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불[火]국토처럼, 명자꽃 피다
페이지 정보
최재목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48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우리 중간 중간 줄줄 새면서 살아왔지만
사이 길에 붉은 꽃 되어, 가을 드는 마을에 마주 앉았다
차마 들킬까 이 마음 숨긴 끝자락 아프도록 문지르며
이나무 먼나무…, 그런 이름들만 들먹여 봐도
아득하여라
햇살로 꽃잎 다독이며 계신, 허접하여 거룩한 하느님
하마터면 뚝뚝 다 익어서 떨어질까 봐
대봉감 홍시 딛고, 하나…둘…일곱 발자국 걸어, 가랑잎 흔들리듯
고요 속을 디디며 부처는 올까
가장 존귀한 것이라곤
얼굴 붉히며 타오르는 이 마음 밖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아니 천상천하 You are 독종…
그래, 세상 살며 진 빚 어쩌다 중간 중간 가을 햇살로 터져
짓무르는데
손 벌려도 더는 없더라, 거기 그저 명자꽃만 궁시렁 궁시렁
불(火)국토처럼, 피어있더라
하마터면 참 아름다웠을 꽃이여
맨발
이 벌판 위에는
여름이라는 맨발이
걸어간다
애비 없는 추억들이, 집 잃은 게딱지 햇살들이
신발을 벗어들고
허물어진 개미둔덕을 넘어,
어리석은 고로, 진실에서만 철썩이는 파도들이
해당화 가시들이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벗어놓고
노을 속으로
에미 없는 돌을 밟으면서
맨발로 걸어간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부설거사 사부시 강설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4 부설거사浮雪居士 사부시四浮詩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모두 다 잘 아는 것 아니야? 지금까지 만날 이론만, 밥 얘기만 해 놓았으니 곤란하다 …
성철스님 /
-
인도 현대 인도불교의 부활과 과제들
심재관(상지대 교수) 많은 한국의 불교인들은 “어찌하여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 불교가 이토록 처참히 위축되었는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식자들은, 이슬람의 인도 정복이나 힌두교…
고경 필자 /
-
구루 린뽀체의 오도처 파르삥의 동굴
카트만두 분지의 젖줄인 바그마띠(Bagmati)강 상류에 위치한 파르삥 마을은 예부터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진 곳으로 힌두교와 불교의 수많은 수행자들이 둥지를 틀고 수행삼매에 들었던 곳이다. 그러니만…
김규현 /
-
봄빛 담은 망경산사의 사찰음식
사막에 서 있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두렵고 막막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한 생각 달리해서 보면 사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무한한 갈래 길에서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누군가가…
박성희 /
-
『님의 침묵』 탈고 100주년, ‘유심’과 ‘님의 침묵’ 사이
서정주의 시에 깃들어 있는 불교가 ‘신라’라는 장소를 바탕으로 하는 불교, 『삼국유사』의 설화적 세계를 상상의 기반으로 삼는 불교라면, 한용운의 시에 담긴 불교는 ‘형이상학’이나 ‘초월’ 혹은 ‘공…
김춘식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