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남인도 미술과 부처님 생애 1
페이지 정보
유근자 / 2018 년 10 월 [통권 제6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51회 / 댓글0건본문
필자가 처음 남인도를 찾은 것은 2006년 2월 초인데 이곳에 남아있는 아마라바티(Amaravati, 사진 1)와 나가르주나콘다Nagarjunakonda의 불교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남인도의 첫 인상은 풍요롭고 여유로웠으며 사람들의 모습은 느긋함이 몸에 배여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생활상은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남인도 불교 유적지, 아마라바티
인도 타밀나두 주의 주도主都인 첸나이[Chennai, 영국식 지명은 Madras]는 벵골만과 접한 남인도 최대의 도시인데,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가 진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남인도에는 불교가 그다지 성행하지 않았지만,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에 걸쳐 아마라바티와 나가르주나콘다를 중심으로 남인도 특유의 불교문화가 개화되었다.
1세기 중엽에서 3세기 중엽에 남인도에는 사타바하나Satavahana 왕조가 아마라바티를 중심으로 불교 미술을 융성시켰고, 불교를 지원했던 이 왕조는 로마와의 교역으로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다. 로마인들은 육식에 필요한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와 상아 세공품 등을 인도로부터 수입하였고, 포도주와 올리브유 그리고 유리제품을 인도로 수출하였다. 그러나 수입품이 수출품보다 많았기 때문에 로마의 금화는 남인도에 다량으로 유입되어 유통되었다.
로마와의 경제 교류로 번창한 사타바하나 왕조의 왕을 비롯한 귀족과 상인들은 불교에 귀의한 자가 적지 않았다. 특히 상인들이 사원이나 불교 조각을 조성하는데 기부한 것은 기록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남인도의 불교미술품은 주로 첸나이주립박물관, 아마라바티 고고박물관, 나가르주나콘다 고고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외에도 콜카타의 인도박물관과 뉴델리국립박물관 등에도 몇 점이 전시되고 있다. 필자는 2006년에 콜카타 인도박물관의 유물들을 보기 위해 4일 동안 이곳에 머물렀고 매일 박물관을 찾았을 때,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작품이 아마라바티 사원지 대탑에서 발견된 석가여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불전도였다(사진 2).
사진 2. 석가여래 탄생에 관한 에피소드, 아마라바티 출토, 2~3세기, 콜카타 인도박물관.
책에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미술사 전공자에게 실물을 보는 것은 연구의 시작이며 핵심이다. 사진으로 보는 간다라 조각은 윤곽이 뚜렷한 반면 남인도 조각은 <사진 2>에서 보다시피 밋밋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율동감이 넘치는 몸짓은 힘차며, 인체의 양감을 한껏 살린 표현법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둥글둥글한 인체 표현은 생명감이 넘치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듯하다. 로마와의 교류로 이룩한 경제적 여유는 남인도 조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실물을 보면 그 감동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석가여래의 탄생에 관한 에피소드를 남인도의 아마라바티 조각에서는 세 장면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는데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는 보살, 코끼리의 모습으로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오는 보살, 어머니의 태 속에 드는 태몽 장면이다. 석가여래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 보살로서 하늘나라 도솔천에서 신들의 찬탄을 받으며 지냈다. 그곳에서 천신들에게 설법을 하고 지상으로 내려오기 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하늘나라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는 보살’ 불전도이다(사진 3).
도솔천은 선행을 많이 닦은 이들이 태어나는 세계로 그곳 사람들은 인간세계의 4백년이 하루이며 4천년의 수명을 누리며 평화롭게 살았다. 내원內院의 한 가운데에는 마니주摩尼珠가 밤을 낮처럼 밝히는 화려한 강당과 높은 사자좌가 마련되어 있었다. 보살은 사자좌에 앉아 4천년 동안 천인들을 교화했으나 그에게도 늙음은 찾아왔다. 천인들은 보살이 도솔천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슬퍼했다.
“존자여, 더 이상 자비로운 모습을 뵐 수 없고, 지혜로운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살은 말씀하셨다.
“슬퍼하지 마세요. 무상한 삶과 죽음의 거센 물살 앞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울부짖는 것은 애착과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제가 떠난 자리에는 미륵보살이 남아 여러분의 훌륭한 벗이 되어 줄 것입니다.”
다음 태어날 곳을 수미산 남쪽 염부제로 정한 보살은 황금색 피부를 가진 이를 불렀다.
“그대는 여러 차례 염부제에 태어났으니 그곳의 산천과 나라, 종족과 국왕들을 잘 알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태어나면 좋겠습니까?”
황금색 피부를 가진 이가 말했다.
“태양의 종족인 석가족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 카필라성이 좋을 듯 합니다.”
남인도 아마라바티 대탑을 장엄했던 ‘도솔천의 보살’을 표현한 장면에는 왼손은 허리에 대고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설법하고 있는 보살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보살은 화려한 터번과 장신구를 걸쳤으며 머리 주변에는 두광頭光이 있다. 머리 위 사다리꼴의 장식은 궁전 안의 모습을 상징한다. 사자와 인도 신화에 나오는 물고기인 마카라Makara 장식이 붙은 왕좌王座는 위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표현했다. 보살의 좌우에는 많은 신들이 보살을 향해 합장한 채 찬탄하고 있으며, 도솔천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도솔천으로부터 이 세상으로 내려오는 보살은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의 모습을 취했다. 상단 왼쪽에는 난장이 모습을 한 약샤Yaksha들이 가마에 탄 흰 코끼리를 어깨에 메고 있으며, 그 앞에는 일산日傘과 깃발을 든 신들이 길을 인도하고 있다(사진 4). 아래쪽에는 여러 신들이 비파와 피리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있고, 맨 아래 오른쪽에는 큰 머리와 둥근 배 그리고 짧은 다리를 한 난장이형 약샤들이 춤추며 앞장서고 있다.
사진4.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보살
이 장면은 북인도인 간다라 미술에서는 볼 수 없는 남인도만의 예로, 태몽을 꾸지 않고 도솔천에서 직접 내려왔다는 팔리경전의 내용을 따른 것이다.
석가여래께서 도솔천에서 이 세상에 오실 때 흰 코끼리의 모습으로 마야왕비의 태 속에 들었다는 태몽을 표현한 것이 ‘도솔래의兜率來儀’이다.
흰 코끼리 모습으로 태 속에 드는 보살
“흰코끼리가 코로 하얀 연꽃을 들고 북쪽에서 내려와 마야왕비가 누워있는 침상 주위를 세 번 돌고 나서 오른쪽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자궁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는 것은, 5세기 경 붓다고사Buddhagosa가 정리한 『니다나카타Nidānakathā』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야 왕비의 태몽을 해몽한 관상가는 “이것은 경사로운 꿈입니다. 만약 탄생한 아들이 집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집을 떠나 도를 구하면 장차 부처님이 되어 중생을 제도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태몽에 흰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은 성스러운 산을 닮은 네 개의 상아를 가진 아이라바타Airavata라는 하얀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인드라(Indra, 제석천)를 연상시킨다. 인드라의 탈 것인 흰 코끼리는 바로 인드라를 상징하는 것이고, 부처님 탄생 전설의 흰 코끼리는 바로 부처님을 상징한다. 코끼리는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아이라바타의 어머니인 이라바티Iravati에서 찾을 수 있다. 석가여래의 태몽에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은 인드라와 코끼리의 상징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살의 운명이 인류의 행복과 안락을 위한 것임을 천명하려는 것이다.
남인도 아마라바티에서 발견된 ‘태몽’ 장면은 침상 위에 누워있는 마야 왕비, 위아래에 표현된 시녀들, 마야 왕비를 사방에서 지키고 있는 사천왕 그리고 화면 위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보살이 코끼리로 등장하고 있다(사진 5). 간다라의 태몽 장면에서는 무기를 든 여자들이 마야왕비를 호위하고 있는데 반해 남인도의 아마라바티 조각에서는 남신男神인 사천왕이 사방에서 마야왕비를 지키고 있다.
사진5. 태몽
“보살의 모태로 내려갈 때 제석천은 즉시 사천왕을 보내 마야왕비를 호위하게 했는데 각각의 사천왕은 날카로운 칼, 비단 노끈, 창, 활과 화살을 손에 들었다. 왜냐하면 모든 악마들이 그 어머니에게 틈을 타 나쁜 짓을 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의 내용을 상징하듯, 화면 상단 왼쪽에는 오른손에 칼을 든 사천왕이 있어 주목을 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