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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거사와 배우는 유식]
불교는 마음공부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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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  2018 년 10 월 [통권 제66호]  /     /  작성일20-07-16 16:14  /   조회5,8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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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마음공부가 전부라고 할 정도로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유식에서는 식識)! 하루에도 오만 번이나 변한다는 마음, 도대체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는 마음에 대한 수많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부처님은 왜 그토록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까요? 부처님의 마음공부 가르침은 동북아시아로 이어지는데, 동북아시아의 수많은 선종의 선사들은 마음공부를 위한 수많은 행각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요? 독자 여러분들은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나요? 만약 있다면 지금부터 저와 함께 이런 의문들을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장면1> 

(1)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2) 사물은 마음에 지배 받고, 마음을 주로 하고, 마음으로부터 성립한다. 만약 사람이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한다면 그에게 괴로움이 따른다. 마치 마차를 끄는 말이나 소의 발자국을 수레바퀴가 뒤따라가듯이.

(3) 사물은 마음에 지배 받고, 마음을 주로 하고, 마음으로부터 성립한다. 만약 사람이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한다면 그에게 즐거움이 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주인을 따라 떠나지 않는 것처럼.

(4) 어떠한 괴로움이 생기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마음[識]을 원인으로 한다. 마음[識]이 멸하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5) 뛰어난 아들[불자]이여! 실로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다.

(6)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一切唯心造].

 

<장면2>

달마 대사가 면백하며 <좌선하고> 있었다. 그때 2조 <혜가 스님>이 눈을 맞으면서 팔을 자르고 말하기를,

“<스승님!> 저는 마음이 아직 불안합니다. 스승님! <저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십시오.”

달마 대사가 말하기를,

“<너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그대를 위해 <마음을> 안심시켜 주겠다.”

2조 <혜가 스님이> 말하기를,

“마음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습니다.[불가득不可得]”

달마 대사가 말하기를,

“그대를 위해 이미 <그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장면3>

해인사의 어떤 법회에서 당돌한 젊은 스님이 성철 스님에게 “큰스님 뒤에 팔만대장경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성철 스님께서는 “야 이놈아! 너는 그것도 모르냐!”라고 야단을 치시면서 ‘심心’(마음)이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라싸에 위치한 포탈라궁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마음공부하고 있는 티벳 불자들

 

독자 여러분! 이 장면들은 무엇에 대한 가르침일까요? 다시 말해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죠. 위에서 인용한 부처님과 선사들의 가르침을 순서대로 한번 살펴봅시다.

 

<장면1>은 전부 초기경전[법구경Dhammapada, 숫타니파타Sutta-nipāta)]과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장면1>의 첫 번째 게송은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인데, 너무나 유명한 ‘칠불통계七佛通誡’입니다. 이처럼 칠불통계에서는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을 ‘마음’, 즉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청정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수행[참선 등]을 통해 수선단악修善斷惡(선을 닦아 악을 끊는다) 또는 방비지악防非止惡(그릇된 것을 막아 악한 것을 멈추게 한다)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불교의 핵심은 ‘마음공부’가 전부라는 것입니다.

 

<장면1>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게송은 <법구경>에 등장하는 가르침입니다.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저는 부처님의 비유에 탄복합니다. “마치 마차를 끄는 말이나 소의 발자국을 수레바퀴가 뒤따라가듯이. 마치 그림자가 주인을 따라 떠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장면1>의 네 번째 게송은 <숫타니파타>에 등장하는 게송으로 역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장면1>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게송은 대승경전인 <화엄경>의 「십지품(십지경)」과 「야마천궁편」에 나오는 경문입니다. 이것 역시 삼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생기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화엄경>에서는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도 나의 마음自心에서 말미암는다.”고 하여 부처님조차도 마음의 현현顯現이라고 합니다.

 

<장면2>는 <무문관> 제41칙에 등장하는 것으로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르침에 등장하는 마음의 정체란 과연 무엇일까요? 혜가스님이 찾지 못한 마음, 즉 ‘불가득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그리고 달마대사가 안심시킨 마음이란 또 어떤 마음일까요? 혜가 스님이 달마스님에게 구한 그 마음은 편안하거나 편안하지 않거나 하는 것에 끄달리지 않는 본래의 마음 자체를 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달마스님은 편안하거나 편안하지 않는 그 마음의 실상은 본래 실체가 없는 공이요, 무자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달마스님은 마음의 평안함을 구하는 그 자체가 바로 마음에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며,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데에 길을 막는 최대 방해꾼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이어받아 마조 도일스님은 “일체법은 심법이고 일체의 명칭은 모두 마음의 명칭이다. 만법은 모두 마음에서 나왔으니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다.”라고 하여 중국 선종의 종지가 마음공부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선사들의 가르침에는 심즉불心卽佛, 일심一心, 심상심시도平常心是道, 직지인심直指人心 등과 같은 마음에 관한 가르침이 매우 많습니다.

 

<장면3>은 성철스님의 일화입니다만, 저도 정확한 출처는 잘 모르고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쉅게 말해 ‘불교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라는 젊은 스님의 무례하고 당돌한 질문에 성철스님께서는 ‘심(마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성철스님은 자기의 마음을 잘 살펴 수행[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교의 근본 목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란 바로 ‘내 삶을 보다 나은 삶, 즉 윤택하게는 것(better being)’입니다. 이 ‘better being’은 바로 ‘행복’의 다른 말입니다. 이처럼 마음공부는 행복의 지름길을 찾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마음공부를 가장 중시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마음을 깊이 응시하고 관찰하는 것을 불교의 출발점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런 마음공부는 중국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마음 수행을 불교의 핵심이라고 간주한 중국의 선종에서는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곧 부처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하게 됩니다. 즉 자기의 청정한 본래 성품, 즉 마음을 깨닫는 것이 불교공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 이래 최근의 성철스님에 이르기까지 역대 선사들은 ‘마음공부’를 불교공부의 시작이자 마지막으로 간주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도불교 및 동북아시아 불교[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마음공부를 불교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선사들의 마음에 대한 가르침은 모두 인도에서 발생한 ‘유식唯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들입니다. 결국 선종도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대승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유식사상’을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

(주1) 담바파다Dhammapada란 ‘진리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며, 총 26장의 423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전은초기교단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던 시구를 모아서 편집한 것으로, 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특히 불교의 윤리적 교의를 가르치고 있으므로 불교 입문의 지침서로서 동서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경전이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법정스님께서 번역하신 <진리의 말씀(법구경)>이 유명하다. 필자도 늘 가까이에 두고 읽고 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경문은 “실로 미움(원한)은 미움에 의해서는 멈추지 않는다. 미움을 버릴 때 비로소 멈춘다. 이것이 영원한 진리이다.”는 구절이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경문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 경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9)에서 당시 스리랑카의 외무부 장관이었던 자야와르데네가 일본의 전쟁배상의무를 면제해 주는 연설 마지막에 인용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독자들께서도 한번 읽어보시기를...

 

(주2) 전체가 5장(사품蛇品, 소품小品, 대품大品, 의품義品, 피안도품彼岸道品)으로 구성되어 있는 초기불교 경전으로, <진리의 말씀(법구경)>과 더불어 부처님의 원음을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사품蛇品」의 제1경에는 “수행자는 뱀이 묵은 허물을 벗듯이 피안彼岸이든, 차안此岸이든 모두 버려야 한다.”라는 구(句)를 반복하고 있으므로 「사경蛇經」이라 불린다. 특히 제3경의 “코뿔소Khaḍgaviṣāṇa처럼 혼자서 가라)”는 시구가 가장 유명하다. 대표적인 경문을 보면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른다. 사랑으로부터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코뿔소(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가르침인데, 필자가 대학생 때 가장 좋아 했던 경문이다. 법정스님께서 가장 좋아 했던 경문은 “홀로 걸어가고, 게으르지 않으며, (타인의)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는 구절인데, 필자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주3)이 <십지경十地經>의 경문은 세친 보살의 저작인 <유식이십론>에 인용되고 있다. 산스크리트, 티베트, 한역을 인용해보자. 산스크리트본: cittamātraṃ bho jinaputrā yad traidhātukam(뛰어난 아들[불자]이여! 실로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다.) 티베트본: mod las kye rgyal ba'i sris dag 'di lta ste/ khams gsum pa 'di ni sems tsam mo zhes byung ba'i phyir ro/(경에서, “이와 같이 보살들이여! 이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한역본(진제): 佛子! 三界者唯有心(불자들이여!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다.) 한역본(현장): 三界唯心(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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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불교학자. 유식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유식삼십송과 유식불교』·『마음공부 첫걸음』·『왕초보 반야심경 박사되다』·『범어로 반야심경을 해설하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마음의 비밀』·『유식불교, 유식이십론을 읽다』·『유식으로 읽는 반야심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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