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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인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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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8 년 3 월 [통권 제5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60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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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석(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우리가 같이 읽고 있는 <명추회요>는 연수 선사의 <종경록> 100권을 십분의 일 분량으로 발췌한 책이다.

원래의 책을 많이 줄이긴 했어도 그 분량은 결코 적지 않다. 책의 두께 때문에 선뜻 다가서지 못할 수도 있을 테지만, 마음을 내어 책을 조금씩 들여다보면, 그 속에 흐르는 어떤 결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무의 결을 따라 대패질을 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그것을 다듬을 수 있듯, <명추회요> 역시 그것의 결을 따라 읽는다면 훨씬 수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추회요>에는 어떤 결이 있을까. 이를 형식과 내용으로 나눠서 설명해보자. 우선 형식의 관점에서 보면, <명추회요>의 단락들 가운데 ‘【물음】-【답함】’의 체제로 구성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주의 깊게 보면, 이 두 가지에 이어 ‘【인용】’이 상당히 길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이 갖는 형식적인 결은 하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론의 인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인용’의 분량과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전체 책의 부피 역시 상당해졌다. 다음으로 내용의 관점에서 보면, <명추회요>에 담긴 다양한 주제들이 대부분 ‘마음’을 둘러싼 채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명추회요>의 내용적인 결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물음】-【답함】-【인용】’이라는 형식의 결과 ‘마음’이라는 내용의 결을 붙잡고 있으면, <명추회요>의 까다로운 대목들을 만나더라도 그리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어째서 자신의 말은 하지 않는가?

 

이번에 읽어볼 <명추회요>의 내용(768쪽)은 바로 이 책의 형식적인 결 가운데서도 ‘인용’에 대한 것이다. 인용이란 말 그대로 자신이 아닌 남의 말을 끌어오는 것이다. <명추회요>에는 부처님의 말씀인 경(經), 현인의 말씀인 논(論), 그리고 조사의 말씀인 어록(語錄) 등 다양한 문헌의 말씀들이 대량으로 인용된다. 그러므로 연수 선사가 자기의 말보다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는 것에 대해 당시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졌다.

 

【물음】 위의 해석과 인용한 증거들은 모두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들이다. 어째서 자신의 말은 하지 않는가?

 

선(禪)의 전통에서 보면, 부처님과 같이 훌륭한 분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이상 곧장 배격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유분방하고 호탕하게 자신의 얘기를 해보라는 것이 묻는 사람의 의도일 것이다. 이에 대해 연수 선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 뒤,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답함】 만약 내가 나의 말을 한다면 모든 것에 망연자실할 것이니, 나루터를 잃고 헤매인들 어찌 물어볼 곳이 있겠는가? 조사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설한 것도 모두 중생의 뜻과 말에 따르고 시절 인연에 맞추었을 뿐이다. 

 

【인용】이런 까닭에 세존께서는 “3세(世)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나는 49년 동안 한 글자도 더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인용문에 나오는 망연자실에서 망연(茫然)이란 막막하거나 막연한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말만 한다면 객관적인 기준이 사라져서 막막하니 기댈 곳이 없어져버린다는 말씀이다. 선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데에는 아마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역시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선사가 주로 활동했던 오월국(吳越國, 현재의 항주)은 물산이 풍부하고 사회가 안정되어 있었지만, 당시 중국의 전반적인 상황은 끊이지 않는 전란으로 매우 혼란했다. 게다가 중국불교 전체의 명운을 위태롭게 할 만큼 큰 폐불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므로, 선사는 당시까지 전해오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수습하여 그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하는 큰 의무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체험보다는 ‘조사와 부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불법을 전하는 것이 더 절실했을 것이다. 다만 대답에 이어지는 ‘인용’ 부분을 보면, 연수 선사께서 자신의 얘기보다 조사와 부처님의 말씀을 주로 언급하는 데에는 보다 깊은 뜻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을 좀 더 살펴보자.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인용한 이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한 이후 설법한 기간에 대해서는 45년이라고도 하고 49년이라고도 하는데, 위의 인용문에서는 49년이라고 보았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 긴 기간 동안 석가모니께서 “삼세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한 글자도 더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능가경>을 보면 부처님은 이보다 더한 말씀도 하신다. 나는 정각을 얻은 날부터 완전한 열반에 들 때까지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 모두 부처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 성불한 이후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거나 한 글자도 더하지 않았다고 하신 것에 대해 많은 불교도들이 고심하였고, 이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을 덧붙였는데, 여기서는 그 가운데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부처님의 깨달음은 언설로써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진여(眞如)의 경계는 언어와 문자로 다가설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다른 모든 부처님의 말씀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49년간 한 글자도 더하지 않았다거나 더 나아가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고 보는 해석이다. 즉 모든 부처님의 설법은 다름이 없으므로, 석가모니께서 여기에 특별히 덧붙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 연수 선사의 의도는 둘째 해석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불교에는 수많은 부처님이 등장하는데, 이분들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부처님이 출현하더라도 그분만의 특별한 말씀을 추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연수 선사가 자신의 말을 아낀 것은 단지 겸손해서가 아니라 매우 충만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위의 인용문에 이어지는 문장에서 곧장 확인된다. 

 

또 <경>에서 앞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뒤의 부처님이 따른다.”고 하였으니, 만약 이와 같이 요달한다면 부처님 말씀이 나의 말이고, 나의 말이 부처님 말씀인 줄 알 것이다.

 

연수 선사는 혼란한 사회 속에서 불교의 바른 길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바른 길은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 속에 온전히 드러나 있으므로, 굳이 자기의 얘기보다는 불조(佛祖)의 말씀을 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수 선사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나라 불교계의 성철 선사에게도 나타난다. 성철 선사께서는 평생 누구보다 철저하게 참선 수행을 실천했던 분이지만, 그 분이 남긴 말씀들, 가령 <백일법문>이나 <선문정로> 등을 보면 자신의 말씀보다는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훨씬 더 많이 인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성철 선사 또한 연수 선사처럼 불법을 온전히 전하는 데 진력을 다하셨고, 그런 와중에 자신의 말씀보다는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더 귀하게 활용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모습 속에는 불법의 진리에 동참한 분들이 갖는 어떤 여유로움이 간직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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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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