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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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8 년 7 월 [통권 제6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29회 / 댓글0건본문
백련암에서 하안거 맞이 3박4일 일정의 ‘아비라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조계종 원로 무산 스님의 영결식이 5월 30일 제3교구 본사 신흥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진다.”는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3월 중순 백담사 기본선원의 초청을 받아 1박2일 하루 4시간씩 강의를 다녀왔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설악산 백담사에 갔기에, 계면쩍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많아 한번 둘러보려고 지객 스님에게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무문관 선방이 무엇보다 궁금했기에, 선원에 먼저 들어가 안거 3개월 동안 일체 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무문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건립 초기엔 완전 폐쇄된 선방이었는데, 한 철 나는 스님들의 건강에 영향이 있는 것 같아,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사방 1m 정도의 공간을 뒷마당처럼 틔어놓았다고 했습니다. 들어가는 문에는 역시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집 한 채에 폐쇄된 3개의 방이 있는데, 첫 번째 방이 신흥사 조실 설악당 무산대종사의 무문관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백담사에는 모두 12개의 무문관실이 있다고 합니다. 안거 때는 두문불출 하시다 해제되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조용한 곳에 계신다기에 조실 큰스님을 친견은 하지는 못했습니다.
선방을 둘러보고 대웅전을 찾아 갔는데 바로 그 앞에 “13대 대통령이 머무시던 곳”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전두환 전前대통령 내외분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지금까지 “두 분이 계셨던 곳이 백담사의 암자 같은 곳이겠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웅전 바로 앞 요사채에 자리 잡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몇 개월 전 백담사에 다녀왔기 망정이지 그런 인연도 없었더라면 신흥사 영결식에 모셔져 있는 영정 앞에 서기가 정말 부끄럽고 부끄러울 뻔 했다.”고 생각하며 5월 29일 아비라 기도를 마치자마자, 11시 30분에 백련암을 나서 13시 13분 김천구미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갔습니다. 거기서 15시 30분에 출발하는 어느 신도의 차를 타고 신흥사에 닿으니 저녁 7시, 문상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나오는데 아는 시자 스님이 “큰스님의 법구를 친견하고 가시라.”며 옆방으로 안내 했습니다. 진영에 절을 올리고 병풍 뒤로 돌아가니, 법구를 모신 관의 뚜껑은 열려 있고, 육신은 꽃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얼굴은 생전 모습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다음날인 5월 30일 오전 10시에 영결식이 거행되고, 11시 30분 이전에 건봉사 다비장으로 법구 운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소납이 고산 큰스님, 정대 큰스님을 모시고 1999년부터 2002년 중반까지 총무부장의 소임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총무원장 큰스님을 친견하러 왔던 정 · 관계 인사들이 더러 제 방에 오곤 했습니다. 방문 인사들이 제일 먼저 건네는 인사가 “백담사 오현 큰스님 잘 계십니까?”라는 오현 큰스님의 안부 문안이었습니다. “정휴 스님과 친하다.” 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총무원장 스님을 친견하는 고관들이 누구나 오현 큰스님의 안부를 물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특히 판 · 검사 출신들이 더 깍듯이 안부를 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무엇 때문에 정 · 관계 인사들이 하나같이 오현 큰스님에 대해 정감을 가지고 있 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후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현 큰스님의 성정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중앙종회의원 소임 중 서울에서 오현 큰스님을 한 번 뵈었습니다. 그러다 총리를 지낸 고향 분을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하던 중, 그 분도 ‘오현 큰스님’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하루는 전화를 받는데 ‘나 백담사 오현이라는 중입니다. 총리님은 초면인데 한번 시간을 내주시면 뵙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생면부지의 스님이 전화를 해 만났으면 한다고 하니, 약간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후에 만나니 스님 이 어찌나 세상일에 정통하고 재미있던지 지금은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총리를 지낸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누구에게도 “오현 큰스님이 누구냐?”고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현 큰스님은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이라는 열반송을 남겼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앞의 세 단어도 한글로 표현하셨으면 절세의 열반송이 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의 한문은 피모대각披毛戴角인데, 선어로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어쨌든 또 한 분의 큰스님이 무주처열반에 들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세간 · 출세간 모두의 의지처가 되었던 큰스님이 점점 더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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