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청산에는 단짝 구름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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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 2018 년 9 월 [통권 제6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294회 / 댓글0건본문
절기상 춘분(3.21)과 추분(9.23)은 1년을 절반折半으로 나눈다. 또, 하루도 반반으로 나눈다. 춘추분 2개 절기를 통칭해 ‘이분二分’이라고 부른다. 분分은 팔八과 도刀를 상하로 합친 회의자會意字이다. 칼[刀]을 이용해 물건을 똑같은 크기의 둘로 나눈다[八]는 뜻이다. 춘추분은 예로부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절기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뭐꼬 화두 탄생 … 아귀 떠나 인간으로
추분의 낮 시간(12:08~09)이 약 10분 더 길다. 일출과 일몰시각도 같은 현상을 보인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추분 일출(6:20)은 춘분(6:34) 보다 14분 빠르다. 일몰시각 역시 추분(18:28)이 춘분(18:44) 보다 12분 이르다. 논의의 실익을 차치하더라도, 해마다 춘추분을 계기로 여름과 겨울이 반복된다.
삼십년래작아귀三十年來作餓鬼
30년이나 아귀로 지내다가
여금시득복인신如今時得復人身
지금에야 비로소 사람의 몸을 되찾도다.
청산자유고운반靑山自有孤雲伴
청산에는 스스로 구름의 짝 있나니
동자종타사별인童子從他事別人
동자여, 이로부턴 다른 사람 섬기라
- 양좌주(亮座主, 당唐, 구름 단짝[雲伴])
양좌주亮座主는 말 그대로, ‘지혜가 밝은 강백講伯’이다. 속명과 법명은 물론 생몰연대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른바, ‘운반송雲伴頌’은 마조 대사(709~788)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은 뒤, 제자들을 해산시키면서 읊은 게송이다. 사연事緣은 이렇다. 양좌주는 당시 상당수의 제자들에게 『화엄경』을 가르치며 명성이 자자했다. 이런 가운데, 강의하는 주체를 두고 대화가 이어졌다. 양좌주는 ‘마음으로 경전을 강의한다’ 하고, 마조 대사는 ‘허공虛空으로도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양좌주가 말 같지도 않다고 여기고 나가는 차에 마조 대사가 불렀다. 베이스 톤base tone의 다소 진지한 분위기였다. “좌주!” 긴장한 양좌주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 마디가 떨어졌다. “이뭐꼬[是什麽]?” 이에 양좌주가 크게 깨달았다. 다시 돌아와 예배하고 6일 동안 시립侍立했다. 그 후 하직인사를 하고 돌아와 화엄경 학인 대중을 해산시켰다.
선시禪詩 ‘운반雲伴’ 가운데 ‘아귀餓鬼’는 불경과 논서에 파뭍혀 지낸 상황을 상징한다. 아귀를 떠나 ‘인간’을 되찾았다. 대자유인의 모습이다. 경전은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다. 비유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강을 건네주는 뗏목이다. 재활용의 용도조차 사라진다. 3句의 산과 구름은 ‘체體와 용用’으로 해석된다. 산은 항상 여여한 모습으로 본래 면목을 나타낸다. 그러나 바람 따라 다니는 구름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독립되어 있지만, 자연 현상의 단짝으로 전체를 이루고 있다.
대자유인으로 변화
‘다른 사람을 섬기라[從他事別人]‘는 표현을 통해 남에게 배우지 말고 ’자기 자신의 진면목‘으로 돌아감을 촉구한다. 누구든지 주인공이 되어야, 자신은 물론 남을 섬길 수 있다. 그렇다고, 아귀의 단계, 즉 경전공부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문자 공부를 선행한 연후에 대자유 인간을 깨달을 수 있다. 개념과 논리이해에 대한 이해가 철저한 다음, 활구活句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채약홀미로採藥忽迷路
약초를 캐다가 문득 길을 잃었는데
천봉추엽리千峯秋葉裏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네.
산승급수귀山僧汲水歸
산승이 물을 길어 돌아가고
임말차연기林末茶烟起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나네.
- 이이李珥(1536∼1584, 산에서[山中])
시정詩情의 분위기가 편안하다. 산길은 잃었는데도 당황하는 표정이 전혀 없다. 오히려, 고개를 들어보니 사방의 가을경치가 들어온다. 봉우리 마다 하늘을 도화지圖畫紙 삼아 꽃처럼 단풍을 피웠다. 가만 보니 인적人跡도 보인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시선視線이 닿는 곳에 차 달이는 연기가 오르고 있다. 약초 캐는 일만 하면 발견하기 불가능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보는 것만 그렇겠는가. 듣는 것도 그렇고, 향기를 맡거나 맛보면서 느끼는 모든 것이 그 방편에 따라서 미로迷路가 득도得道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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