가, 바르다, 틀렸다’ 등의 가치판단이 들어갑니다. 내가 옳다는 가치판단이 들어가면 ‘내가 믿는 정의’를 위해서는 테러나 살인도 주저 없이 저지릅니다. 부모, 부부, 친구, 회사 등의 인간관계에서 싸우게 되는 경우도 언제나 ‘나는 옳다’는 생각이 배후에 있습니다.
게다가 내 아내, 내 자식, 내 집, 내 몸, 내 회사 등등 ‘나의’라는 소유격을 무수하게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즉 ‘나는~이다’고 생각에 집착하고, ‘나의 것이다’는 소유하는 대상[사람, 물건]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와 ‘나의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법무아(諸法無我,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는 없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무아는 ‘나를 없애는 것’·‘나는 본래 없다’·‘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나의 것은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실재하지 않는 나와 대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집착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괴롭습니다. ‘나’와 ‘나의 것’은 단순히 언어가 만들어 낸 언어의 외침이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물이 서로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문답으로 증명해 봅시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손을 보여주세요. 이 손은 누구의 손입니까?”라고 질문하면 그 사람은 “내 손입니다.”라고 즉각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대답 중에 ‘나’와 ‘손’이라는 두 개의 명사가 있습니다. 명사는 ‘사물’을 지시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손이라는 명사가 지시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죠.”라고 하여 이것을 확인시켜 주고, 다음에는 “그렇다면 ‘나’라는 명사가 지시하는 것을 봐 주세요.”라고 제가 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조금 생각합니다만, 갑자기 곤란함을 느끼고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신체 전부’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못 찾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이런 문답을 많은 사람에게 해 보았습니다만, 누구 한사람 ‘나’를 발견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언어의 외침뿐이기 때문입니다.(주6)
이것을 유식학적으로 설명하면 대상은 존재하지 않아도 마음은 존재한다는 것[유식무경]입니다. 즉 대상 없이도 우리의 마음[인식]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유식무경에 대한 설명으로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물에 대한 비유(주7)입니다. 이것을 ‘일수사견一水四見의 비유’라고 합니다. 이 비유는 생물의 종류가 다름으로 인해 동일한 대상도 다른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유식’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동일한 물[대상]이 아귀에게는 고름 등의 더러운 물로, 물고기에게는 사는 장소[집]로, 사람에게는 음료나 목욕물로, 천인에게는 보석으로 가득 찬 연못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물 각각의 마음[아뢰야식]에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행한 행위[경험, 내력]가 종자로써 보존되어 있는데, 인식[지각]은 바로 그러한 과거의 내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일본 법상종[유식종]의 본사 중의 하나인 흥복사에 전해지는 일화입니다. “손뼉을 치면 물고기는 먹이를 주는 것으로 듣고서 몰려들고, 새는 놀라서 도망치고, 여관에서 시중드는 여자는 손님이 차茶를 재촉하는 소리로 듣는다.”는 말도 인식[지각]이 얼마나 내력에 의존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예입니다. 다시 말해 손뼉을 치면 나는 동일한 소리를 물고기·새·시중드는 여자가 지금까지 각각 경험한 것[내력]을 바탕으로 ‘먹이를 주는 것’, ‘위험이나 놀라움’, ‘차를 재촉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식사상은 지극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지각이나 인식이 얼마나 인식 주체자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주관적인가를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식무경의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는 ‘나’와 ‘나의 것’에 집착하면 살아가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꿈에서 각성한 자, 즉 깨달은 자[부처님]만이 체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친 보살은 『유식이십론』 마지막 게송에서
“나는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유식성[유식의 진리]이 성립하는 것을 논구했다. 그러나 유식성의 전체는 사유되지 않는다. 이 유식의 전체는 나와 같은 자에 의해서 사유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념적 사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은 누구의 경계[인식대상]인가? 그것은 붓다의 경계이다. 그 유식성은 붓다와 세존들의 경계이다. 왜냐하면 붓다와 세존들은 어떤 장애도 없고, 모든 존재 방식, 모든 알아야만 할 것(所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8)
이처럼 위대한 세친 보살과 같은 분도 체득할 수 없는 유식의 진리를 평범한 범부인 내가 과연 가능할까? 그렇지만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그 가능성을 믿고서 단악수선(斷惡修善, 악을 끊고 선을 닦는다)하면서 노력 정진하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독자들께서도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를 통해 긴 밤의 꿈에서 깨어나 유식무경을 체험해 보시기를!
주)
(주1) 유식학파의 역사와 활동한 인물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주2) 유식vijñaptimātra이란 문자 그대로 ‘대상artha을 부정하고 오직mātra 식(識, vijñapti)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식識이란 마음을 뜻하며,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일체는 식[마음]이 변화한 것[唯識所變] 또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마음[식]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一切不離識]는 의미입니다.
(주3) 세친 보살과 『유식삼십송』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주4) 식vijñāna의 어원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vi(나누다, 쪼개다)-√jñā(알다)+ana(접미사): 나누어 안다vijñāna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식’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주5) 자세한 것은 김명우 지음, 『유식삼십송과 유식불교』, 예문서원, 2010 참조 바랍니다.
(주6) 요코야마 코이츠 지음·김명우 역, 『마음의 비밀』, 민족사, 2015.
(주7) 세친 보살이 저작한 『유식이십론』에 등장하는 비유이다.
(주8) 『유식불교, 유식이십론을 읽다』, 효도 가즈오 지음·김명우 역, 예문서원, 2013.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