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암 거사와 배우는 유식]
전오식은 어떤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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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 2019 년 2 월 [통권 제70호] / / 작성일20-06-19 10:42 / 조회9,115회 / 댓글0건본문
허암 | 불교학자·유식
우리는 평소에 모든 정보를 5가지 감각[안이비설신]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 눈을 뜨고 있으면 시각의 강한 작용에 의해 사물의 움직임이나 색깔, 모양 등에 집중합니다. 또한 코는 냄새, 귀는 소리, 혀는 맛, 피부는 접촉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동요하여 바깥의 대상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은 내면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바깥 대상에 집중합니다.
심心=식識
그러나 반대로 감각을 차단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눈을 감고 시각작용을 차단하면 어떤가요? 물론 눈을 감고 시각을 차단하면, 처음에는 청각활동이 활발하게 작동하여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립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응! 소리가 들리네’라고 받아들이고 호흡이나 화두에 집중합니다. 이것을 몇 차례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며, 거의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감각을 차단하고 마음의 깊은 곳으로 의식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집중하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마음과 다른 마음, 즉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은 현재 드러나 작동하고 있는 마음[표층의 마음]과 깊은 곳에 침잠해서 드러나지 않는 마음[잠재된 마음, 심층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련하게 확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잠재된 마음을 요가수행자들은 수행을 통해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이름 붙여, 우리도 알 수 있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유식불교에서는 현재 드러나 작동하고 있는 마음[현재심顯在心]을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전오식前五識]과 제6 의식이라고 하고, 깊은 곳에 침잠해서 드러나지 않는 마음[잠재심潛在心]을 말나식과 아뢰야식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침해 있는 말나식과 아뢰야식을 발견한 것은 깊은 수행을 체험한 요가수행자[yogacārin, 요가를 실천하는 자]였습니다.(주1) 그중에 아뢰야식은 전오식, 의식, 말나식의 7가지 식[마음]을 생기시키고, 내 몸을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며, 자연을 생성시키고 유지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입니다.(주2) 그래서 유식에서는 심[마음]=식뿐[유식唯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그 식識중에서도 근본은 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
사족일지 모르지만 심[마음]과 식識에 대한 설명을 보충하고자 합니다. 제가 앞에서 마음[心, citta]=식(識, vijñapti)으로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친 보살의 저작인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에서 “심(心, citta)(주3)과 의(意,manas)와 식(識, vijñāna)과 요별(了別, vijñapti)(주4)은 동의이어同義異語이다.(주5)”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유식불교에서는 심心과 식識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에 18년간 유학하여 유식불교를 동아시아로 이식시킨 현장 스님은 범어 ‘비즈냐나vijñāna’와 ‘비즈냐프티vijñapti’를 구별하지 않고 ‘식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범어가 등장하여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두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비즈냐나vijñāna는 동사 ‘√jñā(알다)’에서 파생한 명사형‘jñā+ana’에 ‘분리하다·쪼개다’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 ‘vi’를 붙여 만든 단어로, ‘둘[인식 작용과 인식 대상]로 나누어[분별] 알다’는 뜻입니다. 요즈음 말로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비즈냐나vijñāna는 아뢰야식ālaya-vijñāna, 말나식manas-vijñāna 등과 같은 ‘식識’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반반면 비즈냐프티vijñapti는 ‘vi-√jñā(알다)’라는 동사원형에서 사역형 ‘vijñapapati’가 된 것으로, ‘둘로 나누어 알게 하는 것, 알려지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비즈냐프티vijñapti는 나누어 안다고 하더라도 대상을 전제하는 앎입니다. 그래서 ‘어떤 대상(artha)을 알게 하는 것’, 즉 ‘인식 작용’으로 번역합니다. 유식(唯識, vijñapti-mātra)의 원어가 바로 ‘비즈냐프티vijñapti’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현장 스님은 비즈냐나vijñāna와 비즈냐프티vijñapti를 구별하지 않고 단지 식識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독자들께서는 두 단어를 구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만, 학자들 사이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학자들 사이의 논쟁에 대해서는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전오식은 어떻게 생기며, 어떤 활동을 하는가
8가지 마음[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말나식·아뢰야식] 중에서 현재 드러나 활동하는 마음인 전오식과 제6 의식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만, 그전에 8가지 마음[팔식八識]은 어떤 작용을 하는지 대략적으로 도표로 제시하겠습니다.
<표층의 마음>: 전오식-감각
- 언어 없이 감각[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을 바탕으로 직접 각각의 대상[색경, 성경, 향경, 미경, 촉경]을 파악하는 마음이다.
- 각각 고유의 대상을 가진 마음, 즉 안식은 색[물질: 색체·형체·움직임], 이식은 소리, 비식은 향기, 설식은 맛, 신식은 촉[감촉]을 각각 대상으로 삼는다.
<표층의 마음>: 의식[제6 의식]-사고
-전오식의 활동을 바탕으로 대상을 종합적으로 판단 사유하는 마음
- 전오식과 함께 작용하여 감각을 선명하게 해주는 마음: 아픈 곳에 집중하면 그 곳이 더욱 아프게 한다.
- 전오식 배후에서 ‘언어’를 사용하여 대상을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마음.
<심층의 마음>: 말나식-자아집착심
모든 일에 ‘이기적’이고, 언제나 집요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심층의 마음>: 아뢰야식-근본심. 행위의 결과인 ‘종자’를 ‘저장’하는 마음.
이제 다시 되돌아 와 전오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인지 알아봅시다.
전오식前五識이란 ‘제6 의식 앞[전前]에 있는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가지 식[오식五識]’이라는 뜻입니다. 이 전오식에 대해 세친보살의 저작인 『유식삼십송』에서는
“‘전오식’은 근본식[아뢰야식]에 의지하여 작용한다. 전오식은 조건[연緣]에 따라서 나타나며 때로는 함께 때로는 별도로 작용한다. 파도[전오식]가 물[아뢰야식]에 의지하는 것과 같이.(제15게송)”(주6)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오식이 어떤 작용을 하는 마음인지, 이 게송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우선 게송 중의 ‘의지근본식依止根本識’이란 ‘전오식과 제6 의식’은 근본식mūlavijñāna인 아뢰야식을 의지하여 생기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아뢰야식은 모든 식의 의지처입니다. 즉 말나식, 제6 의식, 전오식은 아뢰야식에서 생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오식은 언제나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오식은 ‘조건에 따라 나타난다’고 합니다. 게송에서 전오식을 정의한 “전오식五識은 조건[연緣]에 따라서[수隨] 나타난다[현現][오식수연현五識隨緣現].”란 제6 의식은 언제나 현기[상현기常現起]하지만, 전오식은 조건[연緣]에 따라 일어난다[현現]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전오식은 언제나 생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맞지 않으면 생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만나면 전오식이 생기하는 것인가? 그 조건은 작의(作意, 마음을 대상에 향하도록 하는 마음작용), 근(根, 감각 기관), 경(境, 인식 대상) 등을 만날 때 생기하는 것입니다.
게송 중의 “‘전오식’은 때로는 함께[구俱] 때로는 단독[불구不俱]으로 작용한다[혹구혹불구或俱或不俱].”란 전오식 사이의 관계를 밝힌 것입니다. 전오식이 어떤 때는 함께 작용하고 어떤 때는 단독으로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안식이 단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안식·이식·비식이 동시에 작용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월 1일 해운대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볼 때는 눈[안식眼識]이 단독으로 작용합니다. 그렇지만 해를 보고서 송정에 있는 횟집에 가서 생선회를 먹을 때는 먼저 눈[안식眼識]으로 그 회가 싱싱한가를 확인하고, 혀[설식舌識]로 그 맛을 즐깁니다. 또는 TV를 볼 때 눈[안식眼識]은 화면을 보면서 동시에 귀[이식耳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처럼 감각이 단독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몇 개의 감각이 함께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오식를 ‘혹구혹불구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게송 중의 “파도[전오식]가 물[아뢰야식]에 의지하는 것과 같이[여도파의수如濤波依水].”란 아뢰야식과 전오식의 관계를 물과 파도의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마치 바다에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의 상태에 따라 파도가 일어나는 것처럼, 아뢰야식에 여러 가지 조건이 접촉하면 그 조건의 힘에 의해 전오식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수면에 빠지거나 기절하면 전오식과 제 6의식은 활동은 사라집니다. 이상으로 표층의 마음인 전오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호에도 계속해서 표층의 마음인 제6 의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주)
(주1) 말나식과 아뢰야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주2) 아뢰야식이 근본식인 이유를 『유식삼십송』의 주석서인 『유식삼십송석』에서는 “‘아뢰야식’이 안식 등의
전오식을 존재하게 하는 종자의 의지처이며 (모든 식은) 그것(아뢰야식)으로부터 생기하기 때문이다. 그리
고 <아뢰야식이> 모든 중생류를 출생시키고, 지속시키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주3) 심(心·心王)이란 범어 치타citta의 번역이다.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며, 동사어근 √cit(생각하다)에
과거수동분사(ta)를 첨가하여 명사로 만들었다. ‘citta’는 ‘<업을> 쌓다(ci), <종자가> 집적되다(√cita),
<대상 등이> 갖가지(√citra)’의 뜻이 있다. 부파불교에서는 주로 ‘쌓다·집적되다’, 유식불교에서는 ‘집
적되다·갖가지의’의 의미로 사용한다. 어원적으로 바른 어근은 ‘생각하다’(√cit)이다. 또한 심을 심소
心所와 대조하는 의미로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주4) 여기서는 편의상 ‘식vijñāna과 요별vijñapti’로 번역하였다. 착오 없기를.
(주5) cittaṃ mano vijñānaṃ vijñaptiś ceti paryāyāḥ/(범본)
sems dang yid dang rnam par shes pa dang/ rnam par rig pa zhes bya ba ni rnam grags su
gtogs pa'o/(티베트 역) 心意識等是總名(진제 역). 心意識了名之差別(현장 역).
(주6) pañcānāṃ m ūlavijñāne yathāpratyayam udbhavaḥ/ vijñānānāṃ saha na vā
taraṃgāṇāṃ yathā jale//(범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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