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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종경록 97권에 나오는 조사들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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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11 월 [통권 제5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9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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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는 <종경록> 100권을 발췌해서 간행한 책이지만, <종경록>가운데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은 권(卷)들이 있다. 가령 2권, 35권, 86~88권, 그리고 97권이 그렇다. 94권~100권에 이르는 인증장(引證章)의 내용은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부처님의 말씀이 94~96권, 조사의 말씀이 97~98권, 현성(賢聖)의 말씀이 99~100권에 각각 배치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조사의 말씀이 나오는 97권 역시 매우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명추회요>에서는 이 권의 내용이 통째로 빠져 있다. <명추회요>를 간행한 회당조심 선사와 그 일을 실제로 도맡았던 영원유청 선사가 어째서 이 97권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지만, 금방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종경록>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 많은 문헌들의 자취를 접할 수 있는 책이므로, 학술회의에 참가해보면 이에 대해 언급하는 얘기들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가령 원효 스님의 <금강삼매경론>을 연구하는 이들은 이 책이 <종경록>에서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 점에 주목하고 있고, 저자나 작성된 장소를 확정하기 어렵지만 신라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간주되는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을 연구하는 이들 역시 이 책이 <종경록>에 상당히 많이 인용되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보리달마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및 제2조 혜가 선사와 관련된 짧은 대화들 역시 주목되는데, 특히 혜가 선사의 말씀은 조선에서 간행된 <이입사행론> 두루마리[長卷子]에 수록된 내용을 대조해보는 데 있어 중요한 대조본이 된다.

 

<종경록> 94권에서 연수 선사는 조사들의 말씀 120가지를 소개한다고 했는데,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97권에 60가지, 98권에 63가지가 나오므로, 총 123가지의 말씀이 인용된다. <명추회요>에는 <종경록> 97권에 나오는 여러 조사들의 말씀 60가지가 모두 생략된 상태이므로, 이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조사의 뜻을 펼치다

 

연수 선사의 <종경록>을 보면, 자신의 말씀보다는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언구를 훨씬 더 비중 있게 언급한다.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씀 역시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가르침이 불교의 오랜 전통에 서 있음을 강조하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연수 선사가 보는 불교는 크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經)과 선종 조사들이 격외의 도리로 설한 선(禪)의 언구(言句)들로 나뉜다. 그런데 이들 말씀들은 모두 불조(佛祖)의 ‘깨달은 마음’에서 흘러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연수 선사는 늘 말씀의 자취를 통해 그 근원을 찾아갈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성격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관심 사항 역시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다양한 조사들의 말씀을 마치 그물처럼 던져서 사람들이 그 중 어느 하나에 걸릴 수 있는 기연(機緣)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종경록> 97권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미 밝혀졌으니, 조사의 뜻을 펴야 할 것이다. 불승(佛乘)에 통달한 자는 모두 요의(了義)와 상응하니, 가령 <법화경>에서 “이 사람이 사유하고 헤아리고 말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어서 진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또한 이전의 부처님들이 경에서 설한 바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는 <종경록> 94~96권의 3권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승의 경을 다 인용했으므로, 97권에서는 선종 조사들의 뜻을 소개할 차례라는 말씀이다. 인용문 중 불승(佛乘)이란 성문승(聲聞乘) · 연각승(緣覺僧) · 보살승(菩薩僧)의 삼승(三乘)이 아닌, 오직 ‘부처님의 경계’를 강조한 말씀이다. 이는 108배 할 때 읽는 예불대참회문 시작 부분에서 “제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나며 성문 · 연각 · 보살 지위 구함 아니요. 오직 오직 최상승을 의지하옵고 아녹다라삼보리심 냄이오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법화경>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 법을 설하시는데, 불타는 집의 비유[火宅喩], 거지 아들의 비유[窮子喩] 등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 삼승이 아닌 일승을 강조하는 내용은 불타는 집의 비유에 나온다. 큰 집에 불이 났지만, 어린 자식들이 노는 데에 정신이 팔려 나오지 않자, 바깥에 있던 아버지가 큰소리로 자식들이 좋아하는 사슴수레, 양수레, 소수레를 주겠다고 외쳤다. 이 소리를 듣고 자식들이 얼른 불타는 집을 빠져나왔는데, 나와 보니 바깥에는 크고 흰 소가 끄는 훌륭한 수레가 서 있었다는 것이 이 비유의 줄거리이다. 아버지로 비유되는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작은 수레가 아닌 자신이 타는 가장 훌륭한 수레를 주고자 한다는 것이 <법화경>의 내용으로서, 이를 ‘셋을 모아 하나로 귀결시킨다[會三歸一]’고 한다. 

 

<전등록>의 기록에 따르면, 연수 선사는 “어린 시절 이미 마음을 불승(佛乘)에 귀의하였고, 약관인 20세 이후에는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법화경>을 지송함에 한 번에 7줄씩 보았고 두 달 만에 이를 다 외우니, 경을 읽을 때 양들이 꿇어 앉아 들었다.”라고 기술된다. 연수 선사는 <법화경>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위의 인용문에서도 요의(了義), 곧 완전한 가르침인 ‘불승’을 통달한 사람이 사유하고 말하고 헤아리는 것이 모두 진실한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불승이 바로 조사들이 전하고자 하는 뜻이다. 

 

과거칠불에서 마조 대사까지

 

오늘날 연구에 따르면, 선종의 조사 가운데 인도에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한 28대 조사에 대한 현재와 같은 전승은 800년대 들어가서 비로소 정착되었다. 그러므로 그 이전의 기록을 보면, 조사의 명칭과 대수(代數) 등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종경록> 97권에는 현겁(賢劫)의 일곱 부처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데, 첫 번째가 비바시불(毘婆尸佛)이고, 일곱 번째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다. 이렇게 일곱 분의 부처님의 전법게를 제일 앞에 배치한 뒤, 서천의 제1조인 마하가섭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천의 제28조이자 중국 선종의 제1조인 보리달마(菩提達磨)까지 소개한다. 보리달마 이후는 우리에게 친숙한 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회양-마조의 순서로 그들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도신의 방계로 우두종의 법융 선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연수 선사의 시대에 현재 우리가 아는 선종의 조통설(祖統說)이 이미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육조 혜능 대사의 말씀을 잠깐 들어보고자 한다. 이는 <종경록>과 비슷한 시대에 나온 <경덕전등록>, <조당집> 등에서만 나오는 말씀으로, <육조단경> 등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제6조 혜능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자신의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여우같이 의심하지 말라. 마음 밖에 세울 수 있는 어떤 법도 없으니, 자기 마음에서 온갖 종류의 법이 생긴다. <경>에서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법이 생긴다.’고 했으니, 그 법은 두 가지가 없고 그 마음 역시 그러하다. 그 길은 청정하여 여러 형상이 없으니, 너희들은 청정이 따로 있다고 관찰하여 그 마음을 텅 비우려 하지 말라. 이 마음은 둘이 없으므로 취하거나 버릴 수 없다. 행주좌와를 모두 한결같이 곧은 마음(直心)으로 하면 이것이 바로 정토(淨土)이다. 내 말에 의지하면 반드시 깨달을 것이다.”(<대정장> 48권, 940상)

 

<종경록> 97권에 인용된 여러 조사들의 말씀은 ‘마음’을 여러 측면에서 드러내는 내용들이다. 육조 대사의 말씀 역시 마음이 일체법의 근본이므로, 가고, 머물고, 앉고, 누울 때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그 자리가 정토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보통 서방정토는 세상을 떠난 뒤 가는 곳이라거나, 아니면 지금 이곳에서 서쪽으로 먼 곳에 위치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육조 대사께서는 자신의 마음이 깨달음의 상태로 고양되는 곳이 바로 정토라고 설하는 것이다. 선사들은 이를 유심정토(唯心淨土)라고 칭한다. 이 유심의 도리는 저 멀리는 과거의 일곱 부처님에게서 밝혀진 이후 중국 선종의 육조 대사, 그리고 마조 대사에까지 전해지는 가르침이므로, 이를 보다 집대성하고 강조하기 위해 <심경록(心鏡錄)>으로도 불리는 연수 선사의 <종경록>이 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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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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