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도자기]
도자기, 옷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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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20 / 조회9,352회 / 댓글0건본문
김선미 | 도예작가
도자기는 토기와 달리 한번 구운 초벌에 유약을 입혀 1300도에 다시 굽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도자기에서 흙이나 굽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듯이 도자기도 어떤 유약의 옷을 입느냐에 따라 색감, 느낌 등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나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좋아해서 주로 직접 농사 지은 재를 이용한 재유灰釉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저번에 장작 가마의 애로에 대해서 얘기했든지 자연물이라는 것이 워낙 변화가 많고 오랜 시간 숙성을 거쳐야 그 느낌이 나오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다. 유약은 전통적인 용어로 잿물, 묵보래 또는 미음물이라고도 불렸다.
모든 재는 유약이 된다
나도 처음에 잿물로 유약을 쓴다는 것이 생소했는데 신기한 것은 사실 어떤 재도 유약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추구하는 색감이나 지속적으로 구할 수 있는 지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한번 실험을 해서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없으면 지속하기가 힘들다.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집 주변에는 서산 축협 개량사업소 목장이 거대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넓은 초지에 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방목도 하는데 소똥도 자연스럽게 풀만 먹고 누신 똥이다.
난 가끔 애들에게 한 포대에 오백 원씩 알바비를 줘가며 소똥을 모은다. 이제는 오백 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름 수거하기가 편하게 똥이 이쁘장하다. 그것을 잘 말려 태워서 재를 만든다. 소똥은 인도나 여러 지역에서 훌륭한 연료로 또는 벽면을 바르면 방수가 되는 등 좋은 자연물이다. 소뼈를 갈아서 만든 본차이나가 유명하기도 하다. 난 ‘분糞차이나’라고나 할까…
정확한 연구가 이뤄져야겠지만 아무튼 뱃속에서 여러 풀이나 볏짚을 먹은 소의 똥에는 보다 안정적인 인이나 실리카, 칼슘 성분 등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풀을 먹은 소똥은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흙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발색되는 색이 백토를 기준으로 약간 회색 승복 색깔이라고 하면 좀 억지스럽나.
우리가 알고 있는 청자의 비색 그것은 환원의 불때기와 흙도 중요하지만 아직도 그 색을 재현하지 못하는 것은 유약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맑고 우아한 너무나 고급스러워 범접하기 힘든 색이다. 고려청자 앞에 서면 그것을 누렸을 고려 사람들의 고급스런 안목과 우아함과 화려함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얼마 전 태안 해양유물전시관이 신진도에 개관했는데 그 옆에는 마도라는 섬이 있다. 예로부터 마도는 서해안에 돌출되어 파도가 거세고 안개가 심하고 암초가 많은 지형이라 밀물과 썰물 때에 급한 조류가 흐른다. 예로부터 안흥량 해역은 난행량(물살이 급하고 통행하기 어려운 여울목)이라 했는데 충청 이남에서 거둔 세곡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안흥량을 통과해야 해서 난파되기 일쑤였다. 주꾸미 낚시배에 걸려 올려온 고려청자를 시작으로 마도는 보물섬이 되었다. 현재까지는 마도3호까지만 수중 발굴이 되었지만 바다 밑에 잠자고 있는 침몰된 선박의 보물이 여전히 엄청나다고 한다.
수도 개경으로 올라가면서 침몰한 고려청자를 실은 배….
그 해양박물관에서 건져 올린 일부를 전시하고 있는데 난 얼어붙는 줄 알았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특히 청자 천년 발우….
고려의 화려한 귀족들의 문화…. 거기에서 꽃피운 우아한 화엄의 세계….
나는 매일 박물관에 가다시피하며 천년발우를 보고 또 봤다. 그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한동안 손을 못 대고 있다가 재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발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양은 그럴듯한데 결국은 유약이 문제였다. 도자 재료상에서 파는 청자 유약은 느낌 자체부터가 다르다. 고려청자의 우아함과 세밀함은 알겠는데…. 나는 근본부터가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식대로 편안한 천년발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약은 사과나무재이다. 사과나무의 장점은 순수하고 부담이 없으며 푸르스름한 색이 표현되어 청자유약을 대신하기에 적당한 것 같았다.
문경의 천한봉 선생님을 찾아뵐 때면 선생님이 슬그머니 재를 모았다가 몇 포대 실어 주신다. 선생님은 재를 안정적으로 구하기 위해서 과수원도 갖고 계시는데 매일 봉당을 데우는 나무를 사과나무로 쓰고 계신다. 사과나무는 철분 성분으로 푸르스름한 색이 나타난다.
모든 것은 본래로 돌아간다
내가 느낀 신기함은 나무나 식물을 태운 재는 그 유전자를 버리지 않고 그 본래의 색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가끔 십우도의 반본환원返本還源이 이런걸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콩깍지를 태운 재는 누르스름한 색이, 사과나무를 태운 재는 푸르스름함이 그리고 들깨재를 태운 재는 약간 기름진 느낌의 불투명한 느낌이 나타났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실험하고 느낀 부분이다.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면, 나무나 식물이 한 생生을 살고 태워져 재로 돌아가 그릇의 옷이 되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밀을 심었다. 워낙 태평농법이라 씨만 뿌리고 방치하는 방식이다. 사실 수확량을 크게 늘리기 위해 짓는 농사가 아니다보니 손 쓸 일이 별로 없다.
밀이 자라나는 전 과정을 살피는 것도 큰 재미였다. 작은 씨가 발아하여 금 새 푸른 들판이 되고, 또 이삭이 피고… 농사는 수익으로 치자면 완전 적자였다. 기계값이 더 들어갔으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보물 같은 밀을 태운 재가 있다!
재는 물에 담가 미끈거리는 성분을 빼내고 오래 숙성될수록 좋다. 옛날에는 항아리에 오랫동안 썩히듯이 고약한 냄새가 나도록 숙성시켰다. 어차피 가마에 들어가면 냄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까. 오래 삭힐수록 색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또 유리화되는 녹는 온도도 낮아진다.
옛날 그릇들의 색감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재를 거를 때는 안노인(나이 드신 할머니)이 했다고 한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곱게 내리고 내리고…. 나부터도 급해도 너어무 급하다.
내가 시도해보고 싶은 재가 있다. 향재香灰다. 절에서 향을 사르고 남은 재다. 얼마를 피워야 유약으로 쓸 양이 될까. 재 동냥을 위해서 전국 사찰 순례를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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